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129화 (130/175)

129화 [Episode 29] 사이비 (4)

건대 입구 대학로.

한때 대학생들의 젊음과 활력으로 가득했던 거리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한 폐허로 변해 있었다.

박살 난 원룸촌과 상가 건물들이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두 동강이 난 채로 나뒹굴고 있는 간판과 콘크리트에 박혀 있는 철제 구조물들.

생명체의 흔적이라고는 잔해 사이사이로 말라붙은 피의 흔적이 전부였다.

이곳에서 사람은 물론이고 몬스터 한 마리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이곳에 자리 잡은 한 마리 몬스터 때문이었다.

철컥─ 철컥─

8톤 트럭보다도 커다란 덩치에 얼핏 스테고사우루스처럼도 보이는 모습을 한 놈에게는 단 한 조각의 살점도 붙어 있지 않았다.

오로지 날카로운 칼날로만 이루어진 놈의 몸체 안쪽으로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것을 보면 놈의 몸에는 피도 흐르지 않는 듯했다.

전신이 칼날로 이루어진 철의 골렘.

아이젠블레이드(Aizenblade).

이곳은 놈의 영역이었다.

쿠웅―!

발 대신 두껍고 거대한 칼날이 달려 있는 놈이 한 발자국씩을 내디딜 때마다 콘크리트 바닥에 깊은 자상이 생겨났다.

천천히 자신의 영역을 거닐던 어느 순간.

부스럭

움직임이 포착된 순간 아이젠블레이드의 고개가 거칠게 돌아갔다.

거대한 칼의 골렘과 눈이 마주친 남자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히익!”

남자는 곧바로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콰과과곽─!

아이젠블레이드는 두꺼운 네 개의 칼날로 사방을 헤집으며 순식간에 남자를 따라잡았다.

짙은 그림자가 남자의 머리 위를 뒤덮었고.

서걱!

남자는 제대로 된 비명 한번 질러 보지 못한 채로 그대로 생을 마감했다.

아이젠블레이드는 자신의 한쪽 발을 포크처럼 사용하여 남자를 자신의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서걱- 서걱―

목부터 배까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구조 덕에 입 안으로 들어간 남자의 시체가 어떻게 조각나는지 바깥에서도 적나라하게 비쳐 보였다.

아이젠블레이드의 몸 안쪽에 비치된 칼날이 사정없이 남자의 시체를 헤집었고, 그의 육편과 피가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철컥─철컥─

이것이 바로 놈의 영역에 생명체가 없는 이유였다.

아이젠블레이드는 움직이는 모든 물체를 갈가리 찢어 놓는다.

그게 자동차가 됐건, 인간이 됐건, 몬스터가 됐건, 하수구를 기어 다니던 생쥐가 됐건.

모든 것을 찢어발기는 것이다.

뚝― 뚜둑

멋모르고 아이젠블레이드의 영역에 침입했던 남자의 피가 콘크리트를 적셨다.

그리고 바로 근처에 남자의 동료가 있었다.

“후욱, 후욱!”

이준영은 동료의 죽음을 슬퍼할 새도 없이 아이젠블레이드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불행히도 아슬아슬하게 놈의 감지 범위에 들어온 상태였다.

직전에 동료를 죽이는 과정에서 그만큼 이준영과의 거리가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이젠블레이드는 일정 거리 안에서는 미세한 소리조차 놓치지 않는 괴물이었다.

철컥

놈의 고개가 정확하게 이준영이 있는 곳을 향했다.

놈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조심스레 뒷걸음질을 치고 있던 이준영은 그 순간 죽음을 직감했다.

“아. 개망했네.”

콰과과과!

칼의 골렘이 다시 한번 어마어마한 속도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배리어.”

멍하니 서 있던 자신의 등 뒤에서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앞에서 거대 괴물이 돌진해 오고 있는 와중에도 여자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우웅!

이내 이준영은 자신을 둘러싸는 얇은 막을 보았고, 그 직후 뒤쪽에서 튀어나온 손이 자신의 허리를 낚아채는 것을 느꼈다.

“어억?”

순간 4m 정도 떠오른 자신의 몸을 보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 전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이 자신을 들고 점프한 걸 알게 된 것은 멀리 떨어진 잔해에 착지하고 난 뒤였다.

그 직후.

콰과곽! 콰앙!

방금까지 그들이 있었던 장소를 향해 마구잡이로 칼날을 휘두르는 아이젠블레이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놈이 화풀이를 하는 동안 이준영은 여자를 향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으려 했다.

“이, 이게?”

그러나.

“쉿.”

여자가 검지손가락을 들어 올려 보였기 때문에 입을 꾹 다물었다.

“저 괴물은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해요. 그러니까 조용히 하세요.”

“……?”

그럼, 당신도 말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자는 마치 그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자연스레 대답했다.

“이 배리어는 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을 막아 줘요. 지금처럼 속삭이는 정도는 괜찮아요.”

“그, 그렇군요.”

콰앙! 콰앙!

괴물의 화풀이가 한동안 거칠어졌지만, 놈은 이준영을 찾지 못했다.

괴물은 한동안 애꿎은 땅만 헤집더니 포기하고 떠나가 버렸다.

놈이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여자는 배리어를 풀며 손을 내밀었다.

“저는 강예은이라고 해요.”

“이, 이준영입니다.”

어색하게 그녀의 손을 맞잡던 이준영은 곧이어 깊이 고개를 숙이며 재차 감사를 표했다.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제가 아니라 주님께 드렸으면 좋겠네요. 주님께서 저를 여기로 보내셨거든요.”

“네?”

강예은이 밝은 얼굴로 물었다.

“혼자서 움직이시나요?”

“아, 아뇨. 저는 식량을 구하러 온 거고, 같이 움직이는 사람이 열댓 명 정도 있습니다.”

“잘됐네요! 분명 주님께서 저를 이리로 보내신 것은 여러분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라는 뜻이겠지요.”

“아, 하, 하. 그렇군요.”

이준영은 억지 웃음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 힘을 써야 했다.

어쨌든 강예은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었으니까.

‘그것도 능력자다.’

종교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지만, 자신을 구해 준 은인의 비위를 맞추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았다.

“주님의 은총에 감사해야겠군요.”

“바로 그거에요! 당신은 구원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아아. 주님께선 여기까지 내다보신 것이었군요!”

“아멘.”

그때까지만 해도 이준영의 종교 찬양은 적당한 구색 맞추기였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선물입니다.”

“선물이요?”

강예은이 건네준 배낭 안을 바라보고는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

배낭 안에는 과일이나 육포 등의 식량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저와 함께 성역으로 가시죠. 앞으로 먹을 것 걱정은 하실 필요 없게 해 드리겠습니다.”

이준영의 머릿속에 그간의 고생이 스쳐 지나갔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항상 죽음을 무릅써야 했던 지난 나날들이 떠올랐다.

“정말, 정말입니까?”

강예은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당신은 주님의 선택을 받으신 겁니다.”

“흐윽, 허어엉!”

이준영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주님께서 당신을 구원해 주실 겁니다.”

* * *

지난 며칠간 JHS 교단을 조사했다.

어떻게 대응 하는 게 맞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과 많이 달랐어.’

자신을 신이라고 자칭하는 남자가 이끄는 교단이었다.

당연히 미친 소리이며,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속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조사해 본 결과 실상은 조금 달랐다.

‘정현수는 실제로 기적을 보여 줬다.’

70층의 미로에서 별다른 수확을 얻지 못하고 가신 소환을 사용해 문병호를 빼낸 바로 다음날 새벽.

새벽 기도에서 그는 몬스터의 습격으로 인해 다리가 잘려 나간 남자의 다리를 낫게 만들었다.

‘사실 그 정도는 지금의 김다정에게도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 사람의 장애를 고친 그 힘이 별것 아닌 것도 아니었다.

‘SR등급의 능력이었지.’

교주 정현수의 능력은 환상을 실제로 구현하는 능력이었다.

70층에 구현되어 있던 미로 또한 놈이 직접 제작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절대자의 눈에 비친 놈의 레벨은 52.

상당히 높은 레벨이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리 높은 레벨도 아니었다.

놈을 죽이려면 언제든지 가능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놈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 주고 있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JHS 교단에는 능력자가 많았다.

식물의 생장을 가속시키는 능력으로 과일을 생산하고, 물을 정화하는 능력으로 한강에서 마실 물을 잔뜩 생산해 냈다.

전기를 생산하여 공급하는 능력자들도 있었고, 더불어 몇몇 능력자들을 활용해 주변에 있는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은 선한 영향력 그 자체였다.

‘거슬리는 게 없는 건 아니지만.’

문병호의 투명화 능력으로 교단의 어두운 면도 많이 알아냈다.

어리고 예쁜 여자들이 매일 같이 바꿔 가며 70층으로 부른다거나, 신도 중 몇몇이 부자연스럽다는 점이었다.

‘능력을 가진 신도 중에서 몇몇은 인형처럼 묵묵히 일만 하는 이들이 많았지.’

그 어떤 사람들과 교류하지도 않고, 그 어떤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으며, 한마디 말도 없이 맡은 바 임무에만 충실한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세뇌 같은 걸 당한 것 같은데…….’

그밖에도 평범한 사람 중에 교단에 반항심을 보이는 이들을 몬스터의 영역에 방출시켜 알아서 죽게 만든다거나, 집단 린치를 가해서 강제로 교단을 찬양하게 만드는 일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점은 정현수의 잘못이라고 하기 애매했다.

딱히 그가 지시하지 않아도 그를 따르는 열성분자들이 알아서 저지른 일이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런 시스템을 놈이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것도 추측일 뿐이었다.

‘선한 인물은 절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악인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그를 따르는 능력자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가 수십 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

그리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생존자들을 구하고 새롭게 합류시키는 중이었다.

지금만 해도 칼날로 뒤덮인 골렘에게서 생존자를 구해 낸 저 여자가 바로 교단에서 파견된 인물이었다.

‘어렵군.’

정현수는 분명 악인이었지만, 수십만 명의 생명이 그의 어깨에 있었다.

지금 당장 놈을 죽이고 저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해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것을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찜찜하단 말이지.’

쉽사리 놈을 내버려 둬야겠다고 판단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내 감이 놈을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일단은 할 수 있는 걸 하는 수밖에.’

하늘 위에서 강예은을 미행하고 있던 김가영이 타고 있던 켈리칸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저 괴물을 따라가.]

-끼에에엑!

켈리칸이 울자 아이젠블레이드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놈의 몸에는 방금 죽인 남자의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김가영은 놈을 향해 활시위를 겨누었다.

우웅―

그녀의 손에서 빛의 활과 화살이 나타났다.

소통의 반지를 사용해 말하지 않아도 김가영은 자신이 해야할 일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강화.’

화르르륵!

그녀의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며 빛의 화살이 검게 물들며 부풀어 올랐다.

우우우웅!

이내 거대해질 대로 거대해진 검은 화살이 아이젠블레이드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아앙!

[아이젠블레이드(Lv. 48)을 사냥하셨습니다.]

[초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28,453,097,117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시민 김가영이 ‘건대 입구역’의 우두머리를 해치웠습니다.]

[‘건대 입구역’에 전초기지 건설이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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