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Episode 29] 사이비 (5)
‘이번엔 건대 입구역인가.’
모든 시간을 교단 조사에만 쏟은 것은 아니었다.
서울에 진입했던 원래 목적인 보스급 몬스터 사냥과 그를 기반으로 한 전초기지 건설도 병행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JHS 교단의 조사도 함께하다 보니 본거지인 잠실 근처에 있는 몬스터들을 사냥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전초기지 건설이 가능해지는 조건에 대해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최소 30레벨 이상의 몬스터의 사냥과 전초기지화시킬 만한 장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나의 의지.
지금만 해도 그렇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아이젠블레이드의 영역은 반경 1km는 족히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전초기지 건설이 가능해진 것은 완전히 박살 난 2호선이 아닌 지하에 매설된 7호선의 건대 입구역이었다.
조건에 충족된 곳이 여기뿐이었던 탓이다.
‘이 정도 거리면 적당할 것 같은데.’
지금까지의 후보 중에 가장 잠실과 가까운 장소였다.
‘여기가 가장 좋겠어.’
JHS를 조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생각보다 극성 신도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무언가에 세뇌된 것처럼 맹목적으로 정현수를 믿는 이들도 분명 존재하기는 했지만, 열에 하나꼴이었다.
신도 중 7할 이상이 믿음보다는 안전과 식량을 목적으로 JHS 교단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들 중 절반 정도는 시민권을 발급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들은 금방 JHS 교단 따위는 잊고 부산에서 적응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확신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 첫째는 그들의 대우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능력을 각성한 사람들이 합심하여 사회를 꾸리고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식량은 10만 명이 넘어가는 인구가 풍족하게 먹기에는 부족했고, 특히 식수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한강 근처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해야 했다.
그만큼 생활 여건이 열악하다는 소리다.
‘우리 쪽 환경을 알게 된다면 기꺼이 넘어올 사람들이 많아.’
두 번째로 몬스터에 대한 위협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완전히 안전하다고 할 만한 곳은 성역이라고 불리는 롯데월드와 롯데타워 정도가 다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블린들에게 공격받아 죽거나 다치는 이들이 존재했다.
상처를 치료하지 못해 상당히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있는 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의 경우 모두 김다정이 직접 치료해 주었다.
죽다 살아난 이들에게는 JHS 교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 다음 우리 쪽 사람이 되겠느냐고 물었고, 그들은 애초에 JHS 따위 믿지도 않고 있었다며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지원해 준 초콜릿이나 콜라, 그리고 라면 등이 큰 역할을 한 것 같기는 했다.
‘아직 시민권을 발급해 주진 못했지만.’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사대문의 경우 시민권을 발급받은 사람들만이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전초기지가 없는 상황에서 그들을 시민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일일이 켈리칸으로 실어 날라야 했다.
‘최상현과 최슬기 부녀처럼 말이지.’
두 사람 덕분에 시민권이 없는 사람은 북대문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슬기가 완강하게 거부했지만, 강제로 데려와 시민권을 부여했다.
처음에는 사탄이라며 저주의 말을 쏟아 내던 그녀는 서면에 도착해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따뜻한 밥을 먹고 난 뒤로 입을 닫았다.
지금은 얌전히 최상현과 생활하는 중이었다.
내가 직접 만나지도 않았는데, 나에 대한 신뢰도와 충성도가 쑥쑥 올라가는 것을 보면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눈치였다.
‘열성적인 신도였던 최슬기도 이렇게 변했다. 김다정의 치료를 받은 사람들도 금방 적응하겠지.’
그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전초기지를 건설해야만 했다.
[여러분.]
소통의 반지를 사용하여 상대적으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가신 아홉 명에게 말을 걸었다.
[준비해 주세요. 전초기지 건설을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미리 이야기되어 있던 터라 준비를 마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신 소환.’
그들 아홉 명을 모두 한데 소환한 다음.
‘북대문 개방.’
김가영이 있는 건대 입구역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냉기를 다루는 쌍둥이 형제 중 형 쪽인 문지훈이 내게 물었다.
“재현 님. 저희가 가는 곳은 어디입니까?”
“건대 입구역이에요.”
“엇? 진짜요? 대박.”
“왜 그러시죠?”
“제 친구 중에 건국대인 애가 있어서 한번 가 봤거든요. 그래도 아는 곳이라 익숙하겠다 싶어서요.”
“그런 기대는 버리시는 게 좋을 겁니다.”
“예?”
“문지훈 씨가 보셨던 모습과는 많이 다를 거예요.”
나는 북대문 앞에서 살짝 비켜섰다.
문지훈은 북대문 너머로 비치는 풍경을 보고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
한때 아이젠블레이드의 영역이었던 거리는 모든 것이 박살 난 폐허가 되어 있었다.
“여기가…… 정말……?”
믿지 못하겠다는 문지훈을 향해 확정해 주었다.
“서울입니다.”
충격을 받은 것은 문지훈뿐만이 아니었다.
북대문을 통해 넘어간 가신들의 표정도 모두 딱딱하게 굳은 채로 파괴된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모두 건대 입구역으로 들어가 주세요.”
김가영까지 가신 10명이 충족된 것을 확인하고 전초기지 건설을 시작했다.
[건설 현장에 ‘기사’급 이상의 칭호를 가진 시민이 10명 이상 모여 있습니다.]
[건설 효율이 200% 증가합니다.]
[전초기지 시설 건설 완료까지 남은 시간]
-55시간 59분 59초
지하철역 규모인 만큼 건설에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건대 입구 역에 모인 가신들을 향해 말했다.
[사흘만 고생해 주세요.]
전초기지만 완성되고 나면 JHS의 신도 중 상당수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신도라고 하기도 힘들지.’
JHS를 믿어서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그곳에 있기를 선택한 사람들이었으니까.
‘일단 받아들일 만한 사람들은 모두 받아들인다.’
JHS 교단의 교주 정현수에 대한 처우는 놈의 영향력을 낮춰 놓은 뒤에 고민해 볼 생각이었다.
* * *
강예은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이준영은 동료 11명을 데리고 JHS 교단의 본거지인 잠실로 이동했다.
그녀의 안내에 따라 처음 롯데월드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너무나도 놀랐다.
전기가 들어오고, 놀이 기구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으니까.
온종일 놀고 밤이 되어 조명으로 빛나는 롯데타워를 봤을 때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으며,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맞먹는 장소에서 자게 되었을 때는 정말이지 꿈만 같았다.
“와, 엄청 넓어요!”
“이게 다 준영 씨 덕분이네요. 이런 호사를 누리게 될 줄이야.”
11명의 동료가 함께 룸을 사용하게 된 상태에서 침대는 겨우 두 개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일단 넓이부터가 30평 아파트 못지않았으니까.
“어? 물! 물이 나와요!”
“변기는요? 내려 봐요.”
“어? 내려간다!”
“어어, 거기! 침대 위에는 씻고 올라가요! 교대로 샤워부터 합시다!”
지금까지 그들이 지내던 곳에 비하면 이곳은 천국이나 다름없게 느껴졌으니까.
‘전기와 수도가 들어온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살 만하구나.’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은 단점조차 되지 못했다.
냉수 샤워라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께 감사하게 됐으니까.
오히려 사람들이 너무 오래 샤워하지 않아서 좋았다.
‘이런 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면 JLS인지 뭔지도 믿어야지!’
사이비 교단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딴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 누구보다도 열성적인 신도가 될 자신이 있었다.
“푹신푹신해…….”
모두가 샤워를 마치고 침대나 소파 등에 자리를 잡고 늘어져 있을 때였다.
띵동~♬
벨 소리와 함께 손님이 찾아왔다.
“다들 잘 쉬고 계셨어요?”
그들을 이곳으로 안내한 강예은이 한 손에는 와인 한 병 다른 한 손에는 고급 초콜릿이 담긴 푸른 접시를 들고 찾아온 것이었다.
“이게 다 뭐예요?”
“웰컴 드링크와 웰컴 초콜릿이에요.”
술과 초콜릿이란 말에 잔뜩 흥분한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진짜 와인이에요, 그거?”
“초콜릿!”
강예은은 익숙하게 찬장 속에서 와인 잔을 꺼내 세팅했다.
“잔이 두 개밖에 없네요. 죄송해요.”
“죄송하긴요! 잔이 없어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 모금씩 사이좋게 나눠 마셔 볼까요?”
그렇게 술판이 벌어졌다.
자연스럽게 달아오른 분위기에서.
“이 초콜릿은 귀한 거니, 꼭 각자 하나씩만 맛보도록 하세요.”
“네!”
강예은이 푸른 접시 위에 있는 초콜릿을 권했다.
이준영의 일행 중에 가장 나이 어린 여자애가 제일 먼저 초콜릿을 입에 넣었고, 다른 사람들도 이에 질세라 각자 자기 몫의 초콜릿을 챙겼다.
행복한 표정으로 초콜릿을 먹던 어느 순간.
“읍?”
“음?”
“어?”
사람들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것은 이준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뭐지 이 비린 맛은?’
초콜릿을 씹자 안에서 불쾌한 맛의 액체가 퍼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상한 건가?’
침묵이 흐르길 잠시.
“마, 맛있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초콜릿의 맛에 대해 얼버무렸다.
상한 음식을 먹는 것이야 이제는 질리도록 겪어 온 일이었고, 무엇보다 자신들을 이렇게 귀하게 대접해 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강예은이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이네요.”
그리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즐겁게 보내셨나요?”
“네! 덕분에 정말이지 꿈만 같은 하루를 보냈어요.”
“망할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전보다 더 재미있게 논 것 같다니까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가만히 웃음 짓던 강예은이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이 천상의 시민이 되면 매일이 오늘과 같을 겁니다.”
“네……?”
“혹시 여기에 각성자분 계신가요?”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강예은이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아쉽네요. 능력에 따라 다르지만, 각성자라면 곧바로 ‘영도(英徒)’까지는 올라갈 수 있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교단에는 몇 가지 계급이 있습니다. 초콜릿을 드신 여러분들은 이제 ‘추종자’가 되신 겁니다. 축하드려요.”
“…….”
“천상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수행자’를 목표로 하셔야겠네요.”
이준영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수행자……?”
강예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간단해요. 여러분과 같은 신입 추종자분들을 한 명씩만 데려오시면 됩니다. 그러면 수행자가 되실 수 있어요.”
“……수행자가 되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더 좋은 음식과 더 좋은 잠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죠.”
“그다음은……?”
“교단의 교리를 열심히 배우고, 기도를 성실히 나오기만 한다면 금방 선도(先導)가 되실 수 있을 거예요.”
“선도라면……?”
“네. 이때부터는 기도를 위해 성역에 발을 들이실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제한적이겠지만요.”
방 안에 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왜냐하면 생존자를 찾는다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 일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두 명.’
그만한 숫자의 생존자를 구해 오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절망하고 있던 그때 강예은이 동아줄을 내려 주었다.
“너무 실망하지는 마세요. 여러분 중에 절반은 지금 바로 수행자가 되실 수 있으니까요.”
“네? 그게 무슨……?”
“원래라면 제 공적이기는 한데, 여러분들끼리 서로 한 분씩 소개해 준 형식으로 보고하면 수행자가 되실 수 있을 거예요. 마침 짝수니까 딱 반으로 나뉘겠네요!”
“그, 그래도 될까요?”
“물론이죠! 사실 여러분을 성역 안으로 데려온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준영은 곧장 죄책감 어린 눈빛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아무런 희생 없이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괜히 저희 때문에 무리하셨다면…….”
“괜찮아요! 대신! 제가 무리한 만큼 여러분들이 열심히 계급을 올리려고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내일 아침까지 수행자가 되실 여섯 분을 정해 주세요. 내일 뵐게요.”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사이였기에 여섯 명을 정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평소 탐색을 자주 나갔던 이들이 추종자에 남고, 영역을 지키며 잡일을 하던 이들이 수행자가 되기로 정했다.
충격인 것은 다음날 ‘추종자’와 ‘수행자’의 거처로 안내받았을 때였다.
“허.”
놀랍게도 추종자와 수행자의 거처는 한강변에 설치된 텐트였다.
추종자의 경우에는 1인용 텐트였고, 수행자의 경우에도 네 명이 함께 잘 수 있을 정도로 넓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었다.
매일 빵과 우유 같은 식량을 배급해 준다는 것을 빼면 적당한 빈집에 들어가서 지내던 예전보다 못한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한테 들어 보니까 예전처럼 빈집에서라도 지내려면 선도(先導)까지는 올라야 한다더라. 그래도 일주일 정도만 꾸준히 나오면 된다는 모양이니 나쁘지 않은 조건인 것 같아. 배급도 그럴듯해지고.”
“거기까지는 올라오란 소리네.”
“그렇지.”
이준영은 주먹을 꽉 쥐었고, 그의 동료가 말했다.
“오랜만에 같이 움직이겠네.”
“아니.”
“응?”
“나 혼자 다녀오겠어.”
“뭐?”
“여섯 명 정도라면 마침 적당한 곳을 알고 있어. 어차피 여럿이서 움직여 봤자 거추장스러울 뿐이야.”
“야, 그래도…….”
“애들이랑 같이 기도라도 참석하고 있어. 하루라도 빨리 계급을 올려야 하니까.”
그렇게 말하고 그는 훌쩍 떠나 버렸다.
당일 저녁, 이준영은 도박에 성공했고, 그를 포함한 모든 동료가 성공적으로 수행자가 될 수 있었다.
“미친! 안 믿고 있었다구!”
“좀 믿어라.”
“고마워, 준영 씨.”
그다음 날 아침.
믿기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쿠구구구구
요란한 지진과 함께.
콰과과곽―
놀이동산과 롯데타워, 그리고 석촌 호수를 포함한 지역의 땅.
그들이 성역이라 부르는 땅이 천천히 하늘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뭔……?!”
그리고.
털썩!
이준영은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의 옆에서 멀쩡히 말하고 동료들이 하나둘 쓰러지는 것을 보고 기겁했다.
“태현아! 지현 씨! 다들 왜 그래?”
이윽고.
“……어?”
몰려오는 졸음 속에서 눈을 감았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하늘에 떠 있는 땅을 향해 떠오르고 있는 자신의 영혼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