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134화 (135/175)

134화 [Episode 30] 휴거 (4)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사이비 신도{천상}(Lv. 15)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32,001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머리가 터질 때까지만 해도 분명 정현수였다.

그러나 정산할 때쯤에는 이름 모를 여자 신도의 시체로 변한 것이다.

하동건이 나를 향해 물었다.

“쫓을까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놈을 죽이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진짜 목적은 이 작은 세상의 핵.

‘저거로군.’

자그마한 푸른 구슬이 빛나고 있었다. 그것에 다가가 조용히 손을 갖다 대자 영혼들의 절규가 느껴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억울한 마음이 전해져 왔다.

“릴리트.”

“넹!”

“할 수 있겠어?”

“저 혼자서는 불가능한 거예요! 주인님의 힘이 필요한 거예요!”

릴리트가 말하는 내 힘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녀를 향해 손을 뻗은 다음.

‘강화.’

힘을 부여했다.

그러자 릴리트의 전신에서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고, 그녀의 자그마한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몽마 릴리트(Lilith)가 힘의 개방을 요청합니다.]

[허가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예.’

그 순간.

[300,000,000 원이 소모됩니다.]

파아앗―

릴리트의 몸에 깃든 검은 기운이 심하게 요동치더니 짜리몽땅하던 릴리트의 몸이 길쭉해지기 시작했다.

늘씬한 팔다리와 볼륨 있는 몸매에 섹시한 의상이 간신히 걸쳐져 있는 어엿한 몽마의 모습이 됐다.

신격을 빼앗기며 환수가 되기 전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잠시 긴장했으나, 금방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주인님! 나 완전 멋진 거예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자신의 변한 몸을 바라보는 모습만 봐도 내용물이 그대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할 수 있겠어?”

“넹!”

릴리트는 중앙에 배치된 푸른 구슬을 향해 다가가더니 망설임 없이 그것을 감싸 안았다.

그 직후.

화아아악―

푸른 구슬이 검게 물들어 갔다.

그와 동시에 정현수가 만들어 낸 낙원의 구조가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곳은 릴리트가 만들어 냈던 세상처럼 태생부터 불완전한 세상이었다.

아니, 오히려 생명력을 빨아먹으며 버티던 그 잔혹한 세상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곳이었다.

현실보다는 환상에 가깝기 때문에 비로소 정현수의 능력이 극대화 될 수 있는 불완전한 장소.

14만 4천 명이라는 사람의 정신을 이용해 간신히 구현해 놓은 신기루와 같은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이건…… 내가 아니어도 곧 무너졌겠군.’

단 한 톨의 신격조차도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무너졌을 공간이라는 소리다.

‘14만 4천 명의 정신을 모두 빨아먹은 뒤에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정신을 빨아먹었겠지.’

교주를 따르던 광신도들의 목숨도 이 세상을 유지하는 데에 쓰이게 됐을 거라는 소리다.

어쩌면 교주인 정현수 본인조차도 신기루 같은 세상의 유지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을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병신 같은 짓을 벌였구나.’

이처럼 불완전한 세상이기에 신격을 가진 내게 손쉽게 굴복해 버린 것이다.

정현수가 만들어 낸 세상은 처음부터 내가 주인이었던 것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내게 바쳤다.

그 순간.

‘보인다.’

그동안 노이즈가 낀 채로 보이던 절대자의 눈이 너무나도 깔끔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가신들이 없는 공간까지도 내 마음대로 보고 느낄 수 있게 됐다.

이 공간 전체가 완전히 내 영역이 되어 버린 것이다.

동시에.

‘거기 있었구나.’

모든 영역에 자유롭게 절대자의 눈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천사의 날개가 생긴 자신들의 모습에 감탄하며 정현수를 찬양하고 있는 광신도들의 모습이 보였다.

“우린 달라! 그 버러지들과는 달리 선택받은 신의 종이니까!”

“그래! 이 날개를 봐! 우리 모두 진정한 의미에서 천상의 시민이 된 거야!”

“제물이 된 버러지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감사해야 한다니까? 이 세상의 일부가 되어 영원을 경험할 테니까!”

그들의 대화를 듣고 알게 됐다.

저들 중 그 누구도 죄가 없는 자가 없다는 것을.

‘너희의 죄는 잘못된 신을 섬긴 것이다.’

그때.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시민권을 부여하시겠습니까?]

너무나도 익숙한 알림이 도착했다.

대상은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시민으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었다.

정현수를 비롯하여 그의 뜻에 빌붙어 이 비극적인 세상을 만드는 것에 일조한 모든 이들에게, 천벌을 내릴 생각이었다.

품위 유지 스킬의 제일 기본인 1레벨 효과는 전기, 가스, 수도를 자유롭게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후에 그것들을 내 의지대로 마음껏 재생산하고 부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이런 식의 활용도 가능했다.

꽈르르르릉!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대한민국의 원자력 발전소를 모두 얻고 난 뒤로는 매일매일 잉여 전력이 남아돌고 있었다.

지금 만들어 낸 저 번개는 오로지 잉여 전력만을 사용한 것이었다.

“……!”

날벼락이 떨어져 동료가 죽어 버렸음에도 그 누구도 비명 하나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완전히 내 영역이 되는 순간 시민권이 없는 이들의 행동은 완벽하게 제어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공포에 떨며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잉여 전기라면 아직 차고도 넘쳤다.

그러나 그때.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제거합니다.]

나에게 적대감을 가진 개체.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제거합니다.]

누구인지는 뻔했다.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제거합니다.]

이 모든 것의 원흉인 정현수.

놈이 계속해서 자폭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현수는 그런 식으로 열댓 명 이상의 목숨을 허비하고 나서야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

‘텔레포트.’

나는 놈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을 이용해 놈의 목줄을 붙잡아 올려 눈을 마주했다.

놈에게 말했다.

“이번에 죽으면 너는 진짜 죽는다.”

그와 동시에 놈의 여분의 목숨이었던 광신도들의 머리 위로 낙뢰를 떨구었다.

꽈르르릉!

[사이비 신도{천상}(Lv. 15)를 사냥하셨습니다.]

[사이비 신도{천상}(Lv. 15)를 사냥하셨습니다.]

[사이비 신도{천상}(Lv. 15)를 사냥하셨습니다.]

……

……

“당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는 제대로 인지하고 있습니까?”

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로 몸을 덜덜 떨었다.

그리고 놈의 사타구니가 축축해지더니 다리를 따라 오줌이 흘러내렸다.

나는 시민권을 부여하는 대신 임의로 내 영역에 머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해 주었다.

강아지들이나 고양이들에게 부여하는 자격이었고, 그제야 놈은 입을 열 수 있게 되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사, 살려 주세요…….”

어설프게나마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그를 위해 무려 14만 4천 명의 목숨을 바친 놈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이 초라한 모습이었다.

배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이란.

‘이런 게 사이비의 실체인 거겠지.’

이딴 놈을 신이라고 믿었던 광신도들이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회, 회개하겠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당신 같은 사람에게 주어질 기회는 없습니다.”

더 이상 놈의 변명 따위 듣고 싶지 않았기에 놈에게서 자격을 거두어 갔다.

움직일 수 없게 된 그 상태에서도 놈은 제거되지 않고 있었다.

여분의 목숨이 있을 때는 나를 향해 적개심을 불태우는 것을 망설이지 않던 놈이 이제는 마음속으로도 나를 적대하지 않고 있었다.

겨우 몇 초라도 더 살아 보겠다고 말이다.

그 모습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추했다.

‘가신 소환, 하동건.’

중앙 시스템 근처에 있던 하동건을 불러왔고, 그는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푸욱!

검게 타오르는 하동건의 창날이 정현수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리고.

화르르륵―!

검은 불꽃은 내 의지에 따라 놈에게 최대한 큰 고통을 선사하며 놈의 전신을 불살랐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텔레포트를 사용해 이곳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사이비 교주(Lv. 55)를 사냥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457,045,006,293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놈의 최후를 지켜보지 않은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 업과 동시에.

찌릿-

어마어마한 고통이 찾아왔다.

[명경지수(明鏡止水)가 발동합니다.]

고통에 허우적대는 신체는 내버려 두고 내 이성은 멀쩡하게 작업에 착수했다.

“주인님! 주인님!”

내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놀라는 릴리트를 향해 텔레파시를 보냈다.

[괜찮아. 그대로 진행해.]

“주인님? 괜찮은 거예요?”

[난 괜찮으니까, 집중해.]

“넹!”

지금부터 하려는 일은 시간이 중요했다.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다.’

세상이 구축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영혼들이 뒤섞여 완전히 하나가 되어 버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이 세상을 박살 내버려야만 했다.

우우웅

릴리트의 품에서 검게 물든 이 세상의 핵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을 깨닫고 죽음에 저항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을 내게 넘겨준 그것에게 선택지 따위는 없었다.

빠직―

검게 물든 구슬에 미세한 금이 생겨났고.

빠지직―!

이내 그것을 중심으로 금이 거미줄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콰지지직

이 세상의 끄트머리에서부터 균열이 생성되었다.

쿠구구구구―

그리고 그것은 극심한 지진으로 이어졌다.

콰아아아앙!

점점 거칠어진 지진은 높은 건물들을 무너뜨렸고, 그것은 지금 우리가 있는 롯데타워 또한 마찬가지였다.

콰직!

건물 곳곳에 금이 갔고, 바닥 전체에 실금이 생겨났다.

또한,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에 커다란 금이 생겨나 있었다.

세상 그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유리 조각이 떨어져 내리듯 하늘이 무너져 내렸고, 균열은 더욱더 크게 벌어졌다.

이윽고 그것들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퍼―억!

릴리트의 품 안에 있던 검은 구슬이 박살 나며 사방으로 조각을 토해 냈다.

그리고.

쏴아아아아아―

그 속에 억압되어 있던 수많은 영혼이 사방으로 쏟아져 나왔다.

자유를 얻은 영혼들은 더 이상 절규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새장에서 빠져나온 그들은 자유롭게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이윽고 자신들의 목숨을 대가로 급조된 세상의 끄트머리에 닿았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세상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쨍그랑!

균열이 박살 나며 불완전한 세상의 끝을 고했다.

그리고.

촤아아아아―

14만 4천 명에 이르는 영혼의 물결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이비 교주, 정현수가 만들어 냈던 가짜 세상은 무너지고, 모든 것이 본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다만,

‘어?’

가짜 세상을 지탱하던 힘이 사라지며 그들이 성역이라 부르던 땅이 천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러면…….’

대참사가 벌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