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Episode 30] 휴거 (5)
지름이 1km가 넘어가는 거대한 땅덩어리가 수백 미터 상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이대로 떨어진다면 피해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게다가 이 주변에는 지금 산제물이 되었던 14만 4천 명의 사람이 밀집해 있는 상황이었다.
인명 피해가 엄청나리란 소리다.
‘어떻게든 막아야 해.’
그나마 다행인 점은 땅이 천천히 떨어져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짜 세상을 유지하던 핵은 부서졌지만, 아직 모든 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땅을 부유시키던 힘의 잔여물, 사이비 교주였던 정현수의 자취가 이 거대한 땅을 천천히 내려앉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힘이 얼마 남지 않은 게 문제였다.
지금도 땅이 떨어지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땅을 받쳐 주던 힘이 사라지면 모든 게 다 끝장이었다.
[추락 지점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부터 피신시키세요! 어서!]
제일 먼저 주변에 있던 가신들을 향해 일제히 명령 내렸다.
성역으로 들어오지 못했던 가신들이 정신을 잃은 사람들을 데리고 대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신들의 능력을 총 동원한다고 하여도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키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추락 자체를 막아야만 해.’
그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정성준 씨!]
제일 먼저 생각 난 것은 염력 능력을 가진 장성준이었다.
[피해를 최소화시켜야 합니다!]
동시에 그에게 강화를 걸어 그의 염력을 극대화해 주었다.
장성준은 곧바로 내 말의 의미를 이해했고, 실행에 옮겼다.
검은 기운이 담긴 그의 염력이 땅 전체로 퍼져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쿠구구구―
강화를 받았다고는 해도 인간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현재 장성준의 레벨은 50.
서울에 진입하기 전에 가신들의 최소 레벨을 50으로 맞춰 둔 상태였다.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최대한 레벨을 올린 결과물이었다.
[가신 장성준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30,000,000,000원이 필요합니다.]
[레벨을 올리시겠습니까?]
51레벨부터 55레벨까지는 한 번에 300억이 들어가니까.
하지만 지금은 망설일 때가 아니었다.
‘장성준 레벨 업!’
순식간에 1,500억 원을 들여서 장성준의 레벨을 55레벨로 맞추었다.
동시에 이 주변에 있는 모든 켈리칸들을 향해 텔레파시를 날렸다.
[밑에서부터 들어올려!]
강화를 받은 켈리칸들이 떨어져 내리는 땅 밑바닥에서 열심히 날갯짓 했다.
그럼에도 부족했다.
‘힘이 더 필요해.’
가신 중 이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없는가 고민하던 그때, 절대자의 눈에 이준혁의 모습이 보였다.
‘!’
가신 등록과 동시에 컨트롤 워터라는 S등급 능력을 각성하며 지금까지도 두각을 드러내 보이던 그였기 때문에 그는 서울에 진입하기 전부터 55레벨을 맞춰 주었다.
거기다 모든 가신은 별의 힘을 최대치인 3성까지 부여해 두기도 했고, 신뢰의 힘이나 칭호에 따른 자잘한 강화까지 더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레벨에 비해서 훨씬 더 강력한 힘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지금 이준혁이 증명하고 있었다.
쏴아아아아―
석촌 호수의 물이 통째로 모여들고 있었다.
부풀어 오른 물의 중심에 이준혁이 서 있었고, 그 자리에서부터 용의 머리가 솟아올랐다.
하늘로 날아오른 용이 곧바로 떨어져 내리는 땅의 밑 부분을 향해 움직였다.
‘이준혁, 강화.’
이준혁의 전신에 검은 기운이 깃드는 것과 동시에 그가 만들어 낸 용도 함께 검게 물들며 강화되었다.
한순간 떨어지는 속도가 느릿해지는 듯 했으나, 순간일 뿐이었다.
그때였다.
화아아악!
바람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최도연.
그녀 또한 가신으로 등록하자마자 태풍의 가호라는 S등급 능력을 각성하며 처음부터 40레벨부터 시작했던 인재였다.
인명 구출을 하던 그녀가 다급하게 날아올라 거대한 공기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미약한 힘이었지만, 그래도 확실히 보탬이 되고 있었다.
‘레벨 업, 강화.’
50레벨이었던 그녀의 레벨을 55레벨로 올려 주고, 강화까지 더 해지니 확실히 더 힘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부족하다.’
희망적인 것은 현재 이곳의 높이가 처음과 비교해서 절반 정도 내려왔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절망적인 것은.
‘이제 한계야.’
그나마 남아 있던 땅을 받쳐 주고 있던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었다는 것이었다.
쿠구궁!
정현수의 힘이 사라지자 밑에서 땅을 떠받치고 있던 장성준과 이준혁, 최도연, 그리고 켈리칸들의 부담이 순간적으로 몇 배나 늘어났다.
동시에 땅이 떨어지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이 거대한 땅 전체가 자이로드롭이 된 듯한 같은 느낌이었다.
한번 빨라지기 시작한 추락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나.’
[가신 이준혁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100,000,000,000원이 필요합니다.]
[레벨을 올리시겠습니까?]
레벨 업 한 번에 천 억.
그러나 지금까지 이준혁이 보여 주었던 퍼포먼스와 그의 재능을 생각하면 아깝지 않은 투자였다.
‘60레벨까지.’
[가신 이준혁의 레벨이 60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가신 이준혁의 레벨을 올릴 수 없습니다.]
가신들의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최대치가 60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그리고 장성준과 최도연까지 모두 60레벨로 올려 줘.’
[가신 장성준의 레벨이 60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가신 장성준의 레벨을 올릴 수 없습니다.]
[가신 최도연의 레벨이 60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가신 최도연의 레벨을 올릴 수 없습니다.]
합이 1조 5천 억의 통 큰 소비였다.
대신 효과는 확실했다.
쿠궁―
갑작스럽게 오른 레벨이라 아직 제대로 적응하지도 못하는 게 정상일 텐데, 세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흐읍!”
염력을 최대치로 사용하며 추락하는 땅을 막고 있는 장성준.
그의 주위로 건물의 잔해와 놀이 기구 따위가 어지럽게 허공으로 떠올라 있었다.
쏴아아아아―
땅 밑에서는 아까보다 더 거대해진 것 같은 수룡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밑바닥 전체에 똬리를 튼 용은 밑에서부터 땅을 밀어 올리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전신에서 검은 기운을 피워 올리고 있는 이준혁이 아틀라스처럼 땅을 떠받치고 있었다.
쐐애애액―!
마지막으로 바닥에서부터 떨어지는 땅의 밑 부분까지 이어지는 다섯 줄기의 토네이도가 몰아치는 중이었다.
그 중심에 떠 있는 최도연이 검게 물든 바람을 뿌리며 발악하고 있었다.
세 사람의 활약 덕분에 가속하기만 하던 추락 속도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쯤에야 드디어 명경지수의 효과가 끝이 났다.
레벨 업의 고통이 모두 끝난 것이다.
“하아.”
명경지수가 끝난 직후의 특유의 나른함이 정신을 뒤덮었다.
더불어 강림의 유효 시간도 끝나 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가.’
속도가 줄어들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 줄어드는 정도가 너무 미약했다.
더군다나 이제는 땅바닥과의 거리가 100여 미터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보다야 피해가 덜할 테지만, 이대로라면 상당한 숫자의 사람이 죽거나 다치게 될 것이다.
그때였다.
콰아아앙!
곳곳에서 폭발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동건이나 김가영을 비롯한 이들이 떨어지는 땅을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는 것이었다.
그 충격량만큼 땅이 떨어져 나가거나, 떨어지는 속도가 줄어들기는 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합심하여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아랑곳 않고 땅은 무서운 속도로 추락하고 있었다.
“…….”
나는 조용히 땅바닥에 손을 대었다.
‘내 정신력이라면…….’
본격적으로 서울에 진입하면서 더욱 확실해진 게 몇 가지 있었다.
이변이 없다면 가신들의 힘은 인류 최상위권에 해당할 것이다.
아니, 최상위권도 아득히 초월했다고 보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런 가신들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비교조차 불가능할 만큼.
일례로 정신력에 따라 좌우되는 문병호의 텔레포트 능력은 나에 비하면 굉장히 초라했다.
문병호의 수준도 많이 올라간 지금은 꽤 먼 거리를 자유롭게 오가고, 수십 명을 한꺼번에 이동시킬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해 있었지만, 내 경우는 텔레포트를 사용하며 딱히 한계를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레벨이 올라가며 영역이 넓어질 때마다 그 정도가 훨씬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러니까.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문병호의 신뢰도가 100을 달성하며 얻게 된 텔레포트 능력.
그것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눈에 보이는 곳으로만 이동할 수 있다는 것.
함께 이동하려는 사람과 직접 접촉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동한 직후에는 운동 에너지가 제로가 된다는 것.’
하늘에서 추락하다가도 근처에 땅으로 이동하면 순간적으로 속도가 0이 된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것은 함께 이동하는 대상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러니까.
‘이 땅을 제자리에서 텔레포트 시킨다면…….’
나는 눈을 감고 떨어지고 있는 땅을 느꼈다.
얼마나 튼튼하게 지은 것인지 아직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롯데타워와 그 밑으로 이어진 드넓은 땅을 보았다.
절대자의 눈으로 가신들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관망하며 내 손에 닿은 지름 1km의 거대한 땅덩이와 교감했다.
그것만으로도 전신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해야만 하는 일이었으니까.
우우우웅
그렇게 모든 땅이 감각 안에 들어온 순간.
‘텔레포트.’
그것을 제자리로 이동시켰다.
슈슉―
순간, 거대한 땅이 점멸했다.
그 직후.
콰아아아아아앙!
잠시 동안 속도가 0이 되었던 거대한 땅이 다시 추락했고, 그 땅이 뜯겨 나오며 생겼던 구멍 속에 안착했다.
쿠구구구구구궁!
거대한 규모의 지진과 충격파가 일대를 훑고 지나갔지만, 떨어진 땅의 크기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미세한 충격일 뿐이었다.
제대로 성공한 것이다.
“허억, 헉.”
바닥에 엎드려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내 손등 위로 핏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동맥이라도 끊어진 것처럼 코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왔다.
그와 동시에.
[시민 하동건이 ‘롯데타워’의 우두머리를 해치웠습니다.]
[‘롯데타워’에 전초기지 건설이 가능해집니다.]
신기하게도 롯데타워는 아직 멀쩡히 서 있었다.
금이 가고 일부가 무너지기도 했지만, 멀쩡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아마 내 힘이 관여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어찌됐든 덕분에 전초기지 조건이 달성되며 건설이 가능해지게 됐다.
“하.”
거의 2조에 가까운 지출과 레벨 업의 고통과 맞먹을 정도로 심각한 두통의 대가가 다 부서져 가는 롯데 타워라니.
“뭐, 그래도…… 토용이들 데리고 수리하면 봐줄만 해질 것 같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 와중에도 절대자의 눈을 활성화해 바닥에 있던 이준혁과 최도연이 살아 있는 것을 확인했다.
‘……가신 소환. 이준혁, 최도연.’
흙더미 속에 생매장 되어 있던 두 사람은 생각보다 멀쩡했다.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힘을 극대화해 몸을 보호한 것이다.
두 사람의 물과 바람이 일종의 쿠션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에 충격이 훨씬 줄어든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최도연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정말…… 성공한 거예요?”
이준혁이 쌍코피를 흘리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지막 순간에 그건 재현 님의 힘이었습니까?”
나는 힘없이 바닥에 누운 다음 대답했다.
“아슬아슬 했죠.”
그 순간.
[시민 이준혁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이준혁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시민 이준혁은 이미 가신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가신 보유 한계치가 늘어납니다.]
[시민 이준혁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이준혁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컨트롤 워터’를 획득합니다.]
[시민 최도연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최도연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시민 최도연은 이미 가신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가신 보유 한계치가 늘어납니다.]
[시민 최도연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최도연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태풍의 가호’를 획득합니다.]
두 사람을 시작으로.
[시민 문상훈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시민 문상훈은 이미 가신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가신 보유 한계치가 늘어납니다.]
……
……
그 자리에 있었던 가신들의 충성도와 신뢰도가 대부분 100을 달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