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136화 (137/175)

136화 [Episode 31] 수습 (1)

“으윽…….”

이준영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처럼 신음하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동료들이 하나 둘 쓰러지더니 갑작스럽게 몰려온 졸음 때문에 자신 또한 쓰러졌다.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은데…….’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하늘에 있는 땅을 향해 떠오르는 꿈이었다.

“우욱!”

이준영은 곧바로 자신의 입을 막으며 토악질이 나올 것 같은 것을 참아 냈다.

“큭.”

끔찍한 꿈이었다.

자세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꿈속에서 자신이 느꼈던 감정만은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번쩍이는 빛과 고통, 그리고 자신이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공포.

영혼에 새겨진 두려움이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정말 꿈이었나?’

그게 정말로 단순히 꿈이었을까?

꿈이었다고 해도 잠들기 직전에 일어난 이상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주변 사람들과 동료들, 그리고 이준영 자신까지. 모두가 동시에 쓰러지기 시작한 것은 분명히 어떤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멀쩡하게 일어났고…….’

성역이 떠 있던 하늘을 바라봤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준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옆에서 머리를 매만지며 누워 있는 김태현을 향해 물었다.

“태현아.”

“으응?”

“혹시 무슨 꿈 같은 거 안 꿨냐?”

“꿈이라니?”

“뭐라고 해야 할까, 엄청나게 끔찍한? 처음에는 하늘에 있는 땅을 향해 날아가더니 그대로―.”

그때 김태현이 이준영의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수많은 사람과 함께 바다에 빠진 듯한 느낌이었지. 그것도 태풍이 몰아치고 소용돌이가 거세게 치는 바다.”

“어?”

“정신이 녹아 버릴 것만 같은 빛과 함께.”

공포에 질린 눈으로 말하는 김태현의 반응을 보곤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그건 꿈 같은 게 아니었구나.”

“그래.”

김태현은 성역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아무래도 저 사이비 종교쟁이들이 우리에게 뭔 짓을 한 것 같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기억은 희미했지만, 그곳에서 느꼈던 감정은 선명했고, 그중에는 JHS 교단에 대한 적개심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조용히 분노하던 이준영이 말했다.

“쳐들어갈까?”

“어딜?”

김태현이 그를 미친놈 취급하며 바라보자 이준영이 억울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당연히 저놈들의 성역이지. 가서 깽판치자고.”

그러자 김태현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 돼.”

“왜?”

“그러다 죽어.”

“우리끼리 가자는 게 아니야.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 일을 겪은 게 우리뿐만이 아닌 거 같은데, 사람들을 모아서 가면―.”

“아무도 같이 가 주려고 하지 않을 걸.”

김태현의 단호한 답변에 이준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항변했다.

“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잖아.”

그러자 김태현이 한숨을 내쉬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네가 새로운 신도가 될 사람들을 찾으러 간 동안 이곳에 대해 꽤 많은 정보를 알게 됐어. 그중 하나가 바로 트럼프 기사단이라는 놈들인데, 전원이 각성자인 집단이라더라. 잠실이 상대적으로 몬스터들에게서 자유로운 것도 전부 그놈들 덕분이고.”

이준영 일행은 서울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며 몬스터가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강해?”

“그래. 심지어 충격적인 건 너를 구해 주고,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한 그 강예은이라는 사람 말이야.”

“어.”

“그 사람은 트럼프 기사단 소속이 아니라는 거야. 트럼프 기사단들은 평소에도 자신들을 식별할 수 있는 문양을 양쪽 어깨에 새기고 다닌데.”

“그러면…….”

“어중간한 능력자들은 기사단에 소속되지도 못한다는 거지.”

이준영은 칼날 골렘에게서 자신을 구해 주던 강예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사람보다 강한 사람들이 수십 명이나 된다고?’

그것은 제법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준영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말했다.

“그래 봤자 이거 한 방이면…….”

김태현은 이준영이 꺼내든 리볼버를 보며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진정해. 너 답지 않게 왜 그래? 그거 이제 겨우 세 발 남았잖아.”

“……미안.”

“그리고 그때 그 여자가 말했지? 각성자라면 곧바로 윗계급이 된다고. 그러니까 성역 안에 각성자 수백 명이 있을 수 있다는 소리라고.”

“하아…….”

힘이 곧 법인 세상이다.

달리 말하면, 힘이 없는 자는 죄인이나 마찬가지인 세상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약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도망가자.”

“……그래. 그러자.”

“그 전에…….”

김태현이 말끝을 흐리더니 이준영을 바라봤다.

이준영은 단번에 그 눈빛의 의미를 이해하고는 맞받아쳤다.

“그래. 챙길 건 챙겨야지.”

두 사람은 동료들을 모아 두고 작전을 설명했다.

“준영 씨 다운 계획이네요.”

“지현 씨. 도둑질을 보고 저 다운 계획이라니요. 너무하시네요.”

“에이. 당연히 농담이죠.”

요는 사이비 교단이 비축한 식량을 최대한 훔쳐 가자는 것이었다.

교단을 향한 그들만의 소소한 복수였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초장부터 실패하고 말았다.

“……헐?”

올림픽대로를 지나쳐 성역이 있는 곳으로 겨우 몇 분 정도 진입했을 때였다.

그들의 눈앞에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박살 나 있는 광경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무슨 어마어마한 규모의 지진이라도 있었던 듯한 모양새였다.

게다가.

“여기 사람이 깔렸어요! 도와주세요!”

“흐아아앙!”

“사, 살려 주…….”

그곳에는 생사가 오가는 아비규환이 펼쳐져 있었다.

이준영이 제일 먼저 움직였다.

바로 근처에서 살려 달라고 애원하던 남자를 향해 달려가 건물 잔해를 치우기 위해 안간힘을 써 댔다.

그러나 남자를 깔아뭉개고 있는 콘크리트 더미는 일반인이 혼자 들어 올리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그가 동료들을 향해 호통쳤다.

“다들 뭐 하고 있어! 빨리 도와줘!”

“어, 으응!”

“가, 갈게요!”

열두 명이 붙어서야 간신히 콘크리트 더미를 치울 수 있었다.

그러나.

“…….”

남자의 상태는 콘크리트를 치우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반신이 완전히 뭉개지고 뒤틀려 있는 것으로 보아 남자의 생명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남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로 엎드려 있었다.

그가 반시체나 다름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괜한 헛수고였다.

남자는 곧 죽을 것이다.

“……젠장.”

그러나 그때였다.

“잠시만요!”

어떤 여자 하나가 이준영 일행을 헤치고 끼어들었다.

‘어?’

이준영은 여자를 보고 알 수 없는 감정이 생겨났다.

정확하게는 여자의 전신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검은 기운 때문이었다.

‘저건……?’

색깔만 보면 불길하게만 느껴져야 할 그것이 어째서인지 너무나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신기하게도 여자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검은 기운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위로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은 자신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동료들 모두 여자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기운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우웅―

여자의 손에서부터 나온 검은 기운이 다 죽어 가던 남자를 향해 쏟아졌다.

그러자.

“!!!”

기적이 일어났다.

박살이 나 있던 남자의 하반신이 급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뒤틀렸던 뼈와 근육이 제자리를 찾고, 피멍으로 가득했던 피부가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남자의 몸 여기저기에 나 있던 자그마한 생체기까지 순식간에 증발해 버리더니, 완전히 멀쩡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분 케어 좀 부탁드릴게요.”

“어엇, 네.”

자신의 할 일을 마친 여자는 순식간에 다른 부상자를 향해 뛰어갔고, 이준영 일행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멍하니 서로를 바라봤다.

“……뭐였지?”

“나도 몰라.”

그들이 얼 타고 있는 사이 쓰러져 있었던 남자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일어섰다.

스스로도 신기했는지 자신의 하반신을 한참이나 내려 보더니 이준영 일행을 향해 물었다.

“어……. 여러분들이 저를 구해 주신 건가요?”

“그렇기는 한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살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남자는 멀쩡한 모습으로 몇 번이나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고 이준영 일행은 다시 한번 놀랐다.

‘정말로 고쳐졌어.’

다 죽어 가던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라니.

그런 기적을 눈앞에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건가? 판타지 소설 같은 데서 나오는 성녀?’

이준영은 그녀가 사용하던 검은색 기운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다가 결국 기억해 내는 데 성공했다.

“아!”

꿈의 마지막 순간.

괴롭고 지치고 힘들었을 때 저 검은 기운을 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정확한 건 몰라도 저 힘이 우리를 구해 준 그 힘이다.’

그의 본능이 속삭이고 있었다.

무조건 저 여자를 따라가야 된다고.

이준영이 말했다.

“아저씨. 사실 아저씨의 생명을 구해 주신 분은 따로 있습니다. 몸이 괜찮으시다면 저희랑 같이 움직이시죠.”

“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김태현이 물었다.

“무슨 생각인데?”

“아까 그 여자 분을 따라다니면서 도울 생각이야.”

“갑자기 무슨……?”

“부탁할게. 지금은 그냥 날 믿고 따라와 주라.”

“…….”

김태현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사실상 이준영의 감 덕분이었으니까.

이번에도 그의 감을 믿기로 한 것이다.

“가자.”

다행히 근처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돕겠다는 말이 얼마나 주제넘은 말이었는지 알게 됐다.

콰과과곽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방 구해 드릴게요!”

여자는 콘크리트 잔해에 파묻힌 일가족을 구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준영의 일행이 전부 달라붙어도 꼼짝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콘크리트 더미가 스티로폼처럼 나가떨어지는 광경을 보았다.

쿠우우웅!

여자는 괴력으로 모든 바위를 치워 내고는 손을 뻗어 안에 있는 사람들을 치료해 주곤 다시 쿨하게 자리를 떠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는 이준영은 조용히 감탄했다.

“미친.”

도대체 저 여자는 정체가 뭘까?

그 뒤로도 충격적인 광경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수십 기의 갑옷을 입은 기사단을 데리고 다니며 사람들을 구하는 남자, 부상을 입은 어린 아이를 업고 어디론가 달리고 있는 곰 인간, 염력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를 통째로 들어 올리는 남자, 텔레포트를 하며 사람들을 밖으로 구하는 남자 등.

수많은 각성자뿐만 아니라 아무런 능력 없이도 119 구급대원의 복장으로 사람들을 구하고, 의사 가운을 입고 응급 처치를 하러 돌아다니는 영웅들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게다가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들의 인도를 따라 대피소와 같은 곳에 들어갔을 때였다.

“헐.”

흰 쌀밥, 라면, 콜라, 사이다, 과자, 도시락 세트와 깨끗한 물이 담긴 삼다수까지.

대피소에는 없는 게 없었다.

더더욱 신기한 것은 물자가 부족해지면 허공에서 물건들이 생겨난다는 점이었다.

그 모든 광경을 보고 김태현이 중얼거렸다.

“야. 우리 이 사이비 진심으로 믿어 볼까?”

사정을 모르는 그들의 눈에는 이 모든 기적들이 사이비 교단에서 나온 기적인 줄 알았던 것이다.

“우리가 뭔가 오해하고 있었던 걸지도 몰라.”

그때였다.

“어이. 거기. 당신들.”

대피소에 있던 아저씨 하나가 그들을 향해 말을 걸어왔다.

물 6개짜리 5덩이를 가볍게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또한 범상치 않은 사람임에 분명했다.

“뭔가 착각한 모양인데 여기는 JHS인가 JMS인가 하는 그 가짜 사이비 교단이랑은 달라요.”

그 남자가 짐을 내려놓더니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모든 기적을 행하시는 분의 존함은 김재현. 마음속에 새겨 두시면 당신들에게도 도움이 될 겁니다. 후후.”

사이비 교단에 소속되었다가 산제물이 될 뻔 한 경험이 있었던 이준영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풍족하게 배급받은 물품들을 바라보니 곧바로 고민을 접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믿어 줄 만하지.’

콜라, 단팥빵, 에너지바 등등.

배급의 격이 달랐다.

게다가 사람을 데려오라, 기도를 나와라, 능력은 있나 등등 여러 가지를 요구하던 JHS와는 달리 저쪽이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

교주로 생각되는 김재현이라는 남자의 이름을 마음속에 새겨 두는 것.

그것마저 그러거나 말거나 네 선택의 자유라는 저 아저씨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마음속에 새기겠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것은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는 것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얼마 뒤, 자신을 비롯한 동료들 전원이 진심으로 김재현이라는 이름 석 자를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게 될 줄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