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139화 (140/175)

139화 [Episode 31] 수습 (4)

이준영은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천국이다.’

지난 일주일간의 시간을 표현하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단어는 없을 것이다.

‘여기는 천국이야.’

서울에서 떠돌이 생활을 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사치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중이었다.

전기가 들어와서 웬만한 가전제품들은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난방이 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점.

포근한 침대 속에서 안락하게 잠들 수 있다는 점.

그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몬스터가 없다는 것이지.’

처음에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의문이었다.

완전히 일상을 되찾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몬스터에 대한 공포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으니까.

그 이유는 후에 오리엔테이션의 질의응답 시간에서 알 수 있었다.

‘재현 님의 능력 덕분이지.’

축복받은 땅.

부산 전체가 완벽한 안전지대가 되었다고 한다.

건대 입구 역에 도착해 시민권을 얻던 순간에 직접 만져 보았던 투명한 막.

그것이 부산 전체를 뒤덮으며 몬스터들의 출입을 막아 주었다.

‘그 덕분에 이런 생활이 가능한 거지.’

서울에서 떠돌이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밤에 잠을 잘 때 불침번을 설 필요가 없고, 밖으로 나갈 때 죽음을 각오할 필요가 없다.

이곳이 멸망 이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김재현의 능력 덕분인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한 가지 소문을 들었다.

시민권을 얻은 사람 중에 ‘선택받은 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김재현의 선택을 받은 이들.

그들에게는 특별한 힘이 주어지게 된다고 했다.

만약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이 소문에 대해 들었다면 그들을 바보 취급했을지도 모른다.

서울에서도 신비한 힘을 지닌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김재현의 능력이 대단한 것은 인정하지만, 다른 사람이 각성한 것 가지고 선택이니 뭐니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재난 현장에서 믿을 수 없는 힘을 발휘하는 초인들의 모습을.

하나같이 검은 기운을 몸에 두르고 있던 그들의 힘은 서울에서 지내며 마주했던 각성자들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다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나, 건물 하나를 통째로 들어 올리는 능력 등.

일개 인간의 능력이라기에는 너무나도 대단한 힘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그들의 전신이 검은 기운으로 물들어 있다는 점.

‘그 기운은 분명 재현 님의 힘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말하는 ‘선택받은 자’에 대한 소문이 헛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 또한…….’

우우웅―

힘을 발휘하자 이준영의 시야가 확 넓어졌다.

바닥을 뚫고 그 안에 있는 철골의 구조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전선들이 보였고, 종국에는 아래층의 모습까지 훤히 비쳐 보였다.

그러다 얼굴이 붉어져서는 급히 능력을 거두었다.

‘크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힘을 시험해 보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 같은 것일 뿐.

‘하여튼 나도 선택받은 것일지 모른다.’

사실은 단순히 각성한 것일 뿐이었지만, 그의 각성 시기가 워낙에 절묘하였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겨나고 있었다.

‘시민권을 받자마자 이런 능력이 생겨났으니까. 몸도 엄청나게 건강해졌고.’

이준영은 커피를 마시다 말고 티셔츠를 들어 올려 자신의 배를 바라봤다.

선명한 복근이 자신을 반겨 주고 있었다.

딱히 운동한 것도 아닌데, 몸이 급격하게 좋아졌다.

그에 따라 체력까지 좋아지면서 피곤하다는 감각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까먹을 정도였다.

“아예 거울 앞에서 발가벗고 감상하지 그래?”

김태현이 까치집이 된 머리로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일어났냐.”

“어, 그래. 나도 커피 좀.”

바로 옆에 있던 커피믹스 하나를 꺼내서 던져 주었다.

“방금 끓여서 바로 써도 괜찮을 거야.”

“땡큐.”

커피를 타서 한 모금 마신 김태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음. 딱 좋네.”

“얼른 씻어. 네가 제일 늦었어.”

“……뭐?”

“너는 씻는 게 빠르니까 상관없겠다. 여자 쪽도 아직 샤워 중이니까―.”

그때 이준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태현이 거칠게 그의 멱살을 휘어잡으며 따져 물었다.

“야 이 변태 새끼야. 내가 그거 쓰지 말랬지!”

이준영이 투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김태현이 유일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화내는 이유는 하나였다.

“지, 진정해. 서영이는 안 봤어!”

김태현과 이서영은 사귀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이성을 되찾은 김태현이 멱살을 놓아주며 물었다.

“그럼, 누가 샤워하고 있었던 건데.”

“……지현 씨.”

김태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휴. 씻으러 간다.”

수건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던 김태현이 다시 밖으로 나오며 이준영을 향해 경고를 날렸다.

“야. 그거 자꾸 사용하면 지현 씨한테 이른다.”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사냥 때만 쓰라고 사냥 때만.”

현재 그들의 주 수입원 중 하나는 사냥이었다.

12명의 동료 중에서 이준영과 김태현을 포함하여 여덟 명이 매일 던전에 들어가 고블린 사냥을 하고 있었다.

한 번에 100여 마리가 나오는 고블린 던전에서의 기대 수익은 약 50만 원 정도가 나온다.

여기에다 각자 알바로 벌어들이는 돈과 거래소에 물건을 올리며 벌어들이는 수수료까지 하면 생각보다 여유가 있었다.

‘고블린 사냥을 좀 더 늘리면 수익이 더 괜찮아질 것 같은데.’

하루에 2번씩 공략하기만 해도 수익이 2배로 뛰는 셈이었다.

던전에 들어가는 시간이라고 해 봐야 30분 정도에 불과했으니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고깃집 알바하는 것보다 돈도 훨씬 많이 벌 수 있고.’

솔직히 말해서 고블린 사냥에 들어가는 품이 그렇게 큰 것도 아니었다.

고블린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있던 처음에야 공략도 오래 걸리고 힘들었지만, 지금에서는 고블린에 대한 공포는 아예 사라지고 없었다.

소총을 손에 들고 있는데, 고블린 따위가 두려울 리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의 능력인 투시는 고블린 던전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의 투시 능력은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었고, 나아가 던전의 구조 자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고블린의 위치를 죄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밀고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애초에 자신의 투시 능력을 깨닫게 된 것도 고블린 던전 공략에서였다.

샤워를 끝내고 나온 김태현에게 이 일을 상의해 보니, 그도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렇긴 해. 사실 우리가 여덟 명이나 들어가기는 해도 고블린을 사냥하는 건 죄다 네가 하잖아?”

“그런 편이지.”

“팀을 아예 나누는 것도 좋을 것 같네. 네 쪽에는 인원수 맞추기로 세 명만 넣고 공략을 진행하면 되니까.”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아니면 이건 어때? 두 명씩 조를 짜서 근무 교대하는 식으로 공략을 진행하는 거야. 나는 세 번이든 네 번이든 공략이 가능하니까.”

“주된 공략은 네가 하고 나머지는 보조하는 식으로?”

“그렇지.”

“그것도 나쁘지 않네.”

김태현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우선, 그 전에 네가 증명해 줘야 할 것이 하나 있어.”

“뭔데?”

“우리의 도움 없이도 너 혼자서 공략이 가능하다는 거.”

김태현은 한 템포 쉬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오늘 공략은 너 혼자 진행하도록 해. 우리는 뒤에서 지켜보기만 할 거야.”

“…….”

“가능하겠어?”

“……해 봐야지.”

그렇게 평소와는 약간 다른 던전 공략이 시작되었다.

투두두두―

초반 공략은 트러블 없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준영은 투시 능력을 기반으로 고블린들의 존재를 미리미리 알아차리는 게 가능했고, 고블린들은 쪽도 써 보지 못하고 사살되었다.

거침없는 흐름 속에서 이준영은 확신에 가까운 자신감을 얻었다.

‘과장 하나 없이 나 혼자서도 공략이 가능해.’

감독관을 대동하고 고블린 던전에 진입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혼자서도 너끈히 공략할 수 있는 수준이 된 것이다.

감개무량했다.

그러나 ‘자신’과 ‘자만’은 정말이지 한끝 차이였다.

“준영아!!”

공략의 마지막쯤에는 살아남은 고블린들이 모두 모여 한꺼번에 공격해 오고는 했다.

이준영은 투시를 통해 그것을 미리 알고 있었고, 그들이 매복한 장소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

다만, 그가 한 가지 실수한 것은 자기 자신에 너무 취해 있었다는 점이다.

외곽 쪽에 매복해 있던 고블린들을 일일이 찾아가 확인 사살하는 과정에 열중해 있던 그는 그가 ‘혼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실제로 동료들이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기도 했고, 혼자서 공략을 진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매복해 있던 고블린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와 자신을 둘러쌀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이런!’

뒤늦게 김태현의 지시를 받은 동료들이 고블린들을 사살하며 합류하기 위해 애썼지만, 이준영과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게다기 이곳은 깜깜한 동굴.

이준영이 맞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지원 사격은 불가능했다.

투두두두―

위기감을 느낀 이준영이 비호와 같은 몸놀림으로 선전하며 고블린 열댓 마리를 순식간에 해치웠지만, 그것에도 한계가 찾아왔다.

철컥- 철컥-

‘!!!’

총알이 다 떨어진 것이다.

고블린들은 그에게 탄창을 갈아 끼울 시간 따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캬아아악!”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고블린 놈들을 바라보며 절망적인 기합을 내뱉었다.

“씨바알!!”

그리고.

퍼억!

본능적으로 휘두른 소총에 고블린의 얼굴 뼈가 박살이 났다.

“……?”

투시 능력으로 인해 어둠 속에서도 놈의 얼굴이 어떻게 작살이 나는지 훤히 들여다보였다.

“캬아아악!”

그때 옆에서 다른 고블린이 이빨을 들이밀었다.

놈은 아직 자신의 동료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콰직!

이번에는 좀 더 화려한 타격음과 함께 고블린이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이준영은 방금 고블린을 걷어찬 자신의 발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는 이내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깨달았다.

‘하하, 미친.’

그 뒤로는 일방적인 학살이 이어졌다.

이준영은 탄창을 갈아 끼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소총을 이용해서 고블린을 패고, 발길질로 그들의 뼈를 산산 조각내 주었다.

퍼억! 퍽!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그분께 선택을 받은 거야!’

그게 아니라면 지금 이 상황이 설명이 되질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럴수록.

우우웅―

‘힘이 넘쳐난다!’

김재현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전신에서 힘이 솟아나는 듯했다.

퍼억!

그렇게 주먹으로 마지막 고블린의 숨통을 끊어 놓았을 때.

“……주, 준영아?”

동료들이 깜짝 놀란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디 다친 데 없냐?”

김태현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몸을 여기저기 살펴봤다.

그러나 그의 전신에 묻어나는 피는 대부분 고블린의 것이었다.

이준영이 입은 상처는 죽기 직전 고블린의 손톱이나 이빨에 스치며 가벼운 찰과상 정도가 다였다.

“없어. 나가자.”

그마저도 던전 밖으로 나오는 순간 빠르게 치유되었다.

아직 멍하니 있는 김태현을 향해 물었다.

“어때? 이 정도면 혼자서도 충분할 것 같지?”

“그렇긴 한데…… 정말 다친 덴 없냐?”

“응. 완전 멀쩡해.”

그때였다.

[이준영 씨. 잠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머릿속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이준영이 허공을 둘러보며 물었다.

“누, 누구세요?”

답변은 그의 머릿속에서 울려 댔다.

[저는 김재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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