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Episode 31] 수습 (5)
이준영을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시민 이준영의 신뢰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시민 이준영의 충성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A등급 능력을 각성한 인물이라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오늘 하루에만 몇 번이나 시스템 알림으로 이름이 나타났다.
게다가.
[시민 이준영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투시’를 획득합니다.]
갑자기 신뢰도가 가득 차며 투시 능력을 획득하게 됐다.
‘이런 적은 처음인데…….’
초기에 합류하는 시민들의 경우에 한해서 신뢰도와 충성도가 상승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내 능력과 내 이름에 대해서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신뢰도와 충성도가 오르곤 했으니까.
그러나 ‘대폭’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경우는 처음 봤다.
‘크게 올라간다는 건 봤어도 대폭은 아예 처음이야.’
크게 올라간다는 알림도 직접 나와 대면한 사람들에게서나 볼 수 있던 알림이었다.
그런데 이준영과는 한 번도 만난 적도 없었다.
거기다 충성도보다도 신뢰도가 먼저 100을 찍게 된 경우도 처음이었다.
‘신뢰도가 100인 경우는 가신 중에서도 얼마 없는데…….’
내 입장에서는 두 팔 들고 반길 만한 일이었다.
어찌 됐든 ‘강림’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는 점이 중요했으니까.
사실상 신뢰도 100이 된 사람의 각성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보다도 강림의 사용 횟수가 늘어나는 것이 의미가 더 컸다.
‘무조건 가신으로 받아들여야겠어.’
그래서 그를 이곳으로 초대하려 한 것이다.
이제 막 고블린 던전 공략을 마치고 나온 그를 향해 텔레파시를 전했다.
[얼굴 보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무, 물론입니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동대문 오픈.’
그의 앞에 동대문을 열어 주었다.
지이잉
동대문을 거실이 아닌 현관에서 연 것은 이준영이 아직 가신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최소 가신의 자격이 없으면 출입이 불가능했다.
가신의 자격 없이 출입 가능한 곳은 신발장이 있는 현관뿐이었기에 이곳에 동대문을 연 것이다.
현관문과 연결된 공간 너머로 이준영의 모습이 보였다.
그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을 걸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재현이라고 합니다.”
이준영은 내가 내민 손을 잡는 대신 갓 자대 배치를 받은 이등병과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마침 들고 있는 총을 앞에총 자세로 들고 있어 더욱더 이등병 같았다.
“이준영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는 손을 내민 상태로 물었다.
“악수는 싫어하시는 편인가요?”
“아, 아닙니다! 그게…… 지금 제 손은 고블린의 피로 더러워진 터라…….”
그러나 그의 말과는 달리 이준영의 손은 깨끗했다.
“어라?”
아무래도 정산 과정에서 고블린의 시체가 사라질 때 사방에 흩뿌려진 피 또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의 옷가지를 내려다보며 혼잣말했다.
“깨끗해졌어……?”
“고블린을 사냥하고 나면 시체가 사라집니다. 그때 놈이 흘린 피도 함께 사라지게 되죠.”
내 말을 들은 이준영이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그래서 그런 거였군요. 육탄전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앗!”
혼잣말하던 그는 아직까지도 내밀고 있는 내 손을 발견하고는 급하게 붙잡으며 말했다.
“방금은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하마터면 고블린들에게 당할 뻔했는데, 재현 님께서 적절한 타이밍에 힘을 주셔서 구사일생할 수 있었습니다.”
“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다.
딱히 내가 그에게 힘을 부여한 적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금방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신뢰도가 급격히 오른 것이 이것 때문이었나.’
무슨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이준영은 위기의 순간에 나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하게 된 것 같았다.
그 과정에서 신뢰도가 늘어났고, 신뢰의 힘이 작용하며 모든 능력치가 신뢰도 수치만큼 늘어나게 된 것이다.
A등급 능력을 각성하며 레벨이 30이었던 만큼 능력치 상승도 크게 와닿았겠지.
‘그것을 내가 준 힘이라고 착각해서 신뢰도가 100이 된 거구나.’
뭐, 아예 틀린 믿음은 아니었다.
신뢰의 힘도 내 스킬에서 나온 효과이니 따지고 보면 내가 준 힘이 맞기는 했으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슬쩍 시민 상태창을 확인해 보니 충성도도 98을 달성한 상태였다.
그것을 보며 가볍게 물었다.
“혹시 제 가신이 되실 생각이 있습니까?”
가신이 되면 얻을 혜택과 권리 그리고 의무에 대해 설명하기도 전이었다.
이준영이 힘차게 대답했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시민 이준영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이준영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시민 이준영이 가신으로 등록됩니다.]
[가신 보유 한계치가 늘어납니다.]
그의 충성도가 100을 찍으며 가신으로 등록이 돼 버렸다.
우우웅!
이준영에게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그가 가신이 되었음을 알렸다.
“……오늘 여러 가지로 저를 놀라게 해 주시네요.”
“?”
이젠 가신이 되었으니, 이렇게 현관에 세워 두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넵!”
“커피, 차. 어떤 거로 드릴까요? 물도 있습니다.”
“커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커피포트의 물이 끓는 동안 그에게 작은 선물을 쥐여주기로 했다.
“팀원들의 숫자가 총 12명이었죠?”
이준영은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여기 선물입니다.”
아일랜드 식탁 위에 12개의 스마트폰이 생성되었다.
방금 상점에서 구입한 따끈따끈한 신상이었다.
“아직 데이터 시설이 복구되지 않아서 인터넷에 접속한다거나 유튜브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개통하면 간단한 전화나 문자 정도는 가능합니다.”
“정말입니까?”
그래도 나름 스마트폰이기 때문에 카메라와 동영상 기능은 멀쩡하게 돌아가는 놈이었다.
“추가로 이곳 아파트 두 채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시민들이 가장 선망하는 주거 시설이었다.
내가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곳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발전해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이곳은 가장 비싼 아파트 취급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실제로 거래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모든 집에 대한 권리를 내가 직접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부터 이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뿐이었다.
매매든 전세든 월세든 상관하지 않고 이곳에서 살던 주민들의 권리만 인정해 준 상태였다.
덕분에 아직까지도 절반 정도는 빈집이었고, 나는 그것들을 공을 세우거나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 증여해 주고 있었다.
더럽고 치사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상점에서 전기, 물, 가스에 대한 권리를 구입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하실 필요 없습니다.”
내가 이러한 대우를 약속하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잠실의 사고 현장을 기억하십니까?”
“……기억합니다.”
“가신들은 언제나 그런 위험한 현장에 제일 먼저 투입됩니다. 그만큼 위험한 일도 많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특혜와 권리는 그런 위험에 대한 대가였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흔들리는 이준영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래도 가신이 되시겠습니까?”
그가 거절한다면 이대로 놓아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충성도 100이 되며 가신 등록의 한계치를 하나 늘어난 상태였으니까.
신뢰도 100이 조금 아깝기는 했지만, 강제로 목숨을 바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때.
부글부글
물이 완전히 끓는 소리와 함께 커피포트가 자동으로 꺼졌다.
나는 그것으로 커피 두 잔을 타 한 잔을 이준영에게 건네주었다.
커피를 받은 이준영은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지옥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처럼 매 끼니 밥을 챙기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죠.”
이준영은 두 눈을 빛내며 대답을 이어 나갔다.
“저는 지금이 좋습니다. 저와 동료들이 지금 이 생활을 이어 나갈 수만 있다면 목숨도 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눈이었다.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 *
김재현의 제안을 받아들여 정식으로 가신이 된 이준영은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도 유지되고 있던 동대문을 통해 원래 있던 장소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김태현이 걱정스런 눈으로 물었다.
“준영아! 어떻게 된 거야?”
이준영이 싱긋 웃으며 자신의 품에 들린 상자를 강조하며 말했다.
“이게 뭐게?”
“뭔데?”
“스마트폰.”
“……? 갑자기 웬 스마트폰?”
“나도 오늘 처음 알았는데, 여기에서는 통화나 문자가 된다더라.”
“뭐? 어떻게?”
“나도 모르지. 중앙에 가서 개통해야 된다고는 하는데…….”
“대박이네.”
통화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아깝다. 그럴 줄 알았으면 핸드폰을 챙겨 놓는 건데.”
오랜 노숙 생활 속에서 아무런 기능도 없는 벽돌에 불과한 스마트폰을 오래 들고 다닐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어? 정말요? 저는 가지고 있는데.”
“앗. 나도!”
“언니도요?”
서지현과 이서영은 그 드문 케이스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사진들이 아까워서 들고 있었는데 잘됐다. 집에 가서 켜 봐야지.”
“언니 충전기 있어요?”
“상점에서 하나 사야지.”
그때 김태현이 휴대폰 박스를 하나 꺼내며 말했다.
“여기 충전기 있을걸?”
“내 건 아이폰이라 C타입으로는 안 돼.”
“그럼, 이건 필요 없겠네.”
“아니! 그건 아니지!”
이준영이 동료들이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그때 옆에서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던 던전 관리사들이 입을 열었다.
“공략 끝나셨으면 총기 반납 도와드리겠습니다.”
“아, 네.”
모든 총기를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어?”
낯익은 얼굴들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안기태 씨?”
그들은 과거 이영준의 설득에 따라 JHS 교단에 합류했던 이들이었다.
그들이 합류하자마자 곧바로 사건이 발생하여 이영준에게는 죄책감으로 남아 있는 이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준영 씨. 무사하셨군요.”
“……기태 씨도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이준영은 급히 사과했다.
“며칠 전에는 죄송했습니다. 저는 그런 곳인 줄도 모르고…….”
“괜찮습니다. 준영 씨가 알고 그랬을 리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오히려 저는 감사합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니까요.”
그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준영이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그래도 제가 잘못한 게 있으니 이걸 하나 드리겠습니다.”
안기태는 이준영이 건네주는 핸드폰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마트폰인가요?”
비닐 포장이 뜯기지도 않은 완전한 새 상품이었다.
“네. 중앙에 가서 개통하면 전화와 문자가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전화와 문자가 가능하다고요?”
“네. 정말 대단한 곳이죠?”
“……그러네요. 이거 정말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런데 세 분이서 공략하시는 건가요?”
안기태가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총기가 있으니까요. 셋 다 특전사 출신이기도 해서…….”
“대단하네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네, 다음에 뵙죠.”
* * *
안기태는 어둠을 틈타 전포역 안으로 들어갔다.
비호와 같은 몸놀림으로 어둠 속으로 들어간 그는 금세 3번 출구를 향해 달려갔다.
그곳은 지금 서울에 있는 건대 입구역과 연결되는 곳이었다.
그는 자신의 뒤를 확인하고는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고, 어디론가 향했다.
그리고 그 뒤를.
슈슉―
투명화한 문병호가 밟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