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141화 (142/175)

141화 [Episode 32] 구세주 (1)

‘드디어 움직였군.’

안기태는 사흘 전에 시민권을 발급해 준 신입이었다.

그가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자마자 문병호를 붙일 수 있었던 것은 처음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실의 사고 현장을 수습하면서도 안기태 일행을 지켜보는 절대자의 눈을 계속해서 유지했다.

처음에 그들을 예의주시한 것은 그들의 레벨 때문이었다.

안기태의 일행은 총 여섯 명이었는데, 그들 중 절반에 해당하는 세 명이 상당히 높은 레벨의 각성자였다.

안기태부터가 32레벨이었고, 나머지 두 사람은 각자 28레벨, 27레벨에 해당했다.

세 명 다 B등급 능력을 각성한 인물들로 25레벨에서 시작했을 테니, 상당한 수의 몬스터들을 사냥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수상한 언행을 보여 주었다.

‘언제 보고를 하러 가느냐에 대한 이야기였지.’

그러니까 그들은 일종의 스파이였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JHS 교단에 들어온 것부터가 목적을 가지고 침입한 것이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휴거가 발생했고, JHS에서 배급한 초콜릿을 먹은 그들은 다른 신도들과 마찬가지로 산 제물로 희생당할 뻔했으나 내 덕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 중 비교적 빠르게 정신을 차린 안기태는 보고 말았던 것이다.

수많은 영혼이 자신의 몸을 찾아가는 경이로운 모습과 커다란 땅이 추락하고 있는 재앙을.

그리고 목숨을 걸고 그것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가신들의 모습과 결국에는 재앙을 최소화한 초월적인 힘을 본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이들에 비해 충성도와 신뢰도가 굉장히 높았지.’

그 장면을 보지 못했던 이들의 신뢰도와 충성도는 바닥을 치는 반면에 안기태의 충성도와 신뢰도는 둘 다 80을 넘긴 상태였다.

스파이면서도 나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들의 정체가 다른 조직의 스파이라는 것을 안 이상 눈을 뗄 수는 없었고, 드디어 오늘 그가 움직인 것이다.

마침 잠실 사태의 수습도 끝이 난 타이밍이었기 때문에 문병호에게 그 뒤를 밟게 했다.

안기태는 건대 입구 역에서부터 2호선의 선로를 따라 쭉 달리기 시작했다.

선로는 군데군데 망가져 있기는 했지만, 그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장애물을 지나쳐 갔다.

2호선 선로를 따라 일반인이 전력 질주하는 속도로 10분 정도 이동했을까, 드디어 그가 속해 있는 조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나타났다.

처참하게 박살난 다른 역사에 비해 비교적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한양대역’이었다.

지하철 역사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두 명이서 지키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소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안기태를 향해 소총을 겨누며 말했다.

“손 들어. 움직이면 쏜다. 대나무.”

“바다.”

“누구냐?”

안기태는 익숙한 듯한 표정으로 양손을 들어 올리고는 덤덤하게 자신의 소속을 밝혔다.

“303부대 소속 안기태 대위.”

간단한 확인이 끝나자 총을 든 군인 중 한 명이 거수경례하며 길을 터 줬다.

“충성.”

“단결.”

지하철 역사 안쪽에는 군복을 입은 이들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군.’

밖으로 노출되어 있던 전철 노선은 이곳에서부터 땅속으로 파고들게 되는 곳이 바로 이곳 한양대역부터였다.

지하철 선로가 있는 곳으로 내려오자 수많은 노숙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어디선가 구한 추레한 신문지나 상자 따위에 의지해 잠을 청하는 노숙자들의 숫자가 수백 명을 족히 넘어가는 듯했다.

구역질이 나는 냄새가 지하철 플랫폼 안에 진동하고 있었다.

그곳뿐만 아니라 지하철 선로 안쪽에서도 노숙자들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물자를 지원해 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바로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말 것이다.

“엄마아아. 배고파아아.”

“……미안, 미안하다. 엄마가 미안해. 흐윽.”

힘없이 칭얼대는 어린아이와 흐느끼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려 왔다.

‘상점 오픈. 초콜릿 구입.’

지이잉―

티가 나지 않도록 그들이 이불 삼아 덮고 있는 모포 안쪽에 초콜릿을 생성해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발견할 수 있을 테지.

왕십리까지 길게 이어진 선로에는 온통 노숙자들 천지였다.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아사 직전인 상태로 보이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심각한 탈수 증세를 보이고 있는 이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한계다.’

이들은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최대한 들키지 않게 물이나 식량들을 각 포인트에 뿌려 두는 게 최선이었다.

그렇게 왕십리역에 도착했을 때, 안기태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미로처럼 얽혀 있는 왕십리역을 한참이나 걸어 다니던 끝에 그가 도착한 곳에는.

벌컥.

군복을 입은 수십 명의 사람이 두 눈에 진한 다크서클을 매달고 회의를 진행 중이었다.

불이 들어오지 않아 회의실 테이블 위에 있는 촛불 몇 개가 회의실 내부를 위태롭게 밝히고 있는 모양새가 꼭 무너지기 직전인 이 조직과 닮아 있는 것 같았다.

안기태가 문을 열자 단번에 시선이 그쪽으로 집중되었고, 그가 입을 열었다.

“단결. 구세주를 찾았습니다.”

* * *

스트레스가 극도로 차 있던 이학기 사령관은 갑자기 나타나 이상한 소리를 지껄여대는 안기태를 쏘아붙였다.

“안기태 대위. 미쳤나?”

“아닙니다. 진지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지금 당장 보고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이학기 사령관은 그가 드디어 미쳐 버렸다고 생각했다.

사이비 종교에 대한 정보를 얻어 오라고 보냈더니, 구세주를 운운하며 나타난 것이다.

‘세뇌라도 당한 건가?’

그는 긴장감을 끌어 올렸다.

정말로 세뇌를 당한 것이라면,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쪽에 차고 있는 권총의 딱딱한 감촉을 의식하며 입을 열었다.

“해 보게.”

“감사합니다.”

그 뒤로 이어진 안기태의 보고는 충격적이기 그지없었다.

“우선, JHS 교단은 망했습니다.”

“뭐라고?”

그들이 10만 명이 넘어가는 시민들에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하던 것에 커다란 기대를 품고 있던 사령부는 단체로 탄식했다.

“이젠 다 끝났군.”

“방법은 있습니다. 조직의 몸집을 줄이기만 해도 식량 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결될 겁니다.”

“당신 제정신입니까? 지금 시민들을 버리자고?”

“그러면 이대로 모두 끌어안고 함께 침몰하는 걸 보고만 있자는 말씀입니까?”

“미친놈.”

“미쳐? 당장 나도 우리 가족도 벌써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 그러니 사람이 미치지 않고 배겨?”

“그건 여기 있는 사람 다 마찬가지야!”

생존을 위한 잔혹한 말이 오갔다.

격양되는 회의실의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안기태였다.

“모두 이것을 좀 봐 주십시오.”

그의 손에서 무언가 나타났다.

지이잉―

그것은 열량이 가득한 초콜릿바였다.

“이것은 제가 부산에 있는 한 조직에 들어가고 얻게 된 능력입니다.”

잠시 조용해졌던 회의장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의 정체를 파악한 뒤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식량을 창조하는 능력이라고?”

“부산의 조직에 들어갔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얼마나, 얼마나 공급이 가능한 거지?”

여러 가지 물음이 한꺼번에 쏟아지며 어수선해진 회의실 중앙에서 묵직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정숙.”

초췌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두 눈만은 형형하게 빛나는 이학기 사령관이 그를 향해 물었다.

“그 조직에 들어간 경위에 대해 자세하게 말해 줄 수 있겠나?”

“예.”

한동안 안기태의 긴 설명이 이어졌다.

“JHS 교단에 잠입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변이 발생했습니다. 잠실 땅 전체가 하늘로 떠올랐고, 그곳을 향해 빨려 들어간 기억을 마지막으로 영혼이 갈려 나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그간 얻었던 정보를 토대로 추측해 보자면 JHS 교단의 교주 정현수는 사람들의 생명을 제물 삼아 무언가 의식을 치르려 한 것 같습니다. 그 상황에서 교주를 저지한 것이 바로 방금 말씀드렸던 부산에 있는 조직입니다.”

이학기 사령관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어째서 아무런 보고 없이 그 조직에 들어가겠다는 판단을 하게 된 거지?”

“처음에는 갑자기 나타난 그들의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타이밍도 타이밍이라 어쩌면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뻔한 그 사태가 그들이 원인일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고, 그들을 감시했습니다. 며칠간의 관찰 결과, 그들은 결백하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됐습니다.”

“그 근거는?”

“의식이 끝난 직후 하늘에서 거대한 땅덩어리가 떨어지던 상황이었습니다.”

안기태의 말에 회의실에 있던 모든 사람의 표정이 매우 심각해졌다.

“잠실 전체가 통째로 떠오른 상태였기에 그대로 떨어졌다면 유례없는 피해가 발생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그것을 막아 냈습니다. 또한 그 여파로 발생한 사람들의 구조에 모든 힘을 쏟아 냈습니다. 그들의 행동으로 보고 그들은 결백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의 보고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릴.”

“꿈이라도 꾼 건가?”

“그 부산에 있는 조직에 세뇌라도 당한 거 아니야?”

잠실 땅 전체가 하늘로 떠오른 것도, 그것이 추락하는 것을 막아 냈다는 것도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조용.”

안기태를 조롱하던 분위기는 이학기 사령관의 목소리에 금방 제지되었다.

“계속하게.”

“네. 무엇보다 그들이 목숨을 구한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는 식량의 수준이 엄청났습니다. 콜라나 지금 보시는 초코바와 같은 기성품들이 넘쳐났고, 무엇보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아무 조건 없이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에 그들의 조직에 잠입해 봐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네가 내린 결론은? 자네가 보기에 그 조직은 어떠했지?”

“……처음엔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곳의 풍경은 마치 부산에만 멸망이 빗겨 나간 듯해 보였으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지?”

그 뒤로 안기태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회의실 내부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몬스터가 침입하지 못하는 땅.

전기, 수도, 가스가 공급되는 주거 시설.

넘쳐나는 식량.

심지어는 총기와 탄약까지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얻은 스마트폰입니다. 그곳에서는 현재 전화통화와 문자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가 품속에서 꺼낸 스마트폰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간부 중 한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시작으로 회의실 전체로 웃음이 퍼져 나갔다.

“아아. 정말 많이 준비했군.”

“환상의 나라에 다녀오셨구만그래.”

단 한 사람, 이학기 사령관만이 그를 비웃지 않고 있었다.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안기태를 향한 조롱이 단번에 멈추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초췌한 얼굴에는 특히나 피곤함이 더욱 짙게 묻어나고 있었다.

“……솔직히 자네의 이야기는 믿을 수가 없네. 하지만 그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게 지금 우리의 상황이야. 비참하군.”

이내 사령관의 말뜻을 이해한 간부들이 저마다 소리쳤다.

“사령관님! 지금 무슨……!”

“저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믿는 건 아니겠지요?”

“지금 이 타이밍에 시간을 낭비하게 되면 끝장입니다!”

이학기 사령관은 그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러는 자네들에게는 더 좋은 계획이라도 있나? 시민들을 버린다는 계획은 절대 용납할 수 없네. 그것도 결국,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 그럴 바에는 지금 다 같이 침몰하는 편이 나아.”

그 순간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의 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허공에서 낯선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 누구냐!”

회의실에 있던 모두가 긴장감 어린 눈빛으로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려고 하던 그 순간.

지이이이잉―

식량과 물을 비롯한 긴급 구호물자가 담긴 상자들이 회의실을 가득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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