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Episode 32] 구세주 (3)
일일퀘스트의 효율이 워낙 괜찮았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시민에게 일일퀘스트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많게는 하루에 수백 개의 보상을 획득하는데, 퀘스트 내용에 따라 보상의 내용이 바뀐다.
보통 몬스터를 사냥하는 퀘스트를 부여하기 때문에 보상으로 소량의 경험치를 얻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퀘스트를 완료하는 숫자가 워낙에 많다 보니 가끔씩 잭팟이 터지기는 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하는 게 끝이었다.
그런데 스킬 포인트라니.
‘이러면 써야지.’
새롭게 얻은 ‘인벤토리’라는 게 정확히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다.
‘문제는 인벤토리 기능이 5레벨에서 해금이 되느냐인데.’
현재 집구석 절대자의 창고 스킬의 레벨은 4였다.
운이 나쁘다면 레벨을 올리고도 인벤토리 기능을 해금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창고 레벨을 올려 둬서 손해 볼 일은 없다.’
가신들을 보조하는 기능과 더불어 현재 내가 가진 것들 중 가장 강력한 물리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바로 창고였기 때문이다.
창고를 이용한 메테오를 사용하면 웬만한 괴물들도 전부 골로 보낼 수가 있었다.
‘창고가 감당할 수 있는 중량이 늘어나는 만큼 메테오의 위력이 강력해지는 셈이다.’
스킬을 투자해서 나쁠 게 없다는 뜻이다.
[정말로 집구석 절대자의 창고 스킬을 올리시겠습니까?]
“그래.”
우웅!
[집구석 절대자의 창고 스킬이 Lv. 5가 되었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인벤토리’가 개방됩니다.]
해당 기능이 개방되는 순간 ‘인벤토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머릿속에 자동으로 입력되었다.
‘시민 한 명이 보관 가능한 중량은 20kg.’
창고 스킬에서 파생된 기능답게 순수한 질량을 기준으로 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10kg이 기준이었겠지만, 현재 내가 쓰고 있는 절대자의 왕관 덕분에 2배가 되어 20kg이 된 것이었다.
‘창고나 거래소와 마찬가지로 부패가 진행되지 않는 것도 똑같다.’
거래소의 일부 기능이 집구석 절대자의 창고와 상당히 닮아 있다는 것은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능들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스킬 레벨을 갖추어야 하는 거겠지.’
그와 동시에 순수한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 인벤토리가 더 먼저 개방됐어야 맞지 않나?’
솔직히 말해서 활용성은 인벤토리보다도 거래소가 몇 배는 더 높아 보였다.
거래소의 경우 20개의 슬롯이라는 제한이 있는 대신 중량의 제한이 없었다.
그렇기에 중고 차량 같은 것들을 사고파는 행위가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는 중량은 겨우 20kg.
식량이나 필수적인 물건들을 보관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허?’
실시간으로 머릿속에서 업데이트 되고 있는 인벤토리의 기능들은 상상 이상의 것들이었다.
[‘인벤토리’의 최고 권한자는 ‘집구석 절대자’입니다.]
[‘집구석 절대자’는 모든 인벤토리에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합니다.]
절대적인 권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나는 시민들의 인벤토리에 어떤 물건이 들었는지 알 수 있었고, 마음대로 물건을 보관하거나 빼는 게 가능했다.
심지어는 시민들 개개인에 따라 인벤토리를 아예 사용할 수 없게 통제할 수도 있었다.
즉.
‘모든 인벤토리를 내 창고처럼 사용하는 게 가능하다.’
현재 5레벨이 된 창고의 최대 중량은 3,000kg이다.
겨우 3t에 불과한 중량이었다.
그런데 현재 인벤토리 기능이 개방되면서 내가 사용할 수 있게 된 창고의 용량은 대충 생각해도 50만 곱하기 20kg인 것이다.
총 10,000t.
집구석 절대자의 창고 중량에 3333배 만큼을 보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굉장하긴 한데 조금 애매하네.’
그러나 인벤토리에는 근본적으로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다.
예를 들어 20kg이 넘어가는 무거운 물건의 경우 보관이 불가능했다.
한 사람의 인벤토리 최대 중량은 20kg으로, 이것은 모두 독립적인 공간으로 적용되어 함께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kg짜리 물건을 50만 개 보관하는 것은 가능해도, 1만t짜리 물건을 하나 보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시민들의 창고, 그러니까 인벤토리에 보관할 경우 집구석 절대자의 창고에 포함되어 ‘현상 유지’ 기능을 사용할 수 없었다.
창고에 넣는 순간 운동량이 보존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러니 그들의 창고에 하동건의 창이나 쏘아 낸 탄두 등을 보관해도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개개인에게 있어서는 이것만큼 편리한 기능도 없겠지.’
물론, 나는 모든 이에게 이 기능을 사용하게 해 줄 생각이 없었다.
가신들과 평소 눈여겨보던 이들에게만 선택적으로 인벤토리 기능을 개방해 줄 생각이었다.
우선은 가신들의 권한을 최대치인 20kg으로 만들고 소통의 반지를 사용했다.
[여러분 한 가지 공표할 것이 있습니다.]
* * *
서예진은 김재현의 말을 듣고 당장 인벤토리의 기능을 시험해 봤다.
“인벤토리 보관!”
그녀의 의지에 따라 10kg짜리 거대한 치즈가 허공에서 눈 녹듯 사라졌다.
‘정말 된다!’
그와 동시에.
쿠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대 치즈 앞에서 군침을 흘리고 있던 여왕 랫맨이 무릎을 꿇는 소리였다.
그녀는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치즈가 사라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서예진이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메리, 치즈가 어디로 사라졌을까?”
여왕 랫맨, 메리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서예진에게 다가왔다.
서예진은 침으로 가득한 입가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기다려.”
서예진이 매정하게 눈을 감자 여왕 랫맨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 와중에 서예진은 멀리 떨어진 다른 생쥐들에게 감각 동기화를 하고 있었다.
현재 그녀가 있는 곳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의 하수구를 기어 다니고 있던 놈이었다.
찍
‘치즈 소환.’
그곳에 인벤토리에 보관된 치즈의 일부를 소환해 봤다.
그러자.
지이잉―
그곳에 자그마한 치즈 덩어리가 나타났다.
‘되는구나.’
항상 김재현이 사용하는 힘을 지켜만 봐 왔던 입장에서 비슷한 종류의 힘을 직접 사용해 보니 신기했다.
‘감사해요, 오빠.’
지금까지는 그녀가 부리던 생쥐들은 거의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먹이를 구하는 과정에서 죽거나, 먹이를 구하지 못해 굶어 죽는 경우도 상당수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그런 경우가 현저히 줄어들게 될 것이다.
“크르릉.”
메리가 낮게 그르렁거렸다.
“알겠어.”
서예진은 메리의 앞쪽을 바라보며 명령어를 내뱉었다.
“치즈 소환.”
이번에는 창고에 남아 있던 치즈를 한꺼번에 소환했다.
“먹어.”
서예진의 허락이 떨어지자 메리가 게걸스럽게 치즈를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예진은 주변을 둘러봤다.
랫맨들이 근처에서 우두머리의 간식을 보며 군침을 흘려 대고 있었다.
서예진은 혹시나 싶어 그중 하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인벤토리 보관.”
그러나 살아 있는 생명인 랫맨이 인벤토리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역시 이건 안 되는구나.’
거래소에 있는 치즈 몇 개를 더 구입한 다음 랫맨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도 와서 먹으렴.”
랫맨들의 숫자는 처음보다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방사능 슬라임 퇴치 작전에서 상당수가 소모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척 보기에도 몬스터처럼 생긴 이들을 안전구역 내로 들일 수도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안전구역 바깥에서 생활을 해야만 했다.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서예진이 간식을 주러 오는 경우는 굉장히 드문 경우였다.
게다가 서예진이 인간을 사냥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이들은 몬스터를 사냥해서 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몬스터 사냥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 과정에서 나약한 개체는 도태되어 죽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예진의 ‘진화’스킬 덕분에 사냥을 하면 할수록 레벨이 오르며 전체적인 수준이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앞으로는 배고파서 죽는 아이들은 없을 거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서예진은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켈리칸의 등에 올라탔다.
“집으로 가자.”
켈리칸이 그녀의 말을 알아듣고 날개를 펼쳤다.
서예진은 불완전하게나마 켈리칸들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그녀가 ‘조련사’의 칭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덕분에 김재현의 직접적인 지시가 없어도 켈리칸을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
금세 집에 도착한 서예진은 자신의 침실에서 두 눈을 감고 생쥐들의 눈으로 어떤 건물을 살폈다.
‘오늘은 어디로 가 볼까.’
서울 공략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사람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서예진은 그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힘들어하던 사람들이 이곳에 대해 알게 되며 놀라워할 때마다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는 사람들, 점점 평범한 일상에 익숙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그녀의 비밀스런 취미였다.
다른 생쥐들에게 감각을 이동시키던 도중 흥미로운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면 근처에 있는 낡은 교회였다.
“……저희는 그동안 거짓된 가르침을 받으며 거짓된 믿음을 길러 왔습니다. 그러나 바로 얼마전 구세주께서 내려오시어 저희들을 직접 구원해 주신 겁니다.”
“아멘.”
“구세주의 축복을 받은 이 땅에는 몬스터가 침범하지 못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우리는 이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아멘.”
몇몇 사람들이 모여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김재현을 신으로 모시는 자들이었다.
‘그새 또 늘었네.’
요즘 따라 이런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저런 이들이 생긴 것은 JHS 교단이 박살나고, 그곳의 신도였던 이들이 대거 유입된 직후부터였다.
김재현을 신처럼 취급하는 이들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저런 식으로 본격적으로 우상화하며 기도를 올리는 이들이 생겨난 것은 그때부터였다.
‘원래 사이비를 믿던 사람들이라서 그런가.’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확실히 오빠가 특별하기는 하지.’
서예진의 경우 김재현과 워낙 자주 붙어 있었던 덕분에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본 것이지, 단순히 능력적인 면으로만 보면 범인의 상상력을 초월한 사람이 바로 김재현이었다.
‘특별……이라는 말로는 좀 많이 부족한가.’
김재현의 능력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 봤지만, 그 어떤 단어도 그의 능력을 제대로 담아내기는 힘들어 보였다.
“이 축복 받은 땅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선택받은 자들뿐. 저희는 구세주의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단상에 올라 설교를 진행하는 남자는 단 하나의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거나, 요구하는 일도 없었다.
정말 순수하게 김재현을 찬양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기도합시다! 구세주께서는 저희를 구해 주시고, 먹을 것을 주고, 잠을 잘 곳을 주었습니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과 몬스터들의 걱정 없이 잠들 수 있는 안전한 집을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그때였다.
우우웅―
사람들을 설교하던 남자에게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오오오!”
“빛이……!”
“아아!”
그 빛을 보고 서예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신으로 등록될 때 저런 빛이 나오지 않았었나?’
겉보기에는 사이비 목사와 다를 것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욱 의문이었다.
‘뭔가 특별한 게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