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144화 (145/175)

144화 [Episode 32] 구세주 (4)

[시민 윤성민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윤성민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초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또?’

벌써 세 번째였다.

충성도보다 신뢰도가 먼저 100에 도달하는 경우가.

투시 능력을 가지고 있던 이준영을 시작으로 벌써 둘이나 새롭게 신뢰도 100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비각성자의 경우 대상이 가지고 있는 능력 대신 경험치를 얻게 되는데,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초대량이라는 수식어를 보면 결코 적은 양은 아닐 것이다.

‘시민 관리, 윤성민.’

명령어와 함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두 명의 시민이었다.

시민들의 숫자가 늘어나며 동명이인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둘 중 누구인지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신뢰도가 100인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으니까.

‘이 사람인가.’

안경을 끼고, 통통한 인상 좋은 아저씨였다.

‘충성도도 높네.’

윤성민의 충성도는 63으로 시민권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높은 수치였다.

절대자의 눈을 통해 그 사람이 있는 곳을 들여다봤다.

그곳에는.

‘……흠.’

사이비 목사가 나를 찬양하며 자신의 사상을 퍼뜨리는 중이었다.

그곳에 있는 시민들을 확인해 보니, 죄다 높은 신뢰도와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교회네.’

며칠 전에 신뢰도가 100이 도달했던 여자가 있었던 곳도 마침 교회였었다.

그녀는 나를 찬양하며 나를 향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원래부터 신을 믿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신뢰도가 오르는 속도가 남들보다 훨씬 가팔랐다.

우스운 이야기였지만, 사이비에 속해 있는 사람 중에는 의외로 선량하고 순진한 사람들이 많았다.

JHS 신도였던 이들은 대다수가 당장의 생존이 목적이었지만, 그들 중에서는 진심으로 교리를 믿고 기도를 올리는 이들도 존재했다.

시련을 종교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

이들은 정현수를 향해 보내던 믿음을 그대로 나에게 향했고, 그 결과 가파른 신뢰도의 상승을 보여 주고 있었다.

‘조금 부담스럽긴 해도, 나쁠 건 없지.’

어딘가에 의지한다는 건 나쁜 게 아니다.

하동건은 가족을 잃은 아픔을 아내인 김가영에게 의지하며 극복할 수 있었고, 강덕수와 김 건은 술을 마시며 힘든 시기를 버텨 냈다.

오언주의 경우 내가 선물했던 하루의 추억에 의지하며 살아간다고 말했다.

맛있는 음식. 재미있는 게임. 소중한 친구. 사랑하는 사람. 추억. 책임감.

어쩌면 인간은 모두 어딘가에 의지하며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들의 경우 그것이 ‘종교’였을 뿐이다.

그때였다.

띠링!

[신뢰도가 100에 달한 시민들의 숫자가 12명에 도달했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사제’가 개방됩니다.]

직업연구소에 새로운 직업이 추가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허.’

사제에 대한 설명은 간단했다.

-사제 : ‘힐’을 획득합니다.

간단하면서도 파격적이었다.

‘힐이라니.’

사냥감의 사체가 남도록 만드는 ‘사냥꾼’과는 차원이 달랐다.

정말로 힐 능력을 준다면, 각성자를 만들어 낸다는 소리였으니까.

‘그것도 힐이다.’

이건 반드시 활성화해야만 하는 기능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인벤토리보다도 더 큰 파급력을 가져올 수 있는 직업이었다.

곧바로 사제 직업을 적용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사제 연구 [비활성화] (5레벨 해금)

‘직업연구소의 레벨을 올려야 하는구나.’

건설 가능한 시설 중 유일하게 레벨이 매겨진 건축물이 바로 직업연구소였다.

‘하지만 정작 직업연구소의 레벨을 올리는 방법을 모르지.’

현재 비활성화되어 있는 직업 연구는 사제뿐만이 아니었다.

전사 연구 [비활성화] (2레벨 해금)

사수 연구 [비활성화] (2레벨 해금)

창술사 연구 [비활성화] (3레벨 해금)

활잡이 연구 [비활성화] (3레벨 해금)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서 가끔 연구할 수 있는 직업이 개방되기는 했었다.

레벨 30 이상의 시민들이 백 명이 넘어가는 순간 개방된 전사, 총에 대한 숙련도를 갖춘 시민들이 백 명이 넘어가며 개방된 사수 등.

일정 조건을 충족시킬 때마다 새로운 직업이 개방되고는 했었다.

그러나 직업연구소의 레벨을 올리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지금까지 내버려 두었다.

새로운 직업들의 효과가 특별하지 않았기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보다 다른 일들을 처리하는 것만 해도 지나치게 바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힐 능력을 각성하게 해 준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이건 무리를 해서라도 방법을 찾아볼 가치가 있었다.

‘상의해 봐야겠어.’

그때였다.

[재현 님.]

김다빈에게서 텔레파시가 전해져 왔다.

[네, 말씀하세요.]

[이학기 사령관님께서 대면을 요청하셨습니다.]

절대자의 눈으로 확인해 보니, 행정관리 사무소의 회의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이학기 사령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 바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텔레포트를 사용하여 회의실에 나타나자 이학기 사령관이 살짝 놀라며 고개를 숙여 왔다.

“이렇게 뵙습니다.”

“또 뵙네요.”

진중해 보이는 표정의 그를 향해 물었다.

“배정받으신 숙소는 괜찮으신가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습니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있을 때는 정말이지…… 예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그때 회의실 문을 열고 나타난 유혜린이 커피 두 잔을 타 왔다.

“잘 먹을게요.”

“네, 재현 님. 맛있게 드세요.”

믹스커피를 잠시 음미하던 나는 이학기 사령관에게 본론을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죠?”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잠시 뜸을 들이던 이학기 사령관이 이내 입을 뗐다.

“서울에 있는 모든 시민을 받아들이실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안 됩니다.”

단호한 그의 대답에 조금 놀란 내가 되물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예, 사람들은 이미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이학기 사령관이 덤덤히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남의 물건을 빼앗고, 남을 강간하고, 살해하는 것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습니다. 작금에 와서는 몬스터보다도 위험한 게 바로 사람입니다. 지금처럼 아무런 거름망 없이 사람들을 받아들이시다가는 큰 사고가 발생하고 말 것입니다.”

“살인자들이 대거 유입될 것이기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이학기 사령관의 입에서 나온 의문은 이미 김다빈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결론을 내린 사안이었다.

나는 이학기 사령관을 향해 말했다.

“같은 논리를 적용한다면 사령관님의 조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도 충분히 인지하고 계시겠지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다릅니다.”

“사령관님이 이끄는 조직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을 죽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장담하실 수 있으신가요?”

“…….”

이학기 사령관은 대답하지 못했다.

침묵하며 고개를 떨군 그를 향해 물었다.

“어째서 약탈이나 살인이 일어나게 되는 것일까요?”

“……극한의 상황에서 본성이 나온 것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경우가 월등히 많았을 겁니다.”

사람들의 본성이 악하다기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을 강요받은 것이었다.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정부의 탓이 큽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너무 빨리 무너졌어요.”

그때 이학기 사령관의 몸이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기본적인 사회 인프라가 너무 빠르게 무너진 탓에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선택을 강요받았어요. 이대로 굶어 죽거나 약탈하거나, 때로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사람도 죽여야 했을 겁니다.”

“…….”

“하지만 제가 있는 이곳은 다릅니다. 안정된 사회 인프라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살인이나 강간과 같은 강력 범죄에 대한 처벌도 확실하죠.”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저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다시 평범한 일상을 되돌려 주고 싶은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이학기 사령관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진실을 가려내는 능력으로 최대한 사람들을 선별해 주세요.”

“!”

이학기 사령관은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느냔 눈빛이었다.

“가능하겠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사령관에게는 ‘부장’의 직위를 부여하고 선별관으로서의 역할을 맡겼다.

서울에서 직접 산전수전을 다 겪어 왔던 사람이었기에 받아들여도 되는 사람과 받아들이면 안 되는 사람 정도의 구분은 충분히 하고도 남을 것이다.

“시민권을 박탈시키는 경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강간을 저지른 자입니다.”

조금 이상한 이야기였지만, 살인의 경우 정상 참작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생존을 위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또는 극한의 상황에서의 실수로.

하지만 강간의 경우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생존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또 다른 하나는 쾌락이나 특정한 목적으로 저지른 의도적 살인입니다. 이 두 가지에 한해서는 무조건적인 퇴출이 이뤄질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두 가지 경우에 한해서는 시민권을 박탈한 직후 ‘사냥’해 버릴 생각이었다.

어떻게 보면 몬스터 보다도 백해무익한 존재들이었으니까.

제2, 제3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리 싹을 잘라 둘 필요가 있었다.

“나머지 사안에 대한 판단은 사령관님께 맡기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이야기를 정리하기 직전 이학기 사령관을 향해 가볍게 물었다.

“혹시 우리나라 정부가 빠르게 무너진 이유에 대해서 무언가 알고 계신 거라도 있습니까?”

“…….”

이학기 사령관은 그대로 굳어 있었다.

몇 초간의 침묵 이후에 힘겹게 입을 열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흥미롭군요. 첫 번째 가능성부터 말씀해 주시죠.”

“서울에 출현한 몬스터들 중에는 규격 외의 괴물들이 존재했습니다. 그 괴물들에 의해 나라의 중추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모두 몰살당했을 경우입니다.”

“충분히 그럴듯한 이야기군요.”

실제로 가신들을 통해 지켜본 서울은 몬스터들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은 편이었다.

30레벨대 몬스터는 발에 챌 정도로 많았고, 40레벨대 몬스터들이 각자 영역을 이루고 있었으며, 몇몇 장소에서는 50레벨이 넘어가는 놈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초토화된 서울 속에서 높으신 분들이 죄다 죽음을 맞이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하나는 무엇이죠?”

그렇다고 해도 생각보다 제법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생존해 있었다.

정치인들을 비롯한 높으신 분들만 유독 더 많이 죽었다는 것은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이학기 사령관이 천천히 입을 뗐다.

“극비리에 지어진 거대한 규모의 방공호가 몇 군데 있습니다. 핵전쟁을 가정하고 만들어진 방공호입니다만…….”

거기까지만 들어도 그 뒤에 이어질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라의 중추 역할을 해야 할 인간들이 대부분 거기에 숨어들었을 거다?”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저도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입니다.”

“규모는 얼마나 되죠?”

“가장 큰 시설은 천 명 정도가 수용 가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상위 0.01프로였던 인간들이 거기에 다 모여 있겠군요.”

어메이징했다.

‘어떻게 된 게 이 나라의 우두머리는 전란이 생길 때마다 꽁무니를 빼고 도망치는 거지?’

역사적으로도 그랬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국민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이야기는 워낙에 유명했으니까.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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