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Episode 33] 전직 퀘스트 (2)
신동훈이 가진 능력은 순간 가속으로 A등급 능력이었다.
숨을 참는 시간 동안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는데, 아직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같이 있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지.’
B등급이 3명에 C등급이 6명.
완전한 정예 부대였다.
이들은 이학기 사령관의 주도 아래 만들어진 각성자 집단이었는데, 몬스터 사냥에 대한 경험이 상당했기 때문인지 금세 오크 던전 공략까지 성공했다.
‘게다가 신동훈의 레벨은 37이다.’
37레벨이면 가신들을 제외한 시민 중에서도 거의 톱클래스에 해당된다.
시민들의 경우 경험치 버프가 있었다.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은 내가 직접 경험치 획득량을 늘려 놓기까지 했으므로 사실상 3배~4배 정도는 차이가 나는 셈이다.
그런데 그 차이를 뚫고 더 높은 레벨을 달성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사냥한 경험이 있다는 거겠지.’
실제로 시민권을 획득한 이후의 실적도 굉장히 좋았다.
‘팀원들 사이에서 평판도 좋고 사람이 괜찮아 보였지.’
이 정도면 충분히 합격점이었다.
‘가신 등록을 제안해 봐야겠어.’
B등급 능력을 가진 이준호, 박성준, 김기태 세 명에게까지 제안해 볼 생각이었다.
최근 품위 유지 스킬을 올렸을 때 가신 등록의 한계치가 100명이 늘어나며 여유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사냥꾼이라.’
사냥꾼이 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 대상에게 해당 직업의 전직 퀘스트를 부여하기만 하면 되는데, 사냥꾼의 경우 몬스터 30마리 사냥이 그 조건이었다.
퀘스트를 받은 다음 고블린 30마리만 사냥해도 전직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총을 지급할 수 있는 이상 사실상 사냥꾼 전직 퀘스트는 누워서 떡 먹기나 마찬가지였다.
‘원한다면 해 줄 수도 있지만…….’
언제든지 임의로 직업을 해제할 수도 있었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사냥꾼보다는 전사가 나을 텐데.’
사냥꾼의 직업 효과는 겨우 사냥감의 부산물을 획득하는 것뿐이었다.
쉽게 말해 사냥한 몬스터의 사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것의 경우 그리 큰 메리트가 없었다.
막말로 귀한 물건이 나오는 몬스터의 사체가 있다면 그냥 그것을 상점에 등록해 버리면 끝이었다.
사냥꾼의 특성 자체에 그리 커다란 메리트는 없는 셈이다.
‘장점이라고 해 봐야 해양 몬스터 사냥인데.’
대표적으로 하늘 청새치들이 있었다.
주로 해안가 근처에 서식하는 놈들로 예전에는 백룡의 등장으로 내륙까지 들이친 적도 있는 놈들이었다.
이놈들의 회는 입에서 녹는 듯한 식감으로 유명했는데, 덕분에 시민 중에서는 이놈들만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워낙에 수요가 많아서 상점에 등록해 놓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비싼 가격 때문인지 상점보다는 거래소에서 더 활발하게 거래가 되고 있었다.
덕분에 꽤 돈이 된다.
‘하지만 전사의 경우에는 직접적으로 전투에 도움을 준다.’
2레벨이 된 직업연구소에서 해방된 직업이라 그런지 사냥꾼보다 효과가 더 많았다.
기본적으로 근접 공격에 대한 50%의 버프가 있었으며, 순간적으로 신체 능력을 100% 상승시키는 게 가능했다.
‘전직 퀘스트의 조건은…… 응?’
전사의 전직 퀘스트의 경우 조금 특이했다.
‘전사의 방을 클리어 해야 한다고?’
아무래도 2레벨이 된 직업연구소에 전직을 위한 특별한 방이 준비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절대자의 눈.’
실제로 직업연구소를 보아하니 특별한 방 2개가 새롭게 생성되어 있었다.
‘여긴가.’
하나는 전사의 방, 다른 하나는 아직 연구를 완료하지 않은 사수와 관련된 방으로 보였다.
‘사수의 연구도 바로 시작해야겠군.’
[직업 ‘사수’의 연구를 시작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시작해.’
띠링!
[사수]
…연구 중…
-남은 시간 : 11시간 59분 59초
2레벨에 해방된 나머지 하나의 직업 연구를 시작해 둔 다음 신동훈 그룹이 있는 곳으로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슈슉―
* * *
“분대장님. 너무 성급한 결정이지 않습니까?”
“뭐가?”
“정말로 안전지대 안에서 그것들을 사냥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정말로 그런 꿀이라면 먼저 사냥꾼 직업을 얻은 사람들이 모두 독점해 버렸을 겁니다. 몬스터의 씨가 말랐을지도 모르는데, 먼저 직접 가서 사전 답사라도 해 본 다음에 결정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신동훈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기태야. 아까도 말했잖아. 사냥꾼은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고. 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그만두면 된다니까?”
김기태는 부대 내에서도 신중한 성격이기때문인지 신동훈의 성급한 결단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 저희 중 몇 명만 사냥꾼으로 전직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그의 말을 들은 신동훈이 잠시 고민해 보더니 대답했다.
“굳이 그래야 하는 이유는?”
“그런 특정한 효과를 지닌 사냥꾼이라는 직업이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직업도 존재한다는 뜻 아닙니까? 사냥꾼을 그만두고 다시 직업을 얻으려면 한 달이라는 쿨타임이 있는 것도 그렇습니다. 분명 다른 직업이 존재할 겁니다.”
“그래서?”
“더 좋은 직업이 있을지도 모르니,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한번 고른 선택을 바꾸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달을 기다려야 하지 않습니까.”
“흐음.”
신동훈이 무조건 자기 의견만 고집하는 리더였다면 김기태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말을 많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말해 봐야 자기 입만 아플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신동훈은 부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리더였고, 그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면 선택을 바꾸기도 하는 남자였다.
‘어차피 내 진짜 목적은 김재현과의 대면이지 사냥꾼 전직은 명분일 뿐이다.’
굳이 팀원 전부가 사냥꾼으로 전직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려 하는 그 순간.
“저도 그 말에 동의합니다. 사냥꾼보다는 전사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요?”
낯선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돌아갔다.
“?”
그곳에는 처음 보는 얼굴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처음부터 그들 사이에 있었던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앉아 있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이 남자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존재감은 절대적이었다.
자그마한 티끌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와 편안한 복장의 옷을 입은 평범한 남자일 뿐인데, 그의 앞에 있으면 이상하게 압도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굳어 버린 상황에서 그가 입을 열었다.
“다들 처음 뵙겠습니다. 김재현이라고 합니다.”
“!!!”
모두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김재현에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이, 이, 이준호라고 합니다!”
“어어으…….”
매일 전쟁 같은 나날들을 보냈던 전우들이 한순간에 이등병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나마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신동훈뿐인 듯했다.
신동훈이 입을 열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재현 님. 신동훈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김재현이 내민 손을 잡은 신동훈의 표정은 평안해 보였지만, 사실 속으로는 엄청나게 놀라워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까지…….’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압도적인 차이가 날 줄이야…….’
신동훈.
그는 자신의 실력에 꽤 자신이 있었다.
그의 능력은 다른 각성자들과 비교해도 특출난 편이었다.
초기에는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총기에 의지하여 몬스터 사냥을 이어 나갔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오크 열댓 마리 정도는 식칼 하나만 있어도 순식간에 몰살시킬 수 있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을 각성하게 만들었던 거인, ‘싸이클롭스’ 사냥에 성공했다.
비록 병단 내에서 지원과 동료들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자신의 손으로 싸이클롭스를 사냥한 전적이 있었다.
수류탄 더미를 놈의 입 안에 던져 넣어 머리를 날려 버렸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싸이클롭스에 대한 공포를 이겨 내고 극복했던 자신이었기에 이곳의 주인인 ‘김재현’의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솔직히 조금은 ‘대등’한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완전히 착각이었어.’
현재 그는 싸이클롭스의 앞에서 느꼈던 공포와는 차원이 다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각성 이후 어느 정도 힘을 얻었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의 힘의 정도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의 팀원 중에서도 이준호, 박성준, 김기태가 좀 더 강하다는 것도 팀원들 개개인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도 명확하게 파악하는 게 가능했다.
그런데.
‘격이 다르다.’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서는 한계를 볼 수 없었다.
아무리 올려다봐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두꺼운 벽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남들보다 강한 힘을 지닌 신동훈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눈앞에 있는 남자의 위대함을 느끼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그 앞에서 느끼는 감정은 공포와 닮아 있었지만, 그것과는 근원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다.’
경외심.
절대자의 앞에서나 느껴질 법한 초월적인 두려움과 공경의 마음이 그의 뇌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때 김재현이 다시 한번 말했다.
“저는 동훈 씨가 사냥꾼이 아닌 전사에 도전해 보셨으면 하는데, 어떠실까요?”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하겠습니다.”
김재현이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 순간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하나 나타났다.
《전직 퀘스트》
퀘스트 내용 : 전사의 방을 클리어 하세요.
-팔 굽혀 펴기 (0/100)
제한 시간 : 23시간 59분 57초
보상 : 직업 ‘전사’ 전직
실패 페널티 : 전직 실패.
그리고
“부디 행운을 빌겠습니다.”
김재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슈슉―
주변 공간이 뒤흔들리며 순간적으로 어지러움을 느꼈다.
“으윽.”
정신을 차렸을 땐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은 다양한 무기가 진열되어 있는 진열장이었다.
‘이건……?’
[무기를 선택해 주십시오.]
그곳에 진열되어 있는 무기는 하나 같이 나무를 깎아 만든 것으로 보이는 물건이었다.
검, 도끼, 창, 망치, 단검 등등.
모두 날 부분이 나무로 만들어진 연습용 무기처럼 보였다.
신동훈은 그중 도신이 50cm 정도 되는 적당한 길이의 검을 골랐다.
그 순간.
철컥.
오른편에 있는 문이 열리며 꽤 넓어 보이는 장소가 나타났다.
‘들어오라는 건가.’
그곳에도 밝은 조명이 비추고 있었기 때문에 방 내부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적당히 넓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특별할 것 없는 방이었다.
딱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지금 자신이 들어가는 입구 말고도 건너편에 문으로 보이는 곳이 하나 더 있다는 점이다.
‘대충 알겠군.’
지금부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스읍, 후우.”
한차례 심호흡을 마치고 방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가 방에 진입하자 뒤쪽에 있는 문이 천천히 닫혔고.
철컥.
건너편에 있는 문이 열렸다.
그리고.
끼이익― 끼익-
그곳에서 나타난 것은 나무로 만들어진 듯한 인형이었다.
겉모습만 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기껏해야 나무로 만든 인형일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저놈 만만치 않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자신의 룸메이트이자 가장 친한 후임인 이준호와 엇비슷한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겨우 나무 인형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타닷―
한순간에 거리를 좁힌 나무 인형이 그를 향해 손에 들고 있던 나무창을 찔러 왔다.
카가각!
“!”
힘이 엄청났다.
단검으로 막아 낸 신동훈이 순간적으로 뒤로 밀려날 정도의 파워였다.
‘하지만……!’
우우웅―!
신동훈의 심장에서부터 뜨거운 에너지가 폭발하듯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소리가 잠잠해졌다.
그리고.
카―가―각―!
나무 인형의 창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반대로 신동훈의 몸은 빨라진 상태였다.
콰직!
신동훈의 단검이 순식간에 나무 인형의 목을 박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