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Episode 33] 전직 퀘스트 (5)
이준영은 투시를 사용했다.
현재 그가 있는 곳은 사수의 방.
직업 ‘사수’를 얻기 위한 전직 퀘스트를 부여받은 상태였다.
사수의 방 구조는 일종의 사격 훈련장 같았는데, 다양한 장소에 과녁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인다.’
투시를 사용하는 이준영의 눈에는 장애물 뒤에 숨는 행동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타앙!
과녁이 장애물 밖으로 나오는 타이밍을 맞춰 정확히 명중시키기만 하면 끝이었다.
타앙!
이곳에 진입하기 전 진열대에 놓여 있던 활이나 석궁을 사용했다면 난이도가 조금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김재현이 직접 지급한 소총이었다.
탕―!
10개의 과녁을 모두 처리하는 순간.
[2페이즈 시작합니다.]
김재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녁 10개를 맞추면 2페이즈가 시작된다는 것과, 그게 어떤 종류인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
지이잉―
과녁이 나타나지 않았던 엄폐물 뒤쪽에서 나무 인형이 실시간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투시를 통해 훤히 들여다보였다.
놈들의 손에는 활이나 석궁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온다.’
세 놈이 거의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며 이준영을 노렸다.
그러나.
타앙―!
이미 투시를 통해 놈들의 위치를 모두 확인하고 있었던 이준영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나무 인형의 머리가 튀어나오자마자 이준영이 쏘아 낸 탄두에 박살이 났다.
정확히 나오는 타이밍을 노려서 사격한 것이다.
게다가.
푹! 푸욱―!
시험장에 준비되어 있는 엄폐물을 역으로 이용하여 다른 두 놈의 공격을 원천 차단해 놓았다.
타앙― 탕!
나무 인형들이 화살을 장전하는 틈을 타 엄폐물 밖으로 튀어나와 동시에 두 놈을 처리할 수 있었다.
“후!”
투시 능력은 단순히 장애물 너머를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시력까지 강화시켜 주었다.
제법 먼 거리에 있는 나무 인형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이준영이 사수의 시험을 완벽하게 클리어 해낸 순간.
[전직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사수’로 전직하셨습니다.]
눈앞에 나타난 홀로그램 알림을 확인하자.
[고생하셨습니다.]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김재현의 목소리와 함께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순간이동 되었다.
그와 동시에 손에 들려 있던 총기도 사라져 있었다.
치이이익―
이준영의 앞에서는 고기가 숯불에 맛있게 익어 가고 있었다.
“왔냐.”
원형 테이블의 바로 옆에 앉아 있던 김태현이 고기를 뒤집으며 태연하게 물었다.
“재현 님께 다녀온 거지?”
“어어.”
“무슨 일이었는데?”
“그냥 사수로 전직하고 왔어.”
“사수?”
“직업인데…… 나도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재현 님이 시키는 대로 하고 온 거야.”
“샤낭꾼이랑 비슷한 개념인가? 전직하면 무슨 효과가 있는데?”
사냥꾼에 대한 정보는 던전에 들어가 몬스터 사냥을 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 있는 정보였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전사와 사수에 대해서는 아직 그 정보가 풀리지 않았다.
당연했다.
아직은 전사나 사수로 전직한 사람들 자체가 극소수에 불과했으니까.
“재현 님께 직접 듣기로는 원거리 공격에 대한 강화 버프를 받을 수 있대. 그리고 일시적으로 이동속도가 빨라지는 능력도 생긴다는데, 아직 사용은 안 해 봤어.”
“어떻게 사용하는 건데?”
“그걸 아직 몰라.”
김태현이 가볍게 웃었다. 그는 이준영에게 술을 따라 주면서 말했다.
“어쨌든 고생했다. 근데 옷이 왜 이렇게 흙투성이냐? 어디서 구르기라도 한 거야?”
김태현의 물음에 건너편에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서지현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오빠, 다친 곳은 없으세요?”
“어어. 완전 멀쩡해.”
서지현의 가벼운 터치에 얼굴이 빨개진 이준영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이준영은 방금 있었던 사수의 방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그래서 전직하고 왔지.”
“그건 투시 능력 없어도 미리 알고만 있으면 해 볼 만할 거 같은데?”
“나도 그렇게 느꼈어. 시험 난이도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고.”
“우리도 가능할 것 같냐?”
김태현의 물음에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이서영과 서지현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이준영을 바라봤다.
이준영은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1페이즈는 상관없었다.
‘사격 실력은 문제가 될 게 없다.’
현재 이준영 무리에서 주도적으로 몬스터 사냥으로 돈벌이를 하는 이들은 여기 있는 네 명뿐이었다.
그 이유는 최근에 있었던 사고 때문이었다.
여기 있는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이 고블린 던전을 공략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사람이 크게 다쳤다.
함께 갔던 세 사람도 자잘한 상처를 입었고, 그 이후로 네 사람은 고블린 던전 공략을 꺼렸다.
평범한 과정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게 된 이후로는 보통 던전 공략 기피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 고블린 던전 공략은 그 리스크에 비해 리턴이 너무 적었으니까.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돈을 벌 방법은 무궁무진했고, 평범하게 잘 먹고 잘살 수 있었다.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던전에 도전하며 몬스터 사냥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이들은 크게 두 가지 종류였다.
그런 위험을 직접 겪으며 각오를 다졌거나, 아직까지 그런 위험을 겪어 보지 못했거나.
이 자리에서는 이준영 본인을 제외한다면 모두가 후자였다.
‘세 사람 다 사격 실력만큼은 월등하니까.’
함께 사냥을 다닐 때도 두각을 드러내던 이들이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헤드 랜턴에 의지해 민첩한 고블린들을 명중시킨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고, 눈앞에 있는 세 사람은 그에 대한 재능이 남들보다 출중한 편이었다.
‘하지만 2페이즈는 무리다.’
확신할 수 있었다.
2페이즈에 나타났던 나무 인형들의 움직임, 쏘아진 화살의 정확도.
그것들에 반응하기에는 눈앞에 있는 세 사람은 아직 약했다.
결론을 내린 그가 말했다.
“솔직하게 말할게. 너희의 수준으로는 아직 위험해.”
이준영은 이들이 위험해 빠지지 않았으면 했다.
“흠. 그렇단 말이지. 사장님! 여기 고기 추가요!”
그들은 고기를 한 번 더 추가하고 된장찌개에 비빔냉면까지 시켜 먹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잘 먹었다.”
“진짜. 배 터질 것 같아.”
이준영이 계산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김태현이 그를 붙잡았다.
“내가 살게.”
“응? 왜?”
현재 그들의 주된 벌이는 오크 던전 공략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오크 던전은 보통 20인의 공격대로 공략이 이루어지는데, 그들이 속한 공격대는 4인씩 5개 파티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섯 개의 파티 중에서도 그들 파티가 가장 압도적인 실적을 자랑했다.
그러나 나머지 세 사람보다도 이준영이 압도적으로 벌이가 좋았다.
오크 던전은 고블린 던전과 달리 나무가 무성한 밀림 지대였는데, 투시 능력으로 미리 적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대처하니, 대부분의 오크를 이준영이 사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머지 세 사람의 역할은 이준영의 보조 정도였다.
사실상 이준영 혼자서 오크 사냥을 독식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생활비나 외식비 같은 것은 이준영이 계산하려고 하는 편이었다.
김태현이 말했다.
“나도 돈 있어 임마. 이번엔 이 형님이 산다.”
이준영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잘 먹었다.”
“사장님, 계산 좀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이준영이 말했다.
“이제 집으로 가자. 빨리 씻고 싶네.”
네 사람은 현재 이준영이 받은 아파트에서 다 함께 동거를 하고 있었다.
물론 두 채가 있었기 때문에 이준영과 김태현, 이서영과 서지현 따로 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김태현이 이서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린 오늘 안 들어간다.”
“뭐? 왜?”
“왜겠냐?”
“…….”
김태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떠나갔다.
“어휴.”
이준영이 서지현을 향해 말했다.
“그럼, 우린 집으로 갈까?”
이제는 편하게 반말을 하는 사이가 됐지만, 아직도 둘만 남게 되면 어색한 공기가 흐르곤 했다.
함께 집에 도착한 직후.
“편히 쉬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찰나 서지현이 이준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오빠, 우리 집 가서 한 잔 더 해요.”
고깃집에서 마신 술 때문에 약간 붉어진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며 이준영은 친구가 지어 보였던 의미심장한 미소의 의미를 깨달았다.
‘고맙다. 태현아.’
* * *
‘이 정도면 충분해.’
직업이 겹치는 가신들의 전직은 모두 완료했다.
더불어 신동훈 파티에서 사수 전직을 희망하던 사람들의 전직도 모두 마쳤다.
‘이제 레벨 업시켜야지.’
공사가 시작되면 시설을 아예 이용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전직이 필요한 이들을 모두 전직시킨 뒤에 공사를 시작했다.
[해당 시설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건설 기간(14일) 동안 토용(土俑) 3기를 필요로 합니다.]
[직업연구소 건물을 3레벨로 올리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그와 동시에 휴식하고 있던 있던 토용 10기를 직업연구소에 투입했고, 곧바로 작업을 시작시켰다.
[건설 현장에 토용(土俑)이 10기 이상 모여 있습니다.]
[건설 효율이 100% 증가합니다.]
[직업연구소(Lv. 3) 건설 완료까지 남은 시간]
-167시간 59분 53초
토용이들이 작업을 시작하는 모습을 확인한 뒤 다른 곳을 비추는 절대자의 눈에 집중했다.
가신이 될 인재들을 찾는 것과 새로 합류한 시민의 감시.
그밖에 급변하고 있는 서울의 정세를 살피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리고.
[‘서울역’에 전초기지 건설을 완료했습니다.]
[‘신도림역’에 전초기지 건설을 완료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겠군.’
서울의 판세를 뒤흔들 초석이 완성되었다.
* * *
꾸르륵-
직업연구소의 공사 현장에 투입된 토용이 중 하나가 불평을 쏟아 냈다.
꾸륵. 꾸륵꾸륵. 꾸르르륵 꾸르륵.
(에휴. 내 팔자야. 평생 이렇게 일만하다 죽겠지.)
불평을 토해 내는 토용이는 다른 토용이들보다 움직임이 미세하게 느렸다.
그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흙더미들이 뭉치는 속도가 다른 이들보다 미세하게 느린 것이다.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들었던 토용이가 대답했다.
꾸리릭! 꾸르리리릭!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완전 환상적이야!)
…….
(…….)
다른 토용이들 보다 열정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는 놈이었다.
그리고 보통의 토용이들의 반응은 이와 다르지 않았다.
꾸르르륵르륵?
(생각만 해도 신나는 걸?)
꾸 꾸르륵 꾸르르륵.
(어제 하루종일 일이 없어서 너무 심심했어.)
꾹. 꾸르르르 꾸러럭!
(맞아. 일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
…….
(…….)
처음 불평을 토로했던 토용이는 충격 받은 얼굴이 되어 동료들을 향해 토로했다.
꾸르륵 꾸르르륵!?
(니들은 억울하지도 않냐!?)
그러나 동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꾸륵?
(뭐가?)
꾸르르르륵 꾸르륵? 꾸르르륵 꾸륵 꾸르륵?
(혹시 내가 이 자리를 빼앗아서 불안인 거야? 여기가 더 일을 많이 할 수 있으니까?)
토용이 하나가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꾸륵. 꾸르르륵. 꾸르르르륵 꾸륵꾸륵. 꾸르르르르륵. 꾸르르르륵!
(안 돼. 미리 약속했잖아. 일하는 장소는 선착순으로 선점하는 거라고. 이 자리는 내가 먼저 도착했어. 이 일은 내 거라고!)
처음 불만을 내뱉었던 토용이가 체념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꾸리릭.
(말을 말자.)
그렇게 토용이들의 행복한 노동 현장은 일주일간 한순간의 휴식도 없이 밤낮으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