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Episode 34] 서울 수복 작전 (1)
서울역과 신도림역에 전초기지 건설이 완료되는 것과 동시에.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시민권을 부여하시겠습니까?]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정보가 눈앞에 나타났다.
서울역과 신도림역 근처에서 소수 규모로 생존하고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끌어모은 결과였다.
원래라면 모든 사람의 정보를 일일이 확인한 다음에야 받아들여야 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부여해.’
가신들이 새로운 사람을 구해 올 때마다 절대자의 눈으로 이미 모두 검수를 끝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한꺼번에 이 정도 규모의 사람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해도 큰 걱정은 없었다.
‘절대자의 눈을 사용해서 정보를 읽어 내리면 그만이니까.’
내가 운용할 수 있는 절대자의 눈을 잠시 동안 이곳에 집중시키면 수천 명의 정보를 확인하는 데 드는 시간은 겨우 몇 초 정도가 전부였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우선은 전초기지 건설을 위해 그 자리에 머물러 준 스무 명의 가신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서울 수복 작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미 서울 수복 작전을 실시했다가 큰 실패를 맛본 전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서울에 자리 잡은 보스급 몬스터들을 죄다 처리하면 자연스럽게 서울을 수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커다란 오산이었다.
가신들의 움직임과는 별개로 서울 곳곳에 숨어 있는 생존자 집단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는 충격적이었다.
가신들이 개입하기 전보다 오히려 더 큰 피해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호랑이가 없는 곳에서는 여우가 왕 노릇을 한다고, 가장 강한 몬스터를 죽여 놨더니 그보다 조금 약한 몬스터들이 영역을 차지하고 활발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사자가 사라지니 하이에나들이 각자 영역 다툼에 나서게 된 격이었다.
더불어 오크나 고블린들을 비롯한 잡몹들의 활동이 크게 늘어나게 됐다.
이는 생존자들의 입장에 있어서 오히려 악수로 작용했고, 그 때문에 많은 피해가 나왔다.
지금까지는 그곳을 점령하고 있던 보스 몬스터의 습성을 이용해 잘 숨어 살고 있던 생존자 집단이 큰 피해를 입은 일도 있었다.
‘그래서 보스 사냥은 멈추고, 생존자 구출을 최우선 사항으로 수정했었지.’
그러나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가신들뿐만 아니라 레벨이 높은 이들만 선별하여 구조팀을 신설하고 운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고리 원전이나 다른 곳에 있는 전초기지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 다섯 명의 가신들이 필요하다는 것도 걸림돌이 되었다.
우리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었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끝이 없었다.
그 와중에 JHS 건으로 짓게 된 건대 입구역 전초기지가 커다란 역할을 해 주었다.
오로지 건대 입구역 근처에서만 보스급 몬스터의 부재로 인한 피해가 생겨나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보스급 몬스터보다도 더욱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들의 영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몬스터들의 입장에서 건대 입구역은 가신들의 영역으로 인식이 된 거겠지.’
가신들이 아니어도 평균 레벨 30대의 구조팀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었다.
그들은 모두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일정 영역 안을 침범한 몬스터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살당했다.
그러니 몬스터들의 입장에서는 감히 침범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근처에 안전지대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너무나도 명확했고, 그 과정에서 전초 기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어설프게 몬스터를 쓸어버리며 생존자를 구출하는 것보다도 핵심 지역에 전초기지를 먼저 건설하는 편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래서 서울역과 신도림역에 전초기지를 건설한 것이었다.
그리고.
‘상황이 한 번 더 변했다.’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보니, 가신들을 늘리는 것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작위 시스템’이 활성화된 것이다.
가신들이 쌓아 올린 공적 포인트로 작위를 부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가신들이 가지고 있는 작위에 비례하여 영지의 크기가 커지게 된다.
남작의 경우에는 반경 1km. 자작은 반경 3km. 백작은 반경 5km. 이런 식이다.
‘백작 하나에 자작 다섯인가.’
가신들 중 백작이 된 인물은 오언주 한 명뿐이었다.
작위 시스템을 각성했을 때 백작이 되기 위한 100만 포인트를 가지고 있는 게 오언주뿐이었기 때문이다.
초기 싸이클롭스 사냥부터 흡혈귀들의 정점인 진조를 직접 죽인 것도 오언주였다.
그러니 남들보다 공적 포인트가 유독 높을 수밖에 없었고, 백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작으로는 하동건, 문병호, 이준혁, 장성준, 김다빈이 있었다.
‘공적 포인트는 사냥의 비중이 크다.’
높은 공적을 가진 이들은 하나 같이 고레벨 몬스터들을 사냥한 전적이 있는 이들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냥은 직접적으로 경험치와 정산금을 만들어 내며, 나의 성장에 직결되는 요소였으니까.
‘그래도 공적 포인트가 사냥만으로 오르는 것은 아니야.’
만약 그랬다면 김다빈은 자작까지 올라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직접 몬스터를 사냥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런 그녀가 꽤나 많은 몬스터를 사냥한 강덕수나 김가영보다도 더 많은 포인트를 얻었다는 것 자체가 작위 시스템이 나름대로 공평하게 공적을 평가한다는 뜻이겠지.
‘김다빈의 신뢰도가 100이 되며 얻은 텔레파시도 무척이나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으니까.’
일반 시민들에게도 직접적인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되었고, 켈리칸과 같은 몬스터에게 지시를 내릴 때에도 유용했다.
‘그런 잡다한 것들이 모두 반영된 거겠지.’
어찌 됐든 이것으로 영지를 건설할 수 있게 되었다.
영지의 건설 조건은 크게 두 가지였다.
작위를 받은 가신의 존재 그리고 ‘안전구역’의 존재.
즉, 집구석 영역이 아닌 외부에 영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초기지’가 필요한 것이다.
어찌 보면 ‘영지’란 ‘전초기지’의 업그레이드 형태라고 볼 수 있었다.
[오언주 씨, 하동건 씨. 두 분 모두 준비되셨나요?]
두 사람은 차례대로 서울역, 신도림역에 대기 중이었다.
“네, 재현 님.”
“준비됐습니다.”
오언주와 하동건 두 사람은 비장한 표정으로 영지의 건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작위 시스템을 얻고 난 직후, 제일 먼저 건대 입구역에서 영지 건설을 시도했었다.
백작인 오언주를 이용해 영지 건설을 시도했는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언주가 기절하고 말았다.
나중에 말을 들어 보니, 건설 시작과 함께 극심한 고통이 그녀를 덮쳤다고 한다.
‘내가 레벨 업 때 느끼는 고통과 같은 종류겠지.’
그와 함께 건설이 취소되며 건설비용 중 70%를 돌려받았다.
건설을 시도했다가 취소하게 될 경우 건설비용 중 일부가 날아가 버린다는 사실을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힘드시겠지만, 버텨 주셔야 합니다.]
오언주가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는 것이 보였다.
하동건은 두 눈을 감은 채 명상을 하고 있었다.
‘영지 건설.’
오언주부터 건설을 시작했다.
[해당 시설은 건설 기간(5일) 동안 ‘백작’급 이상의 칭호를 가진 시민을 필요로 합니다.]
[정말로 설치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무려 5일이나 지속되는 고통이었다.
명경지수 덕분에 상황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레벨 업의 고통이 얼마나 끔찍한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나였다.
‘……화이팅입니다.’
영지 건설의 특이한 점은 가신들을 모아 두어도 건설 효율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작디작은 응원이 전부.
[그럼, 오언주 씨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통보와 함께.
‘건설 시작해.’
[50,000,000,000 원이 소모됩니다.]
[‘백작의 영지’건설을 시작합니다.]
[백작의 영지 건설 완료까지 남은 시간]
-119시간 59분 59초
서울역에서 백작의 영지 건설이 시작되었다.
그와 함께.
“크으읍!”
오언주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들려왔다.
[……그다음은 하동건 씨. 가겠습니다.]
“예.”
[해당 시설은 건설 기간(3일) 동안 ‘자작’급 이상의 칭호를 가진 시민을 필요로 합니다.]
[정말로 설치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시작해.’
[30,000,000,000 원이 소모됩니다.]
[‘자작의 영지’건설을 시작합니다.]
[자작의 영지 건설 완료까지 남은 시간]
-71시간 59분 58초
건설이 시작됐다는 시스템 알림과 동시에 하동건의 표정이 급격이 일그러졌다.
잠시 후.
‘됐다. 이번에는 두 사람 다 정신을 잃지 않았어.’
건대 입구역을 남겨 둔 것은 영지 건설 동안에는 남대문을 설치할 수 없게 되는 걸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시민들을 이동시킬 수단을 남겨 놓을 필요가 있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두 사람을 보며 기도했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 * *
하동건은 자신을 덮쳐오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정신력이 강한 탓도 있었지만, 미리 언질을 들어서 각오하고 있었던 게 컸다.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그를 더욱 놀라게하고 있는 것은 따로 있었다.
‘이게…….’
인간이 버텨 내는 것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 속에서.
‘재현 님이 지금까지 매번 겪어 오신 고통인가?’
가신 중에서도 핵심 멤버.
초기부터 김재현과 함께했던 이들은 가끔씩 김재현이 쓰러지거나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시기 때마다 안전지대의 범위가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것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다.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런데 김재현은 매번 이런 고통을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크윽.’
직접 겪어 보기 전까지는 감히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전신을 굵은 바늘로 꿰뚫고, 그 바늘이 몸속에서 섭씨 1,000℃의 열을 내뿜어 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전신의 피부와 근육이 녹고, 몸 안 세포 사이사이에 가스가 들어차 뼈와 근육을 부수고 폭발하는 느낌이다.
‘아.’
그러나 하동건은 알지 못했다.
그가 겪고 있는 고통은 김재현이 겪었던 것에 비하면 세 발의 피라는 것을.
영지 건설은 근본적으로 김재현의 힘에서 나오는 것인 데다 안전지대가 확장되는 속도가 굉장히 느렸기 때문에 하동건이 겪고 있는 고통은 1,000분의 1 정도일 뿐이었다.
하나 그것이 3일 동안 지속된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끔찍한 일이었다.
‘재현 님……!’
그 고통 속에서 하동건은 김재현을 찾았다.
으득!
하동건이 고통을 참아 내고 있는 사이 신도림역에 한정되어 있던 안전지대가 조금씩 그 범위를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그의 정신력의 그릇도 점점 커져 나가고 있었다.
오언주와 하동건이 영혼을 갈아 버리는 것 같은 고통과 마주하고 있는 동안 다른 가신들도 마냥 놀고 있지는 않았다.
천천히 영역을 넓혀 가는 ‘영지 건설’은 김재현의 레벨 업 때와는 상황이 조금 달랐는데, 바로 주변에 몬스터나 인간이 있을 경우 저항력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김재현의 레벨업은 몬스터나 인간이 나타나도 그들을 영역 내에 포함해 버리며 전진하지만, 영지 건설은 그것들을 조금씩 밀어내는 게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인간의 경우 김재현이 시민권 제의를 하여 받아들이면 그만이었지만, 몬스터는 영역 안으로 들어왔을 때처럼 죽여 버리는 게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동건과 오언주가 겪는 고통이 몇 배는 늘어나게 된다.
저번 시도에서 오언주가 기절했던 것은 영역의 확장을 가로막은 몬스터가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그동안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을 최대한 제거했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돌아다니며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동건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긴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영지를 수여받았습니다.]
‘돼…… 됐다.’
털썩!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 하동건은 마음 놓고 기절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