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Episode 34] 서울 수복 작전 (2)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고 작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 절.
한창 불경 외우는 소리가 들려와야 하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절은 고요했다.
그리고 곳곳에 피와 시체가 낭자해 있었다.
온화한 표정의 관세음보살 앞에서.
으적―
“으으―.”
스님 한 명이 실시간으로 먹히고 있었다.
동그랗게 생긴 이빨이 바쁘게 움직이며 그의 내장을 갈아먹는 중이었다.
거대한 거머리처럼 생긴 그 괴물의 몸에서는 여러 개의 촉수가 뻗어 나와 있었고, 그것들이 스님의 몸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몸부림치지도, 비명을 내지르지도 못한 채로 괴물의 이빨이 자신의 복부를 헤집는 것을 감내해야만 했다.
하나 다행인 것은 더 이상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저 춥고, 두려울 뿐이었다.
실시간으로 자신을 덮쳐오는 죽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스님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고개를 돌렸다.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한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머리를 박박 민 동자승.
동자승은 불상 뒤에 몸을 숨긴 채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도망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력이 없었다.
이미 스님의 창자와 간, 위장까지 모조리 괴물의 입 안으로 들어간 상태였으니까.
필사적으로 입을 움직이려 노력했지만,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스님의 시야가 점점 좁아지더니 끝내는 두려워하는 동자승의 눈동자만 남았다.
그를 보면서 기도했다.
번뇌와 스스로를 갈고닦기 위함이 아닌, 지금 자신을 먹고 있는 괴물이 부디 저 아이만은 놓치기를.
배가 불러서 내버려 두기를.
못 보고 지나치기를.
아이가 무사하기를 기도했다.
시야가 완전히 어둠에 잠기고 몸의 감각이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아아아악!”
청각이었다.
‘아.’
자지러지는 듯한 동자승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안타까워하던 그때였다.
“드디어 찾았네.”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륵?
입가에 피 칠갑을 한 채로 디저트를 즐기려던 괴물이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을 한 성인 남자에게서 무시하지 못할 존재감이 뿜어져 나왔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자신의 힘으로는 저것에 대항할 수 없다고.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의가 자신의 몸을 경직시키고 있었다.
순식간에 판단을 끝낸 괴물은 디저트를 포기하고 몸을 던졌다.
입구 쪽을 사내가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천장을 향해 크게 뛰었다.
콰직!
나무로 된 발판이 박살 나며 괴물의 몸이 천장을 향해 떠올랐고, 놈의 몸에서 뻗어 나온 촉수들이 사방으로 펼쳐지며 천장을 박살 냈다.
콰지직!
천장이 박살 나며 떨어진 잔해가 동자승을 덮쳐왔다.
멍하니 그의 머리를 향해 떨어지는 그 잔해를 바라보고 있던 그때.
누군가 자신의 몸을 덥석 들어 올리는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쿠구구구궁!
잔해들이 바닥에 처박혔을 때, 동자승은 사내와 마주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괜찮니?”
동자승은 사내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고 멍하니 완전히 박살 난 절의 모습을 보았다.
부처님을 향해 열심히 절을 하던 공간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관세음보살과 석가모니 미륵상들은 천장에서 무너진 잔해에 파묻혔고, 그것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돌보아 주었던 스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자신을 구해 준 사내가 자신을 구하느라 그 괴물을 놓치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아아악!”
빨리 괴물을 잡아야 한다고.
나 따위는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말라고.
복수해 달라고.
당신이라면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사내는.
“안심해. 놈을 놓치는 일 같은 건 없으니까.”
동자승의 절규를 알아들은 듯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사내의 말대로 괴물을 놓치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캬아아악!”
피투성이가 된 괴물이 무너진 잔해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앙!
“크허어엉!”
그 직후 커다란 백호 한 마리가 괴물의 몸을 찍어 눌렀다.
괴물의 몸에서 촉수가 뻗어 나오며 백호를 노렸지만, 백호는 말 그대로 비호와 같은 몸놀림으로 그것들을 모두 피해 냈다.
서걱!
오히려 발톱을 휘둘러 촉수를 찢어발길 뿐이었다.
“카아아악!”
그때마다 괴물이 괴로운 듯 신음하며 제 몸을 뒤틀었다.
촉수를 피하거나 찢어발기며 괴물에게 접근한 백호는 순식간에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그러나.
꾸드득!
괴물의 촉수는 목이 뜯겨 나간 직후에도 민첩하게 움직였다.
백호는 그것들을 피해 다시 한번 물러났고, 그 직후.
콰아아아앙!
이번에는 바닥 쪽이 폭발하며 무언가가 촉수 괴물의 복부를 꿰뚫었다.
그 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던 사내가 말했다.
“잘했어, 빡빡아.”
촉수 괴물의 복부를 꿰뚫고 나온 손은 사내가 부리는 두더지의 것이었다.
사내는 동자승을 내려놓고 천천히 촉수 괴물을 향해 다가갔다.
악의가 가득 찬 표정으로 빈사가 된 촉수 괴물을 내려다보며 사내가 입을 열었다.
“네가…….”
핏발선 그의 눈이 벌겋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 나루를 잡아먹은 빌어먹을 자식이구나.”
사내의 발이 괴물의 촉수를 짓밟았다.
푸확!
피가 터지며 괴물의 촉수가 잘려 나갔고, 괴물은 괴로움에 몸을 떨었다.
“아직 죽으면 안 되지.”
우우웅―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빛이 괴물에게 흘러들어 갔다.
그러더니 직전까지만 해도 박살 났던 괴물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는 것이 보였다.
“캬아아악!”
몸이 회복되자마자 촉수를 뿜어내어 사내를 공격했지만.
콰직! 푸확―!
촉수 두 개는 그의 발에 짓이겨져 그대로 끊겨 나가고, 나머지 세 개는 사내가 가볍게 휘저은 손에 의해 잘려 나갔다.
서걱!
“얌전히 있어.”
사내는 다시 치료의 빛을 내뿜었고, 괴물은 발악했으며, 사내는 태연한 얼굴로 그것을 짓밟았다.
그 과정이 한참이나 이어졌다.
동자승은 그것을 보며 묘한 통쾌함을 느꼈다.
분명 불경을 외며, 마음 수련을 하고,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이들을 모조리 살해한 괴물이 죽어 가는 모습은 그렇게 통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자신뿐만이 아닌 것 같다는 감각.
동자승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헉!”
수십 종류의 동물들이 사내가 날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슴, 고라니, 부엉이, 토끼, 늑대, 여우, 다람쥐 등 작은 동물들이 자신의 바로 뒤에 모여 있었고, 멀찍이 곰, 사자, 하마, 기린, 얼룩말, 치타 등등의 덩치가 커다란 동물들이 절을 에워싸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 뒤쪽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이제 돌아가자, 집으로.”
사내의 말에 주변의 동물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동자승은 멍하니 동물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사내가 동자승을 향해 손을 뻗어 왔다.
“내 이름은 차현승. 나랑 같이 갈래?”
“……네!”
동자승은 차현승의 손을 잡고 산을 걸어 내려갔다.
* * *
서울역과 신도림역에 동시에 영지 건설을 시작한 지 사흘.
[‘자작의 영지’가 건설되었습니다.]
하동건이 책임지는 신도림역의 영지가 먼저 완공되었다.
‘좋아.’
현재까지는 오언주도 잘 버텨내 주고 있었다.
확실히 모든 전력을 동원하여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을 쓸어버린 게 잘 먹혀들어 간 것 같았다.
‘새로 유입된 시민들도 잘 적응하고 있고.’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기는 했다.
‘차현승. 어디로 간 거지?’
영지의 초석이 될 서울역 전초기지 건설을 시작하면서 그 주변 지역에 있는 몬스터 청소를 병행했었다.
그런데 묘하게 몬스터가 많이 없었다.
몬스터보다도 오히려 생존자 집단이 더 많았을 정도였다.
그 과정에서 용산, 그리고 남산타워가 있는 곳 근처에 수만 명의 시민이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리더 격 되는 인물은 ‘차현승’이라는 이름의 남자였는데, 동물들을 대거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서울역 근처에 몬스터가 없었던 것은 차현승의 동물 군단이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그가 길들인 동물들에게 목숨을 구함받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의외로 그 사람들이 차현승의 사람들인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떠돌이로 차현승의 영역에서 목숨을 연명하는 이들이 9할 이상이었다.
생존자들에 의하면 차현승은 사람들을 아주 싫어해서 직접 찾아가 충성을 맹세한다고 해도 받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쫓아낸다나?
자신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것을 쫓아내지도 않지만, 딱히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찾아가 보니 차현승을 비롯한 동물들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꼭 가신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는데 말이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수십, 수백의 동물을 거느리며, 그 동물들이 오크 정도는 간식으로 씹어먹을 수준이라고 했다.
‘주변에 있던 보스급 몬스터도 차현승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 스스로도 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거겠지.’
최소 SR등급 이상의 능력을 각성한 존재인 것이다.
JHS의 정현수와는 대립할 수밖에 없었지만, 차현승과는 되도록 함께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SR등급인 사람이 가신이 되었을 때, 얼마나 강한 힘을 손에 넣게 될지…….’
어쨌든, 그때 당시 서울역 근처의 상황은 꽤 혼란스러웠다.
몇만 명이나 되는 생존자들이 존재했지만, 그들끼리 집단을 이루고 서로 다투기도 하는 어지러운 관계였다.
차현승은 사람들의 다툼에도 딱히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하면 서로 죽고 죽이는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까지 존재했다.
‘그런 놈 중에서 악질적인 놈들을 골라낸다고 고생했었지.’
여기에서 이학기 사령관의 도움이 굉장히 컸다.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려 먹는 것 정도는 귀여울 정도였다.
살인에 미친놈이나 조직적으로 강간을 일삼거나 인육을 먹는 미친 집단까지 존재했다.
이런 종류의 인간들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극한의 상황이나 스트레스가 그들을 변화시킨 것도 아니다.
그들은 본래 그런 성향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동안은 정부와 법치주의 안에서 통제되고 있던 그들의 악한 본성이 구속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깨어난 것일 뿐이었다.
그런 이들은 기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쫓았다.
저항이 제법 거셌지만, 가신들의 힘 앞에서 놈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꼬리를 내리고 떠나는 것뿐이었다.
이런저런 노력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크읍!”
방금까지만 해도 평온해 보였던 오언주가 고통스러워하는 신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오빠! 큰일 났어!”
사방에 쥐들을 뿌려 실시간으로 전방위 감시를 하고 있던 서예진이 위험을 알렸다.
“용산 공원 쪽이야! 쌍둥이 형제가 당했어!”
그녀의 말을 듣는 즉시 문지훈과 문상훈이 있는 곳을 향해 절대자의 눈을 사용했다.
‘……이건.’
그곳에는 얼어붙은 숲의 모습과 만신창이가 되어 나가떨어진 문지훈과 문상훈, 그리고 그들을 분노에 찬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있었다.
190cm는 넘어 보이는 건장한 키에 적당히 우락부락한 근육과 덥수룩하게 자라난 수염.
차현승이 나타난 것이다.
그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말했다.
“여긴 내 영역이다.”
그 앞에서 문지훈과 문상훈이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반쯤 박살 나서 부어 올라 있는 얼굴로 말했다.
“……막아야 해.”
“크흑. 나도 알거든?”
여전히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쌍둥이 형제를 향해 차현승이 달려들었다.
‘동대문 개방.’
마침 다행히도 그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은 영역 바로 앞부분이었다.
지이잉―
개방된 동대문을 넘어간 직후.
‘보이지 않는 손.’
두 사람을 죽일 기세로 달려드는 차현승을 붙잡았다.
“!!!”
차현승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를 향해 말했다.
“일단 좀 진정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