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155화 (156/175)

155화 [Episode 34] 서울 수복 작전 (5)

“소라 님.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던 겁니까?”

정소라는 최측근들의 물음에도 평온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 대가로 저희가 얻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 건가요?”

“그건…….”

그녀의 말에 최측근들은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임시로 대기하게 된 대피소에는 화려한 물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햇반, 컵라면, 김, 초코파이와 같은 물품들이 여기 있는 인원들을 모두 감당하고도 남을 만큼 넘쳐 났다.

김재현에게 정식으로 받아들여진 뒤 선발대로 데려왔던 수천 명과 본진에 남아 있던 수만 명의 생존자를 모두 데려왔다.

그 많은 인파를 감당할 수 있는 물자가 이곳에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보다 더 신기한 것은 이곳에 전기와 수도가 공급된다는 것이었다.

몬스터들의 등장으로 도시의 전신주나 전선들이 끊기며 모든 전력이 차단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비상 전력 공급 수단이 있는 건물이거나 특별한 능력에 의해서인데, 지금은 그중 후자일 가능성이 컸다.

“모두 진실이었던 겁니다.”

첩보원들이 가져왔던 정보는 정소라를 포함하여 그녀의 최측근들도 모두 인지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너무나도 허황된 이야기가 대부분이어서 과장되거나 또는 일종의 세뇌나 최면에 당한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지웅 씨. 지금 저희의 정신에 어떠한 문제라도 있나요?”

박지웅이 각성한 능력은 환각사로 자신이 만든 환영을 거의 실체에 가깝게 느끼도록 만드는 게 가능했다.

그리고 정신 계열 능력을 다루는 만큼 모든 정신 계열 공격에 대한 상당히 높은 저항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가 장담했다.

“……아무런 효과도 없습니다. 저희가 보고 느끼는 것들은 모두 현실입니다.”

정소라는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미 확인했었지요. 첩보원들의 정신 상태에는 어떠한 간섭도 없었다는 걸.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자신의 친구나 지인, 가족들과 함께 이곳으로 향했습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정소라는 주변에 준비되어 있는 구호물자와 전자레인지와 같은 편의시설 등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대기하는 곳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정도의 준비가 가능한 것이죠. 모두가 함께 굶어 죽어 가고 있던 우리 진영과는 하늘과 땅 차이예요. 아니, 천국과 지옥이라고 해야겠죠.”

“…….”

실제로 첩보원 중 하나가 그들의 앞에서 내뱉었던 표현이기에 최측근들은 더욱 침울해졌다.

“……하지만 소라 님께서 가진 힘을 생각하면 대등한 높이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의 말을 들은 정소라가 피식 웃었다.

“대등하게…… 인가요.”

처음에는 정소라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첩보원들의 말을 종합하는 과정에서 부산에 있는 조직은 자신과 최소 동급 혹은, 그 이상의 힘을 가진 존재들이 합심하여 이룩한 기적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을 안전지대로 만드는 능력, 전기를 공급하는 능력, 물을 다루는 능력, 음식을 복제하는 능력 등등.

서울과는 달리 힘을 지닌 존재들이 하나의 조직에 똘똘 뭉쳐 만들어 낸 시너지 효과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지.’

정소라는 잠시 눈을 감고 그때 보았던 광경을 떠올렸다.

사실 그녀는 김재현과 만나기 전부터 전율하는 중이었다.

한남대교를 포함하여 드넓은 한강을 전부 포용하고, 하늘 높이 치솟아 있던 장엄한 장벽.

아무래도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그것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듯싶었다.

‘거짓말이 아니었어.’

부산 전체를 아우르는 장벽을 두르고 있다는 헛소리는 부풀려진 소문에 불과하다고 판단했었다.

그러나 그 장벽의 존재를 직접 마주한 정소라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필시 부산에는 이보다 더 거대한 장벽이 펼쳐져 있는 거겠지.’

그와 자신을 놓고 감히 ‘대등’하다는 표현을 사용한 자신의 최측근 동료가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직접 대면해 봤음에도 그의 진정한 힘에 대해 전혀 짐작도 못 하고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정령의 힘 덕분에 장벽의 존재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 정소라는 김재현과 마주했을 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일 수 있었다.

고대 인간들이 대자연의 기적 앞에서 고개를 조아렸듯이,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신체적인 기능에 더 집중하여 김재현을 바라봤던 차현승과는 정반대로 정령을 부리는 정소라는 그의 정신적인 면만을 주목했다.

그 결과.

우우우웅―!

그녀의 주변에서 밝은 빛이 솟아올랐다.

“아!”

정소라는 검은빛이 감도는 빛이 자신의 몸에 흡수되는 것에서 다시 한번 김재현의 존재를 느꼈다.

우우웅!

그녀의 주변에서 나타난 빛이 전부 흡수되기도 전에 그녀의 몸 주위로 고결한 빛이 맴돌았다.

* * *

[시민 정소라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시민 정소라가 가신으로 등록됩니다.]

[가신 보유 한계치가 늘어납니다.]

[시민 정소라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정소라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사대 정령의 가호’를 획득합니다.]

‘응?’

연속적으로 알림이 나타났다.

‘벌써?’

정소라의 경우 처음 받아들일 때부터 신뢰도와 충성도가 아주 높은 상태였다.

그래서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차현승은 이제 겨우 충성도가 개방되었는데.’

그 충성도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태라 여전히 가신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였다.

그와는 반대로 정소라는 처음부터 가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정식으로 제안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신 등록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충성도 100을 찍어 버리며 가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면 나중에 이야기하긴 해야겠네.’

레벨이나 정신력이 높을수록 신뢰도와 충성도를 쌓기 위해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다는 가설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냥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른 건가? 알 수가 없군.’

어찌 됐든 좋은 일이었다.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가 가신이 되었으니까.

시민 정보창을 확인해 보니 레벨도 50으로 올라 있었고, SR등급이었던 ‘사대 정령의 축복’이 SSR등급인 ‘사대 정령의 가호’로 변해 있었다.

한층 더 강력해진 것이다.

그때였다.

[‘사대 정령의 가호’가 ‘세계수의 생명력’과 반응합니다.]

완전히 처음 보는 알림이 나타났다.

[‘사대 정령의 가호’가 ‘사대 정령왕의 벗’으로 격상합니다.]

그와 동시에.

“!”

주변의 풍경이 달라졌다.

사방이 온통 새하얀 세상.

그 속에서.

{너는 누구지?}

약간 화가 난 듯한 목소리와 함께.

화르륵―!

뜨거운 불길이 왼편에서 치솟았다.

그것도 잠시.

치이이익―

차가운 물의 방벽이 만들어지며 불길을 막아 냈다.

{지금 뭐 하는 짓거리일까-?}

{이자는 세계수의 선택을 받은 자가 아니다.}

{그게 뭐 어쨌는데-?}

형상이 없는 물과 불이 서로를 마주하고 있던 그때 바람이 나타나 내 머리칼을 뒤흔들었다.

{으으음~.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나~?}

그와 동시에

쿠구구구―

새하얗던 바닥이 뒤흔들렸다.

그때 또다시 바람이 내 몸 주변을 휘감았다.

{이것 봐~ 트로웰도 마음에 든다고 말하자나~}

그러자 불길이 거칠게 치솟았다.

{실피. 어차피 너는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는 것 아닌가?}

그에 대응하든 차가운 물이 불길을 막아섰다.

{여기서 불만이 있는 건 샐리온 너뿐인 것 같은데-?}

또다시 바람이 살랑이며,

{음~ 재미만 있으면 됐지~!}

그때였다.

[고급 속성 마법(火)이 반응합니다.]

갑작스레 주변으로 불꽃이 피어올랐다.

환수 중 하나인 삼족오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함께 발전한 불 속성 마법이었다.

그것이 불의 정령왕과 반응하며 자연스레 발현된 듯했다.

{이건……?}

그 순간.

우우우웅!

나에게서부터 확장된 영역이 주변을 완전히 집어삼켰고.

[집구석 절대자에게 우호적인 신격이 발견되었습니다.]

[격이 낮은 신격을 받아들입니다.]

화륵!

제일 먼저 불길이 사드라 들었다.

「샐리온 (Lv. 1)」

불의 정령왕.

장엄한 불길이었던 그것은 농구공만 한 자그마한 불덩이로 변해 버렸다.

{에-?}

{어라~?}

마찬가지로.

촤아아―!

퍼어엉!

물과 바람이 반응했다.

「엘퀴네스 (Lv. 1)」

물의 정령왕.

「실피드 (Lv. 1)」

바람의 정령왕.

각기 물과 바람으로 이루어진 귀여운 소녀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쿠구구구궁!

백색의 땅이 뒤흔들리더니.

「트로웰 (Lv. 1)」

땅의 정령왕.

자그마한 골렘의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파아아앗―!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모, 모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헤에~ 재밌다아~”

“쿠륵?”

경악하는 엘퀴네스와 벌써부터 적응한 듯 허공을 날아다니는 실피드, 그리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트로웰까지.

‘……이게 무슨 상황이지?’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제대로 상황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그때.

화륵-!

불덩이가 내 가슴에 부딪혀 왔다.

어째선지 아까와는 달리 하나도 뜨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자식! 내 힘을 모조리 빼앗아 가다니! 이러고도 네가 우리의 친구라고 할 수 있느냐!]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

사대 정령왕들이 모두 환수가 되어 버린 것이다.

‘릴리트의 경우와 비슷한 건가?’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이들은 내게 적대감이 아닌 우호감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 덕분인지 환수가 되자마자 에고가 부서지기 시작했던 릴리트와는 달리 멀쩡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다들 귀엽게 변해 버렸네.”

“내, 내가 귀여워-?”

“하하~”

물과 바람, 그리고 땅의 반응은 천하태평이었다.

진지하게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은 불의 정령왕인 샐리온뿐이었다.

[다들 정신 차려라! 지금 우리의 모든 힘을 빼앗긴 심각한 상황이란 말이다!]

그러나 아무도 샐리온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 주지 않았다.

“애들아 잠깐 모여 봐.”

“네~”

“응-!”

“쿠륵.”

[어, 어째서 내 몸이 멋대로!]

역시나.

모든 환수는 내 말에 잘 따라 주는 편이었다.

그래서 잘 몰랐는데, 샐리온의 반응을 보니 상당한 강제력이 동원되는 모양이었다.

자발적으로 내 말에 따를 경우에는 아무렇지 않지만, 저렇게 거부할 경우 강제력이 발동되는 것이겠지.

‘세계수의 생명력.’

나는 한자리에 모인 그들을 향해 세계수의 생명력을 뿌렸다.

처음부터 세계수의 생명력과 반응하며 정령왕들과 만나게 된 것이었다.

불의 정령왕이 처음 내뱉었던 말도 세계수와 관련되어 있었고.

그래서 세계수의 힘을 그들에게 뿌려 본 것이다.

그러자.

“와아~”

“따뜻해-.”

“쿠르륵.”

정령왕들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흐, 흥. 이런 것으로 나를 조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불의 정령왕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한동안 그들을 향해 세계수의 생명력을 퍼부었다.

“그, 그만-! 더 이상은 힘들어-!”

“나두~”

정령왕들이 한계를 선언할 즈음.

[실피드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영역 내의 바람의 힘이 100% 증가합니다.]

[엘퀴네스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영역 내의 물의 힘이 100% 증가합니다.]

[트로웰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영역 내의 땅의 힘이 100% 증가합니다.]

[샐리온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영역 내의 불의 힘이 100% 증가합니다.]

정령왕들의 레벨이 동시에 올라갔다.

“어때? 힘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

“응-!”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쿠륵.”

[흐, 흥!]

정기적으로 세계수의 생명력을 불어넣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조금…… 미안하니까.’

적어도 레벨 10이 될 때까지는 열심히 생명력을 줄 생각이었다.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이들의 힘을 한순간에 앗아가 버렸으니까.

‘샐리온 말고는 딱히 신경 안 쓰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나는 잠시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 힘은 정말 내 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스템이 내 의지를 가장 먼저 존중해 주기는 했다.

‘방금 봤던 시스템 메시지에는 우호적인 신격이라고 적혀 있었어.’

릴리트의 경우처럼 나에게 적대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시스템은 이들에게서 힘을 빼앗아 갔다.

‘시스템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뭐지? 신격의 흡수?’

격이 높고 낮음이 나뉘어 있다는 것은 신격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이고, 어쩌면 더 높은 곳으로의 진출이 목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를 위해 다른 신격의 흡수가 필요한 거라면…….’

목적을 달성한 시스템이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가.

나와 내 사람들의 안전은 보장할 수 있는가.

아직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그때였다.

“재현 님. 박성현이 병력을 데리고 건대 입구역을 향해 접근 중입니다.”

이학기 사령관이 직접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던 놈이었기 때문에 진즉에 놈의 행실을 주시하고 있었다.

웬만하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으나 사람을 죽이는 것을 너무나도 가볍게 생각하는 쓰레기 같은 놈이었다.

근묵자흑이라고 원래부터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놈의 옆에서 물든 것인지는 몰라도 그 조직에 있는 수뇌부 대부분이 박성현과 같은 결의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그들을 살려 둔 것은 당장 그를 죽이게 될 경우 그의 밑에 있는 수만 명의 목숨이 위험해질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다.

서울역을 중심으로 한 백작의 영지가 완성된 지금은 문제없이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절대자의 눈.’

서예진의 생쥐를 확인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박성현의 무리를 뒤쫓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소통의 반지를 사용해 말했다.

[이준혁 씨. 현재 박성현이 건대 입구역을 향해 접근 중입니다.]

“준비됐습니다.”

그가 준비됐다는 것을 확인한 후.

‘북대문 개방.’

문을 열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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