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159화 (160/175)

159화 [Episode 34] 서울 수복 작전 (9)

김명환은 인벤토리를 열어 컵누들 하나를 꺼냈다.

뜨거운 물을 넣어 정확히 3분을 익힌 채로 넣어 두었기 때문에 꺼내서 먹기만 하면 되는 상태였다.

조심스레 뚜껑을 뜯자 잘 익은 면발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우. 후루룩!”

텐트 안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던 그때 한 여자가 텐트 안으로 들어오며 말을 걸어왔다.

“선배. 맛있어요?”

“혜나야.”

김혜나는 김명환이 몸담고 있는 파티의 파티장이었다.

그런 그녀가 김명환을 선배라고 부른 것은 그들이 꽤 오래된 사이였기 때문이다.

인스턴트 던전도 없던 시절 고블린 사냥을 위해 먼 거리를 나서야 했던 시절부터 만나 함께 사냥을 이어 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김혜나는 각성했고, 사냥 팀 하나를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성장하게 된 것이다.

반면에 김명환은 벽을 만나 정체되어 있었다.

‘나는 비각성자니까.’

처음에 고블린이나 오크 따위를 사냥할 때에는 비각성자와 각성자의 구분이 크게 의미 없었다.

그 시기에는 대부분 총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던전이라는 개념이 나타나고부터는 일정 수준까지는 금방 따라오는 세상이 되었다.

오히려 비각성자 중에서 사격 실력이 뛰어난 이들이 더욱더 빠른 성장을 하곤 했다.

그러나 일정 수준이 되면 완전히 이야기가 달라지게 된다.

각성자와 비각성자의 차이는 위로 올라갈수록 그 차이가 더 벌어진다.

‘벽을 넘어서려면 결국, 각성을 해야 해.’

그러나 아쉽게도 김명환에게는 그런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일반인들보다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들 사이에서 각성자가 더 많이 출현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 비율이 굉장히 큰 것도 아니었다.

‘이대로 각성을 하지 못한다면 나는 평생 여기에서 정체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는 싫었다.

하지만 운 좋게 각성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에야 방법이 없었다.

“선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아무것도 아니야.”

고맙게도 파티장이 된 이후에도 김혜나는 김명환을 선배 취급을 해 주고 있었다.

“어어. 그렇지, 뭐. 너도 하나 줄까?”

“오! 하나 더 있어요?”

“응.”

“저야 땡큐죠.”

김명환은 인벤토리에서 미리 익혀 둔 컵누들과 젓가락 하나를 꺼내어 김혜나에게 건네주었다.

“자.”

“잘 먹을게요.”

옆에 앉은 김혜나는 한 젓가락을 맛보고는 행복한 얼굴이 되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김명환이 물었다.

“그 생쥐는?”

“햄찌요?”

김혜나는 안쪽 주머니에서 조심스레 햄스터 한 마리를 꺼내 보여 주었다.

주머니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녀석이 코를 씰룩거렸다.

김명환은 햄스터를 보며 말을 이었다.

“신기하네. 이 녀석한테 그런 능력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이번에 서울 수복 작전에 투입되며 햄스터 한 마리를 보급받았을 때는 황당했었다.

일종의 무전기 역할을 한다고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실제로 저 햄스터가 있으면 머릿속에서 김재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다가 갑자기 날씨가 겨울로 바뀌고 건물 지하에 고립됐을 때, 침낭이나 텐트와 같은 물품을 지급받을 수 있었던 것도 햄스터의 존재 덕분이었다.

게다가.

‘불의 정령이라고 그랬나?’

건물 밖에서부터 들어오는 차디찬 냉기를 막아 주고 있는 자그마한 불덩이의 존재.

김재현이 말하길 저것도 햄스터 덕분에 소환해 줄 수 있는 거라 말했다.

‘저게 아니었다면 상당히 위험했을지도 몰라.’

추위를 막기 위해서 공간을 밀폐시켜야 하는데, 그러면 불을 피우기가 애매했다.

잘못하다가는 모두 질식사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그냥 침낭이나 핫팩으로 버티기에는 추위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불을 피우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해 준 것이 바로 저 불의 정령이었다.

“선배 그 소문 몰라요?”

“무슨 소문?”

“모르시는구나! 하긴 이건 가신 분 중에서도 일부만 알고 계신 탑시크릿 정보거든요.”

김혜나가 두 눈을 빛내며 썰을 풀기 시작했다.

“예진 님은 아시죠?”

“알지. 생쥐 다루시는 분 아니야?”

즐길 거리가 예전만큼 풍족하지 않은 요즘 같은 시대에 가신들의 행보는 가장 핫한 가십거리였다.

“예진 님이랑 재현 님이 그렇고 그런 사이래요.”

“뭐?”

“지금 이것도 생쥐를 통해서 재현 님이 능력을 발동하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게 사실은 신체적인 접촉이 필요한데, 이런 작전 때마다 손을 잡고 있어야 하니 그렇게 된 거죠. 실제로 가신 중에서 유일하게 편하게 대화하는 사람이 예진 님이기도 해요!”

소문이라는 건 과장되고 부풀려지기 마련.

중간중간에는 사실과는 다른 사람들의 상상력이 가미된 픽션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만큼 자극적이기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선배는 뭐 들은 거 없어요?”

김혜나가 김명환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이유는 간단했다.

김명환의 가족, 언니가 바로 가신 중에서도 김재현의 최측근에 해당하는 ‘김가영’이었기 때문이다.

“흐음. 딱히…….”

그러나 김가영이 워낙에 바쁘고, 자신 또한 사냥으로 바쁜 시간을 보낸 만큼 그런 소문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다.

함께 밥을 먹었던 적도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언니한테 물어봐 주세요!”

“그건 좀…….”

김혜나가 바짝 붙으며 애원했다.

“선배, 제발 한 번 만요. 네?”

“……생각해 볼게.”

거리가 가까웠다.

텐트 안에 있는 것은 두 사람뿐.

입을 꾹 다물고 있자니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때였다.

[이제 한 시간 뒤에 북대문을 개방하겠습니다. 31팀은 대기해 주세요.]

김재현의 목소리가 그들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스, 슬슬 준비할까?”

“그, 그럴까요? 잘 먹었어요, 선배!”

황급히 텐트 밖으로 나가는 김혜나의 등을 보며 긴장이 풀린 김명환은 숨을 길게 내쉬고는 정리를 시작했다.

* * *

‘도대체 저 소문은 누가 퍼트리는 거지?’

탑시크릿이라고 공언하던 김혜나의 말과는 달리, 나와 서예진이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 있었다.

‘말을 편하게 해서 그런가?’

가신 중에서 유일하게 말을 놓는 사이인 것은 맞지만, 사귀는 사이는 절대 아니었다.

‘나이 차이가 얼만데.’

서예진과 나의 나이 차이는 무려 7살이었다.

연인 사이가 되기에는 아무래도 쉽지 않은 나이 차였다.

‘게다가 능력을 발동할 때 손을 잡고 있는 다니.’

전혀 근거 없는 뜬소문이었다.

그때 서예진이 눈을 뜨며 말을 걸어왔다.

“오빠, 이걸로 마지막인가?”

어딘가 싱글벙글한 것이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응, 마지막이야. 수고했어.”

“헤헤.”

서울 상공에 아이스 드래곤이 등장한 지 17시간째.

놈은 겨우 10분 만에 서울을 지나쳐 충청도 쪽으로 사라졌다.

아이스 드래곤이 서울 상공에 있었던 시간은 겨우 10분. 엄밀히 말해서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영향력은 무척이나 컸다.

‘서울 전체가 얼어붙었다.’

영지를 제외한 모든 곳이 꽁꽁 얼어붙어 버린 것이다.

도시의 풍경은 수북이 쌓인 눈으로 새하얗게 변해 버렸고, 한강은 아이스링크장이 되었다.

투명한 장벽 위로도 미세한 얼음벽이 생겨나 천장을 만들고 있을 정도였다.

아이스 드래곤이 지나쳐 가고, 17시간이나 흘렀음에도 도시는 여전히 한겨울이었다.

‘도시에 있는 눈과 얼음이 모두 녹으려면 며칠은 걸리겠어.’

미리 서예진이 길들인 햄스터들을 보급해 놓은 탓에 사냥 팀들의 피해는 전무했다. 시간이 부족해 피신하지 못한 사냥팀들도 북대문의 힘을 사용해 모두 영지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스 드래곤이 몰고 온 한파는 서울 전역에 있는 대부분의 몬스터들을 대량 학살해 버렸다.

단 한 번의 등장으로 도시의 모든 것을 얼려 버렸으니까.

대자연의 힘과도 같은 그것은 적아의 구분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도시 곳곳에 숨어 있던 생존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지 않아도 힘겨운 상태였을 텐데, 놈의 등장으로 확인 사살을 한 격이었다.

‘아마도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겠지.’

그나마 서울은 다행이었다.

큼직큼직한 생존자 집단은 모두 영지 안으로 받아들인 상태였으니까.

정말이지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스 드래곤이 움직이는 경로에 있는 사람들은…….’

놈의 경로를 생각해 볼 때.

광명, 시흥, 안산, 화성 등 경기도부터 시작해서 충청남도의 일부 지역까지 모조리 얼어붙었을 것이다.

최소 수만에서 크게는 수십만 명의 인명 피해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었다.

“…….”

무리해서라도 놈과 전투를 벌였어야 했을까.

‘아니.’

내가 가진 수단을 총동원한다고 해도 그놈은 잡기 어려웠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신뢰도가 100인 가신을 투입하여 놈의 등에서 강림하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눈길만으로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녀석에게 접근한 가신이 과연 살아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강림한다고 해서 놈의 숨통을 끊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리스크가 너무 컸다.

‘이게 최선이었어.’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놈의 짧은 등장으로 인해 소소한 이득이 있었는데,

[시민 유한길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시민 박새롬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시민 김민호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

……

가신 대부분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하며 가신 등록 한계치가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민 유한길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천리안’을 획득합니다.]

[시민 장성준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염력’을 획득합니다.]

[시민 이준혁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컨트롤 워터’를 획득합니다.]

몇몇 이들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하며 새로운 능력들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 개의 능력이 모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유한길의 천리안의 경우 절대자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을 확인하는 게 가능했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정신력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상당히 먼 곳의 상황까지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

천리안은 눈으로 볼 수 있게만 해 줄 뿐, 그곳에서 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직접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가신들의 존재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염력과 컨트롤 워터는 굉장히 크다.’

반대로 이 두 가지 능력은 내 영향력이 닿는 영역, 그러니까 가신들을 중심으로 일정 범위에서 힘을 발동시킬 수 있었다.

‘단순히 창고를 이용한 보조보다 훨씬 영향력이 커졌다.’

그밖에도 시민들의 신뢰도나 충성도가 크게 늘어나 있었다.

특히나 차현승, 양하영 등을 비롯한 강력한 능력자들의 신뢰도와 충성도가 대폭 상승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아이스 드래곤의 힘을 멀리서나마 느낄 수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스 드래곤이 뿜어내는 힘과 그것을 완벽하게 막아 내는 투명 장벽의 모습을 덕분이겠지.

나는 서울역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도 하늘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얼음을 보고 있자니, 문득 놈이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지를 상기했다.

‘북쪽.’

방향을 틀지 않고 그대로 진격해 온 것이라면, 북한은 거의 괴멸적인 타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였다.

나라의 절반 이상이 얼음덩어리로 변해 버렸을 테니까.

‘……끔찍하군.’

이 세상에는 그런 재앙에 가까운 존재들이 얼마나 더 있는 걸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다.

그리고.

‘다행이다.’

너무 늦지 않게 도착해서.

‘당장 몬스터 사냥보다 사람들을 구조하는 것을 선택한 건 정답이었어.’

갑작스러운 괴물의 등장으로 서울 수복 작전은 허무하리만치 싱겁게 끝이 나 버렸다.

치열했던 서울의 상황을 한순간에 종료시켜 버린 아이스 드래곤의 위엄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다.

‘하지만.’

내 장벽은 놈의 추위로부터 사람들을 지켜냈다.

‘할 수 있다.’

오히려 자신감이 생겨났다.

저런 무지막지한 괴물도 막아 냈는데, 앞으로 무서울 게 뭐가 있을까.

예전에 싸이클롭스의 주먹을 막아 내고 얻었던 자신감과 비슷했다.

‘나라면, 이 힘이라면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

가능성이 보였다.

‘서울과 부산.’

이제 겨우 서울과 부산을 구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서울을 시작으로 경기도, 인천, 광주.

한국 전체를 구할 때까지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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