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Episode 35] 복원 (1)
김가영의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하루 종일 몬스터 사냥을 하는 게 전부였다.
이제는 김재현의 지시가 없어도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는 가능하게 된 켈리칸을 타고 강서구와 부천, 인천 일대를 훑으며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문병호, 강덕수, 김 건 등을 포함한 17명의 가신과 37개의 사냥팀이 적극적으로 몬스터 소탕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이스 드래곤이 지나간 경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지역은 눈이 조금 많이 쌓이는 정도가 다였다.
그렇다 보니 완전히 얼어붙은 중심 지역과는 달리 몬스터들의 생존율이 높았고, 직접 나서서 처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만큼 생존한 사람들도 존재했다.
‘저건?’
레벨이 올라가면 강해진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어떤 능력이 강해지는지는 사람마다 달랐다.
텔레포트나 투명화 능력을 가진 문병호의 경우 정신력이 두드러지게 강화되었고, 오언주나 하동건 같은 경우는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그리고 김가영의 경우.
“칸. 밑으로 내려가 줄래? 저기 오크들이 있는 곳으로.”
활을 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인 동체 시력이 가장 크게 강화되었다.
현재 그녀의 눈은 인간을 초월한 것은 물론이고, 독수리나 매와 같은 동물들보다 월등한 시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수백 미터 상공에서도 인간을 잡아 가고 있는 오크들의 모습을 포착하는 게 가능했다.
-끼이익!
켈리칸은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곧장 날개를 접었다.
중력에 이끌린 그들의 몸이 지상을 향해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액―!
속도가 더해질 때마다 강력해지는 바람에 김가영의 머리칼이 정신없이 휘날렸다.
그 속에서 김가영의 두 눈은 먹잇감을 노리는 독수리처럼 빛나고 있었다.
주먹 쥔 왼손을 목표물을 향해 겨누자 그곳에서 화려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활의 형상을 맺었다.
우웅
왼손에 맞닿아 있던 오른손이 그녀의 몸 쪽으로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우우웅!
찬란한 빛의 활과 화살이 생겨나며 시위가 팽팽히 당겨졌다.
그녀가 오른손을 놓는 순간.
지이잉―
빛의 화살 하나가 오크들을 향해 날아갔다.
정확히 오크 무리 상공 5m쯤 되던 시점.
파아아앗―!
하나였던 빛의 화살이 수십 개의 자그마한 빛의 파편으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졌고.
푸부부북!
인간들을 포위한 채로 이동하고 있던 오크 17마리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오크들의 머리가 박살나며 쓰러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퍼어엉―!
공기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켈리칸이 속도를 줄였다.
사람들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고, 켈리칸의 등에서 점프해서 내려온 김가영이 그들을 향해 익숙한 투로 말했다.
“놀라지 마세요. 저는 여러분을 구하러 온 사람입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이었기에 사람들은 제대로 된 반응을 하지 못했다.
대부분은 입을 벌린 채로 김가영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어?”
“꺄아아악!”
몇몇 이가 뒤늦게 쓰러진 오크들의 모습을 발견하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안심하세요. 모든 위험은 끝났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안전합니다.”
김가영의 침착한 목소리 덕분에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남자 하나가 입을 열었다.
“이, 이걸 모두 아가씨가 한 거요?”
“네. 제가 한 겁니다.”
남자는 속박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저저 위에 있는 새는?”
“제가 기르는 새입니다.”
“……저걸 기른다고?”
“네. 칸이라고 해요.”
김가영은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켈리칸이 날개를 완전히 접고 김가영의 옆으로 내려왔다.
“허억!”
남자는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김가영은 미소를 띠운 채로 켈리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무서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남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김가영은 주변에서 눈치를 보며 서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제가 직접 여러분을 보호할 겁니다. 안전한 곳으로 안내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 말이 신호탄이 되었다.
“흐윽!”
제일 먼저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여자가 울음을 터뜨렸다.
“크읍.”
그 뒤를 이어 줄줄이 울음을 터뜨리더니, 종국에는 여덟 명 모두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던 이들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로 오크들과 함께 이동하던 중에 구출된 셈이니,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몇몇 이는 창백한 시체를 붙잡고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오크들의 사체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인간의 시체 다섯 구였다.
피가 모두 빠져 창백해진 그 시체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의 모습은 말하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충분한 설명이 되었다.
“…….”
김가영은 슬퍼하는 사람들 곁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가장 열렬히 눈물을 흘리던 남자는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김가영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가 붙잡고 있는 시체는 중년 여성의 것으로 보였다.
원래라면 학교에서 공부나 하고 있어야 할 아이가 엄마의 시신을 앞에 두고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그 이전에 이 아이의 눈앞에서 살해당했겠지.
김가영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시신을 들고 이동해야 할 겁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어디로요?”
“아까도 말했듯이 지금부터 제 안내를 따라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겁니다.”
눈물을 닦아 내고 호흡을 가다듬은 아이가 물었다.
“정말, 흑. 정말 안전한 곳이 있나요?”
“있습니다.”
확신에 찬 김가영의 태도에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때였다.
[……생존자 여러분. 저는 김재현이라고 합니다.]
김재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부터 시신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 합니다. 괜찮으실까요?]
갑작스럽게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여러분이 정상적으로 장례를 치르고, 고인을 보낼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믿고 시신을 맡겨 주실 수 있을까요?]
제일 먼저 아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이잉―
아이의 허락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그가 붙잡고 있던 시신이 사라졌다.
다른 이들도 그 뒤를 따라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이잉―
총 다섯 구의 시체가 그렇게 먼저 안전 구역 안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우우웅―
허공에서 뿜어져 나온 초록색 빛이 사람들에게 스며들었다.
맨발로 걸으며 상처투성이가 된 발이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그밖에 자잘한 상처들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활력이 돌기까지 했다.
김재현의 능력 중 하나인 세계수의 생명력이었다.
“허?”
“어라?”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들의 앞에 새로운 물건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지이잉―
그것들은 생존자들의 발에 맞는 편한 신발과 옷, 그리고 에너지바와 물이었다.
허공에 떠 있는 물건들을 받자 이번에는 길가에 8대의 자전거들이 일제히 나타났다.
[정비가 끝나면 바로 출발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재현의 목소리는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김가영이 모두를 향해 말했다.
“5분 뒤에 출발하겠습니다.”
자전거는 정비되지 않은 도로에서 최적의 성능을 발휘했다.
곳곳에 방치되어 있는 차량이 길을 가로막고, 각종 몬스터들로 인해 바닥이 박살 나 있었지만, 자전거가 지나갈 만큼의 틈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었다.
수시로 몬스터들이 나타나 그들을 노렸지만, 모두 등장과 동시에 김가영의 빛의 화살에 제압당했다.
결국, 두 시간 만에 영지 벽면에 도착해 시민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미리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정장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김가영 쪽을 바라봤다.
두 시간 동안 김가영이 몬스터를 처리하는 모습을 봤던 그들이었다.
강력한 그녀의 모습에 이미 상당한 신뢰가 쌓여 있는 상태였다.
“여기서부터는 완전한 안전지대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분의 안내를 따라가시면 됩니다.”
김가영의 확답을 듣고 나서야 사람들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가영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그들을 인계한 김가영은 켈리칸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켈리칸이 향한 곳은 신도림역의 중심지에 있는 고층 건물이었다.
신도림에 있는 고층 건물들은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그나마 멀쩡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였다.
원래 호텔로 쓰이던 건물이어서 현재 상당히 많은 사람를 수용하고 있는 건물이었다.
헬기 착륙을 대비해 만들어진 H 마크 안에 착지한 켈리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꼭대기 층에 있는 피스트 레스토랑에는 항상 뷔페식이 준비되어 있어 이곳에서 끼니를 때우곤 했다.
익숙한 걸음으로 접시를 드는데.
“가영아?”
하동건이 그곳에 있었다.
남편인 하동건은 신도림역을 중심으로 생겨난 영지의 영주가 되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렇다고 하동건이 가만히 이 안에서만 지내는 것은 아니었다.
그도 나름대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던전 공략은 끝났어?”
“지금까지 발견된 건 전부 처리했어.”
바로, 영지 내에서 발생하는 던전을 공략하는 일이었다.
던전에 대한 정보는 많이 밝혀진 것이 없었는데, 아직 던전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적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김재현의 도움으로 던전의 대략적인 정보는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던전 입구의 크기나 그곳에서 느껴지는 에너지 등으로 내부의 몬스터 수준을 어림짐작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런데 자연 발생하는 던전의 경우 그 안에 있는 몬스터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던전 공략은 대부분 가신이 도맡아서 처리하고 있는데, 하동건의 경우 혼자서 자신의 영지 안에 나타나는 모든 던전을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부부가 쌍으로 김재현에게 혹사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그럼, 이제 좀 쉴 수 있겠네?”
“지금은.”
두 사람은 음식을 챙겨 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김가영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점심 같이 먹는 건 오랜만인 거 같은데?”
“그동안 서로 바빴으니까.”
“그치.”
새우 하나를 먹어 치운 하동건이 물었다.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
살짝 당황한 김가영이 대답했다.
“……티나?”
“응. 엄청.”
김가영은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생존자들을 만났어. 그런데…….”
씁쓸했던 그들과의 만남을 그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나중에 들어 보니까 자기들은 안전한 쉘터에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그 오크들이 갑자기 그곳에 나타났대.”
“갑자기?”
“응. 갑자기.”
김가영은 한 템포 쉰 다음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다빈 씨 예상대로인 거 같아.”
하동건은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역시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는 건가.”
몬스터의 출현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가정.
지난 몇 달간 쌓인 경험으로 생겨난 가설이었다.
몬스터 아포칼립스가 발생했던 그 날에 비해서는 적은 양이더라도 지속적으로 몬스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동건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언제 어디서 어떤 괴물이 나타날지 모르는 세상이라니.”
사실 이런 비슷한 경험을 가진 생존자들이 한두 그룹인 것이 아니었다.
허공에서 갑자기 몬스터들이 출현했다는 증언은 차고 넘쳐났다.
그 일을 겪은 사람들 대부분이 죽어 나갔기에 그 말을 전하는 이들이 소수였던 것뿐이다.
김가영이 진지하게 말했다.
“이렇게 되면 더더욱 재현 님의 존재가 중요해져.”
김재현의 능력으로 생성된 안전지대에서는 단 한 번도 몬스터가 갑작스레 생성된 적이 없었다.
대신 ‘던전’이라는 형태로 자연 발생할 뿐이다.
이는 충분히 대처가 가능하며, 고블린이나 오크처럼 일정 수준 이하의 몬스터들의 경우 김재현이 자유자재로 컨트롤이 가능했다.
“어쩌면 재현 님의 능력은 인류의 유일한 구원일지도 몰라.”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그 가설이 진짜라면…….”
하동건이 말끝을 흐리자 김가영이 그 뒤를 이어받았다.
“언젠가 아이스 드래곤 같은 존재가 있는 던전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소리가 되겠지.”
가신들은 아이스 드래곤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김재현이 직접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의 존재를 직간접적으로 느낀 가신들은 놈이 지닌 힘이 얼마나 끔찍한지 어느 정도 짐작했다.
무거운 침묵 이후에 김가영이 입을 열었다.
“……던전을 방치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아직까지 던전을 오랫동안 방치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가신들의 압도적인 무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정리해 나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가신들의 힘으로도 역부족인 상황이 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방치된 던전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 걸까.
만약에 그곳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온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동건이 대답했다.
“강해져야겠네. 지금보다 더.”
“……나도.”
* * *
하동건과 김가영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일은 없는데 말이지.’
던전을 오래 방치한다고 몬스터가 튀어나오거나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미 실험해 봤지.’
처음에 던전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저런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방치해 봤다.
비교적 만만한 몬스터들이 있는 던전을 위주로 실험을 진행했는데, 그중 어느 것도 문제를 일으킨 것은 없었다.
얌전히 던전으로서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이후로는 영역 안에서 자연 발생한 던전을 발생해도 급하게 공략을 진행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더 급한 일이 많았으니까.
‘그래도 아무런 문제 없었지.’
만에 하나 몬스터가 던전에서 쏟아져 나온다고 해도 내 영역 안에 들어온 이상, 나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머리가 터져 죽을 뿐이었다.
아이스 드래곤이라고 하여도 그건 변함이 없었다.
놈이 내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면, 나는 언제든지 놈을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굳이 알려 줄 필요는 없겠지.’
향상심을 불태우고 있는 두 사람에게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어 보였으니까.
‘할 일이나 하자.’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천리안을 사용해 혹시나 주변에 방치되어 있을지 모르는 생존자 찾기부터 이강현이 데려온 수만 명의 사람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일까지.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시민의 숫자가 1,000,000명에 도달했습니다.]
[시민들의 숫자가 일정 수준에 도달함에 따라 ‘상태창’을 개방합니다.]
강북에 있던 사람들이 대거 유입되며 시민들의 숫자가 100만 명을 넘자 새로운 기능이 생겨났다.
‘상태창?’
그 순간.
우우웅!
강렬한 느낌과 함께 감각이 확장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