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Episode 35] 복원 (2)
레벨 업 때 영역이 늘어나던 때와 유사한 느낌이 들었다.
다만, 디테일한 부분에서 조금 차이가 있었다.
기존에 존재하던 영역의 크기가 늘어나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장소에 내 영역이 생겨나고 있는 듯한 느낌.
‘강림을 사용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야.’
또는 전초기지가 만들어질 때의 느낌이었다.
다행히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절대자의 눈.’
새롭게 생겨난 영역 중 한 곳에 신경을 집중해 절대자의 눈을 사용해 봤다.
* * *
타아아앙―
꾸웨에에엑―!
커다란 총성이 들리고 몇 초 후 돼지 멱따는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그리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타겟은 대물 저격총에 몸통을 맞고도 죽지 않을 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몬스터였기 때문이다.
반드시 머리를 명중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1km나 떨어진 곳에 있는 표적의 머리를 명중시킨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까비!”
철컥
무표정의 남자가 대물 저격총에서 총탄을 빼내며 말했다.
“호들갑 좀 떨지 마. 집중이 안 되잖아.”
“……쏘리.”
남자는 스코프 안을 노려보며 재차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아앙―
요란한 총성이 들리고 이번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목표물의 머리를 정확히 관통한 것이다.
“나이스샷!”
철컥―
남자는 총기를 정리하며 툴툴거렸다.
“거 조용히 좀 하라니까. 옆에서 쫑알쫑알…….”
“캬. 태준아 오늘도 샷 빨 죽여 준다.”
홍태준과 그의 파티의 주 수입원은 ‘자이언트 블랙 보어’라는 몬스터였다.
말 그대로 커다란 검은색 멧돼지였는데, 놈의 고기는 최근 서면에서 가장 핫한 이슈 중 하나였다.
부드럽고 맛있기로 소문이 난 덕분에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있었다.
“회수하러 가자.”
“오케이.”
사냥 후에도 몬스터의 사체가 남아 있는 것은 홍태준이 ‘사냥꾼’으로 전직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머지 네 명의 파티원도 모두 사냥꾼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뭔가 이 근처에 있던 몬스터가 많이 줄어든 느낌이네.”
“안전지대가 늘어난 탓이겠지.”
“그러니까. 이러다가 우리 사냥감도 전부 없어지는 거 아니냐? 태준아. 그땐 우리 뭐 해 먹고 살지?”
“뭐라도 해야지.”
그들 파티는 큰 문제없이 자이언트 블랙 보어의 사체가 남아 있는 장소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자이언트 블랙 보어의 사체는 무척이나 컸다.
한 마리에서 나오는 고기의 양이 톤 단위였기 때문에 이 한 마리의 가치가 10억을 넘어갔다.
그러나 한 마리를 통째로 올린다면 너무 비쌌기 때문에 거래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자리에서 해체해서 부위별로 판매를 하는 편이었다.
서걱
제일 먼저 동맥을 찔러 피를 빼기 시작했다.
피가 빠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유성민이 투덜거렸다.
“에잉. 재미없어. 청새치 잡을 때가 좋았는데.”
“그게 무슨 개소리야?”
“오크 새끼들이라도 나와야 수지타산이 맞는데.”
“수지타산?”
“그래, 임마. 사냥은 너 혼자 독식하니까 우리는 손해야, 손해.”
“사냥으로 나온 돈도 합쳐서 N빵 하는 거 몰라?”
“돈이야 그렇지만, 경험치는 너 혼자 다 먹으니까 하는 말이지.”
몬스터 사냥을 업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경험치’에 대한 개념이 있었다.
사냥을 할 때마다 뜨는 홀로그램 메시지가 정산금과 함께 ‘경험치’와 ‘레벨’에 대한 언급해 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3040은 어린 시절을 리니지와 함께 했던 세대.
게임을 하지 않은 이들도 ‘레벨’이나 ‘경험치’에 대한 개념은 줄줄 꿰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다만, 레벨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달랐다.
“이러다 태준이 너 혼자 고레벨 되는 거 아니냐?”
“사람한테 레벨은 무슨 레벨.”
홍태준처럼 사람에게 레벨은 없다고 생각하는 쪽도 있었고.
“야! 몬스터도 다 레벨이 있는데, 사람이라고 없을 리가 있냐? 그리고 레벨이 없으면 경험치를 준다는 말은 왜 있는데?”
유성민처럼 사람에게도 레벨이 있으리라 생각하는 쪽도 있었다.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반반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과 달리 사냥꾼들 사이에서는 유성민의 의견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태준이 너도 사냥꾼이면 알 거 아냐? 경험치를 얻을 때마다 느껴지는 그 희열을!”
사냥으로 습득하는 경험치와 그로 인한 성장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직군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의 신체 능력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운동을 열심히 한 결과지.”
“야. 태준아. 우리가 세상이 망하기 전에는 운동 안 했냐?”
유성민은 자이언트 블랙 보어의 한쪽 다리를 집어 들어 보이며 말했다.
“순수한 운동으로 이런 피지컬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진심으로?”
“…….”
홍태준은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몬스터가 등장하기 전, 부지런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3대 500은 커다란 벽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3대 500은커녕 3대 2,000도 가능했다.
운동을 그리 열심히 한 편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레벨 같은 개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지.’
그럼에도 레벨론을 부정하는 이유는.
“그러니까 태준아. 다음에는 내가 쏴 보면 안 되냐?”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넌 재능 없어.”
“해 봐야 하는 거 아니냐?”
“해 봤잖아.”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되겠냐?”
홍태준이 저격수가 된 것은 여기 있는 다섯 명 중에서 가장 실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자이언트 블랙 보어가 워낙 덩치가 컸기 때문에 다른 이들도 몸통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맞췄지만, 정수리를 맞추지는 못했다.
“아, 한 번만! 잘 할 수 있다니까?”
“안 돼.”
“아, 왜! 이 자식! 너 혼자서 경험치 독식할 생각이지?”
“하아.”
자신이 레벨론을 인정한다면 일이 이렇게 돌아갈 것을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반대 입장을 말한 것이었다.
“행님. 성민 햄 시켜 줄 거면 저부터 시켜 주시죠. 솔직히 성민 햄은 몸통도 못 맞추는데.”
“뭐야?”
“제가 틀린 말 했슴까?”
“성호야. 형 손에 총 들려 있는 거 안 보이냐?”
“제 손에도 있습니다만?”
김성호는 킥킥대며 말을 이었다.
“행님. 실력으로 뽑은 건데 와 그랍니까. 추합니다.”
“…….”
“진짜 하고 싶으시면 사격장에서 태준 햄 꺾은 담에 말씀하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홍태준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고맙다, 성호야.”
“뭘요. 돼지 새끼 찾기가 얼마나 힘든데, 젤 잘하는 사람이 쏴서 한 방에 죽여야죠. 놓치면 얼마나 생고생을 해야 하는데.”
“야. 방금 태준이 자식도 첫 발은 빗나갔거든?”
“그래서 한 대 맞고 난리 치며 도망치던 놈 대가리를 명중시켰잖습니까. 행님은 그렇게 할 자신 있어요?”
“……없지.”
“거 봐요.”
김성호의 팩트 폭격에 겨우 꼬리를 내린 유성민이 툴툴대며 중얼거렸다.
“아휴. 다들 위기의식이 없네. 상태창 같은 게 있어서 자기 레벨을 확인할 수 있게 돼야…….”
그 순간.
『이름 : 유성민 (Lv. 23)
직업 : {사냥꾼}
칭호 : [고블린 학살자] [오크 학살자]
각성 능력 : 없음
-보유 금액 : 72,343,223 원』
유성민은 눈앞에 나타난 홀로그램 창을 본 상태로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아니, 이게…….”
그것을 바라보며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자니 옆에서 김성호가 한 마디 했다.
“행님. 삐졌습니까?”
“그게 아니라…….”
“남자가 되가꼬 무슨 그런 일로 삐지고 그럽니까?”
“성호야. 이거 안 보이냐?”
“뭘 보란 말입니까?”
“상태창이라고 말해 봐.”
“……상태창? 어?”
김성호가 눈앞에 나타난 홀로그램창에 당황스러워하고 있던 그때 홍태준이 소리쳤다.
“습격이다!”
그의 외침과 동시에 날아온 화살 한 방이 김성호의 배를 관통했다.
“커헉!”
“성호야! 이런 씨발!”
유성민이 쓰러지는 김성호를 낚아챈 뒤 자이언트 블랙 보어의 사체를 방패 삼아 몸을 엄폐했다.
그리고 곧바로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총구를 겨누고 격발했다.
타앙―!
그것을 시발점으로 현장이 전쟁터로 변했다.
투두두두―
그러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오크들이 이곳을 완벽히 포위하고 있었다.
홍태준이 이를 갈며 말했다.
“당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데?”
“이 자식들 우리를 노리고 기다리고 있었어.”
오크들이 자이언트 블랙 보어를 미끼로 함정을 팠단 소리였다.
“뭐? 어째서…….”
“복수겠지.”
지금까지 홍태준 파티가 죽여 온 오크들만 한 트럭이었다.
이것은 그에 따른 피의 복수인 것이다.
“젠장.”
정확히 홍태준 파티를 노린 것은 아닐 수도 있었다.
이 근처에서 돼지 사냥을 하는 게 그들만은 아니었으니까.
“X 됐네.”
그때였다.
[김성호 씨 몸에서 화살을 빼 주시겠어요?]
“엥?”
“어?”
그들의 머릿속에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김재현입니다.]
“엇?”
홍태준과 파티원들도 시민권을 가진 이들인 만큼 그 이름의 무게감을 알고 있었다.
“하, 하지만 화살을 뽑으면 더 위험할…….”
[서둘러 주세요.]
“……알겠습니다.”
긴가민가하면서도 유성민은 김재현의 지시에 따랐다.
화살이 몸을 관통하여 화살촉이 허리 뒤쪽으로 빠져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몸 앞뒤로 나와 있는 화살을 잘라 낸 다음 그것을 뽑아냈다.
“으윽!”
김성호가 고통스런 비명을 뱉어 낸 직후.
우우웅―
초록빛이 뿜어져 나와 상처 부위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어?”
피가 멎었다.
“성호야 왜 그러냐?”
“상처가…….”
김성호는 옷을 걷어 상처 부위를 만져 봤다. 상처가 말끔하게 회복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그러나.
“크워어어어!”
갑작스러운 김재현의 개입으로 그들이 당황한 사이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던 오크들이 빠르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아.”
그들을 향해 수십 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끝났다.’
그 순간.
“……??”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들에게 날아오던 화살들이 모두 일시에 정지한 것이다.
그 직후 화살이 다시 움직였다.
“크워어어억!”
“카아악!”
“꾸에에엑!”
수십 발의 화살들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어지럽게 움직이며 오크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허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모두가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리고 있던 그때.
우우우웅―
김성호의 근처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 * *
[시민 김성호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김성호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시민 김성호가 가신으로 등록됩니다.]
[가신 보유 한계치가 늘어납니다.]
염력을 사용해 오크들을 정리한 후 새롭게 깨달은 사실들을 정리했다.
‘이제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절대자의 눈을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이 생겨났다.’
상태창이 생겨 시민들이 자신의 레벨이나 칭호 따위를 확인할 수 있게 된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었다.
원래는 가신들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었던 능력들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된 셈이었으니까.
‘그 범위가 굉장히 좁긴 하지만…….’
가신들이 만들어 내는 범위는 반경 5m에 달했다.
그와 달리 상태창이 부여된 시민들은 거의 몸에 딱 달라붙어 있는 상태였다.
그 때문에 창고나 상점의 사용한 보조는 제한적이었지만, 신뢰도가 100이 되며 얻은 능력을 발휘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대박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