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164화 (165/175)

164화 [Episode 35] 복원 (4)

♩♪♪♬~ ♩♪♪♬~

정소라는 천천히 눈을 떴다.

비몽사몽한 눈으로 일어나 배게 옆에서 알람을 울리는 핸드폰에 표시된 시간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다시 누워 버렸다.

♩♪♪♬~

알람도 끄지 않은 채로 이불 속으로 파고든 그녀는 편안한 얼굴로 재차 눈을 붙였다.

이후 자연스레 꺼졌던 알람은 일정 시간이 지나자 다시 한번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손만 뻗어서 능숙하게 알람을 꺼 버리고는 잠을 취했다.

10분 뒤.

♪♬♬~♪♬♬~

이번에는 알람이 아니었다.

[잔소리꾼]이라고 저장된 이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여보세요.”

[소라 님. 이제 슬슬 일어나셔야 합니다.]

“10분 뒤에 다시…….”

[안 됩니다. 일어나세요.]

단호한 그의 말투에서 얄짤없음을 느낀 정소라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대답했다.

“알겠어요. 일어났어요. 모닝콜 고마워요, 지웅 씨.”

그제야 천천히 몸을 일으킨 정소라는 기지개를 켜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흐읏― 하아!”

포근한 이불 위를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전신을 풀어 준 그녀는 곧장 옷을 훌렁훌렁 벗어 던지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쏴아아아

샤워기에 물을 틀고 발끝으로 온도를 체크해 적당히 따뜻하진 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맨몸으로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받았다.

“흐흥~♪”

절로 흘러나오는 콧노래와 함께 그녀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내 자그마한 소녀의 형상으로 변한 물방울들이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다.

물의 정령들은 그녀의 긴 머리칼에 샴푸-트리트먼트로-린스를 차례로 바르고 헹궈 주었다.

정령들이 자신의 머리칼에 정성을 다하는 동안 정소라는 샤워볼을 사용해 자신의 몸을 깨끗이 씻는 데 집중했다.

마지막으로 흐르는 따뜻한 물에 몸을 맡기며 그 상태를 즐겼다.

“아, 좋다.”

정령들과의 협력으로 실제 몸을 씻는 데에는 겨우 10분밖에 들지 않았지만, 그녀가 샤워를 마치고 나온 것은 20분이 더 지나서였다.

따로 수건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물의 정령이 직접 몸의 물기 대부분을 제거해 주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에 남아 있던 약간의 물기는 바람의 정령이 완벽하게 말려 주었다.

“고마워, 애들아.”

그 이후 정소라는 매우 진지한 얼굴로 옷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수십 종류의 옷이 그녀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입을 옷이 없네.”

결국, 그녀의 선택은.

“거래소 오픈.”

즉석 선택이었다.

“여성 의복.”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옷이 거래소에 올라와 있었다.

깔끔한 무지티부터 시작해서 화려한 원피스까지.

이 정도면 백화점을 고스란히 거래소 안에 옮겨 놓았다고 봐야 할 수준이었다.

정소라가 물건을 선택하자 해당 옷이 확대되어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어, 이 옷 너무 귀엽다!”

그녀가 고른 옷은 꽃무늬 원피스로 냉정하게 말해서 방금 옷장 안에 있던 것과 유사한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치맛단이 조금 더 짧고, 꽃의 색상이 미세하게 달랐다.

“할인 엄청 하네?”

꽃무늬 원피스의 가격은 32,400원.

그러나 상품 설명란에 적힌 원래 가격은 64,800원이었다.

무려 50% 세일.

물론, 그 가격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오직 판매자만이 알 것이다.

“어디 보자 사이즈가…….”

마지막으로 사이즈까지 확인한 그녀는.

“구입!”

망설이지 않았다.

지이잉―

구입을 확정 짓자 곧바로 상품이 전송되었다.

다행히 원단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곧바로 실착을 해 보니 조금 헐렁하긴 했지만, 그래서 더 귀여워 보였다.

애초에 그녀의 몸이 왜소한 편이어서 딱 맞는 사이즈는 잘 없었다.

이 정도면 준수한 편이었다.

“음. 마음에 들어.”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비춰보던 정소라는 미소 짓고 있는 자신의 얼굴 확인할 수 있었다.

진심에서 우러나 오는 그런 미소였다.

‘나…… 이렇게 웃을 줄도 알았구나.’

상상 이상이었다.

몬스터의 위협이 없는 세상에서의 삶은 하루하루가 기적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몬스터를 걱정하며 잠을 설칠 필요도, 밤낮 할 것 없이 정령들을 운용할 필요도, 바닥을 보이는 식량을 조달할 방법을 궁리하며 끙끙댈 필요도 없었다.

책임감에서 해방된 거울 속 소녀는 예전의 해맑은 미소를 짓게 되었다.

‘즐거워.’

이제 와 생각하는 것이지만, 김재현의 밑으로 들어간 것은 정말이지 신의 한 수였다.

이곳에 들어오고 난 이후로 사람들은 ‘일상’을 되찾았다고 말한다.

‘이게 일상인가.’

정소라에게 있어서 지금 느끼는 이 행복은 난생처음 맛보는 것들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삶은 지옥이었으니까.

그녀가 태어난 가정은 평범한 가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술 취한 채로 폭력을 휘두르던 것뿐이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맞아야 했다.

만약 그녀의 어머니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상냥한 어머니였다면, 그래도 삶이 지옥이었다고까지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술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앞에서는 한없이 가녀린 약자였던 어머니는, 힘없는 아이 앞에서는 폭군이 되었다.

아버지에게 맞은 기억보다 어머니에게 맞은 기억이 더 많을 정도다.

그녀는 어린 정소라를 때리고, 발로 차고, 폭언을 일삼았다.

자신을 책임지지도 못하는 나이에 집을 도망쳐 나온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도 삶은 여전히 끔찍했다.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많았다.

희망은 없고, 절망만 가득한 나날이었다.

정말 하루도 죽고 싶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그러다 세상이 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매일 죽고 싶단 생각을 품고 살았던 소녀에게는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주어졌다.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지킬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 이후의 삶은 하루하루가 고달프긴 했지만, 끔찍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남은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살아 있길 잘했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일상’이라면, 자신에게 있어서 ‘일상’이라는 건 ‘기적’과 같은 말이라고.

며칠 전 김재현과 다시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그에게 정식으로 ‘가신’으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가신이 되면 여러 가지 혜택이 주어지지만,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정소라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으니까.’

죽는 것보다 지금 이 일상을 잃는 게 더 두려웠다.

그때였다.

♪♬♬~♪♬♬~

전화벨이 울리는 핸드폰 액정에는 [잔소리꾼]의 번호가 나타나 있었다.

[소라 님 지금…….]

통화 버튼을 누른 정소라는 박지웅이 본격적으로 잔소리를 시작하기 전에 선수를 쳤다.

“다 준비했어요! 금방 나갑니다!”

그렇게 서둘러 밖으로 나가자 박지웅과 만날 수 있었다.

“가시죠.”

“오늘은 어디로 가요?”

“홍대 쪽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간 그들은 자연스럽게 SUV 차량에 탑승했다.

박지웅이 운전석, 정소라가 보조석이었다.

“출발하겠습니다.”

차량이 밖으로 나가자 잘 닦여진 도로가 나타났다.

게다가 그리 많지는 않아도 차량 몇 대가 달리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상상할 수 없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1등 공신은 그 누구도 아닌 정소라였다.

부우웅―!

신호등과 같은 시설은 복구되지 않았지만, 차량이 많지 않아서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박지웅은 뻥 뚫린 도로 위를 시속 80km의 속도로 질주했다.

10분 정도 지나자 주변에 조금씩 보이던 차량이 아예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와 함께 박살이 난 도로의 모습이 나타났다.

“속도 좀 줄여 주시겠어요?”

“네, 소라 님.”

브레이크를 밟아 완전히 속도를 줄인 뒤 기어만 D에 넣은 상태로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그러자 차량이 아주 느린 속도로 전진했다.

“준비 끝났습니다, 소라 님.”

“알겠어요.”

망가진 도로를 복구하는 것.

이것이 요즘 정소라의 주 업무였다.

이 일을 맡게 된 후 김재현에게 부장이라는 직위를 받았는데, 하루 일당으로 지급되는 돈만 60만 원이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의 실적을 보고 지급받은 계약금이 20억.

사실상 그녀가 만들어 내는 실적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돈이라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그녀 스스로는 만족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부릴 수 있는 직원들이 하루에 벌어들이는 돈만 해도 수천만 원 단위니까.’

부장이 되면서 함께 부여받은 것은 차장 3명, 과장 10명, 대리 30명, 사원 100명을 뽑을 수 있는 권한이었다.

당연히 자신의 최측근들에게 모든 직책을 부여해 주었다.

여기에서 나오는 돈만 해도 무려 하루에 3,450만 원.

지금 그녀의 조직은 이 돈으로 먹고사는 중이었다.

계약금이 조금 적은 것 정도는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우우우웅!

정소라가 본격적으로 힘을 발현했다.

쿠구구―

사대 정령을 모두 다룰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은 그 누구보다도 범용성이 뛰어났다.

정령의 능력은 몬스터와의 전투에서도 유용했지만, 샤워를 하거나 머리를 말릴 때처럼 사소한 일상생활에서도 쓸모가 있었다.

결정적으로 땅의 정령을 사용하면 지금처럼 망가진 도로를 빠른 속도로 정비해 나가는 게 가능했다.

쿠구구구구―!

차량에 탑승하고 있는 그녀를 중심으로 땅이 뒤집힌다.

박살 났던 콘크리트가 맞춰지고, 어디선가 날아온 건물 잔해를 도로 밖으로 밀어낸다.

동시에 구멍이나 갈라진 틈이 메워지고 있었다.

도저히 차로는 진입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도로가 멀쩡한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중이었다.

쿠구국!

그것도 실시간으로.

우우웅

시민권을 얻고 가신이 되며 한층 강력해진 정소라의 능력은 예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누구보다 스스로가 그것을 가장 크게 실감하고 있었다.

‘달라도 너무 다르지.’

예전에는 정령에게 자신이 부탁하는 쪽이었다.

갑을 관계를 따지자면 정령들이 갑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령들이 힘을 발휘할 때마다 자신의 정신력이 뭉텅뭉텅 소모되는 것을 느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관계가 180도 뒤바뀐 상태였다.

‘이제는 정령들이 내 부탁을 들어주고 싶어서 안달 나 있는 느낌이니까.’

자신이 갑이 된 것은 물론이고, 정령들의 위치가 을도 아닌 정까지 내려간 것 같았다.

게다가 김재현이 정령왕들을 길들여 펫으로 삼은 덕분에 영역 내에서 정령들의 힘이 몇 배나 더 강력해진 상태였다.

그 덕분에.

쿠구구구구!

정소라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지금처럼 지형을 바꾸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땅의 정령들에게 한 번 작업을 맡긴 뒤에는 지금처럼 주변 풍경을 구경하며 여유를 부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한창 작업을 이어 나가던 중이었다.

“어?”

자신과 비슷한 업무를 맡아서 하는 아이 중에 땅의 정령과 생김새가 비슷한 느낌의 아이들이 있었다.

흙으로 빚어진 몸에 눈코입 자리에 구멍이 뚫려 있고 둥글둥글한 양손을 가진 귀여운 골렘이었다.

토용(土俑)이라고 하는데, 김재현이 가지고 있는 능력 중 하나였다.

정소라는 반가운 마음에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며 말을 걸었다.

“안녕?”

그러자.

꾸륵? 꾸르륵! 꾸르르르륶! 꾸르륵!

토용이는 아주 격한 반응을 보여 주었다.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

어느 정도 예상하고는 있었다.

‘이상하게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단 말이지.’

토용이들은 정소라와 마주칠 때마다 얼굴에 있는 구멍들이 사납게 삐죽이곤 했다.

게다가 일하던 것마저 멈추고 양팔을 들어 올리며 위협하고 있었다.

이건 비단 저 녀석만의 반응이 아니었다.

정소라와 마주하는 토용이들 대부분이 정도만 다를 뿐이지 같은 반응을 보여 주고 있었다.

‘친해지고 싶은데…… 왜 저렇게 나를 싫어하는 거지?’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