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165화 (166/175)

165화 [Episode 36] 재정비 (1)

직경 100m 정도의 연못.

그곳에는 지금 인간 하나와 짐승 수십 마리가 함께 들어와 있었다.

촤아아아―

백호, 반달곰, 회색 늑대, 하마 등등.

평범한 동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하나하나가 엄청난 존재감을 풍겨 왔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강렬한 존재감을 풍기던 백호가 그들의 중심에 있는 인간, 차현승에게 몸을 들이댔다.

그 모습이 꼭 거대한 고양이를 보는 듯했다.

차현승은 300kg이 넘어가는 거구의 애교를 거뜬히 받아 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백호는 그의 손길을 즐기며 낮게 그르렁거렸다.

그르릉!

‘더 만져 줘, 더!’

차현승에게는 교감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백호의 말을 온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래그래. 백설이 네가 제일 고생 많았지.”

반대로 그의 의지를 읽어 내는 일 또한 백호, 아니 백설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르르릉!

‘더 많이 칭찬해!’

즐길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즐겨 놔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달콤한 휴식은 몇 주 동안의 노동 끝에 얻어 낸 귀중한 시간이었으니까.

그때였다.

슈슉―

연못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정자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남자 한 명이 나타났다.

남자의 얼굴을 알아본 백설이 가장 먼저 표정을 굳혔다.

“차현승 씨.”

그의 목소리를 들은 차현승이 대답했다.

“재현 님?”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일으켜 연못에서 나오려 하는 차현승을 김재현이 말렸다.

“괜찮습니다. 그대로 있으셔도 됩니다.”

백설은 불만 어린 표정으로 정자 위의 남자 바라봤다.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김재현이라는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강렬한 존재감, 첫 만남 때 보여 주었던 힘, 마지막으로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격의 차이까지.

저 남자가 강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저렇게까지 저 자세일 필요가 있을까.

그도 그럴 것이, 차현승은 무리의 우두머리였다.

그런 그가 저런 반응을 보여 주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크릉!

‘마음에 들지 않아.’

그렇다고는 해도 우두머리가 정한 결정에 토를 달 수는 없는 법이다.

여기서 자신이 날뛰어 봤자 차현승의 꼴만 우스워질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불만이 있더라도 참을 수밖에.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것뿐이다.

크르르…….

‘또 강행군의 시작인가…….’

김재현과의 만남 이후 쉴 새 없는 몬스터 사냥이 시작되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오가리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가신에 대해 들어 보신 적 있습니까?”

“재현 님께서 직접 힘을 부여하신 사람들 아닙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세간의 오해와는 달리 제가 각성 능력을 부여하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 사람의 잠재 능력을 강제로 일깨우는 것에 가깝죠.”

“……그렇다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보통은 능력이 강화되거나 그와 관련된 새로운 능력을 얻습니다.”

그 뒤로도 가신들이 얻는 여러 가지 혜택과 권리와 의무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가신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저에게 직접 전하러 오셨다는 건, 저를 영입하러 오신 거라고 봐도 될까요.”

김재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힘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신이 되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가신(家臣).

차현승과 정신이 연결되어 있던 백설은 저 제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곧바로 알아들었다.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칵!

‘하!’

웃기지도 않는 제안이었다.

한 무리의 우두머리인 차현승이 남의 밑으로 들어가는 일을 받아들일 리가…….

“좋습니다.”

어?

“눈보라가 몰아치던 그때, 결계 위를 지나가는 그 괴물의 존재를 느끼고 확신했습니다. 나와 내 주변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강해져야 한다고. 당신이 저를 이용하시는 만큼, 저도 당신의 힘을 이용하겠습니다.”

“든든하군요.”

어??

백설은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호수에서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모두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크, 크앙!

‘아, 안 됑!’

그저 몬스터 잡는 일을 도와주는 것과는 그 의미가 달랐다.

그러나 백설이 그를 말리기도 전에.

우우웅

신비한 빛이 생겨나더니 차현승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파아아앗―!

곧이어 그에게서 강렬한 빛이 솟구치더니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차현승의 몸에 딱 붙어 있었던 백설은 아무런 예고 없이 방출된 빛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그와 동시에 전신에서 격통이 느껴졌다.

‘!!!’

갑작스러운 통증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마치 온몸의 근육과 뼈가 뒤틀리는 듯한 감각에 깜짝 놀랐지만, 다행히 그 시간이 무척이나 짧았다.

그런데 문제는 갑자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발톱 하나 까딱할 수 없던 상태가 잠깐 이어졌으나 다행히 금방 괜찮아졌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가고, 눈을 뜨자 곧장 차현승의 얼굴이 보였다.

그 순간 백설은 자신의 몸에 대한 것도 잊고 따져 물었다.

“왜 그런 거냥! 어째서 자유를 포기하고 그 남자의 밑으로 들어간 거냥!”

분노를 표출하던 백설은 자신이 지금 인간의 언어로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바짝 붙어 있는 차현승의 몸이 어색할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자신이 직전에 겪었던 고통에 대해 떠올랐고, 차현승에 대한 걱정이 피어올랐다.

“아픈 것이냥?”

백설은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차현승의 볼을 핥았다.

“엇……!”

차현승이 꿈틀거리더니 다시 돌처럼 굳었다.

누가 봐도 이상한 반응을 보이자 백설의 걱정은 더욱더 심해졌다.

“방금 그 고통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냥? 정신 차려랑!”

그때였다.

정자 위쪽에서 김재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능력의 강화가 이런 결과로 이어지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나저나…… 최측근이었던 분들이 전부 ‘암컷’이었을 줄이야.”

백설은 고개를 돌려 이상한 말을 하는 김재현에게 따지려 했다.

당장 차현승을 고쳐 내라고.

김재현은 두려웠지만, 그만큼 차현승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잔뜩 굳어 있는 차현승에게서 눈을 떼는 순간,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라?”

연못에 몸을 담구고 있어야 할 동료들은 온데간데없고 웬 낯선 인간 여자들만 가득한 것이다.

“당신들은 누구냥!”

처음에는 김재현을 따르는 무리가 자신들을 포위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애들을 어떻게 한 거냥!”

그러나 금세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여자들에게서 알 수 없는 유대감 같은 것이 느껴지고 있었던 탓이다.

동료들에게서만 느껴지던 그것이었다.

게다가.

‘뭐지?’

그들의 겉모습에서 약간의 위화감이 느껴졌다.

평범한 인간들과는 달랐다.

머리 위에 짐승의 귀가 달려 있고 엉덩이 쪽에는 꼬리가, 등 뒤쪽에 날개가 달려 있는 개체도 꽤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들에게서 나는 냄새가 무척이나 익숙했다.

“너, 너희?”

낯선 여자들에게서 동료들의 체취가 느껴졌다.

그때가 돼서야 백설은 자신 또한 달라져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어라, 나 왜……?”

인간의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시선을 내리자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의 자랑거리이던 희고 예쁜 털들이 있던 자리에는 백옥처럼 매끈한 피부가 자리했다.

심지어 근육 덩어리이던 자신의 가슴에 낯선 지방 덩어리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마치 인간처럼.

“이, 이게 뭐냐아앙―?!”

거칠게 몸을 일으킨 백설이 이 모든 것의 원흉인 남자를 향해 거칠게 따졌다.

“이게 다 무슨 짓이냥! 당장 원래대로 되돌려 놔랑!”

그러자 김재현이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김재현의 당당한 태도에 살짝 쫀 백설이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뭐, 뭐가 말이냥…….”

“지금이라면 이런저런 것도 가능할텐데요. 그것들을 전부 포기하고 돌아가시고 싶으신 건가요?”

“……이런저런 것?”

“같은 인간의 형태면 여러 가지를 함께할 수 있겠죠. 게다가 지금도 마음만 먹으시면 예전의 형태로 돌아가실 수 있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것.

그 한마디 이후로 김재현이 하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한 가지 강렬한 욕망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은 차현승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짝짓기가 가능하당!’

결론에 도달한 백설이 김재현을 마주보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해했당!”

그리고 천천히 뒤돌아 다시 차현승을 바라보았다.

백설과의 정신적인 교감이 가능한 차현승은 그녀의 눈에서 가득한 욕망을 읽어 내고는 그녀를 말리려 했다.

“배, 백설아 잠깐……!”

“현승! 씨를 내놓아라!”

* * *

대낮의 연못에서 낯 뜨거운 광경이 펼쳐지기 전에 나는 텔레포트를 사용해 자리를 떠났다.

‘수인이라.’

차현승을 가신으로 받아들이며 수인이 된 이들에게는 놀랍게도 시민권을 부여하는 게 가능했다.

그리고 수인이 된 전원이 ‘각성자’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짐승이었던 때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는 능력과 각자 개성에 맞는 능력을 획득한 상태였다.

‘갑자기 엄청난 전력이 생겨났군.’

아쉽게도 차현승의 휘하에 있던 모든 짐승이 수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수인으로 변한 것은 연못에 있었던 차현승의 최측근들뿐.

그러나 그것만 해도 충분한 전력이었다.

‘진지하게 가신 영입도 생각해 볼 만해.’

이번에 수인이 된 모든 이들이 최소 A등급 이상의 능력을 각성한 상태였다.

충성도와 신뢰도가 많이 낮기는 했지만, 그것은 차차 신뢰를 쌓아 나가면 해결될 일이었다.

수인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그때.

[여기 있었군.]

정령들이 찾아왔다.

“네 명이 전부 모여서 찾아온 건 오랜만이네.”

“할로~”

“샐리온이 자꾸 귀찮게 하니까-.”

“쿠륵.”

샐리온을 바라보자 불길이 일렁거리며 말했다.

[흥. 딱히 네가 요즘 바쁜 것 같아서 신경 써 준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마라.]

바쁜 걸 알면 하루 정도는 그냥 넘어가 주면 안 되는 걸까.

‘다른 애들은 노는 데 정신이 팔려서 며칠씩 빼먹기도 하는데.’

샐리온만은 꼭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나를 찾아왔다.

나름대로 나를 위한다고 한 행동이었던 것 같은데, 오히려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딱 봐도 칭찬을 바라며 내 앞에서 일렁거리는 샐리온의 모습이 조금은 귀엽게 보여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고마워.”

[흐, 흥!]

그와 동시에 정령왕들을 향해서 세계수의 생명력을 뿌리기 시작했다.

우우웅

“와~”

“냠-.”

물, 불, 바람, 땅.

정령왕들이 사이좋게 식사를 하던 그때 오랜만에 시스템 알림이 나타났다.

[샐리온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영역 내의 불의 힘이 100% 증가합니다.]

[불의 힘이 최대 효율에 도달했습니다.]

샐리온의 레벨이 10이 됐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보며 새삼 까미가 얼마나 기르기 편한 환수인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지금도 얌전히 집을 지키고 있을뿐더러 딱히 내가 챙겨 줄 필요도 없었다.

그저 햇빛이 좋은 날에 일광욕을 하는 것만으로 빠르게 성장하던 녀석이었다.

‘그에 비해 정령들은 애들을 기르는 것 같은 느낌이란 말이지.’

솔직히 말해서 조금 귀찮았다.

하지만 애들이 귀엽기도 하고, 실용적인 가치도 있으니 괜찮았다.

‘특히 땅의 정령왕인 트로웰의 능력이 올라갈수록 서울 복원 작업 속도도 빨라질 테니까.’

트로웰은 다른 정령왕 중에서도 가장 적게 나를 찾아왔다.

덕분에 6레벨로 가장 낮은 레벨을 하고 있었다.

샐리온이 억지로라도 그를 데려와 준다면 레벨 업 속도가 올라갈 테니 그것만큼은 긍정적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그때였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정령사’가 개방됩니다.]

새로운 직업이 개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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