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166화 (167/175)

166화 [Episode 36] 재정비 (2)

‘정령사라.’

개방 조건은 샐리온의 10레벨 달성인가?

물론, 직업이 개방됐다고 해서 전부가 아니었다.

직업 연구소의 레벨을 더 올려야만 연구가 가능한 직업일 수도 있었으니까.

현재 직업 연구소의 레벨은 5.

‘다행이군.’

확인해보니 정령사 연구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연구 활성화를 위한 조건이 ‘사제’와 같은 5레벨이었기 때문이다.

[직업 ‘정령사’의 연구를 시작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시작해 줘.’

띠링!

[정령사]

…연구 중…

-남은 시간 : 39시간 59분 58초

그때였다.

[트로웰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영역 내의 땅의 힘이 100% 증가합니다.]

트로웰이 7레벨을 달성했다.

‘엘퀴네스가 9레벨, 실피드가 8레벨, 트로웰이 7레벨인가.’

정령사의 전직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는 몰라도 될 수 있으면 정령왕들의 레벨을 모두 10레벨로 맞춰 놓는 편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세계수의 생명력을 흡입하는 데 집중하던 불덩이가 움찔거리더니 내게 말을 걸어왔다.

[……왜 날 그렇게 보는 거지?]

“그냥. 앞으로도 이렇게 책임지고 애들 데리고 와 줄 수 있어?”

[물론이다. 나만 믿어라.]

“믿을게.”

[흐, 흥.]

생각보다 샐리온은 단순해서 다루기가 쉬웠다.

‘할 일은 거의 다 끝난 건가.’

새롭게 시민권을 발급받은 사람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그동안은 내수에 신경 쓸 필요가 있었다.

서울역을 중심으로 한 백작의 영지에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아파트와 같은 주거 시설을 개선하고, 도로를 정비했다.

적재적소에 매점을 배치하고, 부산에서 개점한 자영업자들과 협업하여 서울에 2호점이 생길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인스턴트 던전을 집중적으로 배치해 사냥을 유도하고, 인구가 늘어나며 생겨난 경제 활동 인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돈을 벌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구심점이 있어서 다행이야.’

이제는 서울도 자급자족할 수 있을 만큼은 성장한 상태였다.

안전지대 곳곳에 숨어 있는 고급 차량이나 가전제품 등을 찾아내 거래소에 올리는 이들도 생겼고, 몬스터가 나타나기 전에 가지고 있던 직업적 특성을 살려 창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확실히 서울은 인재가 많네.’

창업한 이들 중에는 투자자를 찾아 적극적으로 사업을 유치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대한민국의 인재들이 몰려 있는 서울답게 유능한 이들이 많은 것이다.

각성자 쪽만 봐도 그렇다.

차현승, 양하영, 정소라, 이강현 등등.

S급 이상의 능력을 각성한 자들은 물론이고, A급, B급 각성자들도 넘쳐났다.

덕분에 가신들의 숫자도 크게 늘어나 있었다.

‘80명.’

이제는 전초기지 건설이나 유지로 빠지는 인원을 감안하더라도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가신들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서울을 공략하면서 느낀 점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숫자의 중요함이다.

‘영지를 만들 때 뼈저리게 깨달았지.’

가신들은 강하다.

서울 곳곳을 장악하고 있던 보스급 몬스터들을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 한 명의 인간이었다.

텔레포트를 사용해 유틸성이 높아도, 강철 기사 100기를 부릴 수 있어도, 켈리칸을 타고 빛의 화살을 쏘며 순식간에 몬스터들을 정리할 수 있다고 해도.

그들은 한 명의 인간이었다.

한 사람이 커버할 수 있는 지역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했다.

영지를 건설할 때 하동건과 오언주에게 부담을 덜 주기 위해서는 주변에 있는 몬스터를 쓸어버릴 필요성이 있었고, 그것은 가신들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커다란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사냥팀’이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안전하게 영지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스 드래곤이 지나가고 나서도 마찬가지지.’

그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총을 든 사냥 팀은 생각보다 많은 숫자의 몬스터들을 감당하는 게 가능했다.

일정 레벨 이상의 몬스터야 소총 따위로 제압할 순 없었지만, 그런 몬스터들은 가신들에게 맡기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사냥팀들이 활약해 주는 만큼 가신들은 고블린이나 오크들에게 체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시민들을 키워야 해.’

가신들의 활약이 더욱더 두드러지기 위해서는 그 밑을 단단히 받쳐 줄 수준 높은 시민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진 수단 중에서 가장 효율 좋게 시민들의 힘을 늘리는 방법은.

‘직업을 부여하는 거다.’

당장 ‘사수’ 직업만 얻어도 총의 위력이 대폭 상승한다.

그것만 해도 시민들이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들의 수준이 확 올라갈 것이다.

‘김다빈을 통해서 직업 연구소에 관한 것들을 전달해도 되겠지만.’

안 그래도 바쁜 김다빈의 업무를 과중시킬 필요는 없겠지.

‘퀘스트 부여.’

《퀘스트 부여》

퀘스트 내용 : 직업 연구소를 찾아가 ‘사수’로 전직하기

제한 시간 : 168시간 00분 00초

보상 : 소량의 경험치, 소총 소지 자격증, K-2.

실패 페널티 : 없음.

평소 눈여겨봐 뒀던 이들에게 맞춤형 퀘스트를 내려 주었다.

* * *

부천역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며 컵누들을 먹고 있던 김명환은 갑자기 허공에 나타난 홀로그램의 내용을 확인했다.

“사수로 전직하기?”

김명환의 입장에서는 ‘직업 연구소’도 ‘사수’라는 직업도 처음 들어 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사냥꾼이랑 비슷한 건가?’

몬스터 사냥을 업으로 삼는 만큼 사냥꾼에 대해서는 들은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김명환도 직업 연구소에 대한 것은 금시초문.

‘……그런데, 보상이 소총 소지 자격이라고?’

현재 자신이 들고 있는 소총은 ‘대여’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퀘스트를 성공할 경우 소총 소지가 가능해지는 데다 K-2까지 지급 받는 것 같았다.

‘돈은 아낄 수 있겠네.’

그렇지 않아도 매번 소총 대여비로 꽤 많은 지출이 이어지고 있었다.

퀘스트에 성공하면 돈을 아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매번 귀찮게 서류를 작성할 필요도 없어진다.

‘나쁘지 않네. 그런데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 거지?’

그때였다.

[반갑습니다, 헌터 여러분.]

머릿속에서 김재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퀘스트를 받으신 분들은 팀에게 양해를 구하고 부산으로 복귀해 주시기 바랍니다.]

팀원들 모두에게 전해진 목소리였기 때문에 따로 보고할 필요는 없었다.

“혹시, 저희 파티에 퀘스트를 받으신 분 계신가요?”

파티장인 김혜나가 물어 왔고, 김명환이 손을 들었다.

“선배?”

“어.”

“무슨 내용인데요?”

“사수로 전직하라고 적혀 있는데, 나도 자세한 건 아직 잘 모르겠어.”

“아하. 그거구나.”

“뭔지 알아?”

“네. 직업 연구소로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김명환은 살짝 놀라며 물었다.

“뭐야. 유명한 거였어?”

“아니에요. 아직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사냥꾼 말고 새로운 직업이 개방됐다고 해요.”

“새로운 직업……?”

“네. 전사랑 사수인가? 근접 공격 버프와 원거리 공격 버프를 해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고요. 근데 특이한 게 이 직업을 얻으려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시험?”

“거기까지는 저도 잘…….”

김혜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잘됐네요. 사수가 되면 당장 총의 위력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간다고 하더라고요. 오크의 경우 심장이나 머리에 명중시키지 않아도 한 방에 죽는다던데요?”

“……그렇게나 차이가 난다고?”

오크는 굉장히 터프한 몬스터였다.

전신이 근육질로 이루어진 탓에 총알 한두 방 정도로는 잘 죽지 않았다.

일반적인 소총으로는 반드시 머리나 심장을 맞춰야만 했다.

그런데 급소가 아닌 곳을 맞춰도 죽이는 게 가능하다면―.

“사냥의 판도가 바뀌겠네.”

“그쵸.”

오크 정도는 이제 위협이라고 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그러자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겨났다.

‘왜 나만 퀘스트를 받은 거지?’

사수라는 직업이 그렇게나 굉장하다면 총을 주로 사용하는 헌터 모두가 퀘스트를 받는 게 맞지 않나?

“글쎄요. 우리 파티에서 선배가 뽑힌 걸 보면 사격 실력이 좋은 사람들 위주로 뽑힌 게 아닐까요?”

“흐음. 그럴 수도 있겠군.”

확실히 그의 사격 실력은 팀원 중에서도 독보적이었다.

자신은 250m 거리에서도 오크의 머리를 명중시키는 게 가능한 명사수였으니까.

‘그렇다는 건 재현 님께서 내 사격 실력에 대해 인지하고 계신다는 뜻인가.’

괜히 양쪽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럼, 슬슬 철수하죠. 선배가 없으면 우리 파티도 힘이 많이 빠지는 편이니까.”

“크흠.”

계속되는 김혜나의 칭찬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때.

“전투 준비! 적이다!”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파티원이 소리쳤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파티원들 모두가 인벤토리에서 총기를 꺼내 들며 전투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

상대가 좋지 못했다.

“전원 건물 안으로 대피하세요!”

중형차만 한 덩치.

전신에 황동색 금속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그 괴물.

부천에서 활동하는 사냥꾼들 사이에서 통칭 ‘황금 호랑이’라고 불리는 놈이었다.

놈이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투두두두―

놈의 몸을 완벽하게 둘러싸고 있는 황동색 금속들은 전신 갑옷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카가가가강!

놈의 몸에 명중한 총알이 불꽃을 튀기며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제가 막을게요!”

파티원 중에서 유일한 각성자인 김혜나가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이 땅바닥에 닿는 그 순간.

쿠구구국!

놈이 돌진해 오던 앞에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바닥이 튀어나오더니 놈을 붙잡았다.

콰드드득!

거대한 손바닥이 놈의 몸을 통째로 부술 기세로 오므려졌지만.

퍼어억!

오히려 박살 난 것은 손바닥 쪽이었다.

“크윽!”

콘크리트 손바닥을 박살 내며 튀어나온 황금 호랑이가 다시 돌진을 시작했다.

투두두두―!

건물 안으로 대피하려던 팀원들이 다급하게 지원 사격을 했지만, 소총의 물리력으로는 놈을 멈칫하게 만드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크허어엉!”

탱크처럼 돌진해 온 녀석의 아가리가 김혜나를 덮쳤다.

아찔해진 김혜나는 눈을 감았고―.

콰직!

곧이어 들려온 파열음에 천천히 눈을 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의 눈앞에는.

“서, 선―!”

박살 난 총기를 든 채로 앞을 막아서고 있는 김명환이 있었다.

김명환의 어깨 한쪽을 물고 있던 괴물이 그대로 고개를 움직였고, 그와 동시에 김명환의 한쪽 팔이 뜯겨 나갔다.

“선배애애―!!”

피 분수가 치솟으며 모두가 패닉에 빠진 그 순간.

콰과곽!

무언가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어?”

괴물의 바로 앞에 있던 김혜나는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언가 기다란 것이 괴물의 목을 관통한 상태였다.

그 직후.

콰과과과곽―

공중에서 떨어져 내린 기다란 창이 괴물의 몸에 마구잡이로 꽂혔다.

순식간에 고슴도치 꼴이 된 황금 호랑이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 직후 하늘에서 켈리칸을 타고 여자 한 명이 내려오고 있었다.

“……양하영 씨.”

부천과 강서구의 우두머리이자 최근에 가신이 된 여자.

괴물의 몸을 관통했던 창의 정체는 기다랗고 날카로운 뼈였다.

소문에 따르자면 그녀의 뼈로 만든 무기일 것이다.

지상으로 내려온 그녀를 향해 부탁했다.

“이분을 안전지대 안으로 데려다주세요. 최대한 빨리요.”

“알겠다. 너희는 괜찮나?”

“저희는 알아서 복귀할 수 있어요. 부상자는 없습니다.”

“무운을 빌지.”

김명환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는 양하영을 보며 김혜나는 떨리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자신의 힘으로는 잠시 멈추는 게 고작이었던 괴물이 순식간에 정리가 됐다.

가신이 되기 위해서는 저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겠지.

‘나는 약하다.’

자신이 힘이 없기 때문에 선배가 큰 부상을 입은 것만 같았다.

‘더 강해져야 해.’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어떻게?

‘직업……. 나에게 맞는 직업이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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