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Episode 36] 재정비 (3)
“읍!”
김명환이 신음하자 양하영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만 참아라. 이제 곧 안전지대다.”
“……네. 윽!”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금방 도착할 것 같기는 했다.
벌써부터 켈리칸의 아래쪽으로 안전구역으로 설정된 신도림 영지가 보이고 있었으니까.
‘확실히 날아가니까 금방이구나.’
도보로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가 겨우 수십 초 만에 절반 이상 줄어들어 있었다.
그러나 안락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후우웅!
켈리칸이 날갯짓을 할 때마다 몸이 흔들거리며 팔이 뜯겨져 나간 상처 부위가 쓰라렸다.
아직 지혈도 하지 못한 그곳을 바라보며 직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위험했어.’
아무리 총을 쏴 갈겨도 꿈쩍도 하지 않던 괴물.
아마 그대로 상황이 이어졌다면 팔 하나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멸했겠지.’
사실상 평범한 사냥 팀의 경우 총이 통하지 않는 몬스터는 천적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김명환은 무표정한 얼굴의 양하영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그런 괴물을 순식간에 죽여 버렸지.’
자신의 코앞에서 떨어져 내리던 창들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이 정도는 되어야 가신이 될 수 있다는 건가.’
너무나도 아득한 차이.
각성자니 비각성자니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능력을 각성하며 자신보다 한참 앞서 있다고 생각했던 김혜나와도 천지차이였다.
이제 와서 자신이 그런 특별한 능력을 얻는다고 해서 눈앞에 있는 여자처럼 강해질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냥 각성자가 아닌, 특별한 각성자가 되는 것.
확률로 따지자면 한없이 0%에 가깝게 수렴할 것이다.
‘너무 멀다.’
저런 힘을 가진 사람이 가신이 되는 걸까, 아니면 가신이 되면 저런 힘을 가질 수 있는 걸까.
모르겠다.
누나인 김가영이 가신이라고 해서 그 자리를 조금 만만하게 봤던 경향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함께했던 누나가 가신이 됐는데, 자신이라고 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희망 때문에 지금도 고블린을 사냥하던 시절부터 사용했던 활을 인벤토리 안에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것은 누나에게 직접 받은 활이었으니까.
혹시나 자신도 누나와 같은 계열의 능력을 각성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런 일은 펼쳐지지 않았다.
‘젠장…….’
어째서 나는 선택받지 못하는가.
분하고, 억울했다.
그래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김명환은 양하영을 향해서 말했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될 수 있죠?”
팔 한 짝이 통째로 뜯겨 나간 탓일까.
쓸데없는 소리를 하게 된다.
“운도 좋네요. 그런 힘을 가지고 시작하다니…….”
어쩌면 이게 진짜 내 모습인지도 모르지.
남의 행운을 질시하고 배 아파하는 평범하고 추한 인간.
하지만 그만큼 나는 그녀가 부러웠다.
이야기 속 주인공과 같은 힘을 가진 그녀가.
그때 양하영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너는 부모가 살아 있나?”
“……?”
김명환은 당황했다.
자신이 도발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곧장 패드립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분이 나빴지만, 자업자득이라 생각하며 대답했다.
“……아빠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살아 있어요.”
“그렇군.”
양하영은 가볍게 한마디 덧붙였다.
“나는 둘 다 죽었다.”
“…….”
그리고.
“내 손으로 죽였지.”
충격적인 말이 이어졌다.
“그것은 일종의 사고였다.”
담담히 이어지는 말.
“빌어먹을 괴물 자식이 창문을 깨고 집안으로 들어왔고, 덕분에 나는 내가 가진 힘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그러나 내 힘은 그때의 내가 통제하기에는 너무 강력했고, 폭주하고 말았지.”
목소리의 고저 없이.
“괴물 놈을 죽일 수는 있었지만, 그보다 먼저 나를 안고 있던 어머니가 먼저 죽었고.”
이어졌다.
“몬스터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아버지가 죽었다.”
아무런 감정 없어 보이는 그녀의 두 눈이 김명환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부산에 있는 이들은 가족과 함께 살아남은 이들이 꽤 되더군. 전부 저 남자의 그늘 아래에 있었던 덕분이겠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나는 네가 부럽다. 너는 내 힘이 부러운 모양이니 할 수만 있다면 너와 입장을 바꿔 주고 싶군.”
“…….”
김명환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네가 마음에 든다. 동료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질 수 있는 인간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침묵이 이어진 것은 잠깐이었다.
이윽고 안전지대를 보호하고 있는 장벽을 통과하는 느낌과 함께 오른쪽 어깨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니까.
양하영은 어느 건물의 입구에 내려선 뒤 김명환을 둘러메고 들어갔다.
한쪽 손에는 뜯겨 나간 김명환의 팔도 함께하고 있었다.
“응급환자다.”
오른쪽 팔이 뜯겨 나간 김명환은 누가 보기에도 응급환자였기에 곧바로 침상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침상에 누운 김명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양하영이 입을 열었다.
“내가 미리 힘에 대해 알았더라면, 미리 알고 힘을 컨트롤하는 연습을 했더라면 내 부모는 여전히 살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괴물이 나타났을 때 부모의 품에 숨는 걸 택했지. 그편이 더 안락했거든.”
무표정으로 일관되어 있던 그녀의 표정에 처음으로 씁쓸한 감정이 묻어났다.
“사람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그러니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라. 그래야 후회가 없다.”
김명환이 무어라 말을 걸기도 전에 양하영은 응급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녀가 나간 방향을 바라보며 뒤늦은 후회를 삼켰다.
‘……사과라도 했어야 했는데.’
자신의 목숨과 동료들의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이었다.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었다고는 해도 은인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됐었는데.
더군다나 그게 그 사람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버튼이었을 줄은…….
“하아…….”
되는 일이 없었다.
그때 새하얀 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다가와 상처를 확인하더니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우우웅―
힐을 사용하여 뜯겨 나간 팔을 이어 붙이기 시작했다.
뼈가 맞추어지고, 그 위로 새로운 근육이 돋아나며 손상된 살점이 빠르게 차올랐다.
놀랍게도 팔 한쪽이 뜯겨 나갔던 치명상이 겨우 몇 분 만에 회복이 되었다.
“하루 정도는 안정을 취해 주십시오. 당분간 이질감이 들 수는 있지만, 움직이다 보면 금방 사라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선택받은 이들에 대한 봉사는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구세주이신 김재현 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
그때 간호사가 사제의 이름을 다급하게 불렀다.
“윤성민 사제님! 응급환자입니다!”
무어라 설교를 이어 나가려던 윤성민 사제는 그대로 자리를 떠나갔다.
김명환은 저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시민 구원교…….’
김재현이 발급하는 자격이 ‘시민권’이라는 데에서 만들어진 신흥 종교 단체였다.
이전에는 시민들 사이에서도 배척받는 쪽이었다.
김재현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알고 있어도 현대인에게 있어서 사이비란 그런 존재였으니까.
그러나 얼마 전부터 교세가 급격하게 확장하기 시작했다.
‘저 사이비에서만 힐 능력을 가진 사람이 다섯 명이나 쏟아져 나왔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김재현이 사람을 각성시킬 수 있다는 소문은 공공연하게 퍼져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을 치유하는 능력, 그것도 겨우 몇 분 만에 잘려 나간 팔다리를 복구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능력자가 다수 나타난 집단이었다.
‘재현 님이 직접 밀어주고 계신 게 아니라면 말이 안 되는 숫자다.’
다른 사이비 종교와는 확연히 다른 점.
시민 구원교가 떠받드는 김재현이라는 존재가 실존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믿는 이에게 각성 능력을 부여하는, 축복.
음식이나 물건을 만들어 내는, 창조.
무엇보다도 몬스터를 몰아내는 안전지대, 성역.
이 모든 것들이 시민 구원교의 정당성을 확립해 주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교회에 돈을 갖다 바치라는 것도, 부지런히 교회에 나와 기도하라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김재현’을 믿을 것.
시민 구원교가 설교하는 것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김재현을 믿으면 믿을수록.
‘강해질 수 있지.’
이건 이미 헌터들 사이에서는 널리 퍼져 있던 상식이었다.
김재현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면서 신체 능력이 올라가는 것을 직접 경험한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으니까.
‘……종교 활동이라도 해야 하나?’
김재현에 대한 믿음이라면 김명환도 어디 가서 꿇리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초창기부터 가신으로 활동했던 김가영과 하동건이 가족이기도 했으니까.
‘힐 능력이 생기면 파티의 안전성이 크게 올라가게 되겠지.’
하지만.
‘힐 능력이 생긴다고 해서, 그 괴물 놈을 잡을 수 있을까?’
아니.
그저 고통스러운 시간만 늘어나게 될 것이다.
‘……사수로 전직하게 되면 가능할까?’
모르겠다.
총의 위력이 올라간다고는 해도 금속 덩어리나 마찬가지인 괴물의 몸을 꿰뚫을 수 있는 걸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양하영이 마지막에 남기고 간 말을 곱씹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라. 그래야 후회가 없다.]
그래.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기 위해 계속해서 발버둥 쳐야만 한다.
“저기요. 간호사님.”
“네?”
“이제 가도 되나요? 재현 님께 받은 퀘스트가 있어서.”
“퀘스트?”
다행히도 간호사는 퀘스트에 대한 것을 알고 있었다.
퀘스트를 받고 이곳 응급실에 온 윤성민 사제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떠들어 댔으니까.
퀘스트라는 것이 김재현이 직접 지시를 내리는 것이라는 것도 알았고.
얼른 김명환의 몸 상태를 확인해 준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문제없네요.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병원 밖으로 나온 김명환은 가볍게 달리기 시작했다.
목표는 부산의 전포역과 이어진 남대문이 설치되어 있는 여의도.
그곳은 신도림 영지와 서울역 영지가 약 500m 간격을 두고 맞닿아 있는 곳이었기에 몬스터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도착했다.’
근처를 보니 평소보다 붐비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과 비슷한 종류의 퀘스트를 받은 이들이겠지.
지이잉―
남대문을 넘어 전포역 안으로 들어가자.
“전사 퀘스트를 받으신 분들은 이쪽으로 와 주십시오!”
“사수 퀘스트를 받으신 분은 여기입니다! 사수분들은 여기로 모여 주세요!”
김명환은 사수 퀘스트를 받은 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많군.’
적어도 백 명은 넘어가는 것 같았다.
전사 쪽과 합치면 족히 수백 명.
파티 내에서 퀘스트를 받은 사람은 혼자뿐이었기에 나름 자신을 특별하다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었다.
“사수분 중에 총기가 없으신 분들 계신가요?”
김명환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전투 중에 총기가 박살 났습니다.”
“쓰시던 총의 종류는요?”
“K-2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총기를 지급 받던 그때 익숙한 얼굴의 남자 하나가 담당자를 향해 물었다.
“저기요? 전사도 사수도 아닌 사람은 어디로 가면 되는 거죠?”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박성준.’
헌터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사람이었으니까.
화살 관련 이능을 각성한 사람이었다.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또한, 한쪽에 열댓 명 정도가 모여 있는 것도 보였다.
‘전사도 사수도 아닌 직업이 있다.’
자신보다 특별한 직업 퀘스트를 받은 이들.
아마도 저들은 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거겠지.
박성준처럼.
실제로 대부분이 아는 얼굴들이었다.
헌터들 사이에서도 강력하기로 소문난 이들.
김혜나처럼 각성한 이들이 그곳에 모여 있는 것이다.
‘……부럽다.’
자신과는 달리 찬란한 빛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저들은 언젠가 가신이 되어 날개를 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였다.
웬 꼬맹이 하나가 김명환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아저씨들은 헌터들이죠?”
몬스터를 잡아서 돈을 버는 직종.
그래서 시민들 사이에서는 ‘헌터’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중이었다.
“도영아! 아이고. 죄송해요. 우리 애가 호기심이 많아서…….”
아무래도 총기를 들고 있는 어른이 잔뜩 몰려 있다 보니 궁금했던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그때 아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저도! 저도 아저씨처럼 헌터가 될 거예요! 몬스터를 잡는 헌터! 저도 아저씨처럼 되고 싶어요! 부러워!”
부럽다는 말을 듣는 순간, 누군가 머리를 세게 내려친 것만 같은 충격이 전해졌다.
김명환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아이의 엄마가 대신 허리를 숙이며 사과를 해 왔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도영아! 방해하면 안 돼! 얼른 가자.”
급히 자리를 떠나는 엄마의 손에 이끌리며 아이는 마지막까지 소리쳤다.
“아저씨 화이팅!”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푸하하하.”
“고놈 그거 당돌한 놈이네.”
“크면 거물이 될지도 모르겠는걸?”
그들 속에 섞여서 피식 미소 지은 김명환은 내심 깨달았다.
‘누군가에게는 나도 부러움의 대상이구나.’
부러움의 대상이자, 목표.
자신의 앞에 각성자들이 있는 만큼, 이 길 위에는 자신의 등 뒤에 있는 이들도 얼마든지 존재했다.
그런 이들은 사수 직업으로 전직하는 자신을 보며 부러워할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
김명환의 인생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계속 나아가자.’
그는 길 위에 있는 것뿐이었다.
‘계속해서 나아간다면…….’
언젠가.
저들이 서 있는 곳에 도착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