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168화 (169/175)

168화 [Episode 36] 재정비 (4)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

소위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이 법칙은 안전 불감증을 경고하는 것이다.

한 번의 대참사가 발생하기 전에 300건의 징후와 29건의 경미한 사고가 있다는 소리로, 큰 사고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는 뜻이다.

김다빈의 보고를 듣던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김명환 씨 같은 케이스가 벌써 이번이 31번째라고요?”

“그렇습니다.”

총기가 통하지 않는 몬스터와 조우해 중상을 입은 케이스가 벌써 30건을 넘어섰다.

법칙의 숫자가 증명하듯 총기가 통하지 않는 몬스터와 조우한 경우만 따지면 수백 건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는 상당히 좋지 않은 징조였다.

내가 심각한 표정을 짓자 회의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딱딱하게 굳은 분위기를 풀기 위해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째서죠? 안전지대 근처에 있는 위험한 몬스터라면 가신 분들이 매일 잡아내고 있을 텐데요.”

김다빈이 대답했다.

“사망자가 없었던 것은 가신 분들의 노고 덕분입니다. 전선에 참여하는 숫자가 늘어나면서 사고 벌어지는 빈도는 낮아지고 있어 유의미합니다.”

바꿔 말하면, 가신들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사망자가 발생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이해할 수 없네요.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몬스터라면 이미 모두 처리했을 텐데요.”

생쥐를 이용해 광범위한 탐색이 가능한 서예진과 천리안이 있는 유한길이 합심하여 위협이 되는 몬스터들을 선별하고, 나머지 가신들이 그것들을 요격하는 방식으로 서울 일대를 싹 정리했다.

거기다 아이스 드래곤의 등장으로 잡몹이 아예 쓸려 나가면서 위험도가 상당히 내려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가신들에게 구역을 순찰하며 위협이 되는 몬스터를 정리하게끔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 정도로는 부족했던 것 같았다.

“몬스터 리젠 현상이 그 원인이라고 추측됩니다.”

몬스터 리젠.

말 그대로 몬스터가 죽고 난 뒤 다시 나타나는 현상을 말했다.

안전 구역 바깥의 몬스터를 몇 번이나 토벌해도 계속해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현상과 새롭게 시민으로 합류한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가설이었다.

“하지만 몬스터 리젠 현상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고 결론 내리지 않았었나요?”

부산이나 울산에서 겪은 리젠의 대부분이 오크나 고블린이었다.

생존자들이 겪었던 갑작스레 나타나는 몬스터들도 기껏해야 오크 정도 수준이 대다수였기에 위협은 되지 않을 거라 판단했건만.

“실질적인 데이터를 비교해 본 결과, 부산과 서울에 커다란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지역마다 리젠되는 몬스터의 수준에 커다란 차이가 있었습니다.”

김다빈이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비교해 주었다.

“부산 외곽에 출현하는 몬스터들은 대부분이 고블린들로 평균 레벨을 따지자면 13정도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서울의 경우 평균 레벨은 약 35정도로 고레벨 몬스터들의 출현 빈도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즉.

“서울에서는 고레벨 몬스터들이 리젠된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쉽게 말해서 부산이 저렙 사냥터였다면, 서울은 고렙 사냥터라는 소리였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몬스터의 수준이 다른 것은 처음부터 느꼈으니까.’

부산에서는 몇 번 마주치기도 힘들었던 보스급 몬스터들만 수십 마리가 있었던 것만 봐도 수준의 차이는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고등급 각성자들도 훨씬 많은 편이었지. 각성자들의 수준과 몬스터들의 수준에 상관관계가 있는 건가?’

한창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김다빈이 입을 열었다.

“결정적으로 서울은 부산에 비해 몬스터 리젠 속도도 무척 빨랐습니다. 아직은 가설에 불과합니다만, 지역마다 몬스터의 수준과 총량, 그리고 컨셉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녀의 가설이 옳다고 가정한다면.

“계획을 크게 수정할 필요가 있군요.”

서울을 기점으로 경기도 전체로 영향력을 넓혀 가는 계획은 실패다.

기존 계획은 이러했다.

서울역과 신도림역에 설치된 영지를 중심으로 주변 몬스터들을 토벌하며 커다란 공백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몬스터들에게 서울이 우리의 영역이라는 걸 확실히 각인시키고, 경기도에 남아 있을 생존자들이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길목을 닦는 것이 전략이었다.

그렇기에 30레벨 이상으로 이루어진 사냥팀을 적극적으로 투입하여 몬스터 사냥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지속적으로 위협적인 몬스터들이 리젠 된다?

‘플랜A는 폐기다.’

솔직히 지금까지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게 기적이라고 봐야 했다.

당장 어느 팀이 전멸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이었으니까.

‘차라리 서울을 공략할 때처럼 전초기지를 만들고, 작위가 있는 가신을 투입해 영지를 건설하는 게 효율적이다.’

플랜B.

서울에서 했던 짓을 전국 각지에서 반복하는 것이다.

계획을 점검하며 한국의 지도를 확인하던 와중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요. 울산은 왜 달랐던 거죠?”

흡혈귀들의 왕, 진조를 처치한 이후부터는 울산에서도 몬스터 리젠 현상이 보고되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전에는 울산에 있는 몬스터라고는 오로지 흡혈귀뿐이었다.

오죽하면 몬스터에 대한 존재를 대부분의 생존자들이 모르고 있었겠는가.

“만약에 몬스터의 수준이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울산에서도 꽤 수준 높은 몬스터들이 나타나야 정상 아닌가요?”

흡혈귀들의 수준은 굉장히 높았다.

특히 진조의 경우 서울에서도 이만한 괴물은 아직 만나 보질 못했다.

아, 북한 쪽에서 날아온 아이스 드래곤은 빼고.

“울산에서 리젠 되는 몬스터라고 해 봐야 오크나 고블린 정도라고 했지 않았나요? 다빈 씨의 가설대로라면 흡혈귀들이 나타났어야 할 것 같은데요.”

“그건…….”

잠시 고민하던 김다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재현 님께서 직접 흡혈귀를 심판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강림을 사용한 것을 말하는 듯했다.

처음 그 스킬을 사용하여 시스템의 힘으로 반 강제적으로 놈을 제압했었으니까.

‘하지만 해치운 것은 오언주가 직접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러다 문득 그 뒤에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다.

‘아.’

진조가 죽고 나서 여자 흡혈귀 하나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진조의 부하 중 하나였던 상급 흡혈귀.

조금 다른 것은 의식이 절정에 이르던 때 진조에게서 흘러나오던 불길한 기운을 품고 있는 놈이었다는 것이다.

그 흡혈귀를 죽인 직후 무언가 불길한 기운이 영역 내로 침범했고, 그것들은 이내 던전의 형태로 발현되었다.

‘찝찝한 느낌이 들어서 발견되는 족족 모두 공략해 버렸지.’

그것들을 모두 공략한 이후, 흡혈귀를 테마로 한 인스턴트 던전을 제작하는 게 가능해졌었다.

‘그게 흡혈귀와 관련된 힘을 흡수한 과정이었다면.’

흡혈귀로 가득하던 울산에서 더 이상 흡혈귀가 출현하지 않게 된 것도 납득할 수 있었다.

‘이게 영역 내에 자연 발생하는 던전들과도 상관이 있는 거라면…….’

그렇다면 부산 주위에만 유독 몬스터들의 수준이 낮은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영지의 경우 그 영향력이 본진만큼 크지는 않다는 거겠지.’

조금 아쉬웠다.

‘영지의 크기가 좀 더 컸다면.’

경기도에 있는 생존자들을 흡수한다는 계획에도 탄력이 붙을 텐데.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그게 있었지.’

아이스 드래곤의 등장 이후, 사태 수습과 재정비에 집중한다고 잊고 있었던 사실.

‘……본가에 가 봐야겠군.’

* * *

낙동강 바로 옆에 위치한 승학산 중턱.

그곳에 존재하는 높이 5m, 폭 3m에 달하는 거대한 던전.

그 속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후우.”

김동혁, 김재현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요새 꽤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주된 업무는 부산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그가 공략하는 던전은 딱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것들로 그 수준도 굉장히 비범했다.

그러나 시민 버프와 혈족 버프를 함께 받아 모든 능력치가 극대화된 그에게 몬스터 사냥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주먹 한 방, 발차기 한 방이면 대부분의 몬스터들이 명을 달리했으니까.

지이이잉―

김동혁을 뱉어 낸 던전이 그 빛을 잃고 흔들리더니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여기도 이젠 공략 완료인가……. 이제야 좀 쉴 수 있겠네.”

사라진 던전을 바라보며 지긋지긋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방금까지 그가 있었던 곳은 죽음의 성채.

이 던전 한 곳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의 숫자만 거의 수만에 이르렀다.

칼과 창, 화살 등으로 중무장한 해골 병사들과 끊임없이 비명을 질러 대는 영혼들로 가득한 끔찍한 장소로, 잡몹에 불과한 놈들의 레벨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달하는 괴물 같은 던전이었다.

게다가 보스몹으로 있는 ‘데스나이트’의 경우 55레벨 몬스터로 무척이나 위험한 놈이었다.

‘이런 놈들이 밖으로 나온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겠지.’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지고 있는 그도 공략하는 데 무려 열흘이 넘는 시간이 걸린 곳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4번 만 공략하면 된다는 것.

한 달이 넘어가는 사투 끝에 던전을 없앨 수 있었다.

‘아들은 괜찮을 거라고는 했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김재현도 안전을 확신했다면 이런 위험한 던전 공략을 부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지.’

김동혁은 천천히 산을 걸어 내려갔다.

‘피곤하군.’

던전 내에서는 정신없이 싸우느라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런 곳에서 무려 열흘이나 갇혀 있었으니 피로가 상당했다.

지금도 악으로 깡으로 버텨 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차장에 도착한 순간 그 피로가 싹 날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흐흐흐.’

눈앞에 놓여 있는 슈퍼카.

이제 이런 차쯤은 열 대도 구입이 가능했다.

돈이라면 넘쳐났으니까.

매일 같이 고레벨 몬스터들을 학살하다시피 잡아 댔는데, 돈이 부족할 리가 없었다.

그저 아들이 슈퍼카를 복원하여 상점에 등록해 주기만 하면 직접 살 수 있었다.

‘피곤해도 드라이브는 하고 가야지. 오래 기다렸지?’

던전 공략을 위해 열흘이라는 시간을 비운만큼 차가 더러워져 있기는 했지만, 상관없었다.

‘세차하면 그만이니까!’

트렁크에서 세차 용품을 꺼낸 그는 익숙한 손길로 세차를 시작했다.

“흐흥―♪흠 흐흥♪”

금세 광이 나기 시작하는 차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때였다.

“아빠. 오랜만이네요.”

아들이었다.

“어? 재현아? 네가 여긴 왜…….”

“그냥요. 보고 싶어서 왔죠.”

“어어, 그래.”

아들의 얼굴은 반가웠지만, 무언가 불안했다.

아들이 이런 식으로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을 때는, 항상 무언가 일을 들고 왔기 때문이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그, 그럴래?”

“하하. 마침 아빠가 조금 피곤하던 참이라…….”

그때였다.

쏴아아아

허공에서 물방울이 맺히더니 기다란 몸을 가진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 순간 김동혁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며 호신강기가 그의 몸을 감쌌다.

“아빠. 그거 몬스터 아니에요.”

“어엉? 그러니?”

그리고.

우웅―! 촤아아아아―

허공에 나타났던 물지렁이가 물줄기를 뿜어내더니 순식간에 세차가 끝이 났다.

그리고.

“어때요? 깨끗하죠?”

자랑스럽게 웃는 아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며 대답했다.

“그, 그렇구나.”

그 순간, 아들의 입이 열렸다.

“아빠. 부탁할 게 좀 있는데요.”

“…….”

벌써 몇 번이나 봤던 눈빛이었다.

무언가 힘든 일을 시킬 때마다 마주했던 눈빛.

“서울에 살아 볼 생각은 없어요? 엄마랑 같이요.”

어째서 불안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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