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Episode 37] 확장 (1)
별채가 완공되며 서울에 반경 수십 킬로미터의 안전지대가 생성되었다.
그와 함께 오언주와 하동건도 자유를 얻었다.
“현재 전초기지를 유지해야만 하는 곳은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영광, 울진, 경주 이렇게 세 곳입니다.”
고리 원전이 있는 부산의 경우 이번에 집구석 영역이 확장되면서 영역 안으로 편입되었다.
그래서 더는 전초기지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울산의 경우 방사능 사태가 있고 난 이후 생존자 전원을 흡수하여 부산으로 이주한 상태였기에 굳이 전초기지를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됐다.
이러한 이유로 전초기지를 유지해야만 하는 지역은 다른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세 곳뿐.
“월성 기지의 경우 최형준 씨가, 한울 기지의 경우 유한길 씨가, 한빛 기지의 경우 서예진 씨가 맡아서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러한 배치를 한 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경주에 있는 월성기지의 경우 부산의 집구석 영역과 가까운 데다 몬스터 토벌을 진행하며 나름대로 정보가 많은 지역이었다.
울산과 경주를 포함한 경상남도 부근에서 등장하는 몬스터의 평균 레벨은 20대 초반 정도로 부산에서보다 조금 높은 정도.
굳이 그 주변을 탐색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최형준을 배치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지역에 정찰 능력에 특화된 유한길과 서예진을 배치한 것에는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었다.
“두 사람의 능력을 필두로 주변을 정찰하며 몬스터의 수준을 천천히 파악해 나갈 계획입니다.”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경계선에 위치한 한울기지와 전라남도 서해.
둘 다 원자력 발전소만 손에 넣었을 뿐 정보가 한없이 부족한 지역이었다.
“이곳을 거점 삼아 주요 도시를 점령하고, 그곳에 영지의 토대가 될 전초기지를 건설하는 게 1차 목표입니다.”
김다빈의 깔끔한 발표를 들은 뒤 질문을 던졌다.
“정확한 가용 병력은 어떻게 되죠?”
여기서 가용 병력이란 가신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1차 목표는 광주, 대구, 대전, 인천 등의 인구가 많은 대도시의 중심에 전초기지를 건설하는 것이다.
나중에 영지를 건설할 때에는 사냥팀의 도움이 필수불가결이겠지만, 전초기지는 그렇지 않았다.
“아까 말씀드렸던 최형준, 유한길, 서예진을 원전 기지에 배치하고, 행정 업무를 진행할 저와 유혜린 씨를 제외한 총원 80명이 이번 작전에 참여하게 됩니다.”
10명씩, 8개 팀.
전초기지 건설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팀원 구성이었다.
8개의 팀은 방금 언급했던 광역시들과 인구가 많은 경기도 지역을 공략하게 된다.
“제주도나 울릉도 쪽은 어떻게 됐나요?”
이전 회의에서 언급되었던 내용이었기 때문에 물어봤다.
“이번 작전을 모두 성공하게 되면 추후에 따로 팀을 편성할 계획입니다.”
우선은 내륙에 집중한다는 뜻이었다.
“알겠습니다. 본격적인 작전 시행일은 언제가 적당할까요?”
“충분한 휴식을 부여한 후 작전을 시행했으면 합니다.”
“좋습니다. 닷새간 휴식을 취한 뒤 작전을 시행하도록 하죠.”
그렇게 몬스터 사냥으로 혹사당하던 가신들에게 5일간의 짧은 휴식이 주어졌다.
* * *
“여기 등심 3인분 추가요!”
“네!”
신도림을 중심으로 새롭게 들어선 번화가.
양하영은 부하들이 술과 고기를 즐기며 웃고 떠드는 모습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어어? 언니! 어디 가요?”
“담배.”
“저도!”
고깃집 바깥으로 나간 양하영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자 따라 나온 여자가 손가락에 불을 피워 대령했다.
폐 속 깊이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자 담배 앞부분이 붉게 타들어 갔다.
“역시 언니는 담배 피우는 모습이 제일 섹시하다니까.”
“좀 떨어져라. 불편하다.”
“시러용! 더 달라붙을 건데?”
오히려 자신의 품속을 파고드는 여자의 얼굴을 향해 담배 연기를 뱉어 냈다.
정작 얼굴에 담배 연기를 맞은 여자는 오히려 즐겁다는 표정으로 숨을 들이켰다.
“하아. 간접흡연 최고―.”
이내 양하영이 힘으로 그녀를 밀어내자 어쩔 수 없이 떨어진 여자가 자신의 담배에도 불을 붙이며 물었다.
“언니, 무슨 일 있었어요? 오랜만에 휴가인데, 왜 이렇게 저기압이야.”
양하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수빈.”
“응?”
“행복한가?”
뜬금없는 질문에 최수빈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한참 동안이나 생각했다.
“그게 무슨 의미?”
“말 그대로다.”
“행복……?”
잠시 진지하게 생각하던 최수빈이 대답했다.
“굳이 따지자면 그렇죠……? 먹을 것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좋고, 몬스터 사냥이야 조금 귀찮기는 해도 예전과 비교해서 엄청 강해졌고. 술도 양껏 마시고, 또 이렇게 담배도 마음껏 피우고!”
손가락을 튕기며 담뱃재를 털어 버린 최수빈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완전 최고 아닌가?”
“그런가.”
잠시 텀을 두고 최수빈의 말을 곱씹어 보던 양하영이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양하영은 생각했다.
역시 자신이 이상한 것 같다고.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자신의 정신은 심각한 손상을 입은 게 확실했다.
일상의 행복이란 것이 너무나 흐릿하게 느껴졌다.
마치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현실 감각이 없었다.
그에 비해 슬픔은 지나치게 뚜렷했다.
매일 밤 악몽으로 되새김질하는 그날의 기억처럼.
‘이상하군.’
그때 그 남자에게 왜 그때의 이야기를 했던 걸까.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당장 자신과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최수빈에게도 한 적 없던 이야기였으니까.
그러고 보면 최수빈은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당장 자신의 나이도 알지 못했으니까.
“최수빈.”
“응?”
“네 나이가 스물둘이라 그랬나?”
“그런데?”
“나는 이제 열아홉이다.”
최수빈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에에엑? 진짜로?”
“정말이다.”
조숙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여자치고는 키가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178cm의 훤칠한 신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세상이 망한 뒤 어려보이는 것보다는 적당히 나이 들어 보이는 게 여러모로 편리했기 때문에 굳이 나이를 밝히지 않았다.
“진짜 충격이다, 언니.”
“……왜 아직도 언니인 거지?”
“마음에 안 들어?”
“그런 건 아니다만.”
“그럼, 그냥 이렇게 부르자, 언니. 이게 익숙해지기도 했고. 근데, 언니.”
최수빈이 은근슬쩍 팔짱을 껴 오며 물었다.
“갑자기 왜 나한테만 나이를 알려 준 거야? 이건 역시 그린라이트?”
“그냥. 그러고 싶은 기분이었다.”
말하면서 깨달았다.
그 남자에게 자신의 속 이야기를 꺼낸 것도 그냥 그러고 싶은 기분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도.
“부모님은 나 때문에 돌아가셨다.”
“……응?”
“정확히는 내가 직접 죽였지.”
“…….”
생판 모르는 남에게 한번 꺼냈던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좀 더 능숙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해 나갈 수 있었다.
매일 악몽으로 되새김질하는 장면을 입으로 뱉어 내어 전달했다.
최수빈은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어 주었다.
“…….”
한동안은 잔잔한 침묵이 흘렀고, 그 시간만큼 담배의 길이가 줄어들었다.
고깃집 안에서 시끄럽게 웃고 떠드는 소리만 왱왱 울려댔다.
이윽고 담배가 다 타고 필터만 남았을 때, 최수빈이 입을 열어 왔다.
“언니. 이렇게 앉아 봐.”
“……갑자기?”
“됐으니까, 얼른!”
최수빈은 키가 작은 편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양하영에게 안길 때면 가슴이 아닌 배에 얼굴을 파묻고는 했었다.
귀찮다는 표정으로 쭈그려 앉으니 졸지에 상황이 역전됐다.
이제는 양하영이 최수빈을 올려다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
최수빈이 양하영을 품에 안아 주었다.
자신과 비교하면 한없이 작은 크기의 손이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리고 말했다.
“괜찮아. 언니 잘못이 아니야.”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뒤늦게 깨달았다.
“언니의 부모님도 언니가 살아남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셨을 거야.”
그 말을 듣고 싶었다는 걸.
그리고.
‘……!’
마지막 순간에 보았던 어머니의 입 모양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전하려고 필사적이던 그 모습이.
수많은 뼈에 찔려 고통스러웠을 그 상황에서도 억지로 웃으며 전하려던 그 말이 무엇인지.
(다행……이다. 다행…….)
알 수 있었다.
눈이 뜨거웠다.
이내 뺨을 타고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양하영은 최수빈의 품에 더욱 깊숙이 얼굴을 파묻었다.
“……그동안 맘고생 많았지?”
등을 토닥이는 최수빈의 손길을 느끼며 한동안 그렇게 가만히 울었다.
* * *
꾸아아아악―!
(말도 안 돼애애애―!)
한 공사 현장에서 토용이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꾸애애애액!
(이럴 순 없어!)
믿을 수 없는 일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최근 한 인간의 등장으로 작업 속도에 탄력이 붙었다.
차를 타고 다니며 빠른 속도로 도로를 정비해 버리는 여자의 존재 덕분에 일거리가 크게 줄어들었다.
특히 지루하기 짝이 없던 도로 정비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가장 기뻤다.
게다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여자의 힘이 한층 더 강력해지며 건물까지 수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토용이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지금 욕설을 하고 있는 토용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꾸르르륵 꾸르르르륵!
(이제야 제대로 된 휴가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결과만 말하자면, 그것은 한여름 밤의 꿈일 뿐이었다.
일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일해야 할 영역이 몇 배로 늘어나 버렸으니까.
꾸르르륵! 꾸리릭!
(이건 분명 악몽일 거야! 꿈인 게 분명해!)
애써 현실을 부정해 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반쯤 박살 난 도시의 모습은 앞으로 남은 일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알려 주고 있었으니까.
주변에 신나게 엉덩이를 흔들어 대며 일하고 있는 토용이들이 그의 말을 듣고는 첨언했다.
꾸르르르르륵! 꾸르리륵 꾸리리리릭!
(정말이지 그 여자 때문에 큰일 날 뻔했지! 지루한 휴가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얼마나 전전긍긍했었는데!)
옆에서 금이 간 건물을 보수하던 토용이가 크게 공감하며 소리쳤다.
꾹! 꾸그그르륵? 꾸릭!
(후우! 그 여자가 휴가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나? 꼴좋군!)
여전히 일하는 데에 집중하던 토용이 한 마리가 화를 내며 거들었다.
꾸르륵? 꾸리리릭 꾸리리리릭! 꾸르리리기리릭!)
(그 여자를 실제로 본 적 있나? 일감을 독차지하며 빠르게 해치워 버리고는 나를 향해 자랑하듯이 손을 흔들더군! 그때 그날의 치욕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
끄르르르륵! 꾸리릭!
(맞아! 나도 당했어!)
꾸릭!
(나도!)
여기저기에서 피해를 경험한 토용이들이 불만을 토해 냈다.
꾸르르르리릭!
(그 여자는 평생 휴가나 보내라지!)
꾸릭! 꾸르르륵!
(옳소! 평생 현장에는 얼씬도 하지 마라!)
그들의 대화를 듣던 토용이가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꾸아애애애애액!!
(나도 가고 싶다고 휴가아아아!!)
동료 토용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반응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토용이가 바로 옆에 있던 토용이에게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꾸륵! 꾸리리릭 꾸르르기릭!
(너! 그렇게 일이 좋으면 내 일도 네가 해라!)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꾸륵― 꾸르륵?! 꾸릭?!
(지― 진심이냐?! 정말 내가 한다?!)
바로 옆에 있던 토용이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꾸, 꾸르르그륵!
(내, 내 일은 물론이고 니 일까지 내가 해 버릴 거라고!)
토용이는 잠시 당황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꾸르륵?
(……그럴래?)
그 순간.
꾸르르르륵!
(넌 진짜 좋은 놈이구나!)
일거리가 늘어난 토용이가 감동하며 몸을 떨어 댔다.
그러자.
꾸, 꾸륵! 꾸르르륵!
(나, 나도! 내게도 일거리를 더 줘!)
꾸륵! 꾸리리리릭!
(그만! 이 일거리는 모두 내 거야!)
그 모습을 보며 게으름쟁이 토용이는 번뜩이는 깨달음을 얻고야 말았다.
꾸륵! 꾸르르륵! 꾸르르르륵?
(자자! 내 앞에 줄 서! 앞으로 내 일거리를 대신할 권리를 받고 싶은 사람?)
주변에 있던 토용이들이 미친 듯이 호응해 왔다.
꾸륵! 꾸륵! 꾸르륵!
(저요! 저요! 저요오오!)
그 모습을 보며 게으름뱅이 토용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