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Episode 37] 확장 (3)
평균 레벨이 높고, 증식 속도가 빠르며, 여왕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몬스터 집단.
자이언트 말벌 군체 말고도 후보는 두 개가 더 있었다.
이제 종속의 계약을 맺을 자리가 딱 하나 남아 있었던지라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중 제일 자이언트 말벌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이걸로 기동력을 확보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켈리칸을 길들이기 전과 후.
가신들의 영향력 자체가 달라졌다.
그 당시 전국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를 선점하여 전초기지를 지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이후 서울에 진출할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켈리칸의 기동력 덕분이었다.
하지만.
‘종속의 계약으로 길들일 수 있는 켈리칸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지.’
가신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던 시절에는 문제없었지만, 85명으로 늘어난 지금은 모두에게 켈리칸을 공급해 줄 수 없었다.
지금만 해도 경기도가 작전 지역인 팀원들은 전원이 발로 뛰어야 하는 실정이었으니까.
‘만약 말벌들을 타고 다닐 수 있게 된다면 가신들뿐만 아니라 사냥 팀 전원이 기동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오토바이나 자전거 등을 지급하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었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우선은…….’
얌전해진 여왕을 향해 명령했다.
[인간을 공격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 순간이었다.
여왕의 몸에서 대량의 페로몬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위이이잉―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말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절대자의 눈으로도 페로몬을 통해 어떤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지까지는 파악할 수 없었으나, 짐작하는 건 가능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가신들을 향해 그렇게 격렬하게 달려들던 말벌들이 더 이상 공격해 오지 않았으니까.
‘내 명령이 적용됐나 보군.’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그러나 공격하지 않는 것은 한 번이라도 여왕벌의 근처에 다가온 적이 있는 개체들뿐이었다.
아까 전의 교전으로 날개에 문제가 생긴 것들은 여전히 가신들을 향해 적대감을 드러내며 가신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게다가 여왕의 페로몬을 경험한 놈들이라고 해도 가신들을 경계하는 것은 여전했다.
[양하영 씨. 근처에 있는 말벌 하나를 공격해 보시겠어요?]
양하영이 자신의 몸에서 뼈창을 가볍게 뽑아내어 말벌 하나를 향해 던졌고.
푸욱!
몸통을 관통하는 순간.
왜애애애앵―
근처에 있던 말벌들이 동시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여왕의 명령이 절대적이지는 않나 보네.’
아마도 여왕은 공격받는다고 해도 인간을 공격하진 않을 것이다.
종속의 계약을 맺은 대상에게 내 명령은 절대적이었으니까.
일례로 켈리칸들은 직접적인 공격을 받는다고 해도 인간을 공격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말벌들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여왕의 명령을 수용하여 인간을 먼저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직접적인 위협이 가해졌을 경우에는 참지 않는다.
‘일종의 비선공 몬스터가 된 것뿐인가.’
뒤늦게 여왕이 페로몬을 뿌려 대며 말벌들을 진정시키는 광경이 보였다.
양하영을 향해 극도의 공격성을 뿜어 대던 말벌들이 조금씩 진정하기 시작했다.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
예상하고는 있었다.
여왕을 길들이기만 하면 군체 전체를 통제할 수 있게 되리란 것은 일종의 희망 사항이었다.
상태를 보아하니 복잡한 명령은 수용하기도 힘들어 보였고, 당장 여왕을 통하지 않으면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말벌들을 탈것으로 활용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쉽게 흘러가지는 않는군.’
지금이라도 말벌 하나하나에 종속의 계약을 맺으면 완벽한 통제가 가능하긴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곳에 횟수를 낭비할 수는 없었다.
‘몬스터 리젠을 억제하는 효과로 만족하는 수밖에.’
인간을 공격할 수 없게 된 말벌들이 노리게 될 먹이는 앞으로 몬스터들이 될 것이다.
어찌 됐든 목표는 이루었다.
5팀을 향해 명령했다.
[다들 물러나세요.]
가신들이 일제히 물러나자 상황이 종료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인명 구조를 최우선으로 하며 인천을 전체적으로 순찰해 주시기 바랍니다.]
5팀이 흩어지는 것을 확인하며 다른 채널에 신경을 집중했다.
‘강원도는 잘 진행 중인 거 같고.’
인구 밀도가 낮은 강원도 지역을 맡은 4팀은 뿔뿔이 흩어져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한울 원자력 발전소에 있는 유한길과 공조하여 생존자들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식량이나 생활필수품 등을 전달하는 것 그리고.
[스톤스네이크(Lv. 27)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33,247,466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주변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자연스레 분포 레벨을 파악하는 게 그들의 주 업무였다.
‘이 근방 몬스터 평균 레벨은 20대 후반 정도인가.’
가신들이 맡은 지역과 그곳에서 나온 몬스터의 레벨의 평균값을 정리해 나가고 있던 어느 순간이었다.
1팀이 광주에 도착한 것은.
‘……이건 또 무슨 일이지?’
하늘에서 내려다본 광주의 모습은 어딘가 묘했다.
‘왜 이렇게 멀쩡해?’
길가를 돌아다니는 거대 괴수는 물론이고, 그 흔한 오크나 고블린의 모습마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너져 있던 서울과는 정반대로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가 멀쩡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그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낀 것이 나뿐만은 아닌지 1팀의 팀장인 오언주가 입을 열었다.
“재현 님, 어떻게 할까요?”
[일단은 광주를 전체적으로 돌아보죠.]
수백 미터 상공에서 몇 바퀴를 돌아봤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몬스터도, 사람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광주 유스퀘어 쪽으로 가 주시겠어요?]
광주종합 버스터미널.
지도를 확인하며 전초기지를 삼기 가장 좋은 위치를 선별한 곳이었다.
오언주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영지의 크기가 반경 5km 정도였기에 가장 효율이 좋은 장소를 선택한 결과였다.
착륙해서 바라본 그곳의 풍경은 조금 이질적이었다.
“이상하네요.”
1팀에 소속된 김다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창문이 다 깨져 있네요.”
유리란 유리는 모조리 깨 부신 것 같은 모양새였다.
“아이, 싯팔.”
“……왜 그러시나요, 새롬 씨?”
박새롬이 몸을 오들오들 떨면서 대답했다.
“무서워서요. 그야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잖아요. 언니는 괜찮아요?”
“저는 괜찮습니다. 유령 계열 몬스터를 상대해 본 경험도 있으니까요.”
“예? 진짜 귀신이 나온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축복으로 간단히 제거할 수 있으니까.”
그러자 박새롬이 김다정에게 팔짱을 끼며 물었다.
“언니 옆에 붙어 있어도 돼요?”
“……전열을 유지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일 후방인걸요? 진짜로 귀, 귀신이라도 나오면 어떻게 해요? 뭐, 뭔가 감이 안 좋단 말이에요.”
김다정은 박새롬을 살짝 떼어 내며 팀원들에게 말했다.
“일단 모두 이쪽으로 모여 주세요. 언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환경인 거 같으니.”
1팀 전원이 모이자 김다정이 열 명 모두에게 매직 아머를 걸어 주었다.
레벨이 50에 다다른 김다정이 펼치는 매직 아머는 총탄은 물론이고, 웬만한 몬스터의 공격에는 끄떡도 없는 방호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직도 덜덜 떨고 있는 박새롬을 향해 한마디 해 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새롬 씨. 이 갑옷이 당신을 지켜 줄 겁니다.”
“저, 정말요?”
“네. 이 갑옷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격만 막아 주는 게 아니거든요. 귀신이 공격해 온다 해도 끄떡없습니다.”
“그, 그래도 뭔가―.”
오언주가 박새롬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럼, 탐색을 시작하겠습니다.”
박새롬의 불안이 팀원 전체로 퍼져 나가기 전에 끊어 낸 것이었다.
팀장인 오언주의 지시 아래 열 명 모두가 전열을 유지한 채 조심스레 터미널 안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터미널을 전체적으로 둘러봤지만, 아무런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것도 없다라.’
전초기지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그곳에 자리 잡은 보스급 몬스터를 사냥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식이라면 광주종합 버스터미널을 전초기지로 삼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애초에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광주 전체에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굳이 이곳에 전초기지를 건설하고, 영지를 지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애초에 영지를 짓는 것은 그 지역에 있는 생존자들을 위해 안전지대를 구축해 주기 위해서였으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소름 끼치는 침묵이 이어지던 그때,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홉 명.’
가장 후미에 있던 박새롬이 사라진 것이다.
‘절대자의 눈.’
다급히 박새롬을 대상으로 하여 절대자의 눈을 시전해 봤지만.
[대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처음 보는 시스템 로그만 떠오를 뿐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 * *
“아이 싯팔!!”
박새롬은 어두컴컴한 버스터미널 안을 있는 힘껏 내달리고 있었다.
방금까지 자신의 옆에 있던 동료들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크허어어엉!
“꺄아아아악!”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짐승의 이빨이 그녀를 덮쳐왔다.
콰직!
다행히 그녀의 몸을 보호하고 있던 매직 아머가 놈의 공격을 막아 주었다.
“이익!”
뒤늦게 그녀의 손에서 어둠이 뭉치며 단검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푸욱!
있는 힘껏 짐승의 목 부분을 찔렀다.
그러자 어둠에 휩싸여 있던 괴물의 모습이 부풀어 오르더니.
퍼엉!
풍선 터지듯 폭발해 버렸다.
쿠우우웅!
폭발의 여파에 그대로 휩쓸린 박새롬의 몸이 어둠 속의 벽에 처박혔다.
“으으으…….”
그때까지도 그녀의 몸을 보호해 주는 매직 아머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중이었다.
덕분에 피해는 크지 않았다.
“씨발…… 이것만 있으면 괜찮을 거라더니…….”
예전부터 박새롬의 불길한 예감은 유독 잘 들어맞고는 했다.
“씨이이. 아니잖아!!”
의미 없는 원망을 뒤로하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주변에는 온통 어둠으로 가득했다.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는 곳이 존재하기는 했는데, 바닥에 있는 유리 조각들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었다.
그나마 바깥으로 보이는 쪽에서는 확연하게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크르르르
전신이 어둠으로 이루어진 모습.
그림자가 늑대의 형상을 취한 듯한 모양새였다.
어느새 세 마리로 늘어난 그것들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박새롬이 그림자 단검을 앞으로 내밀며 으르렁거렸다.
“덤벼 이 개새끼들아. 니들도 다 터뜨려 줄게.”
그녀가 도발하자 괴물 세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컹컹!
-크허엉!
박새롬은 오히려 놈들에게 덤벼들며 단검을 찔러 댔다.
다람쥐처럼 재빠른 몸놀림으로 그림자 늑대의 목덜미를 정확하게 노렸고.
퍼어엉!
그때마다 그림자 늑대는 곧장 폭발해 버렸다.
퍼엉―!
그렇게 두 마리쯤 터트렸을 때.
촤아아악―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폭발의 여파를 무마시킨 그녀가 바닥에 착지하며 전방을 바라보았다.
-크르르르
-크르륵
분명 두 마리를 터뜨렸는데, 어느새 눈앞에는 다섯 마리의 괴물이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크륵!
뒤쪽으로 두 마리가 더 생성되어 그녀를 포위하는 중이었다.
더불어.
우웅
그동안 폭발로부터 그녀를 보호해 주던 김다정의 매직 아머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러면 나가린데.”
박새롬의 기세가 줄어든 것을 느낀 것일까.
-컹컹!
-컹!
앞뒤로 포위하고 있던 일곱 마리의 그림자 늑대가 동시에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에휴.”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슈슉―
이곳이 그녀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었다.
그림자 이동을 사용해 순식간에 출구에 가까운 곳으로 벗어난 박새롬이 크게 소리치며 달렸다.
“두고 보자 이 똥개들아!”
강렬한 빛이 새어 나오던 바깥으로 몸을 던진 순간.
“……에이, 싯팔.”
박새롬의 얼굴이 보기 좋게 찌그러졌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긴 대체 어디야?”
시간은 분명 대낮이었건만, 하늘이 온통 시꺼멓게 보였기 때문이다.
신비한 것은 건물의 창이나 바닥에 널린 유리 조각들에서 밝은 빛이 새어 나와 주변을 밝혀 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수십 수만 개의 조명이 도시에 존재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박새롬이 자신의 심경을 짧게 표현했다.
“X됐네,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