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Episode 38] 이면세계 (1)
‘가신 소환, 박새롬.’
[대상을 찾을 수 없습니다.]
‘강화.’
[대상을 찾을 수 없습니다.]
박새롬이 사라졌다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이것저것 시도해 봤지만, 모두 소용없었다.
광주가 유령도시가 된 것과 그녀가 사라진 것이 모종의 관계가 있으리라 확신한 나는 온 신경을 1팀에 쏟았다.
남아 있는 아홉 명의 가신을 기준으로 제각각 절대자의 눈을 활성화해 두었다.
“새롬 씨. 새롬 씨가 없어요!”
“어디로 간 거지?”
오언주가 1팀의 후미를 향해 물었다.
“새롬 씨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게 언제죠?”
“부, 분명 조금 전까지는 있었는데…….”
그 직후.
“엇―!”
냉기를 사용하는 쌍둥이 중 한 명인 문지훈이 사라졌다.
‘!’
절대자의 눈으로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던 나였음에도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뭐야……?”
눈앞에서 문지훈이 사라지는 것을 본 다른 팀원들이 패닉에 빠졌다.
김민호가 오언주를 향해 소리쳤다.
“지금 당장 여기에서 빠져 나가야 해요!”
하지만.
“팀장님이!”
이미 오언주와의 연결도 끊긴 상태였다.
사라진 팀원들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던 중 사라진 것이다.
대신.
‘알았다.’
덕분에 사라지게 되는 조건을 알 수 있었다.
‘거울.’
오언주가 사라진 것은 1팀의 좌측에 있는 거울 쪽을 바라본 직후였다.
문지훈이 사라졌던 것도 그곳을 바라보는 순간이었고.
‘가신 소환, 오언주, 문지훈.’
[대상을 찾을 수 없습니다.]
두 사람 다 박새롬의 경우처럼 아예 감지가 되지 않았다.
원인을 파악한 나는 곧바로 결단을 내렸다.
‘강화, 신동훈.’
신동훈.
가신 중에서 유일하게 시간 관련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뒤늦게 가신이 된 이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나와 종속의 계약을 맺은 이였다.
이유는 당연히 그가 가지고 있는 되감기 능력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따로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이 강화가 적용되는 순간, 시간이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가 능력을 사용한 것이다.
신동훈에게 내가 ‘강화’를 사용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되감기 능력을 사용해 달라고 말해 놓은 덕분이었다.
‘좋아.’
신동훈은 현재 여러 가지 시민 효과와 더불어 돈을 들여서 할 수 있는 강화는 모두 받은 상태였다.
거금을 들여서 최대 레벨인 60까지도 맞춰 놓은 상황.
그런 그가 강화를 받은 상태에서 사용한 되감기 능력은.
‘최대 1분 37초를 돌릴 수 있지.’
겨우 몇 분에 불과했지만, 사람의 죽음조차도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위험한 상황은 많았어도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것은 신동훈의 되감기 능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이잉―
시간이 되감아진 직후에도 1팀 후미에 있어야 할 박새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 더 이전에 실종된 것이다.
‘젠장.’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언주와 문지훈이라도 구한 것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1팀 전원 탐색을 멈추고 눈을 감으세요.]
“네?”
갑작스러운 명령에 의문을 던지는 것도 잠시.
[어서!]
내가 강하게 말하자 9명 전부가 눈을 감아 시야를 차단했다.
‘가신 소환.’
그 상태에서 9명 모두를 안전지대 안으로 이동시켰다.
“하아―.”
신동훈의 되감기 능력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는 있었지만, 박새롬은 구하지 못했다.
‘알아차리는 게 조금만 더 빨랐다면…….’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던 터라 알아차리는 게 늦어졌다.
무엇보다 실시간으로 몬스터들과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광주는 너무 조용했으니까.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가신 정보창에서 박새롬의 정보가 지워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살아 있어.’
구해야 한다.
[1팀 이제 눈을 떠도 됩니다.]
“여긴……?”
갑작스럽게 이동된 1팀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한빛 기지?”
난데없이 처음 시작점으로 되돌아온 것에 당황하고 있는 사이 1팀장인 오언주가 입을 열었다.
“……새롬 씨는 어디로 사라진 거죠?”
팀장답게 제일 먼저 팀원들의 안위부터 살핀 것이다.
“네?”
“하나, 둘, 셋…… 아홉……. 아홉 명밖에 없네요.”
심각한 얼굴이 된 1팀을 향해 말했다.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시간을 되돌리기 전에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실종이 되는 트리거는 거울을 바라보는 순간이었습니다. 박새롬 씨는 이동 중에 거울을 보고 만 거겠죠.]
팀장인 오언주가 무거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새롬 씨는, 죽은 겁니까?”
[살아 있습니다.]
확신을 담아 말했다.
팀원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그러니 현 시간부로 1팀의 작전 목표를 변경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1팀의 최우선 목표는 박새롬 씨를 구하는 것입니다.]
자신 있게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모르는 데다가 절대자의 눈, 가신 소환, 강화 모두 먹통이었다.
과연, 그녀를 구할 방법이 있기는 한 것일까.
그때였다.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집구석 선포가 40레벨에 도달하였습니다.]
[스킬 포인트를 3개 획득합니다.]
작전 시행과 동시에 쏟아지던 경험치 덕분에 레벨이 상승하며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났다.
‘스킬 포인트.’
정말 오랜만에 스킬 레벨을 올릴 수 있는 포인트를 획득했다.
찌릿-
[명경지수(明鏡止水)가 발동합니다.]
영역 확장으로 인한 고통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명경지수가 발동되었고, 한층 더 차분한 생각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 뭐지?’
선택지는 무궁무진 했기에 하나씩 차분히 점검해 보았다.
‘우선, 상점.’
슬롯이 거의 가득 찬 상황이기는 했지만, 이제는 굳이 포인트를 투자하여 슬롯을 늘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 구매 가능한 물품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결정적으로 지금 현 상황에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부족한 슬롯이야 나중에 스킬 포인트를 얻었을 때 늘린다고 해도 상관없으니까.
‘건강이나 보이지 않는 손, 그리고 집구석 수복도 마찬가지.’
모두 유용한 스킬이지만, 박새롬을 구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후보는 이렇게 세 개 정도인가.’
절대자의 품위 유지.
절대자의 눈.
절대자의 문.
품위 유지의 경우 항상 여러 가지 변수를 창출해 주던 스킬이었다.
가신 등록만 해도 이곳에서 나온 능력이며, 환수 소환, 신기 뽑기 등이 가능해진 것도 모두 이 스킬 덕분이었다.
‘강림도 여기서 나왔지.’
괜히 품위 유지 스킬이 내가 가진 모든 스킬 중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게 아니었다.
‘절대자의 눈이나 절대자의 문도 가능성은 있어.’
당장 절대자의 눈의 스킬 레벨이 올라가면 박새롬과 연결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절대자의 문도 새로운 능력으로 박새롬을 데려오는 게 가능해질 수도 있고.
‘어떡한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중 한 가지 스킬이 눈에 들어왔다.
‘창고 스킬은…….’
무려 내가 가진 스킬 중에 두 번째로 높은 스킬 레벨을 가진 놈.
‘5레벨.’
창고 스킬을 5레벨로 올린 이유는 하나였다.
‘인벤토리 효과를 활성화하기 위함이었지.’
그때 당시 운 좋게도 문병호에게서 스킬 포인트를 수급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개방된 인벤토리는 가신들과 사냥팀에게만 권한을 부여해 준 상태였다.
바깥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장비를 챙길 필요가 있었으니까.
‘박새롬의 인벤토리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건가?’
절대자의 눈도, 가신 소환도 먹히지 않는 상태였다.
거래소나 다른 기능을 사용할 수 없게 됐을 가능성이 컸다.
만약 그녀가 있는 장소가 식량을 수급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인벤토리는 유일한 동아줄이 될 터.
나는 조심스레 그녀의 인벤토리를 확인해 봤다.
지이잉―
자그마한 공간에 물이나 과자를 비롯한 잡동사니가 떠다니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포커 카드와 화투가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중이었다.
‘……역시…… 박새롬답다고 해야 하나.’
창고를 구경하고 있던 그때.
지이잉―
안쪽의 공간이 다른 쪽과 연결되며 생수병 하나가 튀어 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 인벤토리는 작동하나 보군.’
* * *
꿀꺽-꿀꺽-
“크으으.”
순식간에 500ml 물병을 비워 낸 박새롬은 페트병을 찌그러뜨린 다음 아무렇게나 던졌다.
“하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땀을 닦아 내며 자리에 주저앉은 그녀의 주변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는 그림자 괴물들을 피해 간신히 찾아낸 보금자리였다.
“……이제 어떡하지?”
방금 확인한 거지만, 거래소가 작동하질 않았다.
평소 거래소에 등록된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던 그녀였기에 인벤토리에 식량이라곤 군것질거리가 전부였다.
“분명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지금쯤이면 자신이 사라진 것은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재현의 텔레파시든 가신 소환이든 조치가 취해졌을 텐데,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거래소를 사용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최악의 경우…….’
김재현의 비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일 가능성이 존재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소름이 끼쳤다.
‘나는 이대로 여기서 죽는 건가?’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그 순간.
쫙!
박새롬은 자신의 두 뺨을 세게 때렸다.
“……!”
그리고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자신의 뺨을 때리는 순간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했을 정도로.
“아악! 싯팔! 손이 왜 이렇게 매워?”
그야 당연했다.
가신이 되면서 갖가지 버프를 몸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아으. 아파 죽겠네.”
빨갛게 부어오른 자신의 뺨을 조심스레 쓰다듬던 박새롬은 이내 진지한 얼굴로 인벤토리를 활성화했다.
‘일단, 내가 가진 패부터 점검하자.’
거창한 식량은 아니더라도 과자나 군것질거리는 충분했다.
물이나 음료수도 있었고.
어떻게 해야 오래 버틸 수 있을지 고민하려던 그때.
“응?”
갑자기 인벤토리 안에 들어있는 물품 목록이 갱신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야? 귀신인가? 무서워.’
괜히 오싹해졌으나 일단 추가된 품목이 무엇인지 확인해 봤다.
“……스마트폰?”
홀린 듯이 꺼내 본 그것은 그녀의 것과는 다른 기종이었다.
그 순간.
[새롬 씨. 김재현입니다.]
스마트폰에서 재생된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재현 님!”
[아무래도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 이런 식으로 연락을 드립니다. 그쪽 상황에 대해 녹음한 뒤 인벤토리에 넣어 주시면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네, 네!”
[그리고 필요하신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인벤토리에 넣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뒤늦게 녹음된 목소리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든든했다.
‘살았다.’
마치 처음에 울산에서 김재현의 존재와 마주했을 때처럼 희망이 샘솟는 것 같았다.
박새롬은 핸드폰의 녹음 버튼을 누르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말했다.
“어…… 그러니까 처음에 갑자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사라졌어요. 그리고 주변이 완전히 어두컴컴해졌는데, 어둠 속에서 그림자 괴물 같은 게 튀어나왔고요. 아! 밖으로 나와 보니 하늘이 완전 깜깜했어요. 분명 낮이었는데, 밤으로 바뀐 것 같았죠. 그리고…….”
횡설수설하며 말을 전하던 그때였다.
철컥―
갑자기 어둠 속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당신 누구야?”
어둠 속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