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174화 (175/175)

174화 [Episode 38] 이면세계 (2)

박새롬은 낯선 이의 등장과 동시에 녹음 정지 버튼부터 눌렸다.

그러곤 목소리가 난 방향으로 핸드폰 액정 불빛을 비췄다.

“읏?”

갑작스러운 빛에 남자가 당황하던 것도 잠시.

“다, 당신!”

박새롬의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을 확인한 남자가 기겁하며 달려들었다.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큰 남자가 어둠 속에서 달려드는 장면은 공포 영화가 따로 없었지만, 박새롬의 대응은 침착했다.

“헤이, 빅스비.”

갤럭시에는 한 가지 재미있는 기능이 있었다.

띠링-♪

“루모스.”

유명한 소설에 나오는 마법 주문으로.

파아앗!

이렇게 플래시를 킬 수 있다는 것.

“윽!”

핸드폰 액정에서 나오던 광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빛이 남자의 두 눈을 강타했고, 본능적으로 양팔로 눈을 가렸다.

그리고.

“……!”

자신의 목에 느껴지는 섬뜩한 감각에 눈을 떴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

남자는 차갑게 가라앉은 박새롬의 목소리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자기 할 말을 했다.

“지, 지금 당장 그 폰을 부숴……!”

“뭐?”

“그, 그렇지 않으면 다 죽을 거야. 다 죽을 거라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절박해 보이는 남자의 모습에 의문을 느낀 박새롬이 물었다.

“왜 이 폰을 부숴야 하지?”

“빨리 부숴, 부숴야……!”

남자가 흥분하며 손을 뻗는 순간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그 위에 올라타 그를 완벽하게 제압했다.

“아악! 이거 놔!”

그가 발작하며 몸부림을 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박새롬이 가신 중에서는 약한 편이라고는 해도 능력도 각성하지 못한 일반인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당장 레벨로 인한 신체 능력 차이부터 엄청났다.

“잔말 말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왜 이 폰을 부숴야 한다는 거지?”

“……그 폰의 액정이 유리로 돼 있으니까.”

박새롬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물었다.

“유리로 된 게 무슨 상관이지?”

“……설마 여기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건가?”

“…….”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침묵은 충분히 대답이 되었다.

이내 좀 더 침착해진 남자가 박새롬을 향해 설득의 말을 내뱉었다.

“제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어서 폰을 부숴라! 그렇지 않으면 여기에도 곧 그림자 괴물들이 찾아올 테니까!”

“……그림자 괴물.”

남자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는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방금까지 그놈들과 사투를 벌이다가 온 그녀였으니까.

‘유리가 있으면 찾아온다고?’

그러고 보면 광주 유스퀘어에는 부서진 유리 조각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그래서 그 괴물들이 나타난 거였나?’

박새롬은 잠시 고민하며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유스퀘어에서 싸운 괴물들은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그 숫자가 끊임없이 불어난다는 것이 조금 성가실 뿐이지, 처치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으니까.

죽였을 때 폭발한다는 성질도 미리 파악만 하고 있으면 그림자 이동으로 충분히 피해 볼 만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여기까지 와서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횡설수설하긴 했지만, 어차피 전할 말은 전부 녹음시켜 둔 상태였다.

‘인벤토리.’

우웅―

스마트폰을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자 빛이 사라지며 다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돌아왔다.

그래도 이전처럼 불안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쨌든 김재현과 연결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아저씨. 보니까―”

“핸드폰을 끈다고 되는 게 아니다! 액정을 부숴야 한다!”

“아― 싯팔.”

박새롬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나오자 덩치 큰 남자가 입을 꾹 다물었다.

완벽하게 제압당해 있는 상황에서 그녀와의 힘 차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으니까.

“핸드폰은 내가 잘 처리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저씨는 여기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은데, 아는 것 전부 다 말해 봐.”

“뭐―?”

“아, 물론 맨입으로 알려 달라는 건 아니야.”

박새롬은 남자에게서 내려온 다음 인벤토리에서 콜라캔과 초코바 하나를 꺼냈다.

그런 다음 아직까지도 바닥에 엎드려 있는 사내의 볼에 차가운 콜라캔을 갖다 댔다.

“엇?”

깜짝 놀라며 몸을 일으키는 남자를 향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아. 이건 콜라라는 것이다.”

“……뭐?”

“그리고 이건 초코바라는 물건이지!”

당황하는 그의 앞에서.

치익―

아무렇지 않게 콜라캔을 따더니, 그대로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 꿀꺽꿀꺽 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꺼억―!”

시원한 트림까지.

그렇게 반쯤 남은 콜라캔을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좀 줄까?”

그러나 초인의 영역에 도달한 감각으로 빛이 없어도 어느 정도 분간이 가능한 박새롬과는 다르게 남자에게는 불이 필요했다.

칙-

주머니에서 꺼낸 라이터를 켜자 캄캄했던 어둠이 물러나며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생각보다 더 작아 보이는 박새롬의 모습에 한 번 놀라고,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콜라캔에 두 번 놀랐다.

‘지, 진짠가?’

그는 긴가민가하면서도 박새롬이 건넨 콜라를 거절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며칠째 쫄쫄 굶고 있는 신세였으니까.

콜라캔을 받아든 남자가 두 눈을 질끈 감고 콜라를 들이켜기 시작했다.

꿀꺽꿀꺽―

혀에 닿는 순간 자극적인 탄산과 강렬한 단맛이 뇌리를 찔러 왔다.

혀를 타고 흘러들어 온 콜라가 목을 넘어가며 느껴지는 탄산의 존재감.

너무나도 오랜만에 느껴 보는 그 감각에 목 안쪽이 따갑게 아파 왔지만, 그것마저도 행복하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콜라를 다 마셔 버린 남자는.

“허, 허윽. 크으읍!”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에엑? 그, 그렇게까지……?”

박새롬도 알고 있었다.

저 콜라 맛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그도 처음에 김 건을 만나 콜라와 초코바를 건네받았을 때 마음속에서부터 충성심이 우러났었으니까.

‘그런데 그 맛이 저렇게 서럽게 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덩치 큰 아저씨가 울고 있는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때.

퍼억!

남자가 무릎을 꿇으며 박새롬의 발치에 머리를 박았다.

그러곤 부탁했다.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크읍. 저쪽에 제 가족과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들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어요! 제가 아는 건 뭐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제발 가지고 계신 식량을 나눠 주실 수 없겠습니까?”

눈물을 줄줄 흘리는 그를 보며 깨달았다.

남자가 눈물을 흘린 것은 콜라의 맛 때문이 아니라 이제야 살았다는 생각 때문이라는 걸.

‘……잘 알지. 저 기분.’

울산에서 사무실 전체가 식량으로 가득해지던 그때의 일을, 박새롬은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어찌 잊겠는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기분이었는데.

그 상황의 모든 것들 하나하나가 뇌리에 새겨져 있었다.

자신도 눈앞의 아저씨처럼 서럽게 눈물을 터뜨렸었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그때 자신이 했던 말과, 자신을 바라보던 김 건의 표정까지 세세하게 기억이 났다.

‘그 사람. 그래서 그때 그런 표정을 지었구나.’

그때 김 건이 자신을 바라보며 왜 저런 표정을 지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 이렇게 불쌍하게 보였구나.’

안타까움.

동정.

그리고 미안함.

박새롬이 남자를 향해 말했다.

“미안해요. 너무 늦게 와서.”

* * *

송태영.

그는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괴물들의 눈을 피해 식량을 찾으러 다니던 중 운 좋게 만난 여자가 로또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품에 있는 초코바 하나만 해도 커다란 수확이었으니까.

‘먹을 걸 얼마나 주실지 모르니까. 이건 우리 지수랑 지현이 줘야지.’

두 딸내미에게 먹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여기가 거울 속 세상이라고요?”

“네.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저희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자는 이동하는 중에도 꾸준히 자신에게 정보를 물어 왔다.

“이 세상으로 들어오기 직전, 거울을 보시지 않았나요? 꼭 거울이 아니어도 됩니다. 유리나 방금 말씀드렸던 핸드폰 액정처럼 빛을 반사하는 물건이 원인일 겁니다.”

“아… 그래서…….”

여자는 어딘가 짐작이 가는 곳이 있는 듯한 투로 생각에 잠겼다.

침묵이 이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면 혹시 그런 유리를 통하면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저희도 시험해 봤습니다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불가능했습니다.”

“그렇군요.”

“게다가 멀쩡한 유리나 거울이 있는 곳에는 항상 괴물들이 존재합니다. 아무리 잘 숨어도 그런 게 있으면 어둠 속에서 괴물들이 출현하죠. 괴물들의 출현을 막는 방법은 그것들을 박살 내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아까 폰을 부수려고 한 거군요.”

“……그 건은 정말 죄송합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물음.

송태영은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짐작 가는 게 있을까요?”

“……몇 가지 있긴 합니다.”

그가 알고 있는 정보가 다 떨어져 가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뭔가요?”

“하나는 저기 도시 끝의 영역까지 가는 것입니다. 이 거울 속세계에는 끝이 있다는 소문이 있거든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성심성의껏 내뱉으면서도 두려웠다.

과연, 이 여자가 약속을 지킬 것인가.

정말로 자신의 가족과 동료들에게 식량을 나눠 줄 것인가.

아니, 애초에 여자가 가진 식량이 있긴 한 것인가.

콜라와 초코바와 같은 귀중한 식량을 선뜻 건네주기는 했지만, 이 여자라고 식량이 무한하지는 않을 것이다.

‘배낭 같은 것도 없어 보이고…….’

솔직히 저 가벼운 차림에서 더 이상 식량이 나올 구석은 없어 보였다.

있다고 해도 초코바 한두 개 정도겠지.

‘그렇다고 해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다.’

방금 이 여자에게 받은 초코바로 인해 자신의 두 딸은 조금이라도 굶주림을 덜 수 있을 테니까.

‘어차피 식량을 나눠 받는다고 해도 그리 오래 살아남을 수는 없겠지.’

그저 죽기 전에 자식만큼은 맛있는 걸 먹었으면 하는 마음일 뿐이었다.

그래서였다.

여자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고 있는 것은.

그러나 이동 중에 딴생각을 너무 많이 한 탓일까.

아니면 마음이 초조한 나머지 너무 급하게 이동했던 탓일까.

-끼에에엑!

그만 그림자 괴물의 눈에 띄어 버리고 말았다.

‘안 돼!’

하늘에서부터 그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그림자 괴물들의 모습이 보였다.

성인 남자보다도 커다란 덩치를 가진 새의 형상을 한 그림자 괴물들.

바닥에 흩뿌려진 유리 조각들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춰 주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하강하고 있는 괴물들을 보며 송태영은 죽음을 직감하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퍼어엉―

무언가 공중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눈을 떠 보니.

퍼어어엉!

그림자 괴물들이 하나씩 폭발하고 있었다.

‘뭐, 뭐야?’

공교롭게도 이 현상에 대해서는 남자도 알고 있었다.

‘괴물들이 죽어 나가고 있어?’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남자가 알기로 단 한 명뿐이었다.

‘주석이?’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던 리더.

그가 괴물들을 상대할 때 봤던 모습이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석이는 분명 일주일 전에 죽었는데……?’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그림자 괴물의 폭발에 휘말려 처참하게 박 살난 그의 시체를.

‘그런데 이건 대체…….’

게다가 그가 손가락에서 뿜어대던 레이저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퍼어엉!

그저 허공에서 그림자 괴물들이 터져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허억!”

그림자 괴물 하나가 송태영을 노리며 코앞까지 다가온 그 순간.

푸욱!

그림자 괴물의 등에서 솟아난 여자가 손에 있는 검은 단검을 괴물의 목덜미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눈앞에서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

탓!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여자의 등이 보였다.

콰아아앙!

놀랍게도 여자는 폭발의 여파에도 멀쩡한 모습이었다.

너무 놀라 다리에 힘이 풀린 송태영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들을 공격해 오던 그림자 괴물들은 모두 처리된 후였다.

그 대단했던 한주석도 이렇게까지 빠르게 괴물들을 해치우지는 못했다.

괴물들을 해치우고 나서 이렇게까지 멀쩡한 모습을 보여 주지도 못했고.

“아저씨 괜찮아?”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이 여자는.

“아저씨. 왜 그래? 어디 다쳤어?”

자신들의 리더였던 한주석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의 강자라는 걸.

‘이 여자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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