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노래하라-2화 (2/298)

2화 불합리한 현실

나는 지금 멍을 때리고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 국립대학의 일원으로서 일분일초를 아끼며 더 다양한 지식을 집어넣어야 할 내가 이러고 있다.

왜……?

지금 나는 평생 경험하지 못한 상황과 직면하였기 때문이다.

경험은커녕 책이나 다른 사람의 경험 사례도 들어보지 못했다.

죽을 때까지 이런 일이 발생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강의실에서 수업을 받다가 정신을 잃고 다시 깨어나 보니, 나는 송시열이 되어 있었다.

이런 개똥 같은 사실을 인지했다고 해서, 내가 이 현실을 받아들였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손쉽게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태도는 바로 멍 때리기였다.

문제는 없었다.

우습게도 지금 나는 멍을 때려도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왜?

지금은 효종이 승하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종일 고개를 숙이고 먼 산을 바라보는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주군을 잃은 신하의 그것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 현실을 인지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팠다.

통증은 점차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세졌다.

미간이 찌푸려지고 고개가 절로 숙여질 정도로 아팠다.

이걸 동화라고 해야 할까…….

송시열이라는 인격체가 내 머릿속에 조금씩 주입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머리가 아팠다.

명확한 인지.

분명한 현실.

확실한 사실.

처음에는 이 거지 같은 상황을 욕했다.

진짜 너무 거지 같은 상황이었다.

아니, 내가 왜 송시열이냐고.

조금 전까지는 낙엽만 봐도 즐거운 20대였는데, 지금은 떨어지는 것만 남은 50대가 되어 있었다.

이건 너무나도 불합리한 상황이었다.

이 개똥 같은 상황은 대체 뭐란 말인가.

원인은 알 수 없다.

다만, 가장 합리적인 추론에 따르면, 이 상황을 만든 근원은 교수 새끼였다.

송시열과 현종을 들먹이면서 나를 괴롭힌 그 교수 새끼가 인간 이상의 존재였을 것이다.

그것 외에는 내 삶에 이상 징후는 없었다.

그래. 맞다.

교수 새끼의 수업.

그때 분명 예송 논쟁과 경신 대기근을 말했다.

그러니까 현종 불쌍하다고 구질구질하게 수업한 교수 새끼였다.

아니, 그러면 차라리 현종한테 빙의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맞지.

20대였던 내가 50대 송시열이 되는 건 등가교환의 법칙을 완벽하게 어기는 건데.

심지어 현종은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았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너무 원통했다.

미친놈처럼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괴성을 지르며 발악하고 싶었다.

늙어빠진 몸에 들어온 것만 서러운 게 아니다.

타이밍도 정말 개똥 같다.

효종이 죽고 현종이 즉위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교수 새끼의 수업에서 얘기한 대로, 1차 예송 논쟁이 터진다.

심지어 예송 논쟁의 시발점은 누가 뭐라고 해도 송시열이 아니었던가.

이 거지 같은 타이밍에 내가 송시열의 몸에 들어온 것이다.

……송시열.

……20대의 팔팔한 젊은이였던 내가, 50세가 넘은 이 몸에 빙의된 거.

이게 제일 불합리하다.

몇 번을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지금의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아니, 그리고 내가 조선에 와서 할 수 있는 게 대체 뭐가 있지?

차라리 내가 이공계 학생이라면 뭐라도 만들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라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문과 of 문과인 사학과 학생인데?

그런데 이공계 학생이면 뭐?

뭐 하나 만들려고 하더라도 인프라가 있나?

이공계에서 조선 시대에 사용한 도구나 각종 연료 따위를 가르쳐 주나?

그거 대입하면 죽을 날짜 다가올 건데?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나마 유리한 건 역사를 알고 있다는 건데 상식적으로 이게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내가 역사를 알고 어떤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도 바뀐 상황에 제 능력껏 대처할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나의 장점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분노하는 사이, 송시열의 인격이 내 정신에 하나씩 스며들었다.

느리게 머릿속에 똬리를 트는 송시열의 기억들.

아……. 정말 모르고 싶은 내용이었다.

진짜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유치하고 유치했다.

그중에도 유독 강렬한 사건이 있었다.

다시 잊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강렬했다.

하지만 기억은 너무 선명하게 떠올랐다.

괴로울 정도로.

-윤휴. 나는 자네처럼 총명한 사람을 본 적이 없네.

-하하하. 선생. 소생이 어찌 선생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나를 볼 수는 없으니 한 말일세.

-…….

-하하하. 그러나 자네는 나를 늘 보고 있으니 여러 생각이 들겠군.

-…….

-괜찮네. 나는 그런 감정을 잘 모르지만, 어찌 이해하려고 노력까지 하지 않겠나.

와……. 그야말로 온몸이 오그라드는 자기애가 아닐 수 없다.

아주 미친놈이 아닐 수 없다.

이어지는 기억.

-윤휴.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주자의 중용장구가 틀렸다고 했습니다.

-…….

-어찌하여 그러십니까.

-어찌 감히 주자를 비판할 수 있나?

-선생께서도 주자를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이상하거나 옳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데, 소생의 의견을 어찌하여 지적하십니까.

-그건 내가 비판한 것이고. 자네는 내가 아니지 않나.

-…….

미친 자기애.

기억을 떠올리던 내 얼굴이 시뻘게졌다.

쥐구멍에 숨고 싶을 정도였다.

-기어이 의견을 철회할 생각이 없나?

-없습니다.

-오늘부터 자네는 사문난적일세.

-그건 억지입니다. 어찌 의문을 제기하였다고 하여 사문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자네가 주자의 의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의문일세.

-하면, 선생도 사문난적이지요.

-무례하군. 나는 다르거늘.

더 알고 싶지 않다.

이 기억이 빠르게 흘러갔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묻겠네. 진정 생각을 굽히지 않을 것인가?

-선생. 어째서 주자만이 공자의 뜻을 알고 소생은 모른다고 하십니까.

-자네는 모르니까.

-허……. 선생께서는 아십니까?

-알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군요.

-늘 자네가 뛰어나다고 생각했네. 하지만 이토록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 줄은 몰랐어.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어찌 유학자라고 할 수 있겠나.

-소생은 성리학이 가장 뛰어난 학문이라고 여기지만, 오직 성리학만이 세상의 진리를 모두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자네 따위가?

-선생!

-자네 따위의 수준으로 그런 말을 입에 담는 것 자체가 우습네.

……정말 무서울 정도로 인성이 대단했다.

아니,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윤휴 역시 당대 최고의 학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인물을 아예 그냥 무시해버리는 송시열은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사람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무서웠다.

대체 무슨 내용을 알게 될지…….

알고 싶지 않다.

부디…… 제발 기억이 여기서 멈췄으면 좋겠다.

-윤휴와 절교를 선언하지 않으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네.

윤휴를 왕따로 만들려고 시도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야말로 중학교에서나 들어볼 만한 대사다.

이건 대체 누구한테 한 말이야?

와. 정말…… 강렬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 뒤로도 무수히 이어진 기억.

내가 다 쪽팔렸다.

하지만 나는 민망한 감정을 억지로 밀어내고 이성을 되찾았다.

정말이지, 송시열은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졸렬한 인간이 아닐 수 없다.

진짜 토할 뻔했다.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어떻게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있을까?

Best of best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옹졸한 인간이었다.

내가 다 부끄러웠다.

“…….”

울고 싶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그냥 울었다.

효종의 시신(屍身)이 있는 빈전의 앞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신경 쓸 정신도 없었다.

딱 그때였다.

아주 작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맑게 하고 확 집중하지 않으면 무슨 내용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이 와중에 궁금해졌다.

나는 울면서 청력에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허……. 이판 대감께서 눈물을 보이셨네

-이럴 수가…….

-이판 대감도 눈물이 있으시구나.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 아닐 수 없네.

-강력하게 동의하네.

……사람이 울고 있는데 저런 소리나 하고 있다.

평소 송시열이 어떤 인간이었으면 우는 걸로 저러는 것일까.

아. 난세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여기가 난세였다.

그래도 그냥 울었다.

울고 싶으니까.

문제는 없었다.

저들이 볼 때는 주군의 죽음을 슬퍼하는 신하의 모습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편히 울었다.

이쯤 되면 누구라도 내 옆에 와서 적당하게 위로해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송시열이 아니라 평범한 20대 대학생이었기에 누군가의 위로라도 받고 싶었다.

계속해서 울면서 기다렸으나 아무런 손길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냥 소곤거리는 소리만 계속 들렸다.

-도통 이해할 수 없네.

-내 말이 그 말일세.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승하하신 대행왕(효종)을 그토록 괴롭혔거늘.

-그러니까 말일세.

-정말 놀라울 정도였네.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네. 대행왕께서 여러 정책에 대해서 하교하셨을 때 이판 대감이 뭐라고 했는지 알고 있나?

-어찌 잊을 수 있겠나. ‘전하께서 덕을 잘 쌓으시고 학문을 익히시면 되옵니다.’ 딱 이렇게 답했지.

-맙소사. 정말 맙소사가 아닐 수 없지 않나?

-그렇지. 정말 맙소사였네. 아무리 자신이 대행왕의 사부이며, 학문의 경지가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군왕의 하교에 저리 답할 수는 없지.

-암. 정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학문이나 정진하라고 면박을 준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지금 생각해도 피가 거꾸로 솟아.

……송시열을 욕하느라 바쁘구나.

내가 한 짓은 아니지만 내가 한 짓이었다.

-그런데 왜 울지?

-그렇게 괴롭혀 놓고?

-더 괴롭히지 못한 게 생각났나?

-참으로 악랄하군.

나는 잘못한 게 없지만 내가 잘못한 상황이었다.

와. 진짜 이 정도면 그냥 죽는 게 나을 거 같다.

이 와중에 누가 와서 나를 위로해주길 바란 건 진짜 헛짓이었다.

너무 짜증 나서 눈물이 더 많이 흘러나왔다.

-우리가 너무 흥분했어.

-그런 거 같네. 하마터면 목소리가 커질 뻔했네.

-처세를 확실하게 해야 하네. 이판 대감의 성정을 잘 알지 않는가. 여차하면 우리 관직 생활이 가시밭길로 돌입할 수가 있네.

-가시밭길은 무슨? 찍히면 바로 관복을 벗어야 해.

-어쩔 생각인가?

-가서 이판 대감을 위로해야겠지.

-적당하게 시늉하다가, 물러가라고 하면 한두 번 거절했다가 사라지면 될 거 같으이.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아……. 혼자 있고 싶었다.

진짜로.

“험험.”

“…….”

“대감. 괜찮으십니까.”

“…….”

“대행왕에 대한 대감의 충정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몸이 상할까 우려됩니다.”

모르고 들었으면 진짜 진심인 줄 알 뻔했다.

그만큼 이들의 연기력은 출중했다.

자조적으로 웃으며 힘없이 말했다.

“나는 괜찮으니 다들 물러가게.”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소직들은 늘 대감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예. 항상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젊은 관리들.

아주 젊다.

피부도 탱글탱글하고.

이런 사람에게 빙의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갑자기 한스러워져서 나는 물끄러미 쳐다봤다.

“……소직이 무슨 실언이라도 했습니까?”

“실언은 무슨.”

“너무 빤히 보시기에 우려되어 여쭸습니다.”

“자네가 부러워서.”

진심이었다.

너무 부러웠다.

송시열이 가지지 못한 젊음이.

또한, 젊으니까 상대적으로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욕 들어먹을 일도 별로 없을 것이고.

여기까지 생각하니 너무 억울했다.

송시열의 만행으로 내가 욕을 들어먹는 지금 이 상황이.

송시열이 된 사실만으로도 버거운 현실인데 괜히 욕까지 들어먹는 이 개똥 같은 상황이.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게 진심을 말했다.

“자네는 젊으니, 되돌아볼 때 남에게 괜한 말을 들을 만한 일을 거의 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예, 예?”

“그게 부럽네. 진심으로.”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관리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눈동자는 미친 듯이 흔들렸다.

손발이 파르르 떨렸고.

입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냥 젊은이들을 빤히 쳐다봤다.

내가 송시열이라는 사실 자체가 이들에게는 부담이다.

또, 내가 송시열이라고 하여 과거와 똑같이 행동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호의를 베풀기로 했다.

“이만 물러가게.”

“!!!”

“괜히 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

“정말 괜찮으니 가보게.”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고.

무릎이 아주 제대로 비명을 질렀다.

하마터면 중심을 못 잡고 자빠질 뻔했다.

그랬으면 뼈가 다쳤겠지?

아주 쓸모없고 허약한 육신이었다.

정말 짜증 났다.

한숨을 푹 쉬면서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러니까, 그러려고 했다.

딱 그때였다.

-털썩!

-털썩!

……

-털썩!

나를 둘러쌌던 젊은 관리들이 쓰러지듯 무릎을 꿇었다.

깜짝 놀라서 쳐다봤다.

그러자 관리들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대, 대감. 소직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예, 예. 소직들이 가볍게 농을 한 것이었습니다.”

“어찌 진실로 그와 같이 생각했겠습니까.”

“그, 그렇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아……. 순식간에 상황이 짐작됐다.

생각 없이 한 말이었는데, 이들에게는 아니었겠구나.

저들이 나눈 대화를 내가 들었다는 거니까.

“이해하니까 일어나게.”

“대, 대감.”

“내가 과거에는 어쨌는지 모르나, 앞으로는 그냥 와서 말해주게. 다 듣고 수용하겠네.”

“!!!”

“괜찮다는 말일세.”

그 말과 함께 살짝 웃어 주자, 젊은 관리들은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바들바들 떨기까지 했다.

“요, 용서해 주십시오.”

“…….”

아. 송시열.

당신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가.

미치도록 짜증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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