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예송 논쟁(1)
난리가 난 관리들을 뒤로하고 한적한 곳에서 먼산을 쳐다봤다.
심신을 위로해줘야 할 것 같아서였다.
생각할수록 정말 개같은 데뷔전이었다.
그래서 기분도 정말 개같았다.
“허……. 이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꾸하기도 싫었다.
나는 슬프니까.
아니, 기분이 개같으니까.
“진정하세요. 이판이 마음을 다독이셔야 하오.”
이건 진심일까?
또 어떤 놈이 시비를 거는 걸까?
“이판.”
계속 말 걸어서 등을 돌렸다.
그런데 젊은 놈이 아니었다.
상당한 수준의…… 노인이었다.
그 순간 상대에 대한 정보가 빠르게 머릿속으로 입력됐다.
나를 쳐다보는 사람, 영의정 정태화였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내가 어떤 존재나 정보를 인지하는 순간, 원래 송시열이 알고 있던 정보가 아로새겨진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특이했다.
아. 정태화의 내력도 특이했다.
그는 광해군의 척족이었으나 능력이 출중하여 인조로부터 중용되었다. 병자호란 이후 유연한 태도로 대청 외교를 주도했으며, 효종 시절에는 이완을 천거하기도 했다.
현대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상당한 경륜을 가진 인물로서 지독한 현실주의자였다.
한마디로 거물급 정치인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송시열이라고 할지라도 대충 상대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적당하게 자세를 바로잡으며 정태화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이라니……. 또 그러시오?”
“또라니요?”
“이판이 평소에 이런 식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건 나도 알고 있소.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 않소이까?”
“예?”
“되었소. 내 분명하게 이르겠소. 이번만큼은 무리하지 마시오. 다른 때도 아니고 국상 기간이거늘…….”
“소직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만.”
“왜 이러시오? 확실하게 말하겠소. 이판은 늘 중차대한 순간에 사직하거나 업무를 미루면서 존재감을 과시하였으나, 이번은 그리해서는 아니 되오.”
송시열은 대체 어떤 인물일까.
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사람들이 다 이럴까?
또, 사람이 어땠기에 사람들이 대놓고 시비를 걸까?
확실한 건 인간관계가 정말 최악이라는 것이다.
숨이 턱턱 막혔다.
“괜한 분란을 조장하지 말고 복제와 관련한 상소를 준비하시오.”
“……복제라고 하셨습니까?”
“기어이 복제를 논의하는 이 상황에서도 일신을 과시하려고 하시오?”
“복제…… 논의라고요?”
“대비마마 말이외다.”
아차차.
순식간에 상황이 파악됐다.
현실이 너무 개똥 같아서 잊고 있었다.
작금의 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말이다.
그러니까 시작부터 예송 논쟁이다.
아직 적응도 못 했는데 말이다.
이 똥 같은 상황에서 예송 논쟁에 돌입하려니 정말 기분이 산뜻했다.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한숨만 쉬었다.
“왜 대답이 없소이까.”
“아.”
“되었소.”
이 사람은 자꾸 뭐가 됐다는 걸까.
사람이 생각할 시간은 줘야지.
그러기 싫으면 말을 걸지 말거나.
상당히 피곤한 캐릭터가 분명했다.
“잘 알아서 하겠지만, 노파심에 한마디만 해도 되오?”
“소직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러겠지요. 그러나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소이까.”
“…….”
“이판. 될 수 있으면 남인과 크게 다투지 않는 방안이 좋지 않겠소이까.”
아. 예송 논쟁.
다시 숨이 턱턱 막혔다.
정태화의 헛소리에 아주 잠시 잊고 있었으나, 내 상황이 다시 상기됐다.
예송 논쟁이라는 엄청난 일에 직면한 내 처지 말이다.
이를 어찌 해결하느냐에 따라서 조선의 역사가 바뀐다.
솔직하게…… 냉정하게 말하면 나는 그럴 역량이 되지 않는다.
몸만 송시열일 뿐이다.
조선의 역사를 정면으로 맞이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한숨을 크게 쉬면서 쓰게 웃었다.
정태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냥 대감께서 하시겠습니까?”
“뭐요?”
“소직이 볼 때는 그게 더 좋을 거 같습니다.”
“허……. 이판. 참으로 고약하시오.”
“또 왜 그러십니까.”
“이판이야말로 왜 그러오? 내가 이 정도 말도 하지 못하오?”
“이거 오해하셨군요.”
“참으로 괴팍하시오. 내가 별말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노파심에 한마디를 했을 뿐이거늘.”
“……소직은 그런 뜻이 아니라, 대감께서 더 잘하실 거 같아서 한 말이었습니다.”
“허……. 학문의 경지가 높다 하여 나를 조롱하는 것이오? 대체 무엇이 그리도 불쾌하셨소?”
……말을 말자.
혼자 있고 싶다.
진짜.
기력이 훅 빠지는 것 같았다.
먼 산을 쳐다보며 송시열을 원망했다.
“그래요. 이해하오.”
“…….”
“이판이 남인을 얼마나 경멸하는지 알고 있소. 그들과 단 하루도 같은 하늘에 살고 싶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소. 특히 윤휴와는 절교까지 했으니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내가 그들과 반목하지 않을 방법을 청하였으니 조롱한 것이겠지.”
“……그게 아니라, 진심으로 대감께서 나서주면 좋을 거 같아서 한 말입니다.”
“그만하시오. 더는 조롱을 참지 않을 것이오.”
이 정도면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닐까?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심리학을 조금이라도 배웠어야 했다.
그랬으면 이 사람의 정신을 잘 치료해줬을 건데 말이다.
나는 정태화와 빨리 이별하고 싶어서 원론적인 말을 꺼냈다.
“어차피 남인은 3년 복을 주장하지 않겠습니까. 적절하게 조율하면 될 일입니다.”
“아오. 잘 아오.”
“하면, 차후에 내용을 전하겠습니다.”
“이판의 말대로 남인은 3년 복을 주장하겠지요. 그러나 이판은 1년 복을 언급할 것이오.”
“…….”
“그러지 말라는 건 아니오. 다만, 1년 복의 근거를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하자는 것이외다. 복제의 문제가 서인과 남인의 전면전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좋은 일이 아니겠소?”
“대감. 알겠습니다.”
“물론 이판의 평소 성정을 고려할 때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혹시나 하고 한 말이오.”
넋이 나갈 것 같다.
넋이라도 있고 없고.
손끝의 떨림을 뒤로 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대감께서 맡으시면 좋지 않겠습니까.”
“대체 왜 이러시오? 이 정도 조언도 못 하오? 속이 좁아도 너무 좁은 거 아니오?”
“…….”
대체 어쩌라는 걸까.
알겠다고 해도 계속 말한 사람이 누군데.
휴. 됐다. 그만하자.
송시열의 지난 업적이 너무 거대해서, 내 말을 텍스트 그대로 생각하지 않는 걸 어쩌겠는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물론, 대화의 종결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알아서 잘하겠습니다.”
“휴. 그리하시오.”
이번에는 왜……?
대체 아까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차이? 그런 건 없다.
그냥 정태화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끝낸 것이다.
“하면, 소직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정말 혼자 있고 싶었다.
그러나 정태화는 나를 이대로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그나저나 이판. 대강 사정은 전해 들었소.”
“……사정이라니요?”
“젊은 관리들이 이판의 뒤에서 맞는 말을 했다지요?”
“예?”
“아. 맞을 말을 했다지요?”
놀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태화의 표정이 너무나도 심각하다.
만약, 저 표정으로 나를 놀리는 거면 그 자체로 국보급 능력자다.
“그래서 맞을 뻔했다고요?”
아. 짜증 난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젊은이나 노인이나.
파르르 떨리는 내 입술에서 말이 새어 나왔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이판. 그들이 맞는 말을 하여 맞을 짓을 하긴 했으나, 지금은 국상 기간이외다. 어찌 그들에게 그토록 큰 벌을 내리셨소?”
“벌이라니요?”
“휴. 빈전 앞에 모두 무릎 꿇고 있소.”
“…….”
“모르는 사람은 그들이 대행왕에 대한 충정으로 통곡한다고 여기기에 큰 사달은 나지 않았소. 그러나 언제까지 그리 둘 수는 없지 않겠소이까.”
머리야.
아. 머리야.
입술을 세게 깨물면서 말했다.
“소직이 그러라고 한 게 아닙니다.”
“당연히 그럴 것이오. 설마 이판이 대놓고 그들을 핍박했겠소?”
“…….”
“이해하오. 충분히 언짢을 만한 상황이었소. 그러나 국상이라는 걸 염두에 두시구려.”
“…….”
“내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소.”
참고 싶지 않다.
욕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상대는 거물이다.
겨우 참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대감의 노고에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허. 살다 보니 이판에게 그런 말을 듣는군요. 이래서 사람은 오래 살고 봐야 하오.”
“……아직 전할 말씀이 남으셨습니까?”
“아니외다. 다 했소. 하면, 나는 가보겠소.”
“감사합니다.”
“응?”
“아닙니다.”
정태화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사라졌다.
아. 정말 피곤한 사람이었다.
말도 많고, 표정은 너무 진지하고.
내 말을 안 듣는 건 아닌데, 이상한 데 딱 꽂혀서 제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피곤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나저나 드디어 혼자가 됐다.
그래서 정말 큰일이었다.
50대라는 점도 짜증 나는데, 하필이면 송시열이라서 해야 할 일이 너무 거대했다.
“미치겠네.”
머릿속이 터질 듯 아팠다.
무엇을 해야 할지 가늠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몰라도, 무엇을 향해서 가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예송 논쟁…….”
숨이 턱턱 막혔다.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그러나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송시열이 된 건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복잡한 감정은 잠시 넣어두더라도 이 상황을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은 그래야 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송시열이니 말이다.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교수 새끼가 나를 왜 여기로 보냈을까?
아무런 의도도 없이 이런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명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교수 새끼와 나눈 대화를 곱씹어봤다.
“…….”
교수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 망할 수업에서 최고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크게 두 가지였다.
시작은 예송 논쟁이었다.
그러나 결론은 미증유의 재난, 경신 대기근이었다.
문뜩 스치는 게 있었다.
-2차 예송이 발생했을 때 현종은 이미 완숙한 정치력을 가진 군주였습니다. 그러니 집권 세력인 서인을 배제할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교수 새끼에게 한 말이었다.
곱씹었다.
두 번, 세 번 곱씹었다.
교수 새끼는 경신 대기근의 참혹함을 강조했다.
예송 논쟁으로 다툴 시간에 민생에 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만일 현종이 즉위 초부터 강력한 지도력을 구축할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만일, 그게 가능했다면……?
이 순간 다시 교수의 말이 스쳤다.
-왕권과 신권의 대립이었을까?
그때는 단지 예송 논쟁에만 집중해서 들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아니다.
교수 새끼는 현종이 즉위 초부터 강력한 지도력을 구축해야 했다고 역설한 것이다.
그런 뒤에 경신 대기근 극복에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했다고 피력한 것이다.
똑똑한 이공계 애들을 보내봤자 어설프게 현대 기술 동원한다고 시간 낭비할 게 뻔하다.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억지로 망치를 들고 설쳐봤자 경신 대기근을 어찌할 수 있는 장비가 만들어질 수는 없다.
냉정하게 따졌을 때 대한민국을 통째로 옮겨온다고 해서 경신 대기근을 치워버릴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렇다면 뭐가 가장 현명할까?
하나 된 조선이 가장 옳다.
바로 그래서 내가 여기 온 것이다.
맞다.
이게 옳았다.
교수 새끼는 예송 논쟁이 아니라 경신 대기근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 새끼가 나를 이곳에 보낸 본질적인 이유는 바로 경신 대기근이었다.
드디어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은 것이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을 찾아낸 것이다.
“내가 예송 논쟁을 없앤다.”
이 길의 목적은 오직 하나다.
“하여, 조선의 모든 국력을 경신 대기근 극복에 투입한다.”
이게 옳다.
그 외 나의 행보는 뒤에 다시 생각하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