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노래하라-4화 (4/298)

4화 예송 논쟁(2)

유독 검은 눈동자였다.

어떠한 역경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고집이 담겨 있었다.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베어버릴 듯한 날카로운 예기가 번져 나올 것만 같았다.

꾹 다문 입술은 세상의 진리만을 담고 있는 것처럼 묵직함이 느껴졌다.

희한한 건, 안색이 밝고 입가에는 희미한 웃음이 걸려 있다는 것이었다.

뛰어난 재주로 제갈량의 화신이라고까지 불리는 인물, 바로 윤휴였다.

“대비마마의 복제 문제로 조정이 시끄러워질 겁니다.”

윤휴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있었다.

족히 70세는 되어 보이지만 날카로운 기세만큼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세월조차 무디게 만들지 못한 그의 정정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할 정도였다.

바로 윤선도였다.

“백호(白湖, 윤휴의 호). 섣부르게 예단할 필요는 없네.”

윤선도는 성격이 급하기로 유명했다.

이는 다른 사람보다 한 수를 더 내다보는 혜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하다 보니 타인의 행동을 늘 답답하게 여겼다.

또 그래서 불필요한 불협화음이 많았다.

“서인은 1년 복을 주장할 게 뻔합니다. 선생께서는 달리 보시는 겁니까?”

“내 말을 새겨듣게. 우리 조선은 경국대전이 통치의 근간일세. 경국대전에 의하면 1년 복이 옳아.”

경국대전(經國大典).

윤선도의 말마따나 조선 통치의 근간이 되는 법전이다.

하여 조선의 사대부는 경국대전에 최고의 영광과 권위를 바치니, 바로 영세불변의 조종성헌(祖宗成憲)이라는 찬사였다.

낮게 깔린 윤선도의 목소리에는 힘이 잔뜩 실려 있었다.

그 묵직함에는 반론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겠다는 고집까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마주한 윤휴 역시 불같은 성미로 유명했다.

할 말을 속에 담아 두거나 눈치를 보는 인물은 아니었다.

물론, 상대가 윤선도였기에 그는 섣불리 감정을 앞세우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도 차분하고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선생께서는 1년 복이 옳다고 보십니까.”

“어허!”

대뜸 터져 나온 불호령.

그러나 윤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당연한 반응이었기에 그러했다.

“백호. 말을 삼가시게.”

“달리 여쭙지요. 선생께서는 경국대전에 의거한다면 1년 복에 동의하실 의향이 있습니까?”

“나는 평생 왕권 강화를 주장해왔네. 응당 3년 복이 옳아. 그러나 현실을 고려하였기에 경국대전을 언급한 것일세.”

송시열과 서인은 1년 복을 주장할 것이다.

반면, 윤선도와 윤휴가 속한 남인은 3년 복을 언급한다.

첨예한 대립이 이뤄질 것이다.

이때 서인의 논거가 경국대전이라면 남인의 처지는 곤궁해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경국대전은 모든 논의를 집어삼킬 수 있는 최고의 권위가 있었다.

윤휴가 보기에 윤선도가 벌써 경국대전을 언급한 이유는 첨예한 대립의 퇴로를 확보하려는 의도인 듯했다.

능히 그럴 만했다.

윤선도는 뛰어난 정객이었으니까.

“누구보다도 자네가 송시열을 잘 알 것이네.”

어찌 모르겠는가.

당색을 떠나서 윤휴와 송시열은 서로를 인정하며 가까운 벗으로 지낸 세월이 있었다.

그러나 송시열의 졸렬함으로 인해 결국 두 사람의 사이는 파국으로 향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이름이 언급되자 윤휴의 안색은 눈에 띄게 경직됐다.

불편함이 가득 담겼다.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윤선도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원래도 성미가 불같은 윤휴였으나, 송시열과 엮이면 정도가 더 심해졌다.

지금도 그렇다.

당장은 타박하기보다는 차분하게 이르는 게 옳다.

“내 말을 새겨듣고 말하게. 1년 복의 근거가 경국대전이 된다면 우리는 대체 무엇으로 반박해야 하겠는가.”

“반론의 근거가 어찌 부족하겠습니까. 차고 넘칩니다. 소생이 앞장설 것입니다.”

“답답하군. 저들이 경국대전을 앞세운다면 우리가 반론을 펼치더라도 큰 의미가 없네. 단지 학문적 이견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걸세.”

서인을 지탱하는 율곡 이이의 이기일원론은 왕가와 사대부가의 예법을 동일시하고 있다.

반면, 남인은 이황의 이기이원론을 근간으로 삼았기에 왕가와 사대부가의 예법을 분리한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다.

성리학에서 가장 중시되는 건 바로 예법이다.

그중 백미는 누가 뭐라고 해도 복제였다.

하여, 장차 발생할 복제 논쟁은 서인과 남인, 두 정치 세력의 세계관 중 무엇이 옳은가로 귀결된다.

즉 정국의 주도권을 둔 논쟁이었다.

“이제 내 말을 알아들었나? 간악한 서인은 우리 남인이 공격할 빌미를 제공하지 않고자, 경국대전을 앞세워 1년 복을 주장할 것이네.”

무슨 말인지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내용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윤휴는 아예 실소까지 머금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선생. 그는 그 정도로 유려한 정치력이 없습니다. 또한, 제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서 우회할 정도로 유연한 인물도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소생이 그를 잘 압니다.”

송시열의 학문적 성취는 누구도 이견을 낼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으나, 반면에 정치력은 학문적 성취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송시열이 정치적으로 부각되는 이유는 조선의 특성 때문이었다. 조선은 학문적 성취가 정치적 위상으로 직결되는 나라였다. 당대 최고의 학자인 송시열은 자연스레 산림과 서인의 영수가 되었기에 정치력을 갈고 닦을 필요조차 없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그러니 윤휴의 말이 옳았다.

“물론 서인에 송시열만 있는 건 아닙니다. 유려한 정치력을 가진 송준길도 있지요. 하지만, 송시열이 1년 복을 관철하기 위해서 경국대전의 권위에 몸을 숨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해서, 자네 생각은 무엇인가.”

“송시열은…….”

윤휴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입 밖으로 꺼내는 것만으로도 불충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꺼내야 한다.

그래야만 정세의 엄중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눈앞의 고지식한 노학자를 설득할 수 있다.

“4종(種)의 설을 꺼낼 것입니다.”

4종의 설.

이는 승하한 대행왕(효종)은 인조의 차남이라는 걸 부각한다.

즉, 대행왕의 정통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를 상기한 윤선도의 목소리는 낮게 깔렸다.

“……자네 지금 그 말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아나?”

또, 눈에 띄게 경직된 윤선도의 표정.

윤휴는 숨을 갈무리하며 말했다.

“소생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첫째로 정체부전중. 정실이 낳은 장자인 적자(嫡子)가 죽으면 조상의 제사를 후손에게 전하는 전중(傳重)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네.”

“둘째는 전중비정체(傳重非正體). 비록 서자의 자손인 서손(庶孫)에게 제사를 맡기더라도 적자는 아니라는 의미이지요.”

“그것도 중요하지 않네.”

“셋째 정이부체(正而不體). 적장자이지만 부친을 계승하지 못하였다는 것이지요.”

“중요하지 않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1년 복의 근거가 이 정도라면 논쟁으로 끝날 수 있다.

문제는 바로 다음이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윤선도가 손을 내저었다.

더는 듣기 싫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출한 것이다.

그의 얼굴에는 불쾌함이 가득했고, 은은한 노기까지 흘러나왔다.

그러나 윤휴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체이부정(體而不正). 이는 서자를 후사로 세운 경우를 이릅니다.”

“그만하게.”

“선생.”

“체이부정은 대행왕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걸세. 송시열이 아무리 간악하다고 할지라도 감히 그 말을 꺼낼 수는 없을 것이네.”

“그건 선생의 바람에 불과합니다. 송시열의 오만방자함은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윤휴는 과거 송시열에게 당한 수모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씹어 먹을 듯 내뱉으며 말했다.

“그의 졸렬함을 모르십니까?”

“자네와 송시열의 악연은 잘 알고 있네.”

“사사로운 감정으로 상황을 곡해하는 게 아닙니다.”

“백호…….”

“선생. 송시열은 능히 체이부정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체이부정을 거론한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정녕 몰라서 이리 나오는 것인가?”

“소생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군왕의 정통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지요. 심지어 소현의 아들이 살아 있는 시국에 말입니다.”

그 순간.

-쾅!

윤선도가 탁자를 세게 내려쳤다.

그 기세가 어찌나 강렬했던지 윤휴조차 움찔했을 정도였다.

윤선도의 눈동자에는 강렬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이를 악물며 한마디씩 천천히 내뱉었다.

“체이부정을 언급한다는 건, 대행왕이 아니라 소현에게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네. 이것이 무슨 말인 줄 아나? 이 나라 조선의 신왕은 소현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고 공언하는 것이네.”

“역모와 다름이 없지요. 그러나 송시열은 할 수 있습니다.”

“승하하신 대행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송시열일세.”

“소생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가 실성하지 않은 이상, 그리 나올 수는 없을 것이네. 그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야.”

“능히 그럴 수 있는 인사입니다. 지금 우리 남인은 단지 3년 복의 관철만이 아니라 송시열의 오만함도 견제해야 합니다. 만일 송시열이 체이부정을 언급한다면 그 순간 신왕의 정통성은 누더기가 됩니다. 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조정은 다시 송시열과 서인의 뜻대로 움직이고 말 것입니다.”

“만일…….”

윤선도는 주먹을 꽉 쥐면서 말했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이 늙은이의 모든 걸 걸고 송시열을 단죄할 것이네.”

노기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였다.

“서, 선생!”

다급한 목소리와 거의 동시에 사랑방의 문이 열렸다.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온 하급 관리가 전한 말은 상상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난 것이었다.

“송……시열이…….”

“3년 복을 주장했다……?”

윤선도와 윤휴의 얼굴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

“3년 복이라고요?”

나는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의를 갖추며 경청의 자세를 취했다.

상대는 송시열조차도 최상의 예를 갖춰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바로 조선의 차기 지존, 훗날 현종으로 불리게 될 이연이었다.

바꿔 말해서, 내가 주도하는 ‘예송 논쟁 패싱’의 최고 수혜자가 될 인물이었다.

그나저나 보고 있으니 너무나도 심란했다.

송시열이 아니라 저 몸의 주인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탐난다.

너무 탐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홀린 듯 이연을 바라봤다.

“…….”

순간 정신을 번뜩 차렸다.

차기 군주를 빤히 쳐다보다니, 아주 미친 짓을 한 것이다.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

“대행대왕께서는 인조 대왕의 차자이시지만 왕통을 이으셨습니다. 그러니 장자의 예를 다하는 것이 옳습니다.”

부지런하게 3년 복의 정당성을 언급했다.

크게 소란 떨 필요도 없고, 억지로 논리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원 역사에서 남인이 했던 말을 그대로 말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나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이연의 표정이 묘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생물체의 그것이라고 할까?

“의외군요.”

“의외라고 하셨습니까?”

“예. 나만 그러한 것이 아닐 겁니다. 모든 이가 이판은 1년 복을 주장할 것이라고 여겼으니까요.”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그러니까 이연 역시 1년 복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 역사에서 1년 복을 채택한 건 당시 현종이 3년 복을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 상황이 아니었다는 걸 시사했다.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개인의 감정이나 생각보다 철저하게 정치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내가 3년 복을 주장하자 상당히 당황하여 속내를 자신도 모르게 꺼낸 것 같다.

이럴 때는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

적당하게 물 타면 된다.

“군왕에 대한 예는 사대부의 가문과는 달라야 합니다. 진실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만 물러가세요.”

그 말에 예를 갖추고 나가려고 할 때였다.

“한데,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무슨 말일까.

그러나 깊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간단하게 답했다.

“물론입니다.”

그나저나 정말 무슨 의미였을까.

“그런데…….”

등 뒤에서 들린 이연의 목소리.

그리고 이어진 말.

“뭐라고 해야 할까……. 분위기가 조금 변한 것 같군요.”

“…….”

이 정도면 귀신이다.

그냥 멋쩍게 웃으며 물러났다.

그런데 문뜩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현종 그러니까 이연이라는 사람이 원래 저랬나?

굉장히 유화적인 인물로 기록되어 있지 않았나?

원 역사에서 이연은 예송논쟁이 격하게 이어질 때도 숙청과 같은 극단적인 방책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오직 정치로써 서인과 남인의 대립을 중재했다.

이를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유려한 정치력의 보유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고로 정치에서 피를 보는 건 하책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연이라는 사람 자체가 부드럽고 유화적이었고.

그런데 오늘 만난 이연은 유화적이라는 단어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았다.

생각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빈전(殯殿) 밖이었다.

빈전(殯殿).

국상 기간 선왕의 시신을 모시는 곳이었다.

얼마 전, 송시열의 몸에 들어온 직후 주저앉아 울었던 곳이기도 했다.

나는 물끄러미 빈전을 바라봤다.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내가 효종을 실제로 대면한 게 아닌지라 당연한 일이었다.

딱 그때였다.

“무슨 속셈입니까.”

이게 무슨 일일까?

갑자기 주변 온도가 올라간 것 같았다.

실제로 그럴 수는 없겠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목소리가 뜨거웠다.

나는 너무 궁금해서 몸을 돌렸다.

바라만 봐도 화르르 불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운 남자가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누군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바로 송시열과 더불어 조선 후기 최고의 문제적 남자 중 한 명인 불꽃 같은 남자, 운명의 라이벌, 바로 윤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