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노래하라-6화 (6/298)

6화 하늘이 내린 졸렬함

궐 안팎은 어수선했다.

군왕이 승하하였으니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꼭 그것만은 아니었다.

너무나도 허약한 다리를 이끌고 입궐한 나는 쓴 미소를 지었다.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인 무리가 보였다.

그들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듣지 않았으나 대충 무슨 내용이 오갈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어차피 내가 다가가면 말을 멈출 게 뻔한지라 접근하지도 않았다.

그냥 걸었다.

그런데 대화에 너무 열중하였기 때문일까?

그들은 내가 지나가고 있다는 걸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은근슬쩍 걸음을 멈추고 뭐라고 하는지 엿들었다.

“소식 들었나?”

염소수염을 한 관리가 운을 띄웠다.

그러자 산적처럼 생긴 관리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이 사람아. 국상이 진행되는 시기에 또 무슨 소식이 있겠는가.”

“내 말이 바로 그 말일세. 국상을 치러야 할 시기에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는 걸세.”

“말을 삼가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네.”

산적 관리가 오만상을 찌푸렸으나 염소수염은 말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나 역시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네. 한데, 기어이 그런 일이 발생하고 말았네.”

“허. 이 사람이 정말…….”

“우암 대감께서 사직을 선언하셨네.”

산적 관리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몰래 엿듣던 내 눈동자도 크게 흔들렸다.

동시에 짜증과 경멸이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우암 대감이 또?”

“그렇다네.”

“……이는 실로 놀라운 소식이면서도 지겨운 일이군.”

이해할 수 있다.

그들에게 이는 참으로 놀라우면서도 지겨운 소식이었다.

과연 염소수염의 말이 이어졌다.

“내 말이 그 말일세. 참으로 지독한 분이 아닐 수 없네.”

“지독함을 넘어섰네. 지긋지긋하군.”

이 사람들의 이런 반응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나는 얼마 전 송준길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과연 우암 송시열일세.

-…….

-잠시라도 자네를 의심한 나를 용서하게. 크게 배웠네. 단번에 여론을 뒤집어 놓다니.

감탄 그리고 감탄.

송준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 역시 진심이 담긴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하하. 일이 이렇게 풀리면 결국 1년 복이 관철될 수밖에 없네. 명분과 실리까지 완벽하게 가지게 되었으니 누가 감히 허튼 말을 할 수 있겠나.

진짜 그럴 가능성이 보이고 있었다.

-자네의 사직을 막기 위해서는 1년 복이 집행될 수밖에 없으니 말일세.

그랬다. 상황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내가 3년 복을 주장했으나 서인의 거센 반발이 있었다.

이에 나는 모든 걸 책임지겠노라며 사직을 선언했다.

그런데 이는 나의 진심과는 아예 다른 상황으로 흘러갔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이는 송시열의 유구한 사직의 역사였다.

-생원시에 급제하여 최명길의 천거로 경릉 참봉이 되었으나 병자호란에서 패배하자 2년 만에 사직하고 낙향했다.

-효종 즉위년, 조정의 세력이 약하여 사직상소를 올렸으나 왕이 윤허하지 않았다.

뭐. 백 보 양보해도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다.

-그해 다시 사직상소를 올렸는데 효종이 윤허하지 않았다. 그러자 송시열은 그냥 상소만 남기고 낙향했다…….

아. 송시열아. 왜 그랬니?

그랬다. 이건 진짜 미친 짓이었다.

사직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반드시 군주가 윤허해야 한다. 그런데 송시열은 이를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한 것이다. 그래서 사방에서 송시열을 욕했다.

그러나 효종은 통 크게 송시열을 용서해줬다.

-효종이 송시열을 시강원 진선에 제수했다. 그런데 송시열이 또 사직했다.

-효종은 다시 장령을 제수하고, 집의로 임명했다. 그런데 김자점을 영의정에 올렸다고 송시열이 열받아서 사직했다.

……

그러니까 송시열의 사직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이 흘러가지 않으면 사직으로써 항의한 것이다.

사직할 때 왕이 만나주지 않는다고 사모관대를 벗어 정청 위에 얹어 놓고 낙향하는 건 진짜 군주를 우습게 여기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송시열의 정치적 위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군왕은 늘 달래기에 급급했다.

그랬다.

나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나의 사직 선언은 완벽한 정치적 선언으로 정리된 것이다.

보라.

용상에 앉을 이연에게 송시열이라는 정치인은 정국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했다.

어찌하겠는가?

이연은 나의 사직을 막기 위해서 1년 복을 통과시키는 방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랬다.

현재 조선은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나는 현재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입궐하게 된 것이고.

나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닐세.”

“뭐가 일부러……!!!”

“아, 아니 대감.”

“어,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관리들은 대경실색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눈물도 살짝 보였고.

나는 엷게 웃으면서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닐세.”

“무, 물론이지요. 어찌 대감께서 다른 의도가 있겠습니까.”

“예. 소직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내 의도는 순수했네.”

“무, 물론입니다.”

“더 말해야 하나?”

“예, 예?”

“내 진심이 전해졌냐는 말일세.”

진심으로 말한 것이다.

그래서 진심이 담긴 대답이 듣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존재하는 진심은 내 생각보다 많았다.

-털썩!

-털썩!

-털썩!

……

-털썩!

관리들이 앞다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내게 죄를 청했다.

“요, 용서하십시오!”

“대감. 소직들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 순간 나는 너무나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이 작자들의 목소리에 진한 진심이 담겼다는 걸.

사과할 때는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살려달라고 싹싹 비는 지금은 너무 강하게 표출된 것이다.

이건 정말 짜증 나는 일이었다.

괴롭다.

정말.

진짜.

대꾸하지 않고 그냥 가려고 했다.

진짜 그냥 갈 생각이었다.

딱 그때였다.

“이게 또 무슨 일이오?”

익히 아는 목소리였다.

인지한 즉시 발가락에서 올라온 짜증이 단전에 모였고, 굉장한 속도로 뇌를 어지럽혔다.

물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거물이었기에 나는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며 바라봤다.

“영상 대감.”

그랬다.

지금 나타난 사람은 필요한 것만 듣고, 필요하지 않은 것도 말하는 영의정 정태화였다.

여기서 강렬하게 치솟는 한 가지 의문.

왜 한국 사학계는 정태화를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정치인이라고 말할까?

대체 이 사람의 어떤 부분이……?

한국 사학계의 앞날이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자네들은 뭐 하나? 어서 일어나게.”

“하, 하지만…….”

“어서 일어나라니까? 내가 영의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가?”

“어, 어찌 영상 대감을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영의정 정태화의 말에도 관리들은 내 눈치를 살폈다.

아니, 면전에서 이러면 정태화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또 나는 얼마나 악랄한 사람이 되겠는가.

“어서 일어나라고 했네!”

화를 내는 정태화.

요지부동인 관리들.

“어서!”

그제야 관리들은 조금씩 일어나려고 했다.

그들의 미적거림에 나는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자연스레 시선도 관리들에게 향했고.

“…….”

“…….”

나와 시선이 마주친 관리들은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자연스레 원래 자세를 유지했고.

그냥 합죽이가 된 것이다.

아니 왜……?

그리고.

“이판. 이들이 대체 무엇을 얼마나 잘못하였기에 나를 이토록 무시하는 것이오?”

정태화가 언짢은 듯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인상을 쓰고 쳐다본 게 그냥 그대로 있으라는 의미로 전달된 것이다.

정말 피곤했다.

“영상 대감께서 이르셨거늘 듣지 않는 건 대체 뭔가?”

“소, 송구합니다.”

순식간에 관리들이 일어났다.

눈치껏 관복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고소를 삼킨 정태화가 말했다.

“자네들이 말해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그, 그것이…….”

관리들의 말을 들은 정태화는 땅이 꺼질 듯 길고 큰 한숨을 쉬었다.

몇 번이나 반복했다.

나를 보면서 또 한숨을 쉬었다.

이건 당해보면 상당히 기분이 나쁘다.

진짜 당해봐야 안다.

“대체 왜 맞는 말만 듣고 다니시오?”

“예……?”

“아니, 애초에 맞는 말을 왜 계속 숨어서 들으시오?”

“예……?”

정태화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아니라 관리들을 향해서였다.

“자네들은 왜 항상 맞는 말을 해서 맞을 일을 만드나?”

“소, 송구합니다.”

“또한, 아무리 맞는 말이라고 할지라도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일세. 모두 자중하게.”

“영상 대감의 말씀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겠습니다.”

와. 금과옥조란다.

대체 언제 금과 옥의 가치가 이렇게 똥이 되어버렸을까.

아주 궁금했다.

“그리고 이판. 아무리 그래도 백주에 관리를 무릎까지 꿇게 하는 건 너무 과하오. 일전에는 넘어갔으나, 매번 이런 식이라면 문제가 될 것이외다.”

“저들이 갑자기 무릎을 꿇었습니다. 소직과는 무관합니다.”

“그렇다면, 서둘러 일어나라고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오?”

이런.

외통수다.

짜증이 솟구쳐서 그냥 자리를 뜨려고 한 기억이 순식간에 스쳤다.

그러나 이대로 있으면 또 오해가 시작될 뿐이다.

“알아서 무릎을 꿇었으니 일어나는 것도 알아서 할 일이지요.”

“알겠소. 이판을 내가 어찌 모르겠소?”

“참으로 다행입니다. 하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판. 대체 어찌할 생각이시오?”

“가볼 생각입니다.”

“…….”

정태화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관리들은 대충 먼 산 보는 시늉을 하였으나 나와 정태화의 대화에 청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대체 어쩌자고 상황을 이토록 꼬이게 하셨소? 매듭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소.”

“매듭을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이판이 만든 매듭이 조정을 가득 채우고 있소. 너무 커서 실타래의 끝이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오.”

“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이럴 줄 알았다면 이판에게 복제의 문제를 맡기지 않았을 것이오.”

“하여, 대감께서 하셨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이게 맞지.

나는 몇 번이나 이렇게 말했는데.

이제 보니 정태화는 편한 대로 사는 사람이 분명했다.

내가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정태화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좋소. 내가 사죄하리다.”

“굳이 사죄까지 언급할 일은 아닌 거 같군요.”

“내가 설마 그 문제를 사죄하는 것이겠소?”

“예?”

“내가 일전에 이판에게 조언하였는데 그 일이 불쾌하여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든 것이 아니오.”

“예?”

“속이 좁아도 이렇게 좁을 수는 없소.”

아. 머리가 너무 아프다.

하늘은 왜 송시열에게 학문적 성취를 내리고 졸렬함도 옵션으로 끼우셨는가.

입술을 살짝 깨물면서 말했다.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휴. 그렇소. 참으로 꼬았지요.”

“아무래도 실언한 것 같군요.”

“실언했다고 내가 이미 사죄하지 않았소. 이판. 다시 말하오. 내가 이제라도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것이오.”

“…….”

“나는 그저 영의정으로서 남인과 극한 대립을 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소. 절대 선을 넘으려 한 게 아니었단 말이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기분 나쁘셨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대뜸 3년 복을 주장한 건 무슨 경우요?”

본질적인 의문이 생겼다.

내가 대체 어떻게 행동했어야 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하면, 소직이 1년 복을 주장하면 될 일이었습니까?”

“그저 좋게 하자는 의미였소. 한데, 이판은 아니었소. 사직상소를 올리셨소. 그래. 내가 물러나면 되겠소? 기어이 그렇게까지 해야만 화가 풀리겠소?”

아니, 일이 왜 이렇게 진행되는 걸까?

정태화의 충격적인 말에 관리들은 웅성거렸다.

그들의 말은 너무나도 잘 들렸다.

“그, 그러니까 영상 대감이 조언하였는데 그걸 주제넘은 행동이라고 여겼다는 건가?”

“그래서 욱한 마음에 3년 복을 주장했고?”

“그런데도 영상 대감이 멀쩡하니 사직상소를 올렸다고?”

“정말 하늘이 내린 졸렬함이 아닐 수 없네.”

“서인의 학맥까지 내던질 정도였으니, 과연 상상도 할 수 없는 졸렬함일세.”

아. 진짜.

웅성거림은 갈수록 커졌다.

듣고 있는 것도 너무 괴롭다.

송시열이 싸놓은 똥에 질식사할 거 같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사태 수습부터 해야 한다.

나는 썩은 미소를 지으면서 정태화를 바라봤다.

“이번 일은 영상 대감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이판에게 아무런 의미조차 되지 않는다는 건 알겠소.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소. 여기까지 하시오.”

“…….”

“그러나 기어이 내 사직을 원한다면 그리하겠소.”

“…….”

“그래야만 화가 풀린다면 그리할 것이란 말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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