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방패(1)
윤선도는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어서 오게. 앉게나.”
“하. 선생. 정말 지독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윤선도의 사가에 도착한 윤휴는 자리에 털썩 앉으면서 노여움을 표출했다.
그 목소리의 이면에는 경멸감까지 담겨 있었다.
“그의 무도함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설마하니 국상 시기에도 이리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한번 되돌아보십시오. 그는 그동안 수가 틀리면 사직을 청하며 여러 번이나 어심을 어지럽혔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군주께서 부르셨음에도 10년간 응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승하하신 이 와중에도 사직을 선언했습니다. 대행왕의 마지막을 조롱하는 게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윤휴의 말대로 송시열의 사직 역사는 참으로 파란만장했다.
윤선도 역시 이를 잘 알기에 심사가 편하지는 않았으나, 지금은 감정적으로 행동할 때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불같은 윤휴의 성미를 잘 알기에 침착해야 했다.
지금은 자신이 중심을 잡고 윤휴를 진정시켜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백호. 진정하게. 지금은 이조판서 송시열의 수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는가.”
“선생.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암 송시열이외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사직이 진심이겠습니까? 필시 노림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국상을 치러야 할 기간임에도 말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일세. 무엇보다 우선 그의 속내를 알아야 해. 자네 말처럼, 국상 기간에 이런 무도한 행위를 한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송시열이 아무리 오만방자하더라도 이건 경우를 넘어선 일이지 않은가.”
윤선도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아니, 정확한 판단으로 기인한 말이었다.
그제야 윤휴는 흥분을 잠재웠다. 동시에 조금 전 자신의 행동이 너무 무례했음을 깨달았다.
평소 윤선도의 성정이라면 진작 불호령이 내려졌을 것이나 자신을 진정시키느라 애써 참았다는 것 역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소생이 결례를 범했습니다.”
“알면 됐네. 자네의 성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평정심을 잘 유지하시게. 그래야만 해.”
“새겨듣겠습니다.”
윤휴의 사죄에 윤선도의 안색은 누그러졌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새겨들을 것 없네. 나 또한 백 번을 생각해도 송시열의 의도를 알 수 없으니까.”
“……선생.”
“사직……. 그래. 송시열은 사직으로 군왕을 압박했던 인물이었네. 평소와 같았다면 이번 역시 신왕을 향한 정치적 수단이라고 여겼을 것이야. 한데, 불과 며칠 전에 그는 3년 복을 주장했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아닌가.”
윤선도의 말대로였다.
3년 복은 왕권 강화로 직결되는 반면, 사직은 왕권을 흔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즉, 송시열은 며칠 사이에 모순되는 행동을 한 것이다.
“정확한 내막을 파악하지 않고 무턱대고 움직인다면 곤혹스러운 일이 생길 것이네.”
“……소생이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일전에 송시열을 만났습니다. 그가 3년 복을 주장한 건 추악한 정략이었습니다.”
윤휴는 송시열과 나눈 대화를 빠짐없이 꺼냈다.
점차 윤선도의 미간은 찌푸려졌고, 파르르 떨리는 입술은 치솟은 노기의 수준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3년 복을 주장한 것이, 우리를 엮어서 1년 복을 관철하려는 의도였다?”
“그렇습니다. 만일 소생이 섣불리 행동했다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습니다.”
“그렇군. 간교한 수를 자네가 미리 파악하자 사직을 선언한 것이야. 우리가 사직의 무도함을 운운할 때 그는 격렬한 논쟁을 일으켜 자연스레 1년 복을 꺼낼 생각이었어.”
“섣불리 단언할 수는 없으나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놀라운 건, 그가 이토록 촘촘한 정략을 펼쳤다는 것입니다.”
윤휴가 조기에 파악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세밀한 정략이었다.
그런데 그간 지켜본 송시열의 정치력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형편없었다. 모두가 인정하는 것처럼 그의 정치적 위상은 정치력이 아니라 대학자로서의 권위에서 나오는 것일 뿐이었다.
“자네 말을 부정하지는 않겠네. 그의 정치에는 백년대계가 없으니까.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하네.”
“무엇입니까.”
“그는 매 순간 협잡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일세.”
“예……?”
윤휴의 목소리에는 의아함이 담겨 있었다.
윤선도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백호. 지금 발생한 상황을 하나로 연결한다면 귀신도 곡할 수준의 정략일세. 하지만 하나씩 따로 본다면 어떤가.”
윤휴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비로소 윤선도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지금의 판은 송시열이 의도하여 만들어 낸 게 아니라, 협잡과 협잡이 만난 기괴한 우연의 결과물이라는 의미였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지라도 송시열에게 유리한 결과가 도출될 것이네. 나의 사견으로는…….”
윤선도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말했다.
“송시열의 거취와는 무관하게, 우리 남인은 3년 복을 지켜내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게 옳아.”
“그 말씀은 송시열의 사직 선언에는 반응하지 말자는 뜻입니까?”
“바로 그 말일세.”
윤휴는 쓰게 웃었다.
그러나 윤선도의 말대로 지금 당장 취할 방법은 없었다.
이때 가장 최선을 다해야 할 건 3년 복을 사수하는 것이었다.
송시열의 간악한 정략으로부터 말이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서찰 한 통이 전해졌다.
궐에 있는 남인 소속의 관리들이 수시로 전해주는 소식이었다.
화급을 다투는 내용이라고 했다.
서찰을 받아든 윤휴는 황급히 펼쳤다.
“!!!!”
내용을 확인한 윤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서찰을 든 손이 파르르 떨렸다.
눈동자는 미친 듯이 요동쳤다.
“왜 그러나? 무슨 내용이기에?”
“서, 선생.”
“어서 말하게.”
“영의정 정태화의 사직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뭐……? 누가 그런 요구를 한단 말인가.”
“송시열입니다.”
“뭐……라?”
윤선도는 황급히 서찰의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거대한 충격에 휩싸였다.
“이, 이런 졸렬함이라니…….”
“보고도 믿을 수 없습니다.”
-----
너무 혼미해서 쓰러질 뻔했다.
오해라고 백번은 말했다.
물론 정태화는 믿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아니라고 말해야지.
진짜 겨우 달랬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거친 뒤 겨우 빈전에 당도했다.
하지만 이곳도 태평성대는 아니었다.
난세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너무 불편했다.
침묵은 상당한 무게로 나를 짓눌렀다.
그 무게는 불필요한 소음을 일거에 제압하는 위력을 보였다.
해서, 나는 숨소리조차 섣불리 내뱉을 수 없었다.
내가 무려 송시열임에도 이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침묵의 주재자가 바로 이연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를 거둘 수 있는 사람도 이연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의외군요.”
감정의 고저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가 침묵을 깨뜨렸다.
“또.”
단 한 글자였으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무거웠다.
“어찌하여 의외라고 말하였는지 아시오?”
“소신이 어찌 감히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연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다시 침묵이 시작된 것이다.
침묵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손바닥에 땀이 차올랐다.
목울대로 마른침이 따갑게 넘어갔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육신이 보인 본능적인 반응을 내가 정확하게 가늠할 수는 없다.
그 순간 이연의 시선과 마주쳤다.
놀라울 정도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찰나 내 눈에 보인 사람은 아버지 효종과 아들 숙종에게 가려지고 예송 논쟁에 휘둘린 유약한 군주 현종이 아니었다.
미증유의 재난인 경신 대기근을 극복해낸 철혈의 군주,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홀린 듯 이연을 바라봤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아니……. 알고 있다.
나는 그냥 이 사람에게 강렬하게 끌리는 것이다.
반했나……?
그때 이연의 말이 이어졌다.
“혹자는 말합니다. 이조판서 송시열은 정치적 수가 얕기에 이번에도 별다른 의도가 없을 것이라고.”
“…….”
“또 다른 이는 말하지요. 음흉한 수를 숨겼을 것이라고.”
“…….”
사람들은 부지런하게 내 욕을 하는 게 분명했다.
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송시열이니까.
그리고 나라도 송시열을 욕했을 것이다.
“처음 3년 복을 언급했을 때도 정치적인 의도가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인의 영수가 꺼낸 3년 복이 진심일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내심 감탄했습니다. 속내를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이판의 심계에 말입니다.”
“…….”
“오래 걸리지 않아서 결론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건 남인을 혼란에 빠트릴 계책이라고 말입니다. 한데 말입니다. 이판의 의도와는 달리 남인은 요지부동이었지요. 반면, 서인은 대대적으로 반발했습니다. 어쩌면 산림의 영수라는 위치까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지요. 이때 이조판서 송시열은 사직을 선언했습니다. 왜……? 대체 왜……?”
이연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 눈빛에서는 거대한 압박이 느껴졌다.
다시 한번 목울대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생각을 해봤지요. 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습니다. 나로서는 이판의 사직을 허락할 수는 없으며, 이판도 명분 없이 사직을 거둘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 명분이 중요한 것이지요. 사직을 거두기 위한 명분으로 1년 복을 관철하고자 한 것이지요.”
“…….”
“참으로 놀랍습니다. 명분과 실리를 이보다 완벽하게 챙길 수 있는 방책이 하늘 아래 어디 있겠습니까.”
대체 어떤 공식을 대입하면 이런 결론이 나오는 걸까.
아니라고 말해야 했다.
오해를 풀지 않으면 상당히 피곤해질 게 뻔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내게는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다시 또 다른 게 의아해졌습니다.”
이제는 이어질 말이 궁금해졌다.
“애초 1년 복을 주장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이판이라면 남인이 주장할 3년 복을 능히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니까요. 이판은 누구보다도 정략을 혐오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이토록 복잡한 과정을 거친 이유가 무엇일까.”
“…….”
“여러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궁금했다.
이연이 생각하는 이유가.
그리고 이어졌다.
그가 생각하는 이유가.
“사직에…….”
이제 들어야 할 때다.
그의 생각을.
“사심(私心)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
두근거렸다.
심장이.
너무나도 강렬하여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모든 이가 나의 사직에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오직 한 명, 이연만이 진실을 보고 있었다.
눈물이 날 뻔했다.
이 나라에서 한 명은 정상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