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사문난적(斯文亂賊)(1)
당연하게도 즉위식은 성대하게 마무리됐다.
그리고 뇌관이라고 할 수 있었던 자의대비의 상복은 3년 복으로 결정됐다.
최종 결정권자인 이연의 말에 토를 달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내가 앞장서서 3년 복을 설파했으니, 집행 자체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로 인해 서인 내부에서 나를 향한 불평불만은 대단했다.
나는 그 화살이 단 한 발이라도 용상으로 날아가지 못하게 온몸으로 막았고.
우스운 건 이런 상황에서도 나의 지도력 자체는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3년 복의 주장과 사직 선언.
이는 1년 복을 관철하기 위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기 위한 계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심지어 이 계책의 치밀함은 누구도 입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는 평도 뒤따랐다.
그렇기에 그들이 판단하기에 이 모든 건 나의 작전 실패 정도였다. 그러니 대학자로서 구축한 거대조직 서인의 영수로서의 권위는 크게 실추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오히려 정략이 부족하다는 그간의 평가를 무색하게 만들며 정객(政客)으로서의 능력을 여과 없이 보였으니, 보기에 따라서 지도력은 더 공고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놀라운 건 이연이 이를 예측했다는 것이다.
-크게 애쓰지 않아도 될 겁니다. 3년 복을 관철하고, 사직을 반려한다면 이판의 위치는 더 공고해질 테니까.
그랬다.
내가 직접 만난 이연은 역사책에서 본 것과는 전혀 달랐다.
특히 사안의 본질을 뚫는 능력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미증유의 재앙인 경신 대기근을 돌파해야 할 조선의 군주가 뛰어나다는 것이니 말이다.
또 그래서 아쉬웠다.
원 역사에서 불필요한 논쟁이 정국을 흔들지만 않았다면 현종의 치세는 더 빛났을 것이니 말이다.
딱 여기까지는 아름다웠다.
정말 딱 여기까지는 내가 조금은 위대하였으니까.
그나저나 앞으로가 문제였다.
기세 좋게 방패가 되겠노라 말하긴 했는데, 쉽게 풀기 어렵지 않겠는가.
“끙…….”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자연재해인 경신 대기근을 피할 수는 없다.
“이걸 내가 혼자 고민한다고 답이 나올 리가 있나.”
가장 정확한 진단이었다.
똑똑한 전문가들이 많은데 나 혼자 이러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누구를 만날 생각은 없었다.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언행을 무척이나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걸 미친 듯이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정태화의 진상짓을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렸다.
진짜 그거 수습하느라 쓸데없는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그래서 더 천천히, 신중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일단 오늘은 따뜻한 방바닥에서 편히 누워있기로 했다.
아무도 안 만나고 쉴 생각이었다.
그런데 딱 그때 문이 열렸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모처럼 집에서 편히 쉬는데 방해를 한 것이다.
나는 눈을 부라리며 쳐다봤다.
그런데 문 앞에는 불꽃 같은 남자 윤휴가 서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승리감에 도취한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미친놈이 아닐 수 없다.
즐거운 나의 집에 와서 마음대로 문을 열더니 저러고 있다.
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미친놈이 분명하다.
지금도 저 혼자 계속 웃고 있다.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윤휴를 바라봤다.
그러기를 몇 초가 지났다.
“객이 왔거늘 들어오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주인이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문을 여는 자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네만.”
“흥. 몇 번이나 말했는데 대꾸가 없었습니다.”
그랬나?
내가 정말 집중해서 조선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었나 보다.
이보다 더 기특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열 번이든 백 번이든 대꾸가 없으면 축객령이 아니겠는가?”
“…….”
“뭐 하나? 어서 가보게.”
윤휴의 얼굴은 시뻘겋게 변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쨌든 그랬다.
“……잠시 앉겠습니다.”
“허.”
“…….”
“알겠네. 내가 크게 양보하지. 그러니 잠시만 앉아 있게.”
“…….”
조금 전까지 승리감에 도취한 미소를 짓던 윤휴의 얼굴은 아름답게 썩어갔다.
잘게 입술까지 깨무는 걸 보니 평정심이 무너진 게 분명했다.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 끝은 참으로 리듬을 잘 타고 있었고.
“…….”
자리에 앉은 윤휴의 볼은 딱 적당한 속도로 씰룩거렸다.
뭐.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내가 그 면상을 계속 쳐다보고 있어야 할 의무나 이유 따위는 전혀 없었기에 가볍게 시선을 돌렸다.
가뜩이나 머릿속이 복잡한데 윤휴와 놀아줄 여유는 없으니 말이다.
“……대감.”
꽉 막힌 듯한 윤휴의 목소리.
시선을 슬쩍 돌려서 쳐다봤다.
“왜 부르나?”
“소생에게 이런 모욕을 주실 수는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군. 기별도 없이 온 건 자네고, 앉게 해달라 하여 그러라고 했네. 안 그런가?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네만, 지금 무례한 건 누군가?”
“하면, 소생이 갈 곳이 없어서 왔겠습니까.”
“내게 따로 할 말이 있었나?”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그러고 보니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자네 표정은, 나를 조롱하려는 것 같긴 했네.”
평정심이 완벽하게 무너졌는지 윤휴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내 말이 제대로 정곡을 찌른 것이다.
뭐. 이해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1년 복을 관철하기 위해서 3년 복을 주장하고 사직 선언 쇼를 했다고 여기고 있다. 그런데 결국 3년 복이 관철되었으니 내가 실패한 것이고, 윤휴로서는 얼마나 속이 시원하겠는가.
“더 말해야 하나?”
“…….”
속내를 다 들켜서 그럴까.
윤휴는 안색은 시골의 밤길보다 어두워졌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곁들이면 참으로 잘 어울릴 것만 같았다.
화가 난 거 같기도 하다.
뭐. 미사일 발사하려고 하길래 미리 폭격한 게 죄라면 할 말은 없다.
“조롱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려고 한 것이지요.”
“사실로는 나를 조롱할 수 없을 건데?”
“하하하. 귀를 막고 사십니까?”
“응?”
“진실은 이렇습니다. 영상 대감의 행동에 화가 난 이판 대감이 충동적으로 이것저것 한 것이지요. 단지 결과가 아름답게 포장되었을 뿐이고요. 이 지극한 사실을 언급하는 일에 억지로 조롱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아. 정태화 진짜.
영의정 정태화의 진상짓은 정말 파급이 컸다.
이연이 3년 복을 공식화하고 나의 사직 상소를 반려하면서, 정태화와 얽힌 일을 공론화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입과 입을 타고 번지는 소문은 정말 걷잡을 수가 없었다.
즉, 비공식적으로 나의 행동은 정태화로 인하여 촉발되었다고 말이다.
아. 정말 생각하기도 싫었다.
됐다. 여기까지.
“소생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졸렬함이었습니다.”
그랬다.
영의정 정태화와 얽히면서 나의 졸렬함은 엄청나게 박차를 가하면서 커졌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소가 뒷걸음질하다가 개구리를 잡아도 이보다 놀라지는 않을 겁니다.”
윤휴의 조롱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가소롭다.
고작 이 정도 수준의 도발은 내게 아무런 타격을 줄 수 없다.
나는 무려 대한민국의 날조와 선동을 겪으면서 살았으니까.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게. 그래야만 속이 편할 테니까.”
“…….”
“그나저나 놀랍군.”
“뭐가 놀랍습니까.”
“자네가 너무 한가해 보여서 놀랍다는 말일세.”
“그, 그건…….”
할 일이 얼마나 없으면 그런 말을 하러 여기까지 왔냐는 말이었다.
윤휴는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나는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가 문뜩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조선에 온 이후 술 한 잔도 못 했다는 것이었다.
적응하느라 바빠서 미처 인지하지 못했는데, 막상 생각하자 참기가 어려웠다.
혼자 먹기는 좀 그런데 때마침 눈앞에 윤휴가 있다.
그래서 장르를 좀 바꿔서 말했다.
“술 좋아하나?”
“예……?”
“한잔하겠나?”
“…….”
장르 전환이 너무 빨랐을까.
윤휴는 황당함을 숨기지 못했다.
나도 다시 생각해보니 진도를 너무 빨리 뺀 거 같아서 친절하게 부연 설명을 했다.
“싫으면 관두게. 나 혼자 마시겠네.”
“…….”
그렇게 주안상은 순식간에 준비됐다.
한 잔, 두 잔, 세 잔……. 열 잔이 넘으면서 더는 세지 않았다.
그런데…… 희한했다.
육체가 달라졌기 때문일까?
송시열의 몸으로 느끼는 취기는 참으로 색달랐다.
야릇하다고 해야 할까?
술에 몸을 적시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아니, 종이배를 타고 술의 강을 건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 야릇한 몽롱함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아주 기분이 좋았다.
그랬는데…….
“맛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산통을 깨는 목소리.
당연하겠지만 윤휴였다.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윤휴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전라도 여산의 호산춘(壺山春)이군요.”
“그건 또 어떻게 알았나.”
“하하하. 소생은 풍류를 즐깁니다.”
대한민국처럼 상표가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공장에서 균일한 레시피로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몇 잔 마시고 무슨 술인지 맞히다니, 어지간한 주당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어디 보자. 그렇지요.”
“…….”
“초하루에 흰쌀 15승을 100번 씻어 곱게 가루 낸 뒤, 찬물 7승을 고루 섞지요.”
“뭐하나?”
“그 뒤 끓는 물 18승을 다시 끼얹어 잘 저어주면 쌀가루가 끈끈해집니다. 매우 차게 식으면 누룩가루 2승, 밀가루 2승을 고루 섞어 독에 넣지요.”
“…….”
“그 뒤 13일이 되면 또 흰쌀 25승을 100번 씻어 곱게 가루 낸 뒤…….”
윤휴는 술잔을 들이켜면서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대충 들어도 호산춘을 제조하는 방법이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술독을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곳에 두고, 그 독을 보쌈하지 않은 채로 뚜껑을 덮지 않으면 술맛이 변하지 않지요. 대략 2~3개월이 지나면 참으로 마실 만하게 됩니다. 지금 소생이 마시고 있는 이 호산춘은 필시 이런 과정을 거쳤을 겁니다. 실로 오랜만에 마시는 최상급 호산춘입니다.”
술 제조 과정까지 꿰뚫고 있는 상황에 헛웃음이 났다.
평소 얼굴빛이 다소 붉었는데, 이제 보니 주야장천 술을 마시고 다녀서 그런 게 분명했다.
심지어 지금 윤휴의 얼굴은 불꽃보다 더 붉은 상태였다.
이대로 가면 머리카락도 붉어질 것만 같았다.
“자네, 생각보다 술을 못하는군.”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소생, 술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논객 중 한 명이 호산춘 제조 방법을 읊으며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취했다는 증거다.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혀가 꼬이고 있네만?”
“허! 대감께서 취하셨기에 그렇게 들리는 겁니다.”
“뭐. 좋네. 그렇다고 하지.”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입니다. 주상께서 즉위하시기도 전에 사직을 운운하며 위력을 행사하시더군요. 자중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까?”
“대체 어떻게 하면 대화의 흐름이 이렇게 연결되나?”
“그냥 넘길 생각이었으나, 말이 나왔으니 한 것이지요.”
술 얘기나 했지, 그런 말은 나온 적 없는데?
취했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과거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앞으로는 대감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겁니다. 제법 촘촘한 정략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자충수였다는 걸 분명히 일러드리지요.”
“…….”
“큭. 큭큭큭……. 소생은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영상 대감을 괴롭히려고 시작했다는 걸요.”
취한 건 분명한데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취기와 무관하게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재수 없다.
그건 그거고, 이제 일할 때가 됐다.
나는 윤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게는 꿈이 있네.”
“하하하. 약주 몇 잔에 취하셨습니까.”
“사대부로서 관복을 입은 이가 꿈이 없다면 그건 나라의 비극이지.”
“…….”
나는 윤휴를 바라봤다.
“이보게.”
“…….”
“혹시 함께 꿈꿔 볼 생각은 없는가?”
“이거 아무래도 소생이 취했나 봅니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군.”
“……대감의 말씀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누군가 그랬다네. 혼자 꾸는 꿈은 그저 꿈에 불과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들어보겠나? 내 꿈을.”
“뭐…… 좋습니다. 어디 한번 들어나 보지요.”
나는 입꼬리를 괴이하게 올렸다.
윤휴의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내 꿈은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네.”
“!!!”
윤휴의 얼굴은 처참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불꽃이 활활 불타올랐다.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