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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10화 (10/298)

10화 사문난적(斯文亂賊)(2)

즉위식 직후 나는 이연과 대화를 나눴다.

그 내용 하나하나를 한순간도 잊을 수 없었다.

대화?

아니다.

그건 조선의 역사를 바꾸기 위한 결의(決意)였다.

나는 지금 다시 결의를 되새겼다.

*****

“이판.”

“예. 전하.”

“무엇을 먼저 할 생각이시오?”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겠다는 의미였다.

누군가에게 이러한 신뢰를 받는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었다.

엷은 미소가 입가에 맴돌았다.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렇기에 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신은 정치를 모르옵니다.”

“이판을 보고 있노라면 요즘 매일 새롭소.”

“정치를 모르기에, 신은 오직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옵니다.”

이연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그의 입이 열렸다.

“나아갈 뿐, 방향은 상관없다?”

“동쪽으로 가라고 하교하시면 갈 것이며, 서쪽으로 가라고 하교하시면 그리할 것이며, 북이라고 이르시면 움직일 것이며, 남이라고 이르시면 역시 따를 것이옵니다.”

“무엇이라도 상관없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되겠소?”

“그리할 것이옵니다.”

그 순간 이연이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마치 태산이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매번 느끼지만, 이연의 압박감은 쉽사리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판.”

“이르시옵소서.”

바닥을 짚고 있던 이연의 손바닥이 허공으로 움직였다.

그 뒤 손바닥이 위를 가리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먹을 꽉 쥐었다.

숨쉬기가 퍽퍽할 정도였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뇌를 흔들었다.

“무엇을 하여도 자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소?”

“신은 자신이 없사옵니다.”

의외의 말이었을까?

이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또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다.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차분하게 진심을 말했다.

“하오나 모든 반대를 신이 감당할 것이옵니다.”

“…….”

“전하께옵서는 유능한 신하들과 민본의 개혁을 기어이 이뤄내시옵소서.”

만족하였기 때문일까?

이연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충분한 흡족함이 담긴 웃음이었다.

이연의 눈동자는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저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허락이 내려졌다.

“윤허하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나의 역할은 이렇게 정리되었다.

******

-전하께옵서는 유능한 신하들과 민본의 개혁을 기어이 이뤄내시옵소서.

유능한 신하.

하는 짓이 얄미워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윤휴는 유능한 인물이었다.

이연에게 꼭 필요한 인물이었고.

조선의 역사에 남아야 할 인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말했다.

“다시 말하겠네.”

내 꿈을.

“내 꿈은 사문난적일세.”

윤휴도 함께 결의하기를 바라면서.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젊은 사람이 왜 그러나?”

“……아무래도 소생이 제대로 듣지 못한 거 같아서 말입니다.”

“사문난적.”

사문난적(斯文亂賊).

성리학의 교리를 부정하는 행위를 한 사람을 이른다.

잣대를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주자를 비판하는 행위까지 포함한다.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에서 사문난적이 된다는 건 최고의 불명예라고 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하면,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성리학을 부정하는 건 대한민국에서 국가보안법으로 잡히는 수준이다.

사안에 따라서는 더 심각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 한마디로 최고 수위의 사상범, 정치범이라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조선에서 이 말의 무게는 엄청나다.

그래서일까?

새파랗게 질린 안색과 덜덜 떨리는 입술은 윤휴의 심리 상태를 아주 잘 말해주고 있었다.

평소 언행을 보면 간이 배 밖으로 나오고 목숨이 여러 개가 되는 것만 같았던 윤휴조차도 ‘사문난적’이라는 네 글자만큼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것이다.

이제야 윤휴도 사람처럼 보였다.

아주 정겨웠다.

“……농이 과하십니다.”

“진심일세.”

“하!”

결국 윤휴의 입에서 노기가 터져 나왔다.

온 힘을 다해서 술잔까지 꽉 쥐는 꼴이, 여차하면 내게 던질 기세였다.

아주 허약한 송시열의 몸 상태를 고려할 때 저런 거 한번 잘못 맞으면 골로 갈 수도 있다.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걸 느꼈다.

“조롱에도 선이라는 게 있습니다.”

“자네가 사문난적이라는 게 아니라, 내 꿈이 사문난적이라는 걸세. 그런데 어찌 조롱이지?”

“대감!”

단전에서 뻗어 나오는 외침.

슬쩍 보니 술잔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느낌이 아니었다.

진짜 내게 던질 뻔한 걸 겨우 참은 것이다.

이제는 정말 진지하게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군요.”

“뭐가 어처구니가 없나?”

“하! 대감. 설마 벌써 노환이라도 걸리셨습니까?”

“……가뜩이나 나이가 많아서 서러운데 그런 걸로 시비를 걸지 말게.”

“실성하셨습니까?”

“과하군.”

“하! 일전에 소생을 사문난적으로 규정하였습니다. 하여 소생은 갖은 수모를 당했지요. 이를 기억한다면 이리 나오실 수는 없습니다.”

아. 맞다.

나와 윤휴 사이에는 아주 위대한 역사가 있었지?

윤휴가 열을 내는 이유가 사문난적이라는 단어 때문이 아니라 송시열의 위대한 역사 때문인 것 같았다.

이건 내가 잘못했다.

그래서 정말 진심으로 멋쩍게 웃었다.

“잠시 잊고 있었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과거의 일은 덮어주겠나?”

“……뭐라고요?”

“좋아. 그 일은 내가 사죄하겠네.”

“하! 세상만사가 그리도 쉽습니까?”

“사람이 참으로 옹졸하군.”

“뭐, 뭐라고 하셨습니까? 누가 누구보고 옹졸하다고 하는 겁니까? 소생은 아직도 대감이 영상 대감께 한 만행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길 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보십시오. 단 한 명이라도 소생이 대감보다 옹졸하다고 하는 이가 있다면 석고대죄라도 하겠습니다.”

“사람 말을 끝까지 듣게. 잘 생각해보게.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을 너그럽게 용서해줘야 하지 않나? 한데 자네는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니 옹졸하다고 한 것일세. 틈만 나면 내게 졸렬하다고 조롱하더니 말이야.”

“사, 사안이 다르지 않습니까?!”

발끈하는 윤휴.

가끔, 아주 가끔 나는 윤휴의 저런 성정이 부러웠다.

열을 낸다는 건 열의의 표현이니까.

그러니까 젊음이 부러운 것이다.

그렇다고 윤휴가 막 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송시열보다는 젊으니까.

불같은 성미가 더 젊게 느껴지게 할 수도 있고.

“이보게. 백호. 과거의 일은 내가 백번 용서를 구하겠네.”

“…….”

“원하는 형식이 있다면 말하게. 따르겠네.”

“허.”

“자네의 사가 앞에 앉아서 석고대죄라도 할까?”

“하. 소생을 암살하려는 겁니까?”

“왜 그렇게 꼬였나?”

“뭐…… 좋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일을 덮는다고 하더라도, 이는 명백한 조롱입니다.”

“왜 그런가?”

“사문난적은 성리학의 교리를 부정합니다.”

“설마 내가 그걸 모르겠나?”

“우암 송시열 대감께서 성리학의 교리를 부정하는 사문난적을 꿈꾼다? 이것이야말로 소생을 조롱하는 게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여기까지.

나는 윤휴를 더 도발하지 않기로 했다.

매번 느끼지만, 이 시절 사대부들은 정말 순진했다.

멍청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심계가 얕거나 무르다는 말도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이 시절 정객들에게 정치적 능력이나 학문적 성취를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시절 사대부는 현대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도덕성을 가졌기에, 인간 자체에 대한 존중이 대단하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가벼운 말장난에도 얼굴이 시뻘게질 수밖에 없다.

나는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하지.”

“…….”

“혼자 꿈을 꾸지 않겠네.”

“예?”

“이번에는 나도 자네와 함께 사문난적이 되겠네.”

“!!!”

“함께 말일세.”

윤휴의 눈동자는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왜 그렇게 놀라나? 이미 내 꿈이 사문난적이라고 했건만.”

세상에는 반드시 피해야 할 선이 있다.

이를 일컬어 금기(禁忌)라고 한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절대로 넘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나는 조선의 금기를 마음껏 넘을 수 있다.

나의 사고방식은 조선의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이 나라 조선의 금기를.

아니, 아예 짓밟을 수 있었다.

이 나라 조선의 금기를.

“남인이 따르는 퇴계 선생의 이기이원론이면 어떠하고, 서인이 배운 율곡 선생의 이기일원론이면 어떠한가.”

“!!!”

내 말에 담긴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금기를 넘은 말에 동요하였을까?

어떤 이유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윤휴의 얼굴은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아직은 더 할 말이 남았다.

“공자는 무엇이고, 주자는 또 무엇인가. 수백 년, 수천 년 전의 성현이 본 세상과 작금의 조선은 너무나도 다르거늘.”

“!!!”

“하여, 나는 사문난적이 되고자 하네.”

“!!!”

주저하지 않았다.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달렸다.

아니, 본질을 꺼냈다.

“묻겠네. 성리학이 융성하면 태평성대와 가까운가?”

“바,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가까워지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대체 무슨 말인가. 내가 아둔하여 이해할 수 없네만.”

“소생은 주자의 학설을 비판하였고, 성리학만이 모든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리학이 가장 중요한 건 변함이 없습니다. 그 외 다른 학문은 성리학의 부족함을 채우는 역할에 그칩니다.”

“참으로 말을 어렵게 하는군. 그럼 질문을 바꿔 다시 묻겠네. 군신이 성리학을 열심히 갈고 닦으면 태평성대가 열리나?”

“……군자의 도리를 부지런히 익히는 것이니, 어찌 태평성대와 멀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군. 자네 말을 잘 알겠네. 한데 한 가지 의아한 게 있네.”

나는 윤휴를 지그시 바라봤다.

여전히 당혹감이 남아 있는 윤휴의 눈동자.

그리고 조금씩 흐르는 당혹감을 놓치지 않았다.

오늘 나는 윤휴의 당혹감을 모두 담을 것이다.

하여, 나의 동지로 삼을 것이다.

그래서 말했다.

“조선은 세종께서 이루신 태평성대를 왜 넘어서지 못하나?”

“…….”

“뭘 그렇게 멍하니 쳐다보나? 직설적으로 말해, 그때의 성리학보다 지금의 성리학이 더 뛰어나지 않은가. 한데 우리는 어찌하여 그 시절의 태평성대를 뛰어넘지 못하는가? 아니, 감히 범접하지도 못하는 것 같네만.”

“모순입니다. 당시의 태평성대도 성리학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알지. 어찌 모르겠나. 한데, 성리학은 지금이 더 융성하지 않냐는 말일세.”

“그건…….”

“백호.”

나는 손을 내저으며 말을 잘랐다.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한마디를 꺼냈다.

“주자만이 무조건 진리는 아닐세.”

“!!!”

“주자……. 참으로 많이, 오랜 세월 배웠네. 우리 조선 말일세. 그러니 앞으로 조선은 주자를 그만 배우고 세종을 배우는 건 어떤가.”

“!!!”

“주자의 가르침으로 조선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룬 세종을 배우세.”

다시 말했다.

나의 진심을.

“대체 우리의 세종께서 주자보다 못한 게 무엇인가.”

“!!!”

“말로만 지껄인 주자와는 달리 세종께서는 모든 걸 이뤄내셨네. 바로 통치로써.”

말이 길었다.

이제 쐐기를 박을 때가 됐다.

나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내가 꿈꾸는 사문난적은 바로 이런 것일세.”

덧붙였다.

“어떤가. 함께 결의하겠나?”

다시 덧붙였다.

“기어이 사문난적이 되겠노라는 결의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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