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사문난적(3)
윤선도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 사람, 미수. 어서 오게. 참으로 잘 오셨네.”
“하하하. 선생께서 이렇게 반겨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반겨야지. 자네를 반기지 않으면 대체 누구를 반기겠나.”
윤선도의 환대를 받는 이는 바로 허목이었다.
그는 뛰어난 능력에도 관직에 큰 욕심이 없었기에 재야에 머물렀다.
그런 허목이 오랜만에 찾아왔으니 윤선도로서는 크게 환대하는 게 당연했다.
“대체 그간 어찌 지내셨나.”
“하하하. 뭐가 이리도 급하십니까.”
허목은 격식을 크게 차리지 않는 성격이었다.
뛰어난 학문과는 별개로 말투도 투박했다.
또, 대화를 주도하는 걸 좋아했다.
지금도 그랬다.
안부를 묻는 윤선도의 말에 답하지 않고, 잘 차려진 다과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당비(糖榧)로군요.”
다과상에는 맛깔나게 생긴 비자 모양의 산자가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맛을 좀 봐도 되겠습니까?”
윤선도는 피식 웃었다.
날카롭고 냉철한 성정의 윤선도였으나 허목에게는 늘 부드럽게 대했다.
“물론일세. 어서 들게.”
윤선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목은 당비를 입에 넣었다.
말없이 오물오물 씹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다시 하나를 더 들었다.
이번에는 바로 먹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왜 그러나? 맛이 별로인가?”
“꼭 그런 건 아닙니다만…….”
허목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손에 들었던 당비를 내려놓았다.
윤선도는 눈을 껌뻑이며 그 행동을 바라봤다.
“선생.”
“말씀하시게.”
“자고로 당비는 흰 밀가루에 술밑을 넣어 발효가 되면 끓는 물에 반죽한 다음 이를 비자 모양으로 잘라야 하지요.”
“허. 그런가?”
“예. 보아하니 여기까지는 잘 해낸 것 같은데 그 뒤가 문제로군요.”
“이런. 오늘 내가 자네에게 가르침을 받아야겠군. 그래. 어서 말해보게. 경청하겠네.”
“하하하. 가르침이라니요. 부끄럽습니다. 무릇 당비는 펄펄 끓는 기름에 넣고 튀겨서 꺼낸 다음 설탕과 밀가루를 섞은 반죽에 넣어 옷을 입혀야지요.”
“계속하게.”
“물론 설탕과 밀가루의 양은 같아야 합니다.”
“하하하. 오늘 크게 배웠네. 역시 자네는 세상 이치에 통달했어.”
“아직 멀었습니다. 소생이 다 알지만 부족한 게 하나 있지요.”
“하하하. 그렇지. 자네가 부족한 게 하나 있지.”
윤선도를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성리학적 경지를 떠나서 허목은 정말 박학다식했다.
세상 만물을 모두 알고 있다고 여겨질 정도로 모르는 게 없었다.
심지어 단지 알고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보고 있노라면 깜짝 놀랄 정도로 재주도 뛰어났기에 못하는 게 없었다.
그런데도 부족하다고 말하는 건 다른 게 아니었다.
“아쉽게도 주안상의 법도는 백호를 이길 수가 없지요. 참으로 통탄할 뿐입니다.”
그랬다.
적어도 술과 관련해서는 윤휴를 넘어설 수 없었다.
이건 허목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에서 윤휴보다 술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윤휴는 그야말로 주당(酒黨)이었다.
윤선도는 익살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백호는 향만 맡아도 술의 종류를 알아내지. 어디 그뿐인가. 제조 방법까지 완벽하게 꿰뚫고 있으니, 적어도 술에 관해서는 공자나 주자께서도 한 수 접으실 걸세.”
“이런. 공자와 주자보다 뛰어나다니요? 선생께서는 사문난적이 되려는 것입니까?”
“하하하. 기꺼이 수용하겠네.”
두 사람이 가벼운 농을 하면서 주고받았으나, 사문난적은 참으로 무서운 말이었다.
잔잔한 웃음이 오가는 편안한 자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기도 했다.
그때였다.
“소생도 그리할 생각이었습니다.”
허목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윤선도는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되었네. 이미 다 끝난 일일세.”
“사문난적으로 낙인찍히더라도 이 나라 조선을 위하여 3년 복을 기어이 관철해내고자 했습니다.”
“미수. 그만하라고 했네.”
“선생. 송시열은 간악한 인사입니다. 그가 제 입으로 3년 복을 꺼낸 건 필시 의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능합니다. 그가 치밀한 정략을 펼쳐서 사직 선언까지 했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허목의 말투는 매서울 정도로 날이 서 있었다.
듣기에 따라서 감정적이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당비의 제조를 말할 때의 소탈함과 투박함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윤선도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도 서인을 대할 때 강경하였으나, 허목은 아예 결이 다른 강경파였다.
서인과 타협하는 건 반역이라고 여길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다 끝난 일을 들춰내며 송시열을 맹렬하게 비난하고 있으니 속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결과를 보게. 결국 3년 복은 관철되었어. 모두 잘 끝났네.”
“그 결과에 우리 남인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으니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기도 전에 송시열이 제 꾀에 걸려 넘어졌으니 어찌하겠는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러니 무능한 인사라는 것이지요.”
허목은 냉소적으로 웃었다.
송시열을 향한 비웃음을 노골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자연스레 대화의 방향은 틀어졌다.
윤선도 역시 이를 느꼈으나 굳이 막지 않았다.
“소생이었다면 사직 선언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금만 더 시일을 끌었다면 남인은 자중지란에 빠졌을 것이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서인의 영수이자 당대의 거유(巨儒)인 송시열이다.
그가 3년 복을 굳건하게 고수했다면 남인의 젊은 학자들은 크게 동요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송시열에게 만남을 청할 것이다.
그렇게 송시열의 압도적인 학문적 성취에 감화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면 송시열을 비판하던 서인 내부의 목소리도 점차 사라졌을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고육지책(苦肉之策)의 정도가 아니었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한 윤선도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허목의 말대로, 어쩌면 남인은 전대미문의 위기에 봉착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늘이 송시열에게 정치적 능력을 내리지 않은 것을 이처럼 반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는 송시열이 정말 모든 상황을 주도했다는 가정이 진실이어야 성립한다.
최근 들리는 여러 말에 의하면 명백하게 송시열은 주도하지 않았다.
허목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윤선도는 영의정 정태화와 송시열의 일을 간략하게 말했다.
“허.”
이를 들은 허목은 황당함을 숨기지 못했다.
하늘 아래 이보다 더 졸렬한 인사가 있을까.
듣기만 해도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네. 워낙 복잡하게 일이 진행되었기에 그러하네. 어쨌거나 자네 말대로, 송시열은 남인의 숨통을 끊는 길을 걷지 않았어. 그러니 이제 의미가 없는 일이네.”
“아니지요. 의미는 있습니다.”
“말해보게.”
“그 무능하고 옹졸한 인사는 필시 우리 남인에게 빚을 갚으라고 할 겁니다.”
“빚이라고 하였나?”
“예. 3년 복을 관철한 사실을 지독할 정도로 생색내면서 양보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 인사라면 필시 그리할 것입니다. 설령 영의정 정태화와 관련한 졸렬한 일화가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결과가 이러하지 않습니까. 우리 남인에게 빚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황 말입니다.”
그랬다.
이 말이 옳았다.
송시열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 옹졸한 인사라면 말이다.
윤선도는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의 정국이 절대 편안하지 않을 것이라고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무려 복제(服制)를 양보했다며 나올 송시열의 공세는 실로 거셀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과연 허목이었다.
정국을 분석하는 시야만큼은 당대 최고라고 해도 무방했다.
아쉽게도 분석한 내용이 우호적이지 않지만 말이다.
답답함에 무슨 말을 꺼내려고 할 때였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고 문이 열렸다.
“선생께서도 계셨습니까.”
윤휴였다.
허목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윤휴의 안색이 이상할 정도로 창백했다.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백호. 무슨 일이 있었나?”
“아.”
“왜 그러나?”
재차 허목이 재촉하였으나 윤휴는 어색한 웃음을 보일 뿐이었다.
지켜보던 윤선도도 의아하여 말을 보탰다.
“백호. 왜 그러나?”
“……선생.”
“말하게.”
“아무래도 소생이 허깨비를 본 것 같습니다.”
“뭐……?”
윤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참으로 괴이한 말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윤선도와 허목의 미간은 거의 동시에 찌푸려졌다.
윤휴의 언행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윤휴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지켜보다 못한 허목이 재촉했다.
“백호. 연유를 물었네.”
“아…… 선생.”
“말하게.”
“아무래도 소생이 도깨비에 홀린 것 같습니다.”
“허. 유학을 익힌 선비가 그게 할 말인가? 백주에 약주라도 하셨나?”
“아. 약주를 조금 하긴 했습니다.”
“자네답네. 많이 마셨나?”
“전라도 여산의 호산춘(壺山春)을 적당하게 마셨지요.”
허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 그 좋은 술을 혼자 마셨나?”
“술벗이 있긴 했습니다만 주도를 모르는 인사였습니다.”
“이런. 아무리 좋은 술이라고 할지라도 주도를 모르는 사람과 함께라면 의미가 없지. 그래서 안색이 별로였군.”
“그렇긴 합니다만.”
“이런. 혹시 오늘 새로운 주도라도 깨달았나?”
“음. 실은 그렇습니다.”
“하하하. 다른 것도 아니고 주도를, 다른 사람이 아닌 윤휴가 이른다면 반드시 경청해야지. 자. 어서 가르침을 내리시게.”
분위기는 훈훈했다.
듣고 있던 윤선도도 부드럽게 웃으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윤휴는 잠시 머뭇거렸다.
사실 속이 매우 답답하고 어지러웠다.
송시열의 입에서 가장 송시열답지 않은 말을 듣고 왔으니 말이다.
그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한번 크게 양보하였으니 남인도 성의를 보이길 바라네. 이것이야말로 화합하는 정치가 아니겠냐는 말일세. 아. 어디까지나 자네가 나와 함께 사문난적을 결의할 때의 일일세.
그래서일까?
아니, 그래서였다.
취기에 취한 듯 자신도 모르게 말을 꺼냈다.
“과거 송시열이 소생을 사문난적이라고 했습니다.”
“…….”
“어찌하여 그랬을까…… 고민이 됩니다.”
“이런. 주도를 깨달았다고 하더니 그게 아니었군. 백호 자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리도 어려운 말을 할 건가?”
“송구합니다. 그저 오늘 술잔을 들이켜면서 머릿속을 어지럽힌 화두였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윤휴다.
연배가 낮긴 하지만 학문적 성취만 볼 때 남인의 인사 중 수위에 속한다.
오죽하면 제갈량의 화신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그런 윤휴가 이런 고민을 토로한다면 가볍게 넘길 수 없다.
허목은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과거 송시열이 자네를 사문난적이라고 규정하였네.”
“…….”
“단언할 수 있네. 그건 독선의 결과일세.”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사문난적은 성리학을 부정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네. 그런데 자네는 그러한 적이 없어. 단지 주자의 학설에 의문을 가졌을 뿐일세. 이것이 어찌 죄가 되겠는가?”
“하면, 선생께서는 주자를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하지 않은가. 가볍게 생각해보게. 주자의 시절은 이미 수백 년이 지났네. 그런데 그의 학설을 작금의 조선에 그대로 사용하는 건 너무나도 우매한 짓일세.”
“…….”
“우스운 건 송시열 본인도 주자를 비판한 적이 있으면서 자네에게 그리 독설을 퍼부었다는 것일세. 자신은 가능한데 자네는 불가능하다는 거였어. 나는 평생 그토록 오만한 인사를 보지 못했네.”
“만일, 주자를 부정하면 어찌 됩니까.”
“주자의 학설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주자를 부정한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나는…….”
허목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차분하게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리고 말했다.
“성리학만이 세상의 진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네.”
“…….”
“치국에 다른 학문을 보탤 수는 있다고 여기네. 하여, 다른 학문을 배척하지 않네. 왜? 성리학도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