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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13화 (13/298)

13화 호포제(戶布制)

전라도에는 부안현이라는 곳이 있었다.

동쪽 김제군과는 15리, 서쪽 바다까지는 60리며, 남쪽 고분군과는 18리, 북쪽 만경현과는 20리였다.

이곳은 문관 6품의 현감이 다스렸는데 읍성은 석성으로서 둘레만 16,450척이며, 높이는 15척이었다. 읍성의 내부에는 우물이 16개로 넉넉하였기에 수백 명의 백성이 삶을 영위하는 데 부족함은 없었다.

읍성 관아의 서남쪽으로 20리를 가면 상서면이 있는데 읍성보다 많은 백성이 거주할 정도로 부안현의 중심지였다. 이곳에 유독 생기가 넘치는 가옥(家屋)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사람의 말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 가옥의 입구에는 투박한 현판이 있었다.

[반계학당]

그랬다.

이곳은 반계 유형원의 학당이었다.

“스승님.”

앳된 제자가 말을 꺼냈다.

학당의 주인인 유형원의 시선도 자연스레 옮겨졌다.

“오늘은 무엇을 배웁니까.”

“오늘도 배우고 싶으냐?”

“물론입니다. 스승님.”

“늘 말하였다. 아는 게 많아질수록 삶이 고단해진다고. 한데, 오늘도 배우고 싶으냐?”

“스승님의 말씀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배울수록 아는 게 많아지고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그래서 즐겁고 재밌습니다. 한데, 어째서 늘 고단해진다고 하십니까?”

제자의 물음에 유형원의 입가에는 쓴 미소가 감돌았다.

바라보기에 따라서 냉소적인 미소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차가웠다.

“배우면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된다. 이치를 알게 되면 세상이 얼마나 틀렸는지 깨닫게 된다.”

“하면, 좋은 것이 아닙니까?”

“다음이 문제다.”

“다음은 무엇입니까.”

“내가…….”

유형원의 볼은 씰룩였다.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그의 눈동자에는 회한과 고단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말이 이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에 빠지게 된다.”

“…….”

“병자가 있다. 병마와 싸우고 있다. 아직 희망이 있어. 명의를 만나면 고칠 수 있다. 그러나 명의의 말을 듣지 않고 약탕이나 먹으며 겨우 수명을 연장할 뿐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면 어찌 살아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이 나라 조선이 그러하다. 병들어 있거늘 고칠 생각이 없다. 분명 해결할 방법이 있지만, 누구도 그럴 의지가 없어.”

언제부터였을까.

유형원의 목소리에는 적개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더 확실한 건 지금 필요한 감정을 넘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루함. 이 현실을 보는 순간, 선비는 선비로서의 생명이 다한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부디 배움의 속도를 늦추거라.”

배우지 말라는 말이 아니었다.

현실의 벽을 느끼고 좌절할 시기를 최대한 늦게 가지라는 의미였다.

학당의 제자 중 유형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우매한 이는 없었다.

분위기는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공기까지 퍽퍽해졌다.

그러나 유형원은 이를 다스릴 생각이 없었다.

“시골 여인이 있었다. 어린 자녀는 등에 업고, 다른 자녀는 손에 잡고서 무덤 앞에서 울부짖으며 통곡했다. 연유를 아느냐?”

유형원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차가웠다.

공기의 퍽퍽함은 어느새 살을 가를 정도로 날카로워졌다.

“남편이 병들어 죽은 지 이미 3년이 되었는데도 백골(白骨)의 신포를 바치고 있는데, 이제는 일곱 살 난 아이와 네 살 난 아이도 군포를 내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

“하하하.”

유형원의 웃음은 참으로 구슬펐다.

어떤 감정이 담겨 있다고 딱 잡아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기도 했다.

제자들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듣기만 했을 뿐인데도 너무나도 참혹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정남(丁男) 즉, 16~60세의 남자들이 군포를 낸다.

그런데 이미 사자(死者)가 된 이와 어린아이에게도 군포를 거두고 있다.

“죽은 이도 군포를 낸다. 갓난아이도 군포를 낸다.”

전자를 백골징포(白骨徵布)라고 하며, 후자를 황구첨정(黃口簽丁)이라고 한다.

“이게…… 나라더냐?”

“…….”

“이게 정상적인 나라의 몰골이더냐?”

마치 절규와도 같은 말이었다.

더 슬픈 건 세상을 향한 아무런 기대감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다.

유형원은 말을 멈췄다.

그저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한때 이 나라 조선을 개혁해낼 수 있다고 여겼던 열의가 잠시 스쳐 갔다.

그러나 말 그대로 잠시에 불과했다.

이미 이 나라는 희망이 없으니 말이다.

“스승님. 여쭤도 되겠습니까.”

“허락한다.”

“조정에서는 이 문제를 어찌 접근하고 있습니까.”

“하……하하!”

유형원은 박장대소했다.

마치 광인처럼 웃었다.

그의 웃음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웃던 유형원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손을 꽉 쥐었다.

제자들의 눈을 돌아가면서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조정의 대소신료도 이를 알고 있다. 이 나라 조선은 지독할 정도로 중앙집권이 잘 이뤄진 나라이기에 조정에서는 군현의 일을 소상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이를 개혁할 의지가 없다.”

“…….”

“현실의 벽. 이는 사실 사람이 만들어 낸 통곡의 벽이었다.”

“…….”

다시 유형원의 목소리는 싸늘해졌다.

조정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가득했다.

“그들은 죽은 이가 만든 학문의 글자를 해석하는 데 최선을 다할 뿐이다. 지금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바라보지 않아.”

“…….”

“너희가 내 말을 믿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배움을 늦추고 진실을 천천히 바라보도록 하라. 그래야만 이 나라에서 멀쩡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스승님이시라면 이를 어찌 해결하실 겁니까.”

“나는 이미 답을 찾는 걸 포기했다. 그러나 가장 근접한 해결책을 들은 바가 있다.”

“무엇인지 일러주십시오.”

유형원은 잠시 뜸을 들였다.

이 또한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담담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호포제.”

“……호포제라고 하셨습니까?”

“호포제는 반상을 구별하지 않고 군포를 내는 것이다.”

이 말에 제자들도 헛웃음을 쳤다.

가능성을 떠나서 이해조차 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제자 중 한 명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참으로 황당합니다.”

황당한 주장이라.

유형원은 고소를 삼켰다.

자신의 제자들이지만 벌써 세상에 물들어 있지 않은가.

속이 불편했다. 그러나 이 또한 현실이었다.

“과거…….”

유형원은 제자를 지그시 바라봤다.

답변을 들은 제자의 표정이 너무나도 궁금하기 때문이었다.

“우암 선생과 백호 선생이 호포제를 운운하였다.”

제자들은 눈을 껌뻑였다.

당대 최고의 학자 두 명의 동시에 거론됐으니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니까 황당하다고 한 호포제를 주장한 사람으로 말이다.

“방향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양반이 이러한 개혁안을 주장했다는 건 높게 평가할 만하다.”

“…….”

“그러나 이 또한 기도에 그쳤으니 명백한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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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군왕의 시선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신하로서 이를 감당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배포가 남다른 윤휴도 다를 건 없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지그시 바라만 보는 이연의 눈길 덕에, 그의 이마에는 진땀이 차올랐다.

뜨거운 차를 두세 잔 들이켰을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이연의 입이 움직였다.

“공조 정랑.”

“예. 전하.”

“나는 이 나라 조선을 개혁하고자 하오.”

고저가 없는 군왕의 목소리.

그러나 담긴 뜻은 참으로 지엄했다.

윤휴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극진한 예를 취하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대는 나를 따를 것이오?”

“신이 어찌 어심을 거스를 수 있겠사옵니까.”

“그런 정치적 수사를 듣고자 한 말이 아니외다.”

“……어인 하교이시옵니까.”

이연의 손이 움직였다.

한쪽 구석에 빼곡하게 쌓인 장계로 향했다.

하나를 잡더니 천천히 펼쳤다.

가늘어진 눈으로 장계를 살피던 이연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조정이 비록 백성을 보호하는 마음을 가졌다고는 하나, 정사에는 백성을 보호하는 실상이 없다.”

“…….”

“백성의 목숨이 끊어지려 하는데도 조세를 독촉해 거두는 것은 백성을 못살게 하는 정치다.”

“…….”

“어린아이를 군적에 올려 군포를 부과하는 아약첨정과, 죽은 사람에게 군포를 받는 백골징포와 족속에게 대신 거두는 일족침학의 폐단에 있어서는 실로 천하의 심한 고통이며 재앙을 불러오는 큰 뿌리다.”

“…….”

“그대라면 이 장계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것이외다.”

“신이……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여기시오?”

윤휴는 잠시 머뭇거렸다.

무슨 말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을 들었기 때문이다.

잠시 기다리던 이연이 다시 운을 띄웠다.

“사람의 문제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소.”

“…….”

“제도의 폐단이 발생하였을 때 원인을 탐관오리에게 국한하는 건 참으로 비겁하기 때문이외다.”

“하오나 전하. 우리 조선의 제도는 천하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훌륭하옵니다. 어찌 사람의 문제를 배제할 수 있겠사옵니까.”

“…….”

“무릇 백성의 기쁨과 슬픔은 수령에게 달려 있사옵니다. 하여, 조정은 수령을 정밀하게 선발해야 하옵니다.”

“이 나라 조선은…….”

이연이 고개를 틀었다.

숨을 고르며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성리학의 나라이지요.”

“…….”

“우리 관리는 사대부이기에 평생 성리학을 익히오.”

“…….”

“수신(修身)을 그토록 중시하는 성리학을 익힌 이들이 바로 우리 관리라는 말이외다. 성현의 가르침을 평생 익힌 이들이 관리가 되는 나라이지요. 한데, 대체 무슨 수로 사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소? 더 수양하라고 해야 하오? 부족하니 더 경전을 읽으라고 하오?”

핵심이었다.

너무나도 정확한 핵심이었다.

그렇다.

조선은 이론적으로 탐관오리가 탄생할 수 없는 나라였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신을 부르짖는 성리학자가 통치의 권한을 휘두르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탐관오리는 발생한다.

이를 단지 관리의 수양이 부족했다고만 판단한다면, 과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어불성설이다.

불가능하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윤휴는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새삼 깨달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군왕의 고뇌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를 말이다.

“나는 이 문제를 달리 해결하고자 하오.”

“이르시옵소서.”

“호포제.”

“!!!”

흔들리는 윤휴의 눈동자.

이연은 놓치지 않고 그 모습을 살폈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불가하여 당황한 게 아니라, 기쁘기에 놀란 것으로 보이오만.”

“…….”

“내 말이 틀렸소?”

“신 윤휴…….”

윤휴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무언가를 억누르며 힘겹게 말했다.

“호포제를 평생의 신념으로 삼고 있사옵니다.”

“참으로 좋은 일이외다.”

“만일 호포제가 관철된다면 어찌 군정의 폐단이 백성을 어깨를 짓누를 수 있겠사옵니까.”

“하여, 이를 해내고자 하오.”

“신이 무엇을 하면 되옵니까.”

“당론.”

“…….”

“남인의 당론으로 삼으시오.”

“저, 전하.”

윤휴의 당혹스러움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남인의 주요 정객은 대부분 호포제를 반대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당장 허목만 하더라도 호포제를 절대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곤혹스러움이 윤휴의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거,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반응이시오? 내키지 않소이까?”

“그것이 아니옵니다. 단지 가볍게 답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에 머뭇거렸을 뿐이옵니다.”

“나는 이미 사화가 없는 조선을 선언했소.”

“신이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사화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지 않소. 서인과 남인이 양보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이외다. 하나를 받았으면 응당 하나를 내주어야 하거늘.”

“……어인 하교이시옵니까.”

언젠가 들었던 말이었다.

그러나 군왕의 말과 연결하는 건 너무나도 어려웠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이조판서 송시열이 3년 복을 내주었으면 남인도 화답을 해야지요.”

이연의 말은 상상의 범주를 넘어선 것이었다.

윤휴는 뒤통수를 둔기로 맞은 것처럼 어지러웠다.

“다른 사람도 아닌 송시열이외다. 그가 배포가 큰 양보를 한 이유는 바로 호포제에 있소이다.”

“!!!”

“답하시오.”

윤휴는 고민했다.

과연 당론으로 끌어낼 수 있을까……?

없다.

백번을 생각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누가 오더라도 남인은 호포제를 당론으로 끌어내지 않을 것이다.

어명이 내려지면 목숨을 걸고 반대할 인사들이다.

윤휴는 속의 어지러움을 겨우 인내하며 힘겹게 말했다.

“……황공하옵니다. 호포제를 남인의 당론으로 삼는다는 건 불가능하옵니다.”

“듣던대로 진솔하오.”

“……전하.”

“당론이 가능하다고 하였다면, 나는 그대를 허무맹랑한 인사라고 생각했을 것이외다.”

이연의 손이 움직였다.

정확하게는 윤휴를 향해 내밀었다.

“함께하시겠소?”

덧붙였다.

“민본을 기치로 한 개혁 조선의 위대한 여정을 말이외다.”

윤휴의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전율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사용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심장의 외침을 거부하지 않았다.

“신 윤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할 것이옵니다.”

“부족하오.”

“신 윤휴……. 사문난적의 길을 걷기로 하였사옵니다.”

“그 길은 무엇을 향하오?”

“세종의 치세이옵니다.”

“윤허하오.”

이연은 싱그럽게 웃었다.

그리고 어명을 내렸다.

“선봉(先鋒)을 내리겠소.”

“기어이 일기당천이 될 것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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