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노래하라-14화 (14/298)

14화 경장(更張)의 나라(1)

느껴졌다.

상대방의 당황스러움이.

이해할 수 있었다.

설마 내가 여기까지 기별도 없이 찾아올 줄은 몰랐을 것이니 말이다.

“……이판께서 내 사가로 오실 줄은 미처 몰랐소.”

“하하하. 발길 따라 걷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소. 호판께서 너그럽게 이해해주시오.”

그랬다.

나를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는 바로 호조판서 허적이었다.

그러니까 서인의 영수인 내가 남인의 영수인 허적의 집에 들이닥친 것이다.

이만하면 당황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그나저나 객이 왔거늘 전혀 대접하지 않소?”

“……사람이 오래 살고 볼 일이외다. 내가 비록 남인의 영수이지만 서인의 정객들과 늘 소통하고 지내오. 그러나 유독 이판과는 가까운 관계를 맺지 못하였는데 오늘 이런 일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소이까.”

말 그대로였다.

윤휴, 윤선도, 허목이 강경파에 속한다면 허적은 온건파로 분류할 수 있었다.

허적은 서인과도 늘 가깝게 지내며 타협점을 찾고자 노력했다.

단적으로 나와 함께 서인을 이끌어가는 송준길과도 긴밀한 관계였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사실 송준길과는 인척 관계인 것도 어느 정도 이유는 됐을 것이다.

어쨌든 이 몸의 원주인이었던 송시열은 워낙 개똥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허적으로서도 절대 가깝게 지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허적은 지금 이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쓴 미소를 지었다.

“차라도 한잔 내주시면 참으로 좋을 것 같소만.”

“허.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보오.”

허적은 헛웃음을 지었다.

딱 그때 다과상이 들어왔다.

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 내 성미가 급했소. 호판께서 나를 이토록 알뜰하게 챙기시는데 말이외다.”

“……급히 오셨기에 간단하게 청천백석차를 준비했소.”

“하하하. 그냥 냉수나 한잔 내오셔도 되는데 참으로 감격스럽소이다.”

능청스럽게 떠들었다.

갈수록 허적의 눈가는 가늘어졌다.

내 행동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잡소리를 계속 이어갔고, 허적은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적당한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허적이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이제 나를 찾아온 이유를 들어볼 수 있겠소?”

“아.”

“나 역시 최근 이판의 행보가 전과 다르다는 건 알고 있소. 그러니 따로 할 말이 있을 것 같소만.”

나를 경계하는 시선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가 가득한 눈빛이었다.

역시 듣던 대로 온건한 인물이 분명했다.

“물론 이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건 아니외다.”

의식의 저 너머에 송시열에 대한 불신이 있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멋쩍게 웃으면서 어물쩍 말했다.

“궁금한 게 많아서 가르침을 청하러 왔소.”

“……가르침이라고 하셨소? 우암 송시열이 내게 말이오?”

“물론이외다.”

“이거 천지가 개벽할 일이외다.”

“그 정도로 놀라실 필요는 없소. 앞으로도 종종 찾아올 생각이니까.”

“…….”

파르르 떨리는 허적의 눈동자는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앞으로도 자주 볼 생각에 벌써 설렜다.

엷은 미소는 덤이었다.

“내게는 꿈이 있소.”

“꿈이라고 하셨소?”

“호판과 함께 조선을 경장의 나라로 복원하는 것이외다.”

또 파르르 떨리는 허적의 눈동자.

아주 보기가 좋았다.

덤으로 엷은 미소는 당연하고.

그새 허적의 손이 떨렸다.

찻잔을 잡으려다가 미수에 그칠 정도였으니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천천히 그리고 나지막하게 물었다.

“나는 이 나라의 현황이 궁금하오. 대신 중에서 호판보다 이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말이오.”

허적은 호조판서다.

조선의 재정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경신 대기근을 막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자연재해를 막는 방법은 없지 않겠는가.

하여, 내가 할 일은 가장 효과적으로 경신 대기근을 극복하는 것이다.

첫 번째 신호탄으로 호포제가 채택됐다.

얼핏 보기에는 경신 대기근과 호포제 사이에 큰 연결고리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재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 중요한 건 두 가지 축이다.

조정의 구휼미가 얼마나 확보되었는가.

그리고 백성은 얼마나 자립하여 버틸 수 있는 가다.

살인적인 군포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백성은 단 하루라도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호포제는, 지옥이 펼쳐지기 전에 백성의 곳간에 쌀 한 톨이라도 더 남겨두기 위한 자구책이다.

물론 이연은 순수하게 민생을 위한 개혁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호포제는 이연과 윤휴에게 맡겼다.

내가 방패를 자임하였으나 공격이 들어올 때까지 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다.

이때 내가 해야 할 일은 역시 조선의 재정 수준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또 다른 방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물론 허적이 쉽사리…….

“인조 대왕의 치세부터 조정은 3년마다 호구를 조사했소.”

마음의 문을 열었다.

역시 온건파답게 말이 잘 통했다.

나는 기분 좋게 경청의 자세를 취했다.

호구(戶口)는 가구(家口)당 식구 수를 의미했다.

조선은 원활한 조세 징수와 군역 및 부역을 위하여 주기적으로 호구조사를 시행하였다.

특히, 인조 17년(163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3년마다 호구조사가 이뤄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적을 바라봤다.

이렇게 보니 50세는 된 듯한 허적의 온화한 미소가 참으로 잘 어울렸다.

그의 청아한 목소리는 차분하고 올곧은 자세와 만나면서 더할 나위 없이 편안했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호구 수는 중종 38년(1543년)의 836,669호, 4,162,021명이외다.”

“인조께서 17년(1639)에 이르렀을 때 조사하였다고 하셨소. 그때는 어느 정도였소?”

“441,827호, 1,521,165명이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나라가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조선의 인구가 150만 명밖에 되지 않을 수는 없다.

누락이 많았다는 것이고, 그만큼 국가 행정이 박살 났다는 걸 의미한다.

이유를 떠나서 참으로 참담한 수준의 결과였다.

나도 민망했고 허적도 민망했다.

어쨌거나 우리 두 사람은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중추였으니 말이다.

나는 멋쩍게 웃으면서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가장 최근의 결과는 어찌 되오?”

“가장 최근에 시행한 건 선왕 시절 정유년(효종 8년, 1657년)이오. 658,771호로 2,290,083명이오. 그리고…….”

이어진 허적의 말에 의하면 도별 호당 인구였다.

그러니까 강원도는 4.4명, 경기도 3.2명, 경상도 3.9명, 도성 5.1명, 전라도 3.3명, 충청도 2.9명, 평안도 3.3명, 함경도 3.4명, 황해도 3.1명으로 평균 3.6명이었다.

듣고 보니 조금 의아한 내용이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자 허적은 짐작했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도성은 권세가나 부유층이 많이 거주하여 호당 인원이 가장 많소.”

대충 부자들은 인구 부양력이 상당하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희한한 게 하나 있었다.

참을 필요는 없어서 냉큼 물었다.

“하면 산이 많고 척박한 토지인 함경도는 어찌하여 그렇소?”

“참으로 괴이하오. 어찌 이런 기본적인 걸 묻는 것이오?”

“잘 모르기에 가르침을 청한 것이외다.”

“허……. 뭐 좋소. 토질이 척박한 함경도는 1결(結)당 면적이 넓기에 경작을 위해서는 많은 인원이 필요하오. 하여, 한 가구에 많은 인원이 모여 살고 있소.”

결(結)은 농토의 면적 단위로써, 조선은 비옥도를 기준으로 토지를 6등급으로 나누고 있다.

당연하겠지만 1등전이 가장 비옥하고 6등급이 제일 척박하였기에 1등에서 6등으로 갈수록 1결의 면적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바꿔 말해서 척박한 농지가 많은 함경도는 토지 생산력이 현저하게 낮을 수밖에 없기에 1결의 면적이 넓을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서 1등전의 1결이 10평이면, 6등전의 1결은 60평인 셈이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고 할지라도 경작은 이뤄져야 할 것이니, 6등전의 1결에 투입되는 노동력은 1등전의 1결에서 일하는 것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함경도는 한 집에 많은 가족이 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비옥한 토지가 많은 전라도나 충청도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겠구려.”

“그렇소.”

그나저나 듣고는 있는데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지 쉽사리 결정할 수 없으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잘게 깨물 때였다.

“현재 파악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원전(元田)은 1,104,758결이외다.”

원전은 이 시절 토지조사 사업인 양전 사업을 시행하여 전답(田畓)으로 등재한 논밭을 말한다.

“그러나 이판께서도 잘 아실 것이외다. 우리 조선은 원전에서 면세전, 재상전 등을 제외하고 현재 경작하고 있는 시기전(時起田) 과세를 표방하고 있소. 하여, 실제로 징수가 이뤄지는 토지는 대략 70여만 결이외다.”

한마디로 세금 안 내는 토지가 40만 결이라는 말이다.

얼추 계산해봐도 40%나 되는 토지였다.

자세한 사정은 더 살펴봐야겠지만 당장 느낌으로는 썩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이라고 가정하면 국민의 40%가 면세자라는 것이다.

그나저나, 제대로 대면한 건 오늘이 처음이지만 허적은 제법 눈치가 빠른 인물이 분명했다.

지금 한 발언만 봐도 그렇다.

내 물음의 의도가 무엇인지 바로 파악하지 못했다면 이런 류의 답변은 불가능하다.

뭐. 당연하겠지만 거대 여당인 서인을 상대로 남인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보통의 정치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다소 다른 느낌의 지도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할까?

상당히 느낌이 부드럽고 좋았다.

특히 사람이 모난 곳이 없어 보였다.

다만 특이한 건, 뭐라고 해야 할까?

능동적이라거나 주도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지는 않았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랬다.

“그리고 시기전을 세밀하게 파악하면 전라도가 가장 많은데 15만 결이 조금 넘지요.”

“그렇소?”

거기까지는 내가 알 필요는 없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화두를 돌리고자 했으나 아쉽게도 미수에 그쳤다.

허적의 말이 쉬지 않고 이어졌기 때문이다.

“경상도는 13만 결이 조금 안 되오.”

“알겠소.”

“그리고 충청도는…….”

이거 아무래도 허적의 눈치는 한쪽으로만 발전한 것 같다.

별로 안 듣고 싶은 내용을 지금도 계속 말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 이토록 세세한 내용을 내가 모두 알 필요는 없다.

엄밀히 따진다면 나는 실무 관리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가르침을 청한 처지였기에 말을 자를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눈을 껌뻑이며 허적의 일장 연설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언제부터인지 부드럽게 웃으며 잔잔한 목소리로 부지런하게 열거하는 허적의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고 있노라면 최선을 다하여 경청해야 했다.

그나저나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인자한 노승이 불경을 읽어주는 느낌이라고 할까?

물론 경지에 오른 성리학자인 허적이 들으면 노발대발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잡생각을 하다 보니 문뜩 본질적인 의문이 생겼다.

허적이 잠시 숨을 고를 때 재빨리 물었다.

“한데, 호판께서는 이 모든 걸 다 외우고 계시오?”

그러자 허적은 헛웃음을 지으며 미간까지 찌푸렸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시오? 호조판서로서 당연한 일이외다.”

“아.”

그야말로 우문현답(愚問賢答)이 아닐 수 없다.

일국의 재정을 책임지는 장관에게 나는 대체 무엇을 원한 것일까.

“그래서 아쉽소.”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오?”

“제일 잘 알지 않소이까. 모든 관리가 정무에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렇소?”

“관리이기 이전에 성리학자이니 수기치인에 더 집중하는 이가 많소. 이를테면…… 아, 아니외다.”

아마 나를 이르는 말이었을 것이다.

되돌아보면 송시열은 경세가로서 뚜렷한 치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단지 대학자일 뿐이었다.

오늘 만나보니 허적은 경세가로서 자질이 차고 넘쳤다.

전형적인 실무형 관리인 것이다.

이토록 세밀한 업무 장악력은 아무나 가지는 게 아니니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허적은 나를 만난 이후로 불필요한 진영 논리를 거의 꺼내지 않았다.

진짜 말 그대로 현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찰나 송준길의 말이 떠올랐다.

-호조판서 허적은 남인의 영수이지만 서인과도 두루 원만하게 지내지. 우습게도 그를 싫어하는 서인의 수보다 그를 미워하는 남인이 더 많네.

자고로 경쟁 정당과 타협을 중시하는 당 대표는 내부의 소장파로부터 거센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이건 조선이나 대한민국이나 큰 차이점이 없었다.

대한민국에서도 상대 당과 타협하고 온 원내대표는 당 의총에서 융단폭격에 노출되니 말이다.

이렇듯 원래 내부의 적이 무서운 법이다.

허적이 직면한 내부의 적이 누군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윤선도나 허목 그리고 윤휴로 분류되는 강경파일 것이니 말이다.

생각을 정리하며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하나 더 물어도 되겠소?”

“물론이외다.”

“우리 재원으로 구휼미를 확보할 수 있소?”

“음…….”

허적의 표정은 상당히 애매해졌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부정적인 말을 꺼낼 수밖에 없을 것이니 잘 포장하려는 것 같았다.

“참으로 난감한 물음이 아닐 수 없소.”

역시.

이는 답하기가 궁색할 때 주로 나오는 말이다.

그렇다면 따로 쟁여둘 수 있는 돈은 없다는 말이 분명했다.

내가 이 정도 눈치는 있다.

그런데 허적의 입에서는 뜻밖의 말이 나왔다.

“나라 곳간을 책임져야 할 호조의 수장인 내가 가장 손쉽게 재원을 절감할 수 있는 영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아.”

“생각해보지 않으셨소?”

갑자기 강의 분위기였다.

그러고 보니 여태껏 허적은 나의 반응과는 무관하게 열심히 설명했다.

강사처럼 말이다.

“가르침을 주시오.”

“바로 관리들의 녹봉을 감액하는 것이오.”

재정을 책임지는 부서의 장관이 공무원의 월급 감축을 언급했다.

그나저나 비축분 확보의 방안을 물었다.

허적의 답변이 아주 상관없는 건 아니지만 조금 방향이 달랐다.

의아했다.

그러나 조금 더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한데, 묘하게도 군주는 녹봉의 감액에 부정적이지요.”

정말 묘한 말이었다.

호조판서는 관리의 녹봉을 줄이자고 주장하는데, 왕은 늘리자고 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현재 관리의 녹봉이 어느 정도인지 아시오?”

“…….”

“모르시오? 거참. 넉넉하게 3만 석이외다. 줄이거나 늘리거나 혹은 유지하거나…… 이런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할 때, 차액은 8천 석에 이르오.”

사실 가늠하기 어려웠다.

8천 석이라는 규모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니까.

하지만 8천 석이라는 규모를 절대적인 가치로 판단할 필요는 없다.

녹봉의 규모가 3만 석이니, 이미 8천 석의 상대적인 규모가 압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허적은 제법 뛰어난 강사였다.

나의 의문을 단번에 해결하고자 나섰으니 말이다.

“상비군 1,200명을 유지하는 군량이 연 2만 석, 즉 매달 2,400여 석이 필요하오. 8천 석이라는 건 잘 훈련된 훈련도감의 병력 1,200명을 3달 이상 유지할 수 있는 막대한 규모라는 것이외다.”

확 와닿았다.

말이 1,200명이다.

실제로는 진짜 엄청난 규모였다.

“하여, 나는 늘 관리의 녹봉을 줄이고자 하오.”

허적의 눈동자는 이글거리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열의가 담겨 있지 않았다.

표정에는 단호함도 없다.

그러나 무게가 있었다.

참으로 묵직하였다.

나는 이러한 경우를 잘 알고 있다.

“우리 조선은 관리의 녹봉조차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한 나라이외다. 한데, 어찌 구휼미를 크게 확보할 수 있겠소? 근본적인 제도의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그건 불가능하오. 유일한 길은 관리들에게…….”

세상은 이를 신념(信念)이라고 부른다.

“오직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오. 사대부라면 응당 화답해야 할 것이오.”

살이 베어질 정도로 날카로운 신념이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이 나라 조선의 관복에 실린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야말로 신념의 강자였다.

무서울 정도로 단단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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