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보이지 않는 손(1)
난리가 났다.
진짜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관리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말을 옮겼다.
“전하께서 압도적인 위엄을 보이셨다네.”
“설마 자네 그 자리에 있었나?”
“암. 딱 그때 그곳을 지나가다가 모든 걸 듣고, 모든 걸 보고야만 말았지.”
“허. 자네 성은(聖恩)을 입었군. 참으로 부러우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군왕이 직접 연좌하는 선비에게 일갈하는 건 죽을 때까지 보기 힘든 경우였다.
심지어 신왕이 노회한 선비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상대하는 건 더 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그 역사적인 현장을 목격한 이들을 향해서 성은(聖恩)을 입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성은의 기회를 놓친 관리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화자(話者)를 바라봤다.
자연스레 성은을 입은 관리는 어깨에 힘을 주며 우쭐거렸다.
“하하하. 이 사람들아. 그거 아나? 부러우면 지는 걸세.”
“끙. 됐네.”
“하하하. 하면, 이만 가봐도 되겠나?”
“허. 이 사람. 뭘 또 벌써 가려고 하나?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주게. 현장에 있었으니 생동감이 오죽하였겠는가.”
“그럴까?”
“이 사람아. 말해보게. 기꺼이 최선을 다하여 들어줄 용의가 있다네.”
어느새 십수 명의 관리가 모였다.
화자의 의기양양은 하늘을 찔렀다.
“당색을 떠나서 문보 선생의 성정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암. 그렇지. 문보 선생의 성정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지. 강경파의 대명사이자 타협과는 겸상도 안 하는 분이 아닌가.”
“바로 그거일세. 타협하느니 황천길을 선택할 성정이지 않은가. 그런 문보 선생이 직접 연좌에 나섰으니 기세가 얼마나 날카로웠겠는가. 산천초목(山川草木)이 바짝 긴장해서 일제히 지켜볼 정도였지.”
화자의 한마디, 한마디는 흡입력이 엄청났다.
저자의 이야기꾼처럼 물 흐르듯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그날의 이야기에 모든 청자는 숨소리도 줄이며 집중력을 빠르게 끌어 올렸다.
“시작은 우암 대감이었네.”
“허. 설마?!”
“그 설마가 맞네.”
“이, 이럴 수가. 우암 대감과 문보 선생이라니. 그야말로 영세불변의 대결이었겠군.”
“아주 뜨거웠지. 보며 듣고 있노라니 살이 따가워질 지경이었어.”
“관전평은 어땠나? 창과 창이 자웅을 겨룬 것이 아닌가.”
“정확하게 말하면 문보 선생이 날카로운 창을 휘둘렀네.”
“오! 우암 대감의 창은 어땠나.”
“음. 그게 좀 희한했네.”
“희한하다니?”
청자들의 물음에 화자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재촉하는 시선에도 뜸을 들이더니 입술을 잘게 깨물며 말했다.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네. 실로 괴이한 일이었네. 우암 대감이 창을 피했네.”
“……자네 이제 말하기 싫은가? 어디서 헛소리를 하나?”
“끝까지 들어보게. 창을 피했을 뿐, 싸움을 피한 게 아닐세. 우암 대감은 시종일관 문보 선생을 살살 도발했으니까. 살살 긁는데 참으로 기가 막혔어. 참으로 괴이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네. 문보 선생은 창을 휘두르고, 우암 대감은 요리조리 피하면서 모래를 한 알씩 던졌지. 장기전이 기대됐다네. 딱 그때 바로…….”
“성은이 시작되었군.”
“바로 그거일세.”
어느새 이야기는 절정으로 향했다.
청자들의 집중력은 최대치로 올라갔다.
“참으로 위대하셨네.”
“오.”
“실로 압도적이셨네.”
“오오!”
화자는 손을 뻗었다.
그러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문보 선생이 여러 말을 했지. 참으로 장황했네.”
다시 시작된 서론.
결국 청자들은 참지 못하고 너도나도 나섰다.
“어서! 어서! 어서!”
“애간장 좀 그만 녹이게.”
“빨리! 빨리! 빨리!”
보채는 말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화자는 빙그레 웃더니 어깨를 힘을 딱주며 말했다.
“거기까지.”
“응?”
“전하께서 딱 이렇게 이르셨다네.”
“오!”
“캬!”
“기가 막히는군.”
“내 말이 그 말일세.”
“바로 그거일세.”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신을 입을 단번에 다물게 한 군왕의 일갈.
이는 젊은 관리들의 피를 끓게 만들었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네.”
“단번에 남인의 거목을 제압하셨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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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서 이토록 강경한 태도를 보이실 줄은 미처 가늠하지 못했네.”
노회한 송준길의 목소리에는 당혹감이 은은하게 묻어났다.
사실 정치는 공식에 가깝다.
아무리 변수가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과정에서 꿈틀거리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파격이라는 말이 존재할지라도 선례라는 보편성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연의 행동은 조선의 역사가 만들어낸 통상적인 공식과는 너무나도 결이 달랐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연좌하는 선비를 이렇게 탄압하는 건 보기 좋은 일이 아닐세.”
그랬다.
조선은 언로가 자유로운 나라였다.
대한민국에서 말하는 언론의 자유와는 다른 차원으로 자유로웠다.
군왕은 상소의 내용이 뼈아프고 날카로워 불쾌할 수는 있으나 감정을 앞세울 수 없다.
군왕은 연좌가 불편할 수도 있으나 직접 응대하며 날을 세울 수도 없다.
그런데 이연은 직접 나섰다.
심지어 허목의 연좌를 조롱했다.
이는 보기에 따라서 군왕이 언로를 차단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상황에 따라서 상당한 비판에 노출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서 말이다.
“형님.”
“자네는 왜 아무런 말이 없나?”
“…….”
……방금 말하려고 했는데 잘라 먹었잖아?
답답함이 급격하게 밀려왔다.
“설마 별생각이 없나?”
아. 잔소리 진짜.
이건 뭐 눈만 마주치면 잔소리를 하니, 사람이 숨을 쉴 수가 있나.
송시열이 왜 삐뚤어졌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이런 엄청난 잔소리에 정면으로 노출되었으니 몸가짐에 얼마나 신경 쓰고 살았겠는가.
또 그리고 속에 담아 놓은 게 얼마나 많겠나.
그러니까 사람이 배배 꼬이고 옹졸해지는 거겠지.
그래. 사람이 날 때부터 이상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우암. 무슨 생각을 하기에 아무런 답변이 없나.”
거참. 진짜.
딱 보면 모르나?
이연은 허목에게 정치적 퇴로를 열어줄 생각이 없는 거다.
정치력이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는 사람이 왜 이걸 모르실까.
답답함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이렇게 침묵을 고수할 때가 아닐세. 주상께서는 허목에게 퇴로를 열어주지 않으셨다는 걸 알지 않은가.”
잘 아네.
사람 무안하게, 알면서 왜 딴소리를 한 걸까.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이뿐만이 아닐세. 주상께서는 어명으로써 허목의 연좌를 윤허하셨네.”
이연은 말했다.
연좌를 윤허하겠노라고.
하여, 허목은 연좌에서 물러날 수 없게 됐다.
만약 물러난다면 어명을 거역한 모양새가 된다.
이건 조선의 역사에 존재하지 않은 형식이었다.
무릇 연좌라는 건 신하가 군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정치적 행위였다.
그런데 군주가 연좌를 어명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정치적 의미는 아주 간단했다.
허목‘만’의 연좌를 허락한다는 것, 즉 누구도 개입하지 말라는 정치적 압박이었다.
그 어떤 군주도 하지 않았던 것을 이연이 해낸 것이다.
“만일 이때 허목의 연좌에 동참한다면 용상의 권능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 되네. 주상께서 윤허하신 건 오직 허목만의 연좌이니 말일세.”
과연 송준길은 정확하게 판단했다.
이연은 허목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
오직 권능으로 짓눌렀을 뿐이었다.
이때 누구라도 연좌에 동참하는 순간 군왕과 겨뤄보겠다는 의지로 읽힐 가능성은 아주 크다.
그러니까 미친 짓이다.
“허목은 연좌하다가 지쳐 실신하거나, 몸이 상해 죽거나…… 둘 중 하나겠지.”
어명이 내려진 연좌는 이토록 무서운 것이었다.
군주가 새로 교지를 내리기 전까지는 절대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상기하며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는 송준길의 눈동자가 이상했다.
상당히 의미심장했다.
“그렇군. 자네는 이런 상황을 원한 것이었군.”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되었네. 자네 의도는 이제 충분히 알았으니까.”
송준길은 쓰게 웃었다.
자기 혼자 말하고 자기 혼자 웃는 건 대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
“소제는 도통 모르겠습니다.”
“계속 이리 나올 생각인가? 연좌를 결행한 허목의 행보를 오히려 이용하여, 호포제를 강경하게 반대하는 그를 연좌에 고립시킨 것이 아닌가. 음. 이는 정치적 파장을 고려하더라도 놀라운 한 수였네. 그런데 허목이 연좌에 나설 줄은 어찌 알았나? 이토록 전격적으로 말일세.”
허목을 연좌에 고립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현장에서 떠올린 것이다.
그가 전격적으로 연좌에 나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송준길은 내가 항변할 기회 따위를 보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정말 궁금한 건 따로 있네.”
“먹고 싶은 것도 많으시겠군요.”
“응?”
“아닙니다. 서둘러 이르시지요.”
“……이 판을 자네 혼자 준비한 건가? 듣자니 윤휴와 손을 잡았다던데…… 혹시 그가 무슨 말이라도 해준 건가?”
“그게 중요하겠습니까.”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궁금하여 물어본 것일세. 이해하게. 그러나 진정으로 궁금한 건 따로 있네.”
“많이 드시겠군요.”
“응?”
“아닙니다. 서두르시지요.”
“오늘따라 묘하게 싱겁군.”
이 시절 사대부는 순수하다.
정치력을 떠나서 상상력의 범위에 한계가 있기에 순수하다.
왜? 조선은 대한민국처럼 오염된 세상이 아니라서 그렇다.
그러니 가볍게 던지는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다.
또, 당연하겠지만 설마 나 송시열이 격조 떨어지는 멘트를 날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형님께서 예민하신 겁니다. 그나저나 서둘러 이르시지요.”
“음.”
“예.”
“이번 일의 시작에 어심이 있었나?”
아주 핵심이었다.
나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송준길의 표정은 순식간에 진중해졌다.
그리고 해명을 바라는 눈길로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호포제의 시작부터 권능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흔들리는 송준길의 눈동자.
이번 일이 고작 윤휴의 상소로부터 시작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또한, 작금의 정세가 흔한 힘겨루기나 신왕의 일탈이 아니라는 것도.
“어찌하여 미리 상의하지 않았나.”
“조금 전에 말씀드렸습니다.”
“뭐……?”
“시작부터 권능이 깃들었다고요. 하여, 윤허받지 않은 말을 여기저기 옮길 수 없었습니다.”
“…….”
“소제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으니까요.”
“……자네, 정말 우암 송시열이 맞나?”
놀랄 만도 하다.
내가 무려 우암 송시열이었으니 말이다.
눈만 뜨면 군주의 행보에 시비를 걸고, 발목을 잡았던 송시열이었으니 말이다.
“한데, 우암. 지금 나에게 이 사실을 말하는 이유는……?”
“예. 이는 윤허하신 일입니다.”
송준길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그의 눈동자와 표정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노회함이 정점에 이른 송준길이다.
그러니 작금의 상황이 가지는 정확한 정치적 본질을 알 수밖에 없다.
작금의 정세가 말하는 본질.
이는 고작 호포제 관철을 두고서 밀고 당기는 고루한 다툼이 아니다.
즉위식을 막 끝낸 신왕이 신하들의 길들이는 것도 아니다.
바로 절정의 왕권을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시도하기도 전에 신하들의 반발에 봉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발의 선두에 서야 할 나 송시열이 지지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아주 간단하다.
이연의 왕권 강화는 높은 확률로 성공한다.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서.
바로 그래서 송준길이 이처럼 반응하는 것이다.
생각이 복잡해 보였다.
눈동자는 혼란이 가득했다.
도무지 이 상황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송준길의 복잡한 머릿속을 한결 가볍게 정리해주기로 했다.
“조만간 부름이 있을 겁니다.”
“…….”
“전선에는 소제가 설 것입니다.”
“…….”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송준길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자네, 진심인가?”
“물론입니다.”
“만일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어찌할 생각인가.”
“동의하지 않을 방법은 없습니다.”
“……뭐라?”
“그러실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3년 복을 온몸으로 막으셔야 했습니다.”
이미 이연의 왕권은 반석에 올랐다는 의미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조선 조정에서 이연의 의지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서고자 한다면 못 할 건 없다.
그러나 허목의 연좌에 대처한 이연의 행동을 고려할 때, 나서는 즉시 모든 걸 걸어야 한다.
“하…….”
“…….”
“하하하!”
송준길은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여러 의미가 담긴 웃음이었다.
“하나만 묻겠네.”
“이르시지요.”
“이유는?”
이유라.
궁극적인 원인은 경신 대기근의 방비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단일 대오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게 있다.
그래서 말했다.
“가끔 상상합니다.”
진심을 담아서.
“서인과 남인이 대립하지 않고 경쟁하는 조선을요.”
“뭐……?”
“이 나라 조선이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때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
송준길이 답변하려고 할 때였다.
급보가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