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보이지 않는 손(3)
윤휴는 답변하지 못했다.
감정의 동요가 장내를 잠식했다.
윤선도는 이를 가볍게 물리며 윤휴에게 물었다.
“우암 송시열과 논의할 수는 있네. 그와 정책을 상의할 수도 있어. 그러나 손을 잡는 건 다르지. 심지어 남인의 길과는 아예 다른 길을 말하면서 말일야.”
“선생. 그건 다른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야 하나? 호포제가 자네 필생의 신념이라는 걸 알고 있네. 어찌 탓하겠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정치에서는 능히 가능한 일이니 말이야. 그러나 호포제로 멈춰야 했네.”
“호포제로 멈춰야 했다니요?”
“자네가 그에게 지혜를 빌려주지 않았는가.”
“…….”
“단지 정책을 함께 논의한 게 아니라 야합이라면 경우가 아예 달라.”
“……야합이라고요?”
“야합을 알았으나 우리는 자네를 탓하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 자네가 나와 허목을 힐난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결국, 이 모든 건 호포제에 대한 자네의 진심을 이용한 졸렬한 송시열의 탓이니 말이야.”
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
송시열과 야합을 했다니?
게다가 윤선도는 완벽하게 맥을 잘못 잡고 있었다.
호포제는 군왕의 어명을 수행한 것이 아닌가.
대체 어떤 경우의 수를 고려하면 윤선도와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윤휴는 머릿속이 너무나도 복잡해졌다.
“왜 아무런 말이 없나? 아직도 모르겠나? 그 인사가 정녕 호포제를 위해서 이런 일을 벌였을까?”
“…….”
“자네는 이용당한 걸세.”
아니다.
이건 아니었다.
진실이라는 단어에 윤선도의 말이 들어갈 공간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예 틀린 가정으로 시작하였으니까.
윤휴는 복잡한 머릿속을 빠르게 정리했다.
지독할 정도로 꼬인 실타래를 그냥 잘라버렸다.
그리고 말했다.
“선생께서 오해가 있으십니다.”
“아직도 그 말을 하나?”
“소생이 송시열과 의기투합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호포제를 주장할 때 그와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호포제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뭐……?”
윤선도는 멈칫했다.
필시 송시열과 윤휴가 세밀하게 논의했다고 여겼다.
그런데 아니라고 한다.
이 상황에서 윤휴가 거짓을 말할 이유도 없다.
“자네가 개입하지 않았다고?”
“예. 소생과 송시열은 세밀한 정책을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하면…… 그와 상의한 것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의기투합하였습니다. 조선을 위해서라면 사문난적이 되는 길도 마다하지 않기로요.”
“……사문난적?”
송시열은 조선에서 사문난적이라는 단어와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사문난적이 되겠노라 결의했다고 한다.
윤선도의 표정은 무서울 정도로 일그러졌다.
-쾅!
급기야 탁자를 세게 후려쳤다.
분위기는 흉흉해졌다.
“이런…….”
침음성이 새어나왔다.
그 모습에 윤휴는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떤 대목에서 이토록 화가 난 것일까.
“과거 송시열은 자네를 사문난적이라고 했네.”
“선생. 과거일 뿐입니다. 게다가 송시열은 소생에게 잘못을 청하였습니다.”
“송시열이 잘못을 청했다? 하! 이로써 더 명백해지는군.”
“무슨 말씀입니까.”
“참으로 답답하군. 아직도 모르겠나? 좋아. 묻겠네. 허목은?”
“예?”
“그는 분명하게 말했네. 성리학만이 모두가 아니라고. 잊었나?”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날 소생이 선생들께 세종의 길을 청하였지 않습니까.”
“다시 묻겠네. 내 말에 솔직하게 말하게.”
“물론입니다.”
“그날 우리의 대화. 아니, 정확하게는 허목의 말을 송시열에게 전하였나?”
“전하긴 했습니다.”
“이런!”
윤선도는 격분했다.
노기를 참을 수 없는지 손끝을 파르르 떨었다.
윤휴는 황급히 나섰다.
“선생. 송시열도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기쁘겠지. 그래. 참으로 기쁘겠지.”
“선생. 아무래도 송시열에 대해서 오해가 있으신 거 같습니다.”
“백호. 조선에서 가장 손쉽게 사문난적으로 엮을 수 있는 사람이 두 명일세.”
윤선도의 목소리에는 경멸이 가득했다.
경멸은 점차 노기와 얽혔다.
“바로 자네와 허목. 아직도 모르겠나?”
“!!!”
“덫일세. 추악한 덫. 그는 필시 허목을 사문난적으로 엮어내려는 걸세.”
“!!!”
“맞아. 그 졸렬한 인사가 자네에게 과거의 잘못까지 청하였다? 그게 진심이겠나? 자네를 꾀어내려고 한 것일세. 그 결과 허목을 제압할 수 있는 정보를 얻은 것일세.”
윤선도의 거친 말은 이어졌다.
“지독한 인사야. 그래. 맞아. 자네가 송시열과 손을 잡고 일을 도모한 그 순간부터 우리 남인은 자중지란에 빠지고 있어. 우리가 섣불리 움직이기를 기다린 걸세. 그때 모조리 사문난적으로 엮을 생각이야.”
“…….”
“송시열은 조선에서 유일하게 사문난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일세. 과거에 한 발언을 쥐잡듯이 찾아서 반드시 엮어낼 것이야.”
“그러나 사문난적은 현실에서 죄로 구현될 수도 없습니다.”
“어찌 이리도 답답한가?! 최소한 자네와 허목일세. 두 사람은 남인의 학문을 지탱하는 기둥일세. 한데, 두 사람이 사문난적으로 몰린다면 남인의 학문적 입지가 어찌 될 것이라고 보나?”
“!!!”
윤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윤선도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토록 치밀한 정략이라니. 그동안 송시열을 너무 가볍게 여겼어.”
“……선생.”
“어쩔 수 없네. 이대로 그냥 지켜만 본다면 남인은 송두리째 사문난적이 되고 말 것이야.”
“그 말씀은…….”
“호포제가 중요한 게 아닐세. 이대로 연좌하여 사문난적의 굴레를 힘으로 치울 수밖에 없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윤선도의 시선은 자연스레 허적에게 향했다.
남인의 영수로서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한 것이다.
허적은 윤선도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동의할 수 없습니다.”
“호판!”
“선생의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합니다. 명백한 증거는 없습니다. 하여,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자네 끝까지 이리 나오실 건가?”
“어차피 선생은 저를 남인의 영수로 인정하지도 않지 않습니까. 뜻대로 하십시오.”
“명심하게. 이 일이 끝나면 자네는 탄핵할 것이네.”
“말리지 않겠습니다.”
“하!”
허적은 더 대꾸하지 않고 윤휴를 바라봤다.
낮게 한숨을 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될 수 있으면 자네도 동참하지 말게. 기어이 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네.”
*****
기승전소설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사실에 부합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게 있다.
그냥 듣고만 있을 때 상당히 논리정연하다는 것이다.
만일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나섰을 수준이었다.
“대감. 혹시 해명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해명은 개뿔.
해명할 게 있어야 해명을 하지.
정신이 혼미해질 것만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허적은 맨정신이라는 것이다.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문제는 자네와 남인이 일으켰네. 그런데 내게 해명하라고? 하……. 가야 할 길이 구만리일세. 해야 할 일이 태산이고. 한데, 유치한 권력 싸움을 왜 해야 하나? 모두 의기투합하여 조선의 개혁에 힘쓰자고 진심으로 말하였거늘.”
“…….”
“그러니 제발 말 같지도 않은 음모론을 집어치우게. 더 듣고 있자니 화병에 걸릴 것 같아.”
진짜 짜증을 잔뜩 담아서 말했다.
내 말대로 증거는 없다.
있을 리가 없다. 사실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이 상황은 어디까지나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다가 정황에 어울리는 소설을 한 편 써 내려간 것에 불과하다.
윤휴도 더 헛소리를 할 생각이 없는지 얌전하게 있었다.
그 역시 강경한 내 태도를 보고 내 말에 거짓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노파심에 말하겠네. 세종의 길을 내가 언급했다는 말은 제발 하지 말게.”
“무슨 말씀입니까.”
“자네, 갈수록 한심하군. 내 이름 석 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키는 남인일세. 한데, 내가 제안한 길이라고 하면 잘도 동의하겠군.”
“…….”
나는 손을 훠이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주상께서 어명으로 허목에게만 윤허하신 연좌일세. 제삼자는 개입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연좌란 말일세. 그런데 남인은 결의를 모아서 연좌에 동참했네. 이 꼴이 얼마나 우스운지 아나? 왕권의 강화를 필생의 신념이라고 떠든 이들이 바로 남인일세. 한데, 지금 하는 꼴을 보게. 어심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있어.”
“해서…… 솔직하게 여쭤보겠습니다. 소생은 윤선도 선생의 말씀도 가볍게 흘릴 수가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해주십시오. 대감의 의도였습니까? 소생에게 개혁을 운운한 것부터가 정략의 시작이었습니까? 세종의 길은 남인을 궁지로 몰기 위한 허언이었습니까?”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다.
진짜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상황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말대로 허목을 이대로 두면 정치 집단으로서의 생명력이 상실된다.
반대로 나서면 어명에 대항하는 모양새다.
그나저나 윤휴는 작금의 정국에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 같았다.
한숨이 푹푹 나왔다.
그냥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있으면서 말이다.
근데…… 이게 그들만의 탓이라고 볼 수도 없다.
뿌리 깊은 서인과 남인의 갈등이 만든 것이니까.
그 유구한 역사가 상대를 무조건 의심하게 한 것이니까.
다시 느껴졌다.
무엇 하나 하려고 해도 걸림돌이 생길 수밖에 없는 정국이라는 걸.
정말 갈 길이 멀었다.
“대감.”
“아니라고 했네. 자네도 아니라는 걸 이미 깨달은 것 같네만.”
“…….”
“제발 내가 배후이길 바라는 거 아닌가? 그래야만 하니까? 그래야만 최악을 피할 수 있으니까?”
“맞습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청할 수 있습니다.”
“…….”
“소생은 모르겠습니다. 대감의 의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백호.”
“대감. 부디 퇴로를 열어주십시오. 이대로라면 남인은 끝입니다.”
남인의 끝.
만일 이 상황에서 이연이 격분하면 사화가 발생해도 무방했다.
즉위식에서 사화가 없는 조선을 만들겠노라 선언하였다.
그러나 그건 결국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정말 사화가 발생해야 할 상황이 만들어지면 사화는 진행될 수밖에 없다.
즉위식은 선언을 이유로 그냥 넘어갈 군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경험한 이연이라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때 문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백호. 자네는 정말로 이 판을 누군가가 주도하고 있다고 여기나?”
“우연의 일치로 이렇게 되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누군가의 의지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게 아니고서는 절대 설명할 수 없습니다. 놀랍게도 모든 상황은 대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내가 무시해서 그렇지 윤휴는 아주 뛰어난 정객이다.
정치력이 상당한 수준이다.
허적, 허목, 윤선도 이후 남인을 이끌어갈 인물이다.
원 역사에서도 그랬고, 이곳에서도 그렇다.
이 정도의 인물이 정치적 판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그럴 가능성이 크다.
나는 아니다.
나는 절대 아니다.
그러니까…… 그렇다면…….
그러니까…… 그러니까…….
현재 조선에서 이 판을 이토록 주도면밀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
딱 한 명이 떠올랐다.
“내가 아닐세.”
“무슨 말씀입니까.”
이 판을 주도한 사람은 바로…….
“주상께서 직접 도모하신 걸세.”
“!!!”
이연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이연이었다.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만일 이연이 주도한 것이라면……?
만이 그러하다면, 그는 대체 어디까지 바라보고 있는 걸까?
“대, 대감. 무슨 말씀입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게. 진정 주상께서 나서신 것이라면 어찌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네. 잊었나? 작금의 왕권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
윤휴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이연이 설계자라는 건 짐작조차 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하, 하면 이럴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면?”
“예?”
“지금 자네와 내가 달려간들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대감.”
“연좌의 퇴로를 확보하면 용상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야. 감당할 수 있나?”
“…….”
윤휴와 연좌의 무리가 의견 다툼이 있었으나 한솥밥을 먹는 식구다.
그러니 어찌 걱정되지 않겠는가.
순식간에 10년은 늙은 듯한 윤휴를 바라봤다.
하지만 어설픈 위로 따위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무의미하기에 지극히 냉정한 말을 꺼냈다.
“이제 모든 건 어심에 달려 있네. 자네와 나의 영역을 넘어선 일이라는 걸세.”
그랬다.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처우를 기다리는 것을 제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