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노래하라-22화 (22/298)

22화 절대왕권

도승지 조형은 극진한 예를 취하며 말했다.

“전하. 남인의 인사 50여 명이 연좌에 결합했사옵니다.”

이연은 무표정을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50여 명이라…….”

“그러하옵니다. 다만, 의아하게도 호조판서 허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사옵니다.”

“남인의 영수가 불참한 남인의 연좌라.”

꼴이 아주 희한했다.

이연은 피식 웃으며 오른손 검지를 움직였다.

“서인은 어떻소?”

“서인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사옵니다.”

이연은 엷게 웃으며 조형을 지그시 바라봤다.

“다행이오? 도승지가 번뇌에 휩싸일 상황은 없으니 말이외다.”

“……전하.”

“아니오?”

도승지 조형의 당색이 서인이라는 걸 빗댄 것이다.

가벼운 농으로 치부할 말이 아니었다.

그만큼 이연의 압박은 참으로 무거웠다.

조형은 진땀을 흘리며 마땅한 말을 찾았다.

여전히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이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넘겼다.

“되었소. 그저 농을 한 건데 어찌 그리도 당황하시오?”

“화, 황공하옵니다.”

“그나저나 이조판서 송시열은 어찌하고 있소?”

완급조절을 이보다 잘할 수 있을까?

사람을 이토록 쥐락펴락할 수 있을까?

아직 약관에 이르지도 않은 군왕의 정치력이 어찌 이 정도로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을까.

조형은 심장의 울렁임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억지로 겨우 짜내어 말했다.

“이조판서 송시열도 보이지 않사옵니다.”

조형의 답변에 이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송시열.

그의 학문적 성취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반대로 졸렬하기 이를 데 없는 성정은 절로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그러나 이것만이라면 어찌 문제가 되겠는가.

오랜 세월 지켜봤다.

서인의 행보를.

그중 특히 송시열의 오만한 행보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봤다.

군왕의 권위를 뒤로하고 권능조차 밀어버린 송시열은 그야말로 조선의 또 다른 군주였다.

그러나 그를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그를 달래는 것이었다.

과정이 반복될수록, 시간이 지나갈수록 송시열은 조선의 하늘이 되어갔다.

이연은 이를 잊을 수가 없었다.

조선의 군주가 되어야 하는 운명이었다.

백 번을 고민했다.

천 번을 생각했다.

그 모든 과정의 결론은 같았다.

서인과 남인, 남인과 서인을 아우르는 정치를 해야 한다.

작금의 조선은 붕당의 상생을 이루는 유려한 정치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결심했다.

송시열……?

그조차도 품을 수 있는 최고의 정치력을 행사하겠노라고.

그의 언행이 오만방자할지라도 조선의 군왕은 모두를 품어낼 수 있다는 걸 보이고자 했다.

시작은 1년 복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괴로운 일이지만 당장은 1년 복을 수용하여 조정의 논쟁을 서둘러 정리하는 게 옳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가…… 송시열이 3년 복을 주장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의도를 의심했다.

송시열의 정치력을 경계한 건 아니다.

그러나 송시열은 정치력이 불필요한 사람이었다.

그의 말이 곧 정치가 되는 세상이었으니까.

그런데 3년 복이 관철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말했다.

송시열에 제 발에 걸려 넘어진 것이라고.

그러나 이연의 생각은 달랐다.

송시열이 뭐하러 그토록 복잡한 정략을 구사하겠는가.

그러자 세상 사람들은 말했다.

송시열은 남인을 흔들고자 정략을 펼쳤다고.

결과적으로 실패하였으나 능력을 입증하였다고.

그러나 이연의 생각은 또 달랐다.

송시열이 남인을 흔들 의도였다면 원래 가진 힘을 활용하여 1년 복을 관철하면 될 일이다.

그리하여 남인을 압살할 수 있지 않은가.

한데, 구태여 복잡한 셈을 사용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건 바로 결과였다.

두 가지 결과.

논쟁을 거치지 않은 3년 복의 관철.

이는 누가 감히 바라볼 수도 없는 정통성을 확립하게 했다.

그리고 송시열.

이연은 안다.

누구보다 잘 안다.

그의 오만함과 졸렬함을.

그러나 3년 복이 관철된 직후 송시열에게는 기쁨만이 보였다.

물론 속이고자 본심을 숨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속이고자 할지라도 속지 않고, 숨기고자 하였다고 한들 찾지 못할 것도 아니다.

속인 건 없었다.

숨긴 건 없었다.

오직 진심만 있었다.

확신할 수 있다.

이유는 모른다.

원인도 모른다.

결과만 안다.

압도적인 왕권이 구축되고 있다는 결과.

이연은 생각했다.

이연은 판단했다.

서인과 남인, 남인과 서인을 통합할 수 있는 정치력을 절대 왕권의 구축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겠는가.

단 한 방울의 피도 보지 않고 왕권을 구축하여 조선의 태평성대를 이뤄낼 수 있다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그래서 마음껏 정국을 움직였다.

말 그대로 좌지우지.

세상 모든 이가 송시열을 의심하였기에 걸림돌은 없었다.

지금까지 어떠한 문제도 없었다.

연좌를 왕명으로 묶어냈으나 반발은 없었다.

그리고 오늘 명백하게 입증할 것이다.

이 나라 조선은 전주 이씨의 나라라는 걸.

이연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바야흐로 조선을 바로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미세한 미소가 입가에 감돌았다.

그리고 말했다.

“도승지.”

“예. 전하.”

“이제 왕명을 어긴 무리와 만날 때가 된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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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얼핏 봐도 50여 명은 되는 규모였다.

절대적인 수치로는 많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세밀하게 살펴보면 상황은 완벽하게 바뀐다.

백성 50명은 적다.

병사 50명도 적다.

선비 50명도 적다.

그러나 남인의 중추 50명은 많다.

그렇다.

지금 연좌에 결합한 이들은 남인의 중추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러니 단지 50명이라는 수치로 연좌의 무게를 평가할 수는 없었다.

이 정도면 적당하게 퇴로를 열어줘도 무방하다.

그러나 설계자가 이연이라는 건 치명적인 변수였다.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이판.”

나지막한 목소리.

호조판서 허적이었다.

반가웠다.

어쨌거나 허적은 화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허적의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가득했다.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의 연좌는 당 대표가 참여하지 않은 소속 의원들의 집단행동이니 말이다.

그냥 개판이었다.

“막아보려고 했으나 무리였소.”

윤휴에게 대강의 사정은 들었다.

윤선도는 허적을 남인의 영수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강경파로 분류되는 윤선도, 허목 등과 온건파인 허적의 관계는 원만하지 않았다.

강온 대립의 유구한 역사를 되돌아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고.

“대체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커졌는지 모르겠소. 보시오. 삼삼오오 모여서 구경하는 관리의 수는 이미 셀 수도 없소.”

허적의 말대로 연좌장 근처에는 무수한 관리가 곁 눈길로 구경하고 있었다.

각박한 세상에서 남인의 핵심들이 주도한 연좌는 모처럼 즐거운 볼거리였으니 어찌 구경하러 나오지 않겠는가.

또 주목할 건, 서인의 핵심 구성원은 누구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로서는 괜한 일에 휘말려 똥물이 튈까 우려할 수밖에 없으니 지극히 현명한 처사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판. 윤휴를 잘 단속하셔야겠소. 불필요한 말이 너무 많소.”

“……송구하오.”

역시 관리로서 잔뼈가 굵은 허적이었다.

우리의 결의를 여기저기 떠들고 갈 필요가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붕당의 대립이 첨예한 정국이기에 조심할 건 최대한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적당한 대화를 하며 연좌를 지켜볼 때였다.

장내에서 짧고 굵은 소란이 일어났다.

말 그대로 짧고 굵었다.

약간의 큰 소란 그리고 엄중한 침묵과 극진한 예.

조선에서 이런 현상을 유발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한 명.

바로 이연이었다.

오늘따라 용안은 더 강건하게 보였다.

모진 각오를 한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도 긴장하게 된 것일까.

속이 울렁였고, 손끝은 점차 떨려왔다.

마음을 애써 진정시킬 때였다.

이연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이조판서 송시열.”

“예. 전하.”

“경에게 묻겠소.”

“이르시옵소서.”

“종래 서인은 복제를 1년이라고 주장했소. 한데, 서인의 영수인 경은 어찌하여 3년 복을 주장하였고 관철에 이르게 된 것이오?”

과거의 사안이었으나 영원히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수백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최대한 차분하고, 침착하게 답변하는 게 중요하다.

잘게 끊어서 숨을 내쉬었다.

마음을 진정시켰다.

천천히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하교에 답하는 건 신하의 도리이옵니다. 하오나 신이 불민하여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사옵니다.”

“무엇이오?”

“신이 3년 복을 주장한 건 사실이오나, 관철에 이른 것은 오직 군왕의 권능이옵니다. 하온데 어찌 신이 관철을 이루었다고 하시옵니까. 신 이조판서 송시열, 민망하여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사옵니다.”

고개를 숙이고 말했기에 사람들의 표정을 볼 수 없다.

그러나 느껴졌다.

충격에 휩싸였을 그들의 표정과 경악이 일렁이고 있을 눈동자가.

“이런.”

마치 노래하는 듯 가볍게 흘러나온 이연의 목소리.

약간의 웃음이 더하여 씌워진 듯 흥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실언을 했소.”

“아니옵니다. 신이 결례를 범하였사옵니다.”

“하하하. 아니외다. 사사롭게는 나의 사부님이시오. 그러니 잘잘못을 말해주는 건 당연한 행동이거늘 어찌 결례라고 하겠소.”

“황공하옵니다.”

“하면, 이제 물음에 대한 답을 하실 수 있겠소?”

자세를 고쳐 잡았다.

목을 조금 가다듬었다.

오늘 나의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쉽사리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어차피 이연과 함께 가기로 한 이상, 불필요한 생각을 길게 할 필요는 없다.

그냥 이대로 간다.

“무릇, 학문을 익힐 때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경전의 글자를 그대로 맹신하는 것이옵니다. 정작 중요한 건 사안의 본질을 보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옵니다. 신이 서인의 영수라고 하여 감히 틀림을 고할 수는 없는 것이옵니다. 지난날 복제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안이옵니다. 이미 선왕께서 보위를 이으셨는데 대체 무슨 논쟁이 필요하옵니까. 군주가 통치하는 조선에서 용상의 권능을 취하였다는 건 최고의 예우로 귀결되어야 하옵니다.”

나의 한마디, 한마디는 반드시 정사에 기록될 것이다.

동시에 조선의 관리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지금도 느낄 수 있었다.

저들이 받을 묵직한 충격을.

물론, 내 말의 의도를 의심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내가 고려할 영역이 아니다.

어차피 지금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리하여 나는 계속 나아간다.

“물론 신도 어리석어 한때는 본질을 보지 못하고 글자를 외우는 데 급급하였던 시절이 있사옵니다. 하오나 이는 과거의 일에 불과하옵니다. 지금에 이르러 신은 사대부로서, 조선의 신하로서 진실을 고한 것이오니 어찌 문제가 있겠사옵니까. 단언하건대 신이 3년 복을 주장한 것에는 어떠한 의도도 없사옵니다. 오직 진실에 따랐을 뿐이옵니다.”

이연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우리 두 사람의 시간은 점차 길어졌다.

그럴수록 연좌에 나선 남인들의 입장은 곤궁해졌다.

군왕이 여기까지 왔는데 연좌하는 선비들을 쳐다도 보지 않으니 얼마나 어색하고 뻘쭘하겠는가.

이연도 이를 알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의도……?

이 또한 뻔했다.

대소신 앞에서 명확한 위계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나 송시열을 상대로 말이다.

아마 오늘 자리가 끝날 때까지 내 말에 답변은 하지 않을 것이다.

구태여 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볼수록 보통 사람이 아니다.

원 역사에서 왕권 강화를 이뤄내지 못한 게 내가 다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잡생각이 길어질 때였다.

“그래. 어찌하여 연좌에 나선 것이오?”

드디어 이연이 본 무대에 올라섰다.

그러나 이미 기세가 깎인 남인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심지어 윤선도나 허목도 마찬가지였다.

뭐. 윤휴의 말에 의하면 사문난적이니 뭐니 하면서 소설 한 편을 집필하고 이 자리에 나섰으니 입장은 무척이나 궁색할 것이다.

“……전하. 신 윤선도이옵니다.”

“다시 묻지요. 어찌하여 연좌에 나선 것이오?”

윤선도가 아무리 막가는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이 자리에서 사문난적을 운운할 수는 없다.

애초에 증거도 없는 음모론에 불과하니 말이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허목의 외로운 연좌를 보고만 있을 수가 없기에…….”

“되었소.”

이연은 윤선도의 말을 그냥 잘랐다.

오늘도 유려하게 용포를 내저었다.

“이미 내가 어명을 내렸소.”

“신이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그런데도 보고만 있을 수 없기에 나섰다고 하였소.”

“전하.”

“나는 오늘 크게 감탄했소. 참으로 기분이 좋소.”

이연은 아주 밝게 웃었다.

빙그레, 빙그레?

뭐. 그렇게 보일 정도였다.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우리 조선 사대부들이 이토록 의리가 있으니 군왕으로서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소.”

여전히 빙그레, 빙그레…… 그리고 함박웃음.

그런데 말에 가시가 너무 따가울 정도로 느껴졌다.

이쯤 되면 이연이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르면 바보다.

과연 윤선도의 안색도 정말 아주 어두워졌다.

“참으로 대단한 의리요.”

“…….”

“어명을 거역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그 의리 말이오.”

“!!!”

“놀랍소.”

그 말과 함께 이연의 입가에는 웃음이 실종됐다.

아니, 차가운 조소가 순식간에 자리를 대신했다.

이연의 눈동자는 마주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기가 흘러나왔다.

“하여, 어명을 내리겠소.”

이연이 손을 들었다.

용포는 여전히 유려하게 펄럭였다.

“그대들의 의기를 입증(立證)하라.”

입증……?

이 단어가 지금 이럴 때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나?

의문이 무럭무럭 커질 때였다.

“끼니는 물론이거니와 물 한 모금도 내리지 않을 것이다.”

“!!!”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겠다.”

“!!!”

장내는 충격이 지배했다.

자고로 연좌는 선비가 먼저 물러나는 법이 없다.

군주가 비답을 내려야만 물러난다.

그런데 물도 주지 말라고 한다.

그러니까 굶어 죽으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저 멀리에서 묵직한 발걸음이 들렸다.

한둘이 아니었다.

족히 수십…… 아니, 100명은 넘는 규모였다.

더 놀라운 건 발걸음의 울림이 너무나도 일사불란하다는 것이었다.

점차 가까워졌다.

의문이 증폭될 때 큰 외침이 들렸다.

일제히 시선이 쏠렸다.

……100여 명의 무장 병력.

거의 동시에 이연이 하늘을 가리키던 손을 거칠게 내저었다.

유독…… 유독 용포의 펄럭임이 날카롭다고 여겨진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그때였다.

가장 선두에 선 이가 외쳤다.

“성상께서 어명을 내리셨다.”

그에 대한 정보가 순식간에 입력됐다.

바로 훈련대장 이완이었다.

“누구도 연좌하는 무리에 접근하지 못하게 겹겹이 포위하라.”

“!!!”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그러나 누구도 저항할 수 없다.

단 일 할이 부족하였던 정통성은 3년 복의 관철로 완성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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