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시대(時代)(2)
내가 말하긴 했으나 정말이지 밑도 끝도 없었다.
늘 완벽한 포커페이스를 고수한 이연이 황당함을 숨기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아니, 불쾌함 혹은 불편함이라고 해야 할까?
“호포제 철회를 말하더니, 호포제로 조선을 개혁하자?”
“그러하옵니다.”
“지금 나와 농이라도 하자는 것이오?”
“신이 어찌 그런 망극한 생각을 할 수 있겠사옵니까.”
“이조판서 송시열.”
“예. 전하.”
“방금 한 말의 뜻을 내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가볍게 넘기지 않을 것이오.”
살벌한 경고였다.
살짝 후회됐다.
하지만 어차피 윷은 던졌다.
모 아니면 나가리다.
나는 속을 갈무리하며 말했다.
“신을 기군망상(欺君罔上)의 죄로 벌하셔도 겸허하게 수용할 것이옵니다.”
기군망상.
쉽게 말하면 괘씸죄다.
여론만 제대로 만들어지면 처벌 수위에 한계가 없다.
물론 대역죄 수준의 처벌은 어렵지만 사람 한 명쯤은 아예 보내버릴 수 있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이연은 다소 누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배수진(背水陣)이라.”
아니다.
누그러진 게 아니라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는 식이다.
수틀리면 진짜 사달이 난다.
“뭐. 좋습니다. 오랜만에 사부님께서 이 제자에게 가르침을 내리실 생각이니, 어찌 듣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사부라.
사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민망함을 감출 수가 없다.
사부라는 단어의 객관적인 뜻으로 바라볼 때, 송시열의 이연의 사부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주관적으로 접근한다면 애매하다.
무엇 하나 제대로 가르친 것도 없고, 그 자리도 금방 박차고 나왔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연이 사부라고 언급하는 것에는 불편한 심사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 송시열이 싼 똥은 아무리 치워도 계속 튀어나오는구나.
냄새가 사방에 진동한다. 진짜.
답답하다. 정말.
“아뢰옵기 황공하옵니다.”
“무엇이오?”
“이만하면 부족함은 없사옵니다.”
“무엇이 말이오?”
“어쩌면 넘칠 수도 있사옵니다.”
“선문답이라도 하는 것이오?”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
이대로 달렸을 때 그 결과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머뭇거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묘했다.
두렵지는 않았다.
어쩌면 목숨을 걸었을지도 모를 일이건만 두렵지 않았다.
아마 송시열의 오만한 성정이 나도 모르게 내 의식에 똬리를 틀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말했다.
내가 아니라 송시열이 던졌다.
“왕권(王權).”
판도라의 상자를.
그런데 이연의 안색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작은 동요도 없었다.
산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움직임이 없었다.
이대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그래서 다시 말을 꺼냈다.
“작금의 왕권은…….”
“왕권이라.”
그런데 동시에 이연의 말도 이어졌다.
그의 입가에는 싱그러운 웃음이 조금…… 아주 조금 매달려 있었다.
그러니까 매달려 있는 웃음이었다. 언제라도 떨어질지 모를 정도로 위태로운 상태의 웃음 말이다.
이는 명백했다.
감출 수 없는 불쾌함.
숨기지 않고 그대로 표출한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여과 없이 언어가 되었다.
“하하하. 그러니까 지금 이조판서가 군왕의 왕권을 가늠하고 적정선을 설정하는 것이오?”
최악의 반응이었다.
이건 진짜 기군망상이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당황하지 않고자 노력했다.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었으니까.
힘들지라도 반드시 넘어야 하니까.
“그러하옵니다.”
“듣기에 따라서 나의 왕권을 이판이 용인하여 가능했다는 말이 되오만.”
“아니옵니까?”
“하하하. 맞소. 아주 옳소. 그렇지요.”
이연은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그런데 희한했다.
적어도 지금의 웃음에는 특별한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이판이 3년 복을 주장하지 않았다면 꿈에도 바라볼 수 없는 수준의 권능이니까.”
정말 감정이 없는 사람일까?
뭐가 이렇게 담담할까?
왜 이토록 담백한 반응일까?
아무리 사실관계가 정확하다고 할지라도 불쾌한 말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진심인데 차라리 화를 내면 좋겠다.
물론, 이연이 정말 감정이 없을 수는 없다.
가끔…… 결정적인 순간에 무서울 정도로 담담하여 두려운 것이었다.
“그래요. 그래. 한데, 지금 그 말을 한 이유가 참으로 궁금하오. 후회하시오?”
“신은 강력한 왕권을 선호하옵니다.”
“앞뒤가 이토록 다르오?”
“진심이옵니다.”
강력한 왕권.
어찌하여 왕권이 강대하여야 하는가.
복잡하게 볼 필요 없다.
만일 대한민국에 미증유의 재난이 일어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수백만 명이 죽는 재난이 일어난다면……?
대통령이 전권을 행사해야 한다.
말 그대로 국가 비상사태이니까.
“작금의 조선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왕권이 필요하옵니다.”
지금은 더 그러하다.
이 땅의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강력한 사령탑이 필요하다.
이럴 때 왕이 무능하면 일은 복잡해진다.
아니, 모든 것이 허사다.
역사의 무수한 사례는 난세에 무능한 군주의 집권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너무나도 강렬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하늘이 도왔을까?
구심점이 되어야 할 이연은 모든 걸 능히 감당할 그릇이다.
“하오나 신이 원하는 방향과는 다르옵니다.”
“이판. 그거 아시오?”
“하교하시옵소서.”
“경의 선문답에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소. 바로 내가 말이외다.”
“…….”
“얼마나 더 들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소.”
“작금의 조선에 필요한 건 홀로 굳건한 군왕이 아니옵니다.”
왕이 모든 걸 할 수 없다.
왕권이 아무리 강대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조선이…… 지금 조선의 요구는 영의정부터 군현의 수령까지 모두를 장악할 수 있는 군주이옵니다.”
그래야 한다.
그래야만 재난과 싸울 수 있다.
“체계 위에 군림하는 군주가 필요하옵니다.”
“…….”
“이 나라 조선은 체계 위에서 자연스레 존재하는 군주를 요구하고 있사옵니다.”
지금 이연이 주도한 왕권 강화는 체계와는 무관하다.
압도적인 정통성을 기반으로 한 군왕의 권력을 강화한 것에 불과하다.
안다.
종래 조선은 이와 같은 방향으로 흘렀다.
그런데 결과가 어떠하였는가.
늘 일시적이었다.
아무리 왕권이 강대한들 신하와 힘겨루기를 해야 했다.
늘 명분을 두고 다퉜다.
누구라도 그러했다.
하나의 사례가 모든 걸 말하고 있다.
태조, 태종, 세종, 문종의 왕권은 강대했다. 이 땅의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위력이었다.
그러나 어린 단종이 보위에 오르자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왕위를 탈취했다.
이는 조선의 왕권이 체계를 장악한 수준이 아니라는 걸 역설한다.
아니, 어쩌면 체계의 모순을 수양대군이 정확하게 겨냥하여 숨통을 끊은 것일 수도 있고.
그래서 종래 조선의 방식으로 진행된 왕권 강화는 늘 경계해야 한다.
언제 문제가 발생할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무엇이 다르오?”
나는 지금부터 말해야 한다.
체계가 아닌 군주의 권력만 강화되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을.
“민본을 이르셨사옵니다.”
“민본은 백성을 위함이오. 하여, 나는 왕권을 기반으로 개혁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오. 호포제는 오직 백성을 위한 정책이니 어찌 문제가 되겠소. 비단 호포제만이 아니외다.”
“하여, 허목을 압박하셨사옵니다. 덫을 놓으시어 윤선도와 남인을 궁지로 몰아넣으셨사옵니다.”
“다시 말해야 하오? 호포제를 이뤄낼 수 있게 되었소. 이는 경도 바라던 바가 아니오?”
“호포제를 관철하셨사옵니다. 하온데, 그 뒤는 어찌하실 것이옵니까?”
“그 뒤라고 하셨소?”
“또 다른 개혁을 할 때 서인이 반대하면 윤선도와 허목을 중용하실 것이옵니까?”
“능히 그리해야 할 것이오.”
“그 뒤는 또 어찌하실 것이옵니까? 다시 남인이 반대하면 서인을 중용하실 것이옵니까?”
“…….”
남인과 서인을 선택하는 정치.
이 결과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어찌 모르겠는가.
역사는 이를 환국(換局)이라고 한다.
“사화가 없는 조선을 선언하셨사옵니다. 하온데, 전하. 이 길에서 그것이 가당키나 하옵니까?”
“…….”
“아니옵니다. 절대로 불가하옵니다. 붕당과 신하는 군주의 권력만을 바라보는 역사가 이어질 뿐이옵니다. 결과 서인과 남인은 첨예하게 대립할 것이옵니다. 오직 용상의 권능을 바라보면서 말이옵니다.”
“…….”
“택신(擇臣)과 택붕(擇朋)이 반복되면 사화는 반드시 발생할 것이옵니다.”
“…….”
“그 결과 서인도 생존을 위하여 분열될 것이옵니다. 하여, 정국은 더욱 복잡해질 것이옵니다.”
이는 거짓이 아니다.
원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눈앞에 있는 현종의 다음 대, 압도적인 정통성으로 절정의 왕권을 자랑하였던 숙종의 시대가 그러했다.
그 숙종의 시대에 발생할 일을, 이곳에서는 이연이 주도할 뿐이다.
고작 그 차이다.
이연의 침묵.
긍정과 부정이 모두 포함되었다.
그래서 나는 더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더 세세하게.
“남인을 중용하였사옵니다. 그러나 남인의 권세가 커지면 견제하고자 자연스레 빌미를 잡게 될 것이옵니다. 그리고 남인을 축출하고 서인을 선택하게 되옵니다. 한데, 서인은 영원하겠사옵니까. 종국에는 왕권을 위협할 수준으로 권세가 커질 것이옵니다. 결국, 서인을 견제하고자 남인을 중용하게 될 것이옵니다. 어찌 되겠사옵니까.”
“…….”
“끝없는 사화.”
“…….”
“영원한 분열.”
“…….”
사화는 끝난다.
분열도 끝난다.
어찌하여 끝나는가.
“사화가 반복되면 남인이나 서인은 무너지게 될 것이옵니다. 누구라도 반드시 명맥이 끊어지게 될 것이옵니다.”
원 역사는 말한다.
숙종의 경신환국으로 남인은 세력을 상실했다고.
사화의 반복은 정치 세력의 멸절로 이어진다.
“이는 조선의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사옵니다.”
이연은 붕당의 소멸이 어찌하여 조선의 실패냐고 묻는 유치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 역시 정치 세력의 멸절이 어떤 손해를 가져올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간단한 문제다.
위정자가 절반 사라지는 것이니까.
그 자체로 손해다.
“그렇다고 하여 남은 세력이 단합하겠사옵니까. 또다시 분열할 것이옵니다.”
원 역사는 또 말한다.
서인과 남인의 격렬한 대립은 서인의 승리로 귀결된다.
그러나 서인은 단합하여 조선의 개혁을 진두지휘하지 않았다.
또 분열되었다.
노론과 소론으로.
“사분오열된 조정에서 오직 용상의 권능만이 빛나게 될 것이옵니다. 이를 원하시옵니까?”
용상의 권능만이 빛나는 조선.
이는 숙종의 조선이다.
이연은 뛰어난 인물이다.
어쩌면 조선의 역사를 새로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이연은 한계를 넘을 수 없다.
그의 한계는 원 역사의 숙종이다.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숙종은 자신의 시대만을 빛낸 군주다.
그는 조선을 빛낸 군주가 아니다.
“실패를 피할 수는 없사옵니다. 그 누구라도. 하오나 피할 수 있는 실패라면 피하는 게 옳사옵니다. 심지어 일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옵니다.”
이제 원론으로 돌아간다.
아무리 왕권이 강할지라도 극복할 수 없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