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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30화 (30/298)

30화 재해(災害)(3)

내가 지금 무엇을 본 거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넋이 나간 듯 멍하게 쳐다봤다.

충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살이 떨리고 숨이 막혔다.

그랬다.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속이 불편했다.

모르겠다.

내가 왜 이러는지.

지금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총책임자가 이럴수록 문제만 커진다.

안다.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런데 진정할 수가 없다.

시선을 돌렸다.

허목은 심각한 표정으로 구덩이 안을 살폈다.

저 사람은 어찌하여 저토록 담대한가.

허목은 어찌하여 아무런 두려움이 없는가.

한 치의 머뭇거림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우스웠다.

바로 내가.

내가 지금까지 한 행동이 너무나도 우스웠다.

사문난적을 말하고 세종의 길을 제시하였다.

참으로 건방졌다.

난세가 무엇인지, 재난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경험해보지도 못한 나다.

한데, 그동안 조선을 이끌어 온 거목들을 힐난했다.

부끄럽다.

아니, 내가 너무 같잖았다.

그러나 나는 나의 맹렬한 고민을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내가 중심을 잃는 순간 조선의 재해 행정은 시작부터 무너진다.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지금은 나를 위로할 때다

그래서 나를 위로했다.

이번이 처음이라고.

처음은 이럴 수 있다고.

누구나 처음은 있는 것이니까.

그러니 괜찮다고.

애써…… 위로했다.

이게 옳다.

그때였다.

“곤궁한 이가 죽으면 매장을 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변승업의 해명이었다.

“자손이 있고 부유한 집의 장사(葬事)에는 다투어 모여들어 묻어 주고 있으나, 자손도 없고 가난한 집 장사는 누구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시체를 방치할 수만은 없기에 이렇게라도 하였습니다.”

사후(死後)의 빈익빈 부익부였다.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나는 변승업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물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한데, 새끼줄은 뭔가?”

“시체를 사람이 직접 옮기는 일은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대충 새끼줄을 묶어서 질질 끌었다는 의미였다.

사람이 끌었을 수도 있고, 소나 말이 끌었을 수도 있고.

한정된 인력으로 시체를 처리해야 할 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지켜보던 허목이 끼어들었다.

“도호부사가 행한 일인가?”

“그렇습니다.”

“대처는 잘했군.”

그래서 슬펐다.

도호부사의 방책이 최선이라는 걸 의미하니까.

나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들을 시켜서 모두 태우게.”

“예……?”

“차후 발생하는 모든 시체도 이곳에서 태우게. 아니, 읍성과 거리가 멀수록 좋을 것이야.”

나는 여전히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

구덩이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기근은 길어질수록 역병과 이어지는 법일세. 시체는 발화의 시간을 앞당길 뿐일세. 죽은 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옳게 매장할 수 없다면 태우는 게 옳아.”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반대할 이유가 없구려.”

허목의 말.

이 또한 슬펐다.

나의 행동이 최선이라는 걸 의미하니까.

나는 짧게 답변하듯 말했다.

“들어가겠소.”

내 말과 동시에 읍성의 문이 열렸고

“윽!”

“헉!”

……

“헉!”

사방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강골의 모습을 보이던 허목도 미간을 와락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진짜 엄청난 악취였다.

말 머리를 돌리고 싶을 정도의 악취였다.

나는 지금껏 이런 악취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은 당연하고,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현대인이 볼 때 한양도성의 위생 역시 엉망진창이다.

그러나 나는 요리조리 잘 피해 다녔다.

그래서 시각적인 자극만 만나지 않는다면 잊고 살만했다.

그러나 지금 내 코를 괴롭히는 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악취였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말을 재촉했다.

숨을 쉬는 것도 조심하며 다가갔다.

그리고 삭주 도호부의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처참한 광경 말이다.

“…….”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끔찍했다.

사람은 이런 곳에 살아서는 안 된다.

절대로.

“…….”

사방에 분뇨가 가득했다.

개똥과 말똥이 길을 점령하고 있었다.

다리 옆 석축에는 인분이 더덕더덕하게 붙어 있다.

똥이 바람에 날려 다닐 정도였다.

민가의 벽은 똥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말에서 내렸다.

몇 걸음 걸었다.

그러나 더 움직일 수 없었다.

사방을 분뇨와 인분이 지배하고 있었으니까.

숨을 참으며 시선을 돌렸다.

멀찍이 보이는 하천은 오물이 가득했다.

한숨도 안 나왔다.

“대감. 오셨습니까.”

읍성 내부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이번에는 필시 도호부사였다.

그는 상황을 파악하였는지 눈치껏 말했다.

“송구합니다. 분뇨 따위를 수거할 인력이 부족합니다.”

“언제부터 이리되었나?”

“기근이 발생한 직후 이리되었습니다.”

“…….”

“대감.”

동서남북을 복잡하게 오가는 도호부사의 눈동자.

한숨을 푹 쉬었다.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다만, 한 번 더 생각해볼 뿐이었다.

물론,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이 답답한 인사에게 제대로 경종을 울려주려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충격 요법을 사용하는 게 옳다.

“나를 기다릴 시간에 분뇨나 치우지 그랬나?”

“예, 예?”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발걸음을 옮겼다.

“대, 대감. 분뇨와 인분이 지천에……!!!”

도호부사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근처에 있던 호미를 대충 들고 그대로 분뇨와 인분의 수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말이 들리지 않았다.

나 역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체감상 상당한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대, 대감. 어찌 이러십니까.”

“거리가 이토록 불결하네. 보이지 않나?”

“하, 하지만…….”

“기근은 반드시 역병과 연결되는 법. 만일, 이 불결함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역병은 삭주를 뒤엎을 것이네. 이를 자네가 책임질 수 있나?”

“소, 소직은 그런 뜻이 아니라…….”

“책임지라고 하지 않을 것이니 다물게. 나는 구관당상으로서 가장 기본을 세우고자 한 것일세.”

말이 끝나고 바로 허리를 폈다.

거지 같은 체력을 가진 송시열의 육체로는 작업이 수월할 수가 없었다.

적당하게 허리를 몇 번 움직인 뒤 다시 수거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도부호사.”

“예, 예. 대감.”

“뭐 하나?”

“……무슨 말씀입니까.”

이보다 답답할 수가 있을까.

딱 그때 변승업이 말없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역시 예사로운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데 도호부사는 여전하다.

나는 다시 허리를 슬쩍 펴면서 말했다.

“그렇게 쳐다보고만 있으면 도호부사 생활 끝나나?”

“!!!”

“나 혼자 분뇨를 다 치우면 자네의 관복도 치워지지 않을까?”

“!!!”

“그래. 그러게.”

이 정도 말하면 알아서 처신해야지.

과연 도호부사는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그러자 도호부에 속한 인원도 재빨리 움직였다.

그래. 일이 이렇게 돌아가야지.

그러고 보니 허목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 일에 허목까지 투입할 필요는 없다.

오면서 들어보니 구황과 관련하여 여러 생각을 한 것 같으니, 당장 그 일을 맡기는 게 옳다.

엷게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은 마시오. 나는 원래 똥 치우는 역할이니까.”

조정에서도 송시열이 싼 똥 치우느라 시간 다 보냈다.

여기도 똥이 있으니 그냥 치울 뿐이다.

보아하니 평생 똥이나 치워야 할 팔자인가 보다.

말을 이으려고 할 때였다.

“걱정? 내가 왜 걱정하오?”

허목은 역시 남다른 인물이었다.

헛웃음까지 지으면서 오만상을 와락 찌푸렸다.

“분뇨를 치우는 건 백번 옳은 일이오. 하지만 해야 할 역할이라는 건 명백하게 나뉘는 법이거늘.”

“매번 느끼지만, 선생은 맞는 말을 정말 듣기 싫게 하는 재주가 있소?”

“맞는 말을 하였다고 하여 젊은 관리를 타박하는 대감만 하겠소?”

“되었소. 그리고 지금 내가 직접 분뇨를 치우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외다.”

“이미 제 입으로 말하셨소. 똥 치우는 역할이 적격이라고.”

“그게 아니라.”

“그러하니 어찌 더 입을 대겠소. 한데, 나는 그럴 의사가 전혀 없소이다. 단 한 번도 분뇨 치우는 일을 적격이라고 여긴 적은 없으니까.”

하. 진짜.

수염까지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개똥보다 재수 없는 허목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하면, 나는 관청으로 가겠소.”

진짜 내가 조금만 더 못 배웠으면 똥을 집어 던질 뻔했다.

“관청에 있는 관노비를 보내주겠소. 그러나 아전처럼 실무를 봐야 할 사람은 곤란하오. 누군가는 일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그건 원래 내 역할이오. 선생도 나의…….”

“그러면 너희는 나를 따르도록.”

수행 짐꾼까지 알차게 다 데려갔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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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이동은 빠르거나 느리지도 않은 속도였다.

딱 적절한 속도로 깊고 자세히 생각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머릿속의 생각이 늘 원하는 방향으로 귀결되는 건 아니었다.

지금 허목이 딱 그랬다.

“…….”

분뇨 따위를 직접 치우겠다고 한 송시열을 뒤로하고 관청으로 가는 길 내내 허목은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제 머릿속으로 내린 결론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편하고 또 불편했다.

이건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생각의 늪에 잡아 먹힌 것이다.

알고 있다.

최선을 다하여 부정하고 있으나 종국에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걸.

다만, 종국(終局)이 다가옴을 최대한 늦추고 싶을 뿐이었다.

거대하게 밀려오는 생각을 머리를 흔들며 확 밀어낸 허목은 흐트러진 머리를 한 채로 못마땅한 웃음을 지었다.

“백번을 봐도 오만하고 졸렬한 인사가 확실하거늘.”

다른 사람도 아니다.

자신은 허목이고, 그는 송시열이다.

다른 관점도 아니다.

바로 허목이 송시열을 보는 관점이다.

그러니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오만하고 졸렬한 인사가 확실하다.

그런데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그새 입 밖으로 언어라는 게 새어 나왔다.

“구관당상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처신이었다.”

허목은 화들짝 놀랐다.

어찌 제 입으로 송시열의 행동이 옳았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분뇨가 만들어 낸 악취가 정신을 어지럽힌 게 분명했다.

필시 그래야만 했다.

분뇨…….

그랬다.

분뇨……. 읍성의 상황은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아니, 최악이었다.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역병이 창궐할 것이다.

읍성 밖에 있던 시체 구덩이만 해도 그랬다.

모두 역병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체를 태우라는 것도 적절한 판단…….”

화들짝 놀란 허목은 다시 머리를 세차게 저었다.

정신을 차리고자 입술까지 깨물었다.

“…….”

어쨌든 분뇨는 치워야 한다.

완벽하게 모두 수거할 수는 없을지라도,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는 일을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필요한 건 바로 정치다.

만일 지휘체계를 앞세워 일을 진행하고자 했다면 여러 말이 새어 나왔을 것이다.

불평과 불만은 기본이었을 것이고.

어찌하여……?

그대로 방치한 분뇨를 보면 이곳의 관리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저 악취라고 여길 뿐이었다.

지금 급한 건 기근이니까.

그런데 송시열은 직접 분뇨를 치웠다.

이는 모든 정치적 행위를 무위로 돌리는 고도의 정치적 행동이다.

무릇 정1품 구관당상의 행동은 천금이다.

만일, 그 행동이 분뇨를 치우는 것이라면 천금 이상의 가치를 낼 수 있다.

누구도 불평과 불만을 앞세울 수 없다.

그래서 놀라웠다.

구관당상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송시열이었으니 말이다.

그가…… 그 송시열이 분뇨를 치운 것도 놀라운데, 이토록 정확한 정치적 판단을 했다는 게 더욱 놀라웠다.

또…… 송시열이 하려던 말을 안다.

필시 구황 진행의 전권을 넘긴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는 구관당상의 권한을 위임한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누가 있어서 자신의 권한을 이토록 쉽게 넘길 수 있겠는가.

이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발생할 뻔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송시열로부터 말이다.

허목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당최 뭐가 어찌 돌아가는 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경험한 송시열을 다시 되새겼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소탈한 모습.

아랫것들과 소통에 임하는 모습.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머릿속이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결론.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송시열의 모습.

호미를 들고 분뇨를 치우는 모습.

허목은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으로 입가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

대경실색했다.

너무 놀라서 심장이 요동칠 정도였다.

“실성한 것인가. 어찌하여 홀로 웃고 있단 말인가.”

“선생.”

“시끄럽네.”

“아.”

허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수행 인원을 바라봤다.

그리고 정색하며 말했다.

“내가 웃는 건 웃는 게 아니었네. 그러니 쓸데없는 오해는 말게.”

“예? 그저 관청에 도착하였기에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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