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노래하라-31화 (31/298)

31화 재해(災害)(4)

수거 작업은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병졸은 읍성과 적당한 거리에 구덩이를 팠다.

관청의 관노비도 다 동원했다.

그리고 실무 관리는 단 한 명도 안 왔다.

하. 당연한 일이지만 살짝 언짢았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는데 정말…… 짜증 났다.

치우다 보니 똥은 사라지고 있는데, 온몸을 잡아먹은 똥 냄새는 너무 진하게 남아서였다.

마음 같아서는 똥을 도호부사에게 집어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참으로 야만적인 행동인지라 꾹 참았다.

나는 문명을 경험한 현대인이니 말이다.

“한데, 도호부사.”

“예. 대감.”

“왜 똥을 안 치워서 이 사달을 만드나?”

“소, 송구합니다.”

“하. 진짜.”

내가 괜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니었다.

치우다 보니 치워진다.

인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사달을 만든 것이다.

한마디로 도호부사는 유능한 인사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냥 순수한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 그냥 오늘을 사는 사람이었다.

최선을 다하여.

“이쯤 하면 대감께서는 관청으로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가장 적절한 말이 나왔다.

당연하겠지만 변승업이었다.

나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이만하면 나도 이제 발을 빼도 될 것 같다.

언제까지 여기서 똥만 치우고 있을 수는 없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절대로 여기서 똥이나 치우고 있을 사람이 아니다.

암. 그렇고말고.

딱 그때였다.

“도호부사!”

노기가 잔뜩 담긴 일성.

고개를 돌려보니 허목이 엄청 화가 난 상태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너무 궁금해서 지켜만 봤다.

“어찌 그러십니까. 선생.”

정말 소심한 사람이다.

그런데 변승업도 전광석화처럼 허목에게 달려갔다.

“아니, 선생. 왜 그러십니까.”

와. 사회생활 진짜.

상황 파악을 정확하게 하였는지 전과 달리 아주 예의가 바르다.

내 곁에서 똥을 치운 건 최종 결정권자에 대한 예우.

허목을 향한 태도가 바뀐 건 실세에 대한 최선.

진짜 대단하다.

나는 소태를 씹은 기분이었으나 차마 내색하지는 않았다.

“도호부사. 대체 일을 어찌 처리한 것인가.”

“자세히 일러주십시오.”

“소인이 설명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도호부사라는 자가……. 한데, 변승업. 자네 갑자기 왜 이러나?”

“무슨 말씀입니까. 소인의 어떤 점을 보시고 갑자기라고 하십니까. 선생.”

와. 사회생활 진짜 미쳤네.

어처구니가 없어서 어처구니가 또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지금 느껴지는 소태 씹은 기분을 잊지 않기로 했다.

텁텁한 마음에 발걸음이 무거웠으나 은근슬쩍 다가가며 말했다.

“무슨 일이오?”

“허. 기어이 가까이 오셔야 하오? 악취가 고약하거늘.”

“부지런히 일하다 보니…….”

“떨어지시오. 불쾌하오.”

하. 진짜.

이 인간을 진짜 어찌해야 할까.

살심(殺心)이 미친 듯이 솟구쳤다.

아니, 부처님께서는 살심을 대체 무슨 수로 참으셨단 말인가.

심히 존경스러웠다.

괜히 수천 년간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깨달았다.

정말 깊은 깨달음이었다.

물론,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몇 걸음 물러났다.

훗날 반드시 이 수모를 갚아주겠다는 결심을 세우면서 말이다.

변승업은 나의 퇴각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더니 더 겸손한 자세를 취하며 허목에게 말했다.

“연유를 자세히 일러주실 수 있겠습니까.”

“자네는 빠지게. 도호부사. 대체…….”

허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 한편에서 소란이 있었다.

병졸들이 어떤 무리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었다.

병졸은 십수 명, 무리는 족히 20명은 되었다.

죄를 범한 무리일까?

무슨 사유인지 궁금했다.

“내가 말할 필요도 없겠군.”

불편함이 가득한 허목의 목소리.

나는 더 의아하여 빤히 쳐다봤다.

그런데 잡힌 무리가 조금 희한했다.

그러니까 어렸다.

한눈에 봐도 애다.

많이 봐도 16세 정도?

뭐. 조선에서 16세면 대충 어른이긴 한데, 아직 약관에 이르지도 못한 것도 사실이다.

저들이 대체 무슨 이유로 십수 명이나 동시에 잡혔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기근과 역병에 지쳐서 쌀이라도 훔쳤을까?

그런데 또 특이한 점이 있다.

유심히 살피니 병졸들이 죄인들을 험하게 다루지는 않았다.

뭐라고 할까?

달래는 듯?

말리는 듯?

이런 느낌이었다.

이래저래 참으로 희한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도호부사를 쳐다봤다.

해명을 요구하는 의미를 가득 담아서.

“아.”

약간의 궁색함이 담긴 목소리.

그런데 변승업은 쓰게 웃고 있다.

무언가를 아는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겪은 변승업의 처세를 되돌아볼 때 이런 태도는 낯설다.

또한, 날카롭게 날이 선 허목도 옆에 있다는 걸 고려하면 더 그렇다.

나는 더 기다리지 않고 직접 나섰다.

“무슨 일인가.”

병졸들은 막상 내가 나서자 조금 당황했다.

아니, 아차 하는 표정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무언가를 들킨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누군지 알기에 당황한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리 화들짝 놀란 것일까?

궁금증은 커졌다.

무럭무럭 커졌다.

다시 재촉했다.

“말하게.”

“휴. 차마 소인의 입으로 말하는 게 두렵습니다.”

“저들이 쌀이라도 훔쳤나?”

“아닙니다. 그런 일이라면 어찌 두렵다고 하겠습니까.”

“하면?”

병졸은 머뭇거렸다.

딱 그때 죄인들은 울음을 터트렸다.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사연이 있는 게 분명했다.

간단한 사연도 아닐 것이다.

“기근과 역병으로 어지러운 삭주부이기에 작은 허물이라면 죄를 사할 것이다. 그러니 말하라.”

“…….”

“들리지 않나? 어서 말하라.”

“…….”

이상했다.

어떤 사연이라고 할지라도 죄인을 잡은 것이 아닌가.

그러니 말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병졸들은 감히 나서지 못하였다.

너무 의아했다.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살피니 병졸들의 얼굴에도 난처함이 잔뜩 묻어났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가볍게 처리할 죄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어, 어찌하여 내 몸의 고환도 마음대로 자르지 못합니까.”

죄인 중 한 명이 울부짖으며 외쳤다.

그 내용이 너무나도 괴이했다.

고환……?

고환이라니?

자른다고……?

대체 무슨 말일까.

더 의아한 건 병졸들도 눈을 질끈 감았다는 것이다.

느낌이 이상했다.

속이 무거워졌다.

퍽퍽할 정도로 무거웠다.

고개를 돌렸다.

죄인들을 바라봤다.

“지금 뭐라고 하였느냐?”

물었으나 어쩌면 나도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었다.

그리고

“소, 소인들은 스스로 고환을 자르고자 했습니다.”

어쩌면 이미 알았을 답이 나왔다.

“뭐……라?”

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회피하고 싶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지 못할 수가 없다.

그러나 밀어내고 싶었다.

이 순간 내가 선택한 건 되물음이었다.

마른침을 넘기면서 물었다.

“어찌하여…… 대체 무슨 말이지? 왜 그런 짓을 하나?”

“군포…….”

눈물이 섞인 다른 죄인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다.

“군포 때문에 그랬습니다.”

내 시선이 조금씩 움직였다.

그러나 자세를 바꾸지는 않았다.

눈동자만 움직였다.

그냥…… 그랬다.

나도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됐다.

시선이 화자에게 이르기도 전이었다.

“군포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그랬습니다.”

시선의 이동은 멈췄다.

“고환을 자르면 군포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온몸이 경직됐다.

“군역을 면제받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살고자 그랬습니다.”

“살아야 해서 그랬습니다.”

여기저기서 말이 터져 나왔다.

믿을 수가 없는 말이.

“……대감. 소인들도 이들을 추포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를 시작으로 병졸들도 앞다퉈 나섰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그, 그렇습니다. 군포의 부담으로 영영 사람 구실을 못 할까 두려워 막은 것입니다.”

“어쩌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부디 눈감아 주십시오.”

“대감. 선처해 주십시오.”

그래.

이들도 저들을 구제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있으니 놀란 것이다.

화를 당할까 봐.

나는 도저히 표정을 관리할 수 없었다.

참담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내 표정이 흉악할 정도로 일그러졌기 때문일까?

그 일그러짐이 어떤 의미로 작용하였을까?

어쩌면 두려움이었을까?

잘은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건 내 표정의 일그러짐이 저들에게는 호의로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 대감. 넉넉한데 군포를 내지 않기 위해서 수를 쓴 게 아닙니다.”

이 나라 조선의 위정자는 백성들에게 대체 어떤 존재였을까.

“나쁜 마음을 먹은 게 아니었습니다.”

조선의 사대부는 단지 군림하였을 뿐이었을까?

“그냥…… 그냥 살 방법이 이것밖에 없어서 그랬습니다.”

공포였을까?

적어도 긍정적 의미는 아니다.

그랬다면 지금 이들의 입에서 지금과는 다른 말이 터져 나와야 한다.

그래야만 했다.

“가진 게 사지 멀쩡한 몸밖에 없어서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랬습니다.”

당연히 원통함을 호소하여야 할 상황이다.

당연히 억울함을 울부짖어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지금 내 귀에 들린 건 두려움이 담긴 절규였다.

너무나도 절절했다.

듣고 있으니 손끝이 떨렸다.

참담했다.

하늘 아래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군포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고환을 자르려고 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침착하게 다가갔다.

이들은 죄인들이 아니었다.

그냥 백성들이었다.

그들과의 거리가 좁혀졌다.

그들과 시선을 마주했다.

한쪽 무릎과 땅이 만났다.

그렇게 그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물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어찌하여 이토록 아픈 선택을 하였느냐.”

“선택이 아니라…… 유일한 살길이었습니다.”

……유일한 살길이라고 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됐다.

이연이 조선은 전주 이씨의 나라라고 역설한 이유를.

조선의 위정자는 이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공포로 군림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이것이 조선의 현주소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생긴 조선의 현주소.

만일…… 이 자리에 내가 아니라 군왕이 있었다면 이들이 이토록 절규하였겠는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통곡하였을 것이다.

이 거지 같은 현실을 호소하며 울었을 것이다.

부디 이 나라를 바로 잡아달라며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위정자는 희망이 아니지만, 군왕은 마지막 남은 희망이니까.

목울대로 참담함이 밀려왔다.

나는 온 힘으로 참담함을 다시 넘겼다.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키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마주한 이의 손바닥에 손을 올렸다.

참으로 차가웠다.

온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그의 온기가 내 손에 전해지고, 내 손의 온기가 그의 손에 전해질 때쯤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내 말은 세상에 나올 수가 없었다.

하여,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숨이 턱턱 막혔다.

미칠 것만 같았다.

진짜 미칠 것만 같았다.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신이시여.

“제발.”

어찌하여 저들이 내게 용서를 구하게 하신 겁니까.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은 너무나도 맑았다.

조선을 조롱하듯.

눈이 너무나도 시렸다.

아플 정도로 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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