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을 노래하라-32화 (32/298)

32화 일벌백계(一罰百戒)(1)

공기는 무거웠다.

호흡이 어려울 정도로 무거웠다.

퍽퍽함이 느껴질 정도로 무거웠다.

가장 무거운 건 심장이었다.

되새겼다.

새끼줄로 묶어 놓았던 시체들.

분뇨 따위가 점령하였던 읍성.

그리고 군포의 폐단이 만들어낸 비극.

원칙적으로 단 하나도 도호부사를 탓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었으나 도호부사를 벌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심장이 무거웠다.

왜……?

이곳은 조선이니까.

도호부사의 모든 행동은 조선의 틀 안에 엄연하게 존재하는 통치 행위였다.

아니, 아니다.

놀랍게도…… 너무나도 놀랍게도 도호부사의 통치는 크게 치하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장례 치를 가족이 없는 시체를 모아낸 건 훌륭한 방책이었다.

태우지 못한 것이 부족하다고 하여 공을 없앨 수는 없다.

분뇨 따위를 미리 치우지 못한 건 이 시절 위생 관념의 한계다. 이를 통치 철학으로 명확하게 접근한 위정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를 도호부사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당장 한양 도성도 분뇨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군포의 폐단.

이는 고작 도호부사 따위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조정에서도 시선을 돌린 일을 도호부사가 어찌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병졸에게 몸을 해하는 이들을 만류하라는 명령을 내린 건 잘한 일이다.

그랬다.

모두 치하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도호부사는 최선을 다하였다.

그래서 그랬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조선의 통치가 그나마 잘 이뤄지고 있다고 여겼다.

이 정도면 재해에 잘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그랬나?

아니지 않나?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현대 국가에서 삶을 영위한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건 아닌데……?

조선의 규정을 지켰기에 공개적으로 탓을 하지 못할지라도…….

명쾌한 대안이 없기에 대놓고 책망할 수 없을지라도…….

진심으로 동의한다……?

왜 이런 행동이 튀어나온 것일까?

아니 애초에 그러면 내가 이 자리에 있을까?

나보다 똑똑하고 잘하는 사람은 차고 넘치는데?

“…….”

내가 이상해진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생각…… 생각이라는 걸 해야 한다.

나는 생각이라는 걸 해야 한다.

급작스러운 일정이 원인이었을까?

생각하지 못한 충격 때문이었을까?

생각이 부족했다.

고민이 부족했다.

왜……?

생각이 부족했을까.

늘 고민을 거듭했는데 하필이면 이 시국에 생각이 부족했을까.

스치는 장면.

먼 길을 오며 구황을 고민한 허목의 모습.

진심으로 감탄했다.

“…….”

어쩌면…… 어쩌면 시작은 그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래서 시작은 그러하지 않았을까?

다시 스치는 기억.

구덩이를 가득 채운 시체에도 냉철한 모습을 보였던 허목.

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세종의 길을 앞세웠던 내가 부끄러워졌던 순간까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너무나도 복잡하게 얽혔다.

얽힘의 강도에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몸이 휘청일 정도로 어지러웠다.

그리고 그렇게 깨달았다.

“…….”

그래서 너무나도 한심했다.

바로 내가.

“…….”

안다.

나도 안다.

너무나도 잘 안다.

한 번도 부정하지 않았다.

이 시절 사대부의 능력치는 고작 학부생에 불과한 내가 따라갈 수 없다는 걸.

내가 아무리 대한민국 최고 국립대학의 구성원이었다고 할지라도 고작 학부생에 불과했다.

이 시절 조선의 사대부가 쌓은 학문적 경지와 정치, 정책적 숙련치는 내가 감히 입을 댈 수 있는 게 아니다.

단지 지식의 영역만이 아니다.

국가를 경영한다는 건 아예 결이 다른 문제다.

고작 학부생이었던 내가 조선 전역을 대상으로 한 세밀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수백 년의 세월이 만들어 낸 그들의 역사는 내가 감히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내가 송시열이기에 더 그랬다.

그냥 미관말직도 아니고 송시열의 몸을 차지하고 있기에, 내 말은 곧 송시열의 말이다.

두서없이 나올 수 있는 말.

의미 없이 내뱉게 될 말.

다 조심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엄청난 파급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일으킬 수밖에 없으니까.

그랬다.

그래서…….

바로 그래서 실질적인 실무에 나섰을 때부터 허목을 존중했다.

가끔 세운 위계는 찰나의 짜증과 귀찮음이 터져 나오거나 가벼운 농을 할 때였다.

대체로 나는 허목에게 양보했다.

왜……?

허목이 필요하니까.

아니, 그가 더 잘할 것이니까.

또 하나 더.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고자 했다.

대책본부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허목과 관계를 원만하게 해야 했다.

나와 허목의 관계가 삐끗하는 순간 순탄하게 운영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분뇨를 치웠다.

그리고 허목에게는 구황의 전권을 주었다.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나의 크나큰 실책이.

그랬다.

그 결정은 내가 얼마나 한심한지를 말해줬다.

나의 고민이 얼마나 안일한지 일렀다.

내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 전했다.

보라.

지금처럼 허목에게 모두 다 맡길 것이라면 뭐하러 내가 본부장을 하고 있나?

그러면 애초 내가 본부장을 할 필요가 없었다.

어떻게든 수를 써서 허목을 구관당상에 올리면 될 일이다.

허목이 무리라면 허적이나 송준길을 세우면 될 일이다.

지금 나는 자리나 차지하고 있는 꼴이다.

조선의 위정자라는 사람이 매사 맹목적으로 고개만 끄덕이고 똥이나 치우고 있는데 말이다.

참으로 한심하지 않은가.

그 순간 나는 똥이나 치우는 게 아니라 위생의 필요성을 역설해야 했다.

재해 극복의 책임자인 구관당상이라면 응당 그리해야 했다.

똥이나 치울 게 아니라.

허적에게 전권을 넘긴 사안을 통 큰 정치적 결단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만족하고 웃는 게 아니라.

“…….”

바로 이렇게 나는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

왜……?

어찌하여……?

조선의 사대부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역량을 가지고 있더라도.

아무리 그렇다고 할지라도.

현대인인 나를 앞설 수 없는 게 있다.

그것도 무려 2가지.

첫째로 이 시절 사대부가 죽어도 가질 수 없는 경험.

바로 현대 국가에서 삶을 영위한 경험이다.

비록 그 시간이 조선 사대부의 삶과 비교할 때 짧다 할지라도, 재해에 접근하는 차원이 다른 큰 틀의 안목(眼目)을 가지게 한다.

이건 이 시절 사대부 중 누구라도 나를 앞지를 수 없다.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그들은 나의 영역을 범할 수 없다.

하여, 나는 재해 극복의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여야 한다.

아니, 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나의 가치를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런데 내가 나의 역할을 방기(放棄)했다.

나침반을 버렸다.

바로 내가.

누구도 원하지 않았고, 시키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말해야 한다.

지금 삭주에서 이뤄진 행위들의 불합리함을.

조선의 방침이 얼마나 틀렸는지 격렬하게 일러야 한다.

지금껏 조선이 걸었던 방향은 잘못되었다고 성토해야 한다.

시절이 수상하여 설령 양보해야 한다면.

만일 백 보 양보해야 한다면.

재해에 접근한 조선의 방침은 인정할 수 있다.

아니, 애초 양보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 방침은 절대 부족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저 이 시절의 한계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러나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군포의 문란이다.

이는 조선의 조정에서도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다.

다만, 해결할 방법을 집행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니 나는 이를 성토할 수 있다.

이 감정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 순간을 기억해야 한다.

나 혼자만의 기억으로 남기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말했다.

“무릇 법도란…….”

말을 멈췄다.

나는 지금 위정자와 대화를 하는 게 아니다.

가진 건 육신밖에 없는 이 땅의 백성 아니 전주 이씨의 백성과 대화를 하고 있다.

가진 게 육신밖에 없기에 무거운 군포를 부담하여야 했고, 육신밖에 없기에 군포의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칼을 들었을 이들과 말이다.

나는 애써 부드럽게 웃었다.

그러나 나의 세 치 혀가 만들어 낸 말은 부드럽지 않았다.

“재해로 기근이 발생하여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하지만 너희가 정작 두려워한 건 그것이 아니었구나.”

“…….”

그랬다.

기근과 역병보다 군포가 더 두려워 고환을 자르고자 하였다.

이 얼마나 참혹한가.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었다.

책으로 배운 모순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참담함이다.

문자가 만들어낸 지식의 향연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참담함이었다.

내가 배운 역사의 어떤 내용과 내가 읽은 어떤 책도 현실의 1할도 담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이 순간 나는 진심이었다.

하여, 반드시 내 눈앞에 적나라하게 펼쳐진 말 같지도 않은 부조리함을 해결하겠노라는 다짐을 말하고자 했다.

-이 나라 조선을…… 너희를 지켜야 할 나라를 가장 무서워했어.

이 말을 하고자 했다.

-너희에게 재난은 기근과 역병이 아니라 조선이었다.

이 말을 전하고자 했다.

-진심으로 미안하다.

이 말로 위로하고자 했다.

이어질 말은 무수했다.

-군포를 면하겠다.

-부당한 사유로 군포를 징수한 관리를 벌하겠다.

-너희는 죄가 없다.

-너희는…….

……

-군포의 부담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그러니.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그러나 나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왜……?

나의 감정이 진하게 담긴 진심 그리고 다짐.

아무리 진심이라고 할지라도 옳은 건 아니다.

아무리 다짐이라고 할지라도 바른 건 아니다.

또한, 옳고 바르다고 하여 내뱉으면 옳지 않고 바르지 않을 수 있다.

-이 나라 조선을…… 너희를 지켜야 할 나라를 가장 무서워했어.

-너희에게 재난은 기근이나 역병이 아니라 조선이었다.

-진심으로 미안하다.

내 입에서 나올 이 말은 어떤 여파를 가져올 것인가.

내 말이 만들어 낼 이들의 기대를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 솔직해지자.

이들을 속일 각오가 되어 있는가.

어찌하여 속일 각오인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해결하겠노라 말하는 것이니 속이는 것이다.

조선이 바꿔낼 수 없는 제도를 개혁하겠노라 선언하는 것이니 속이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믿을 것이다.

오열하며 믿을 것이다.

남들은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말할 수 없다.

다 거짓이니까.

그랬다.

내가 이 시절 사대부보다 뛰어날 수밖에 없는 두 번째.

바로 역사.

나는 알고 있다.

삭주부의 재난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경신 대기근이라는 미증유의 재난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다.

최선을 다하여 막아낼 것이다.

조선은 마지막 남은 핏방울까지 짜내며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인가?

아니다.

나와 조선 사대부의 노력 이상으로 중요한 건 백성들의 의지다.

섣부른 선정은 백성들의 의지를 나약하게 할 뿐이다.

또 안다.

군포의 고통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조선은 절대 군역 개혁을 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섣부른 말은 백성에게 희망을 품게 할 뿐이다.

절대 이뤄지지 않을 제도의 개혁이 만들어 낼 태평성대를 염원할 것이다.

오지 않을 세상을 기대하던 백성은 끝내 좌절할 것이다.

다가올 세상은 군포의 모순이 가득한 경신년일 테니까.

이를 알 수 없는 이 시절 사대부는 이 가여운 백성을 따뜻하게 보듬고자 할 것이다.

이들을 위로하고 손을 잡아줄 것이다.

그렇게 사대부는 백성을 속이지 않되 속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백성은 속지 않되 속게 될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미봉(彌縫)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모든 걸 알고 있다.

경신년은 조정의 힘만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걸.

그래서 나는 조선의 사대부와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

결심했다.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지금까지 없던 위정자가 되기로.

홀로 광야에 서게 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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