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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37화 (37/298)

37화 방역 모델(1)

애초 삭주의 재해는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재해 자체가 두려운 것이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 제법 여유도 있었다.

그렇다고 하여 일을 설렁설렁한 건 아니었다.

분뇨를 치웠고, 직후 집행된 허목의 구황 정책 그리고 4천 석 구휼미의 당도는 기근의 종결을 선언하기에 충분했다.

하여, 삭주는 기근에서 해방된다.

이렇게 모든 일은 마무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내가 송시열이 되었고, 경신 대기근을 눈앞에 둔 이상 언젠가는 만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아니었다.

그런데 만났다.

예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상황은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그냥 최악이었다.

“역병이라니…….”

그랬다.

역병이 창궐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제 겨우 삭주가 괜찮아지나 싶었는데 역병이라니.

대체 왜……?

아무리 생각해봐도 원인을 찾을 수 없다.

똥도 다 치우고 기근도 잘 방어했는데…….

헛웃음이 났다.

전 근대에서 역병의 원인을 찾아내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찾아낼 수도 없을뿐더러 찾아내봤자 해결할 방법이 없다.

전면적으로 위생을 집행한 것도 아니고, 백신이 있는 것도 아닌 시절이니 말이다.

“괴질이외다.”

허목의 단 한마디였으니 담긴 무게가 너무나도 무거웠다.

이는 작금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단번에 알 수 있게 했다.

가득한 침통함은 나를 구렁으로 몰았다.

“알다시피 구체적인 원인을 파악할 수는 없소.”

허목이 무능한 게 아니었다.

이 시절 괴질은 구체적인 병명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포괄적인 역병의 의미였다.

의학이 발전한 현대국가에서는 사스(SARS), 메르스(MERS), 코로나바이러스 등 원인과 경로, 현상 따위로 병명을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절의 의료 수준으로는 그런 세밀한 분류는 불가능했다.

물론 병세 따위로 역병을 분류하기도 하였으나, 하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정확한 분류에서 벗어난 역병은 하나의 단어로 묶였다.

이를 괴질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사스, 메르스, 코로나를 몽땅 괴질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명확한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외다.”

“…….”

“그래도 천운이라면 천운이외다. 일파만파(一波萬波) 이전에 파악하였으니 말이오.”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아직은 병자가 소수였다. 그러니 이는 정말 천운이었다.

종래 역병은 대대적으로 창궐하였을 때 파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일 허목이 없었다면 필시 그리되었을 것이다.

나를 빤히 쳐다보던 허목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탓하고 싶으나 탓하지 않겠소. 어쨌거나 민심을 파악한 문서를 작성하라고 한 건 구관당상이니까. 그 문서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몰랐을 것이오.”

“…….”

허목이 괴질을 파악한 건 바로 걸인들의 대화를 기록한 문서였다.

그러니까 바로 ‘딱딱’ 아니 딱딱귀.

이 시절 역병의 원인을 몰랐기에 그저 귀신의 소행으로 여기는 이가 많았다.

이 중 칼이나 깃발을 쥔 채 수백에서 천씩 무리 지어 딱딱 소리를 내는 귀신이 있다.

걸인들은 이 귀신을 딱딱귀라고 부른다.

이를 목격한 사람은 즉사한다고 알려졌다.

그러니까 딱딱귀가 바로 괴질을 전하는 귀신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눈뜨고 역병의 징조를 놓쳤던 것이다.

심지어 걸인들의 대화를 직접 듣고도 그냥 넘겼다.

재해와 기근이 발생한 직후 걸인과 일반 백성들은 거의 접촉하지 않았기에 역병의 창궐도 알려지지 않았다.

하늘이 도와 허목이 이를 알아낸 것이고.

진짜 허목이 아니었다면 삭주 전역에 괴질이 창궐하였을 것이다.

평생 경전만 읽은 송시열과, 실질적인 학문을 탐구하며 백성을 관찰한 허목의 차이.

민심을 반영하는 경세가로서의 두 사람의 질적인 차이가 바로 ‘딱딱귀’라는 단어에서 확연하게 입증된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었다.

입술을 세게 깨물며 말했다.

“삭주의 의원을 모두 부르시오.”

“그렇지 않아도 역병을 확인한 직후 모이라고 하였소.”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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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결한 의원의 수는 십수 명이었다.

이들이 전부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많은 수가 아니었다.

“송구합니다. 여러 사정으로 오지 못한 의원이 많습니다.”

고령의 의원이 눈치껏 말했다.

짧은 말이었으나 무슨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허목이 역병이라는 사실을 전했을 리는 없다.

그러나 재해 지역의 관청에서 의원을 소집한 사실 자체에서 심각함을 느낀 눈치 빠른 의원은 이미 튀었다는 것이다.

소집에 응한 의원들도 대단한 사명감을 엿볼 수는 없었다.

한마디로 눈치 없는 이들이 온 것이다.

만일 기회가 있다면 당장 도망칠 게 분명했다.

고소를 삼켰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일단 조정으로 파발을 보냈기에 지원이 올 것이다.

하지만, 조정의 의관이 당도할 때까지 역병의 기세를 제압하지 못하면 그냥 끝이다.

의료 시설이 미흡한 삭주는 지옥으로 바뀔 것이다.

당장 의원도 도주하였으니 더 할 것이다.

“현재 역병에 걸린 병자의 상황은 어떻소?”

“대부분 걸인이외다. 더 정확하게는 분뇨를 모아낸 구덩이 근처에 살던 걸인이 다수였소.”

우습게도 직접적인 원인은 나의 정책이었다.

헛웃음이 났다.

역병의 창궐을 막고자 진행하였던 분뇨의 수거 작업이 오히려 역병을 창궐하게 한 것이다.

허목은 쓰게 웃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괴질에 걸리면 사지의 통증이 팔다리에서 시작하여 머리로 올라가기도 하고, 두통으로 시작하여 아래로 내려오기도 하오.”

“생사는 어찌 되오?”

“통상 통증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 살 수도 있으나, 반대는 중증으로 목숨이 위태롭소.”

허목은 침착했다.

역시 노련한 인물이었다.

허목이 일당백이라고 할지라도 한 명이다.

역병이 창궐한 이상 손은 많을수록 좋다.

아무리 겁에 질려 있을지라도 이 자리에 모인 의원들은 꼭 필요했다.

만일 이들이 야반도주라도 하면 삭주의 의료 시스템은 완벽하게 붕괴한다.

결과는 역병이 지배하는 삭주가 될 것이다.

“선생. 솔직하게 답해주시오. 병자를 치료할 수 있소?”

“무엇 하나 장담할 수 없소.”

백신이 없는 시절이지만 백신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 땅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역병은 쉬지 않고 창궐했다.

그 시간을 기록한 무수한 처방이 있다.

하지만 괴질은 하나의 병을 이르지 않는다.

여러 개의 역병을 묶어 놓은 병명에 불과하다.

만일 괴질이 아니라 정확한 병명으로 분리되어 있었다면 처방은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기에 어렵다.

아마 허목은 지금부터 축적해온 여러 처방을 사용할 것이다.

즉, 허목이 처방을 빨리 찾아낸다면 괴질은 신속하게 제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참으로 오래 걸린다.

말 그대로 인체실험처럼 처방하고 병자의 차도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올바른 처방이 늦어진다면 괴질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달리 말하면 현대 국가에서 메르스 환자에게 사스, 메르스, 코로나 백신을 차례로 사용하는 것과 같다.

이후 경과를 지켜보는 것인데, 운이 좋아서 첫 번째에 메르스 백신을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시간은 허비되고 환자는 죽어간다. 때로는 잘못된 백신의 사용으로 죽음이 앞당겨질 수도 있고.

지금 상황이 딱 이렇다.

“결국 시간 싸움이외다. 얼마나 빨리 처방을 찾아내느냐에 따라서 역병의 기세가 결정될 것이외다.”

결국, 종래 조선의 방침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나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큰 화두는 다른 게 아니다.

지금껏 조선의 역병 대처가 소수의 죽음이나 감염으로 귀결되었을까?

아니다.

올바른 처방을 찾거나 죽을 사람 다 죽고 자연적으로 사라질 때까지 늘 많은 시간이 걸렸다.

피해는 걷잡을 수 없었다.

생각을 다시 했다.

현대 국가라면 어찌했을까?

또 달리 생각했다.

현대 국가의 방역 체계와 전 근대 국가인 조선의 강제력이 합쳐진다면……?

조선의 강제력 그리고 현대 국가의 방역 체계.

이 두 가지를 쉬지 않고 되새겼다.

그리고 결정했다.

현대인의 기억과 송시열의 지식을 동시에 가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통치를.

지금부터는 완벽한 재난본부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이 땅에 지금껏 없었던 완벽한 방역을 추진한다.

그리하여 차후 설치할 재난본부의 방역 모델을 완벽하게 수립한다.

가장 강도 높은 방역으로.

그래야 한다.

더 머뭇거릴 이유는 없었다.

“도호부사. 근처 구령보가 있다고 들었네.”

“예. 읍성의 북쪽 35리에 있습니다. 성의 둘레는 2천 8백 17척이며, 높이는 8척입니다.”

충분하다.

아니, 차고 넘친다.

“모든 병자를 구령보로 이동시키게.”

“예. 예?!”

대경실색한 도호부사.

그를 대신하여 허목이 황급히 나섰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병자를 포기하자는 것이오?”

병자를 격리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격리 공간은 늘 가까운 곳이었다.

현대 국가처럼 완벽한 밀폐공간을 갖출 수 없는 조선에서 이건 정말 미친 짓이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은 소수에 불과하오. 하지만 조만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소.”

“무슨 말인지 아오. 당연히 격리해야지요. 하지만 35리나 떨어진 구령보로 보내는 건 그들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소. 재고해주시오. 근처 적당한 곳을 찾아서 살필 수 있소.”

“불가하오.”

“구관당상!”

허목의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러나 나는 냉정함을 유지했다.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차갑게 말했다.

“꾸준하게 처방하여 약재와 약탕을 구령보로 전하면 되오. 그렇게만 해도 차도를 살필 수 있고.”

“역병이오. 옆에서 살피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소. 차도가 있다고 할지라도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소.”

“설마…… 고작 십수 명이라고 하여 죽어도 된다는 것이오?”

“…….”

“……실성하셨소? 어찌 사대부로서 그런 생각을 하오? 단 한 명의 백성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그리해야 하오.”

“그래야지요.”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소이까.”

“단 한 명의 백성이라도 더 살릴 방법을 선택하였을 뿐이외다. 냉정해져야 하오. 읍성 내외에 병자를 격리하였다가 역병이 전해지면 어찌할 것이오? 고작 십수 명의 병자가 단 하루 만에 수백 명이 될 수도 있소. 아니라고 말하지 마시오. 지금껏 한 번도 예외는 없었소. 선생. 반례가 없다는 건 그 방책이 틀렸다는 걸 의미하니까.”

“아무리 그렇다고 할지라도…… 됐소. 나라도 구령보에 함께 가게 해주시오.”

“그 또한 불가하오.”

“구관당상의 방책을 반대하는 게 아니오. 한데, 대체 왜 불가하오?”

“선생께서 괴질에 걸리면 어찌할 생각이시오?”

“각오하고 있소.”

“혹시 선생의 목숨이 병자 한 명의 목숨과 동률이라고 보시오?”

“지금껏 한 번도 내 목숨이 더 귀하다고 여긴 적은 없소.”

“지금부터 그리 생각하시오. 선생은 읍성에서 더 많은 백성을 살펴야 하오.”

“그건 억지요!”

“이곳의 책임자는 나요. 기어이 반대하고자 한다면 교지를 받아오시오. 하면, 보내주리다.”

“이…….”

최고의 권위를 언급했다.

더는 반론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허목은 부들부들 떨었으나 더 나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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