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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38화 (38/298)

38화 방역 모델(2)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은 나의 방침에 의원들의 얼굴은 환해졌다.

결국, 병자를 지척에서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니 말이다.

뭐라고 탓할 수는 없다.

목숨을 걸고 괴질에 걸린 병자를 치료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이 자리에서 저들의 마음가짐을 질타할 이유도 없고.

어차피 바뀌지도 않을 건데 괜한 말로 서로 마음 상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나는 시선을 옮겨 다시 도호부사를 바라봤다.

“걸인의 집단 거주지가 있을 것이네.”

“그렇습니다.”

“모두 소각하게.”

“대, 대감. 하면, 걸인들은 거주할 곳이 없습니다.”

“그렇겠지.”

“결국, 걸인은 읍성의 곳곳을 이동할 것이니 더 큰 화가 미칠 것입니다.”

“걸인의 정확한 수를 파악하여…… 남쪽 40리 밖에 있는 천마진으로 모두 이동시키게.”

“대, 대감. 천마진에는 병마첨절제사와 병력 3백여 명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병력은 병마첨절제사의 지휘를 받으며 천마진 밖에서 걸인을 지키게 할 것이야.”

“천마진은 국경을 지키는 요지입니다. 이곳의 병력을 이동하려면 교지가 필요합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반론.

우려가 잔뜩 담겨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네. 어찌 모르겠나? 하지만, 비상한 상황일세. 다른 사유도 아니고 재해와 관련하였으니 구관당상의 권한으로 능히 처리할 수 있네. 또, 병력을 아예 다른 지역으로 주둔시키는 게 아니라 병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걸인을 지키는 것이니 어찌 문제가 있겠나. 더 이견이 있나?”

“……아닙니다.”

말과는 달리 난처함이 느껴졌다.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복잡한 사정을 떠나서 병력을 이동시키는 일이다.

아무리 표면상으로는 천마진의 병력을 천마진 바로 앞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동은 명백하게 이동이다.

그냥 적당하게 융통성을 발휘하여 보면 별일이 아니지만, 도호부사의 말처럼 병력의 이동은 군권의 발현을 의미한다.

어떠한 경우라도 군권은 오직 군왕의 권능으로만 이뤄진다.

한데, 내가 이를 임의로 집행하고 있다.

잣대에 따라서 반역으로 몰릴 수 있다.

도호부사로서는 정치적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어쩌면 함께 있는 허목 역시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책임자라고 할지라도, 이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 자체도 문제 삼을 수 있는 게 반역의 블랙홀이었다.

그러나 해야 한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고작 천마진이라는 장소가 아니라, 감염 위험성이 있는 걸인 수백 명을 지킬 병력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시선을 옮겼다.

도호부사가 아닌 허목을 향해서.

그리고 약속하듯 말했다.

“책임은 내가 질 것이오.”

“…….”

“노파심에 묻겠소. 혹시 이견이 있소?”

무리수가 있을지라도 병자와 병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완벽하게 격리하려는 내 방침을 허목이 이해하지 못할 수는 없다.

또, 내가 얼마나 독한 마음을 먹었는지도 알 것이다.

정치적인 부담감까지 덜어주었으니 이견은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또, 사실 모든 정치적 책임을 내가 지겠다고 말하였으니 곧장 동의할 줄 알았다.

하지만 허목의 얼굴에는 번뇌가 가득했다.

의외였다.

지금껏 허목은 나, 아니 송시열에 대한 경멸을 숨기지 않았다.

노골적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였다.

매 순간 느낄 수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나를 어찌해버리고 싶어 한다는 걸 말이다.

눈빛 하나부터 적개심이 가득했으니 어찌 모르겠는가.

그러하니 위험천만한 정치적 판단을 홀로 책임지겠다고 하였으니 내심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번뇌를 보이니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더 의외인 건, 무슨 생각인지는 알 수 없으나 허목이 더 나서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복잡한 표정을 통해서 머릿속이 상당히 복잡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속내가 무척이나 궁금하였으나 나는 더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한시가 바쁘다.

솔직히 이 시간도 아깝다.

나는 다시 도호부사를 바라봤다.

“우물을 모두 폐쇄하게. 아니, 읍성 내부의 모든 식수의 섭취를 금하겠네.”

현재 역병의 원인은 시체나 분뇨에서 비롯한 것으로 추정됐다.

하면, 읍성 내부의 어떤 것도 쉽사리 믿을 수 없다.

모조리 방역의 대상으로 규정하여 강도 높은 대책을 수립하는 게 옳다.

이곳은 방침 결정 즉시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선이니 말이다.

물론 강제적 집행이 전국을 대상으로 한다면 민심의 이반처럼 탈이 날 수도 있으나, 고작 삭주부에 국한한 것이라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대감. 그리하면 식수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자네는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말하게. 외부에서 구하면 될 일이거늘.”

“대, 대감. 계반천은 동쪽 35리에 있고, 온정천은 남쪽 35리, 판막천은 서쪽 15리, 천동천은 동쪽 70리, 백려자천은 남쪽 50리 그리고 형제천은 남쪽 68리에 있습니다. 또한…….”

이 인간은 뭐 하는 걸까?

나는 미간을 와락 찌푸리며 말했다.

“가장 가까운 판막천에서 물을 구하면 될 것인데 어찌하여 구구절절하게 말하나?”

“소, 송구합니다. 한데, 거리도 멀거니와 식수를 옮기려면 엄청난 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만한 물지게를 구할 수도 없습니다.”

“어차피 재해로 농업은 물론이거니와 백성의 생계 활동이 중단되었어. 모두 구황에 집중하고 있는 실상일세. 무슨 말인지 모르겠나? 사지 멀쩡한 사내는 모두 동원하고, 그 외 여인이나 노인 그리고 어린아이는 구황에 집중하면 될 것이야.”

“그건 그렇습니다. 하면, 병졸도 동원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제발 생각이라는 걸 하게. 병졸은 제 역할이 있지 않을까?”

“그건 그렇지요.”

“외부에서 반입한 식수는 모두 끓여야 할 것이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방침이었을까?

도호부사는 눈만 껌뻑였다.

나도 무시했다.

내가 이 사람을 설득할 필요는 없으니까.

“굳이 그리할 필요가 있소? 판막천만 하더라도 15리 밖에 있소. 탈이 나지는 않을 것 같소만.”

생각을 끝냈는지 듣고만 있던 허목이 말을 꺼냈다.

역병이 창궐하였을 때 식수는 끓여서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나선 건 아니다.

그의 말대로 이미 15리 밖에 있는 판막천의 식수는 문제가 없을 것이니까.

다만, 나는 그 외의 다른 부분을 바라보고 있었다.

“병자를 당장 치료할 수는 없으나 예방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외다. 하여, 나는 백성들에게 목욕을 권하고자 하오.”

“음. 목욕에 사용할 물을 모두 데우자는 것이오?”

“그렇소. 단지 찬물에 씻기만 하면 오히려 탈이 날 수가 있소. 이왕지사 일을 펼친다면 뜨거운 물에 씻는 게 더 효과적이오.”

솔직히 지금 드는 생각은 ‘젠장’이었다.

왜……?

내가 너무 문과생이고 사학과라서 그랬다.

아니, 다 떠나서 비누 한번 만들어봤다면…… 이것이었다.

학창 시절에 분명 그런 기회가 있긴 했던 것 같다.

대학생 시절에 호기심으로라도 한 번이라도 만들어봤어야 했다.

뻔한 말이지만 샤워할 때 비누의 사용 여부는 아예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만약 내가 비누만 만들 수 있었다면…… 아니다.

이건 상황이 어려우니 또 헛생각하는 것이다.

현대국가의 재료로 비누를 만드는 건 이 시절 조선에서 만드는 것과 다르다.

과장 좀 보태서 그냥 다른 물건을 만드는 수준이다.

지금은 이따위 헛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곧장 말을 이었다.

“안 그렇소?”

“동의하오. 다만, 실무적으로 어려움이 많으니 우려될 뿐이오.”

“그 부분은 내가 해결할 수 있소. 선생은 지금까지처럼 살뜰하게 집행만 해주시오.”

마음 같아서는 백성들의 옷이며 이불까지 모두 세탁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그럴 여력이 있는지를 알 수 없다.

지금까지 말한 것만 해도 버거울 수도 있다.

……아니다.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지?

삭주로 어려우면 근처 군현의 인력을 동원하면 된다.

의주부터 시작해서 제법 큰 군현이 많다.

중요한 건 역병의 확산을 막는 것이니까.

“가능하겠소? 군현의 수령들이 반발할 수도 있소. 어쨌거나 삭주는 역병이 창궐하였는데 사람을 보내는 게 꺼려질 것이니까.”

“아니, 내 속내를 어찌 아셨소?”

“혼자 중얼거리셨소만?”

“아.”

“실없는 소리는 됐소. 한시가 급하오.”

허목은 더 들을 말이 없고 할 말도 없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역 정책의 전체적인 윤곽이 나왔으니 이제 남은 건 세밀한 집행뿐이라 곧장 움직일 생각으로 보였다.

눈을 껌뻑이며 빤히 쳐다봤다.

나의 반응이 전혀 예상 밖이었을까?

허목은 실소를 머금었다.

“한 가지만 묻겠소.”

“듣고 싶은 말이 있지만, 묻겠다니 어찌 막겠소.”

“병자들 말이오.”

“천마진에 격리할 병자들을 이르시오?”

“그렇소.”

“이미 끝난 내용이오만.”

“격리하는 건 좋소. 한데, 가장 기초적으로 병을 살필 수 있는 상황도 갖추지 않으셨소. 이는 관점에 따라 수백의 목숨을 포기한다고 여겨질 수도 있소.”

“…….”

“이는 사람의 목숨을 한 명, 한 명…… 소중하고 귀히 여기는 게 아니라 대와 소로 나눈 것이오.”

“나는 한 명이 아니라 백성을 지키는 사람이오.”

“그 한 명이 백성이오.”

“한 명에 불과하오.”

“해서, 다수를 위하여 소수를 버릴 수 있다는 말이오?”

“언제는 아니었소?”

“…….”

위정자는 늘 판단해야 한다.

다수의 이익을 위하여 소수는 희생은 당연한가.

아니면 소수도 지켜야 하기에 다수의 이익은 보류하거나 지워야 하는지를.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다수와 소수의 권익은 늘 지켜져야 하기에 그러하다.

다수일지라도 혹은 소수일지라도 희생은 당연하지 않기에 그러하다.

하지만 결정해야 한다.

시일을 끌수록 모두가 피해를 볼 뿐이다.

이는 결국 정치적 판단의 영역이다.

나는 이렇게 규정한다.

다수의 이익을 위하여 소수의 희생은 당연하지 않다.

그러나 소수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

하여, 나는 거침없이 말할 수 있었다.

“그 한 명이 백성일 수는 있으나, 백성이 한 명일 수는 없소.”

맞다.

이게 옳다.

한 명은 백성이지만 백성은 한 명이 아니다.

나는 한 명이 아니라 백성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다.

하여,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성현의 가르침처럼 아름다운 세상은 불가능하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정치는 존재할 수도 없고.”

“만약 그들이 걸인이 아니었다면 어찌하였을 것이오? 양인이었다면? 아니, 사대부였더라도 같은 결정을 내리셨을 것이오?”

“병자, 아니 역병에 걸린 병자만 아니었다면 다를 게 없소. 작금의 방책에 그들의 신분이나 직역은 무관하오.”

“진심이오?”

“지켜보시오.”

허목은 말을 멈췄다.

생각에 잠긴 듯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마디를 툭 던지듯 말했다.

“한데, 땔감은 어찌 확보할 생각이오?”

“우리나라는 수목(樹木)이 하늘에 닿고, 쓰러진 나무들이 길을 막아 넘기가 어렵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소. 그러니 문제는 없소.”

국토의 7할이 산이다.

물을 데울 목재를 구하는 건 쉽다.

문제는 인력일 뿐이었다.

“매번 궁금하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아니외다.”

“…….”

눈을 껌뻑이며 바라만 봤다.

그러자 허목은 묘한 표정을 짓더니 한마디를 더 꺼냈다.

“기어이 역병의 확산을 막겠다는 신념인지,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세의 남용인지는 지켜보면 알겠지요.”

그냥 들어도 썩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여 다툴 생각은 없었다.

그저 지금 내 속에 있는 진심을 꺼낼 뿐이었다.

“결과로 화답하리다.”

그러자 허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였으나 다행이었다.

아마 짧은 내 말에 담긴 최소한의 진심이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진심으로.

그런데.

“알겠소.”

알겠다고 했다.

내 생각은 옳았다.

하여, 화답했다.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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