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방역 모델(3)
늘 그렇듯 반계 학당은 북적거렸다.
세상이 어찌 될지라도 늘 변함없는 생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이 모든 건 학당의 주인인 유형원의 부지런함과 노력 그리고 진심이 만든 것이었다.
“휴.”
유형원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왼손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의 오른손에는 적당한 크기의 도끼가 잡혀 있었다.
허리를 펴며 자세를 고친 유형원은 크게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세상만사 쉬운 게 없다지만 장작을 마련하는 건 늘 어렵구나.”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장작을 마련한 유형원은 고된 몸을 움직이며 도끼를 내렸다.
이제 조금 쉬려고 몸을 움직였는데 말똥말똥 자신을 바라보는 제자들이 보였다.
“스승님.”
천진난만한 목소리.
유형원은 피식 웃었다.
“이놈들. 스승이 도끼를 들 때는 애써 모르는 척하더니, 끝나니 찾는 것이냐?”
“오해십니다. 제자들은 스승님께서 즐기시는 듯하여 애써 배려한 것이었습니다.”
“하하하. 내가 호랑이를 키웠구나. 그래. 네 말이 옳다. 이는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스승의 도리로 어찌 홀로 즐겁겠느냐. 다음부터는 너희도 함께하거라.”
“끙…….”
“응?”
“그리하겠습니다.”
꾀를 부리다 된통 당한 제자들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유형원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단지 이 스승과 농을 하자고 찾은 것이 아닐 것이다.”
“실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이르거라.”
“우리나라는 산이 많습니다. 한데, 어찌하여 늘 땔감이 부족합니까.”
“땔감이 부족하더냐?”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늘 아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하면,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닐는지요?”
“하하하. 너희가 참으로 총명하구나.”
“아……그렇습니까? 혹시 자세히 설명해주실 생각은 전혀 없으십니까?”
“하하하. 어찌 없겠느냐?”
유형원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적당한 곳에 앉았다.
늘 조정의 방책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그러니 자연스레 가르침을 내릴 때도 날카로운 시선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늘의 물음에는 복잡한 정치가 많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에 더 부드럽게 웃을 수 있었다.
“사용할 수는 있으나 무한하지 않기에 그러하다.”
“예……?”
“가르침을 내리겠다.”
제자들은 서둘러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허물없이 바닥에 바로 잡는 모습들이 참으로 정겨웠다.
유형원은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사재감은 땔나무 4,847,565근(2,908.5t), 싸리 횃불 425,225근(255.1t)으로 모두 5,272,790근(3,169.7t)가량이며, 선공감의 목재 사용량은 13,068,000근(7,840.8t)이다. 통상 땔감 벌목을 하고자 한다면 나무의 수명이 40년은 넘어야 한다는 걸 고려할 때 상당한 범위의 숲이 필요하지. 내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족히 둘레 15리의 숲이 통째로 필요했다.”
“……스승님. 그 수치를 쉽게 가늠할 수 없습니다.”
“하하하. 그럴 것이다. 일상에서 접근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니까.”
“스승님께서는 어찌 알고 계십니까.”
“과거 열의와 함께할 때가 있었다. 지금보다는 젊었을 그 시절, 나는 조선을 부지런히 탐하였다.”
“열의와 함께하면 그 수치도 모두 외울 수 있습니까?”
“열의와 무관하다.”
“예?”
“이는 재능이다.”
“…….”
유형원의 웃음이 길어지고 커질수록 제자들의 얼굴은 밝아졌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스승이었으나 늘 날카로운 시야를 견지하였기에 어려웠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리 즐겁고 가볍다.
그러니 제자들도 더 부드럽고 자연스레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분위기를 느낀 유형원은 포근한 미소를 더 진하게 지으며 말했다.
“너희도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많은 선박을 사용한다.”
“그렇습니다. 군선과 조운선의 규모가 족히 3,000여 척에 이른다고 들었습니다.”
“네 말이 옳다. 선박의 평균 수명이 15년이다. 하면, 매년 200여 척(3,000척/15년)의 선박을 새로 건조해야 한다.”
“……그렇습니까? 스승님께서는 어찌 그리도 빨리 계산하실 수 있습니까.”
“재능이다.”
“아…….”
“너희도 부지런히 노력하면 될 것이니라. 어쨌든 배 한 척의 건조에 사용될 소나무는 75~150그루 정도다. 즉, 매년 15,000~30,000그루가량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그, 그렇습니다.”
“현재 조정이 사용할 나무의 숲인 의송지 중 안면도에는 수령 100년 내외의 소나무가 4,156,800여 그루가 있다.”
“예? 그걸 직접……?”
“끌. 그럴 리가 있겠느냐? 천하를 방랑할 때 그곳을 잠시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들은 이야기다. 어쨌든 안면도의 소나무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선박을 139년~277년 동안 제조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조선은 안면도만이 아니라 여러 의송지가 있다. 하여, 선박 건조에 사용될 목재는 넘친다.”
“……대체 어찌 아시는 것입니까.”
“말하지 않았느냐. 재능이라고.”
“하, 하면 모두 숙지하고 계신 것도 재능입니까?”
“네 말에 답이 있으니 어찌 말을 더하겠느냐.”
제자들은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하늘 같은 스승이 그렇다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하면, 우리 조선은 목재가 부족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섣부르구나. 어찌 목재의 사용이 선박의 건조에만 있겠느냐.”
“송구합니다.”
“가르침을 내리겠다.”
유형원은 손을 내저었다.
투박한 움직이었으나 제자들의 눈에는 참으로 유려하게 보였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금과 철 그리고 도자기의 생산에도 많은 땔감이 사용된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하나씩 배우면 될 일이다.”
“예. 스승님.”
“일전에 직접 마른 솔가지를 사용하여 소금을 생산하였다. 기억에 의하면 마른 솔가지 4근(약 2.4kg)으로 소금 2근(약 1kg)을 구할 수 있었다.”
“대체 왜 직접 하신 겁니까.”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물론 모두 그럴 수는 없기에 누군가는 해야 한다. 만일 그리해야 할 1명이 필요하다면 나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아.”
“너희 중 누군가도 1명이 되길 바란다. 어쨌든 여러 소금 생산지를 답사하고, 실제로 생산해본 결과 우리 조선은 매년 소금 257,216,667근(154,330t)을 사용하며, 이를 위해서 땔감은 514,433,333근(308,660t)이 필요하다.”
“……소생들이 그 한 명이 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제 능력을 비하하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은 없다. 나를 부끄러운 스승으로 만들지 말거라.”
“…….”
유형원이 제자들에게 존경을 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무릇 스승이기에 압도적인 지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필요한 건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실제적인 노력이었다.
유형원은 지식을 서책에서만 얻는 인물이 아니었다.
직접 움직이는 인물이었기에 누구도 범접할 수가 없었다.
“조선은 매년 29,880,000근(17,928t)의 철을 생산한다. 이를 위해서는 숯 44,820,000근(26,892t)이 필요하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목재의 사용 실태.
끝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제자들은 그냥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의 요지는 점차 땔감의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례를 들겠다.”
“경청하겠습니다.”
“세조 시절 백성 1명은 땔감 62근(0.037t), 폐주 연산 시절에는 110근(0.066t)을 사용했다. 현재는 200~300근. 우스운 건 사대부 1명은 매년 3,687근(2.21t)을 사용한다는 사실이지.”
“30배가 넘습니다. 스승님. 진실로 그러합니까?”
“하하하. 놀랄 필요 없다. 조선을 익히면 익힐수록 놀랄 일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니 고작 이 정도에 놀라면 조선을 익히기 어렵겠지. 앞으로 깜짝 놀랄 일은 계속 생길 것이다.”
“…….”
“이제 너희도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였을 것이다. 조정의 요구에 의한 선박, 철, 도자기, 토목 따위가 아니더라도 백성이 필요한 땔감의 양도 갈수록 많아진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백성의 수가 점진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영향으로는 온돌을 사용하려면 땔감이 필요하고, 이어지는 요소로는 다양한 영역에서 소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수요의 증가로 땔감이 부족해지는 것입니까?”
“단지 그뿐만이 아니다. 백성이 많아질수록 경작지도 늘어날 것이니 산림은 훼손되지 않겠느냐? 늘어난 백성은 땔감을 원하지만, 또 생존을 위하여 땔감을 확보할 수 있는 지역을 없애고 있으니 어찌 모순이 아니겠느냐?”
내용의 무거움이나 심각함과는 별개로 유형원의 목소리는 잔잔하였다.
바람에 찰랑이는 계곡물처럼 평온하기도 했다.
“특히, 가여운 백성은 옥토를 가질 수 없기에 화전 농업을 일삼을 것이다. 이는 빈번한 화재를 가져올 것이니, 울창하던 숲을 순식간에 벌거숭이 산으로 만들지 않겠느냐?”
“과연 그렇습니다. 자연스레 수목을 태워 재목을 고갈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불에는 눈이 없다. 왕실의 능침과 분묘마저 삼킬 것이다. 조정에서 부랴부랴 대책을 수립하겠으나, 언제 제대로 무엇이 이뤄진 적이 있었더냐?”
“…….”
“조정은 절대 화전의 폐단을 막을 수 없다. 이는 끔찍한 재앙이니라.”
유형원은 혀를 차면서 한탄했다.
조정을 향한 신랄한 비판에 제자들은 민망하여 눈만 내리깔았다.
“종국에는 괴이한 일이 발생할 것이다.”
“괴인한 일이라고 하셨습니까.”
“사례를 들겠다. 과거 중종 시절 함경도의 6진 지역에서는 1식정(息程, 30리/20km) 이내에서 땔감을 구할 수가 없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발생하였는가? 땔감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변에서 무한히 공급받을 수 있다. 이는 하늘이 내린 것이기에 그러하다. 대가를 내지 않는 땔감이며, 생존에 필요하니 어찌 아끼겠느냐? 마음껏 확보하였기에 그리된 것이다. 만일 이러한 일이 지속한다면 종국에는 어찌 되겠느냐?”
“결국, 땔감이 부족해질 것입니다.”
“하면?”
“땔감을 거래하는 세상이 오지 않겠습니까?”
“네 말이 참으로 옳다. 조선은 산이 많기에 나무가 많다. 하여, 땔감을 편히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땔감은 재화가 될 것이다. 어쩌면 그 시절이 지금일 수도 있고.”
“그렇긴 합니다. 하면, 땔감을 아껴야 합니까?”
“작금의 조선은 땔감이 부족하지 않다.”
“그렇습니까? 하면, 마음껏 사용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마음껏 사용할 수도 없다.”
“스승님의 말씀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음껏 누릴 수 있으나 후대는 땔감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그러합니까?”
유형원은 여전히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 지역에서 10년을 벌목하면 옮긴다. 다시 돌아가려면 60~70년이 걸린다. 참으로 장구한 세월이지. 만일 땔감의 수요가 이 시간보다 빠르다면 후대는 땔감을 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아. 하면, 후대를 위하여 아껴야 합니까?”
“가정하지 않았느냐. 땔감의 수요가 급격하게 빨라져야 한다고. 즉, 별 탈이 없을 시 이대로라면…….”
유형원은 잠시 멈췄다.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제자들은 기다렸다.
하늘 같은 스승이 하늘을 바라보며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대략이나마 세월을 가늠하는 것이었다.
“족히 200년은 무탈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대로라는 가정을 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두 가지다. 조정의 시책에 변화가 없다는 것과, 백성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
“그러나 그럴 일은 없다.”
오늘만큼은 부드러운 미소를 유지하던 유형원의 입가에는 싸늘한 미소가 자리 잡았다.
제자들이 흠칫할 정도였다.
모두 눈치를 볼 때 한 명이 조심스레 나섰다.
“하지만 스승님. 일전에 이르셨습니다. 대동법을 확대하려면 조운선이 더 필요하며, 국부를 증진하려면 소금을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조정이 이를 고려하여 조운선을 더 건조하고 소금 생산을 확대한다면 목재의 사용은 급격하게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차라리 하늘이 무너지는 게 빠를 것이다.”
“…….”
“네 말은 그야말로 기우이니라. 너희가 죽기 전에, 아니, 죽고 자손이 몇 대나 이어져도 조정의 시책은 변화가 없을 것이다. 조선의 조정은 변화를 병적으로 두려워하니까.”
어떠한 기대도 담기지 않은 일침.
“또한, 백성의 수가 늘어나는 건 사실이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는 없다. 태어나는 수만큼 죽을 것이고, 수명은 연장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지금처럼 점진적으로 늘어날 뿐이다. 오직 하늘의 뜻대로. 어찌하여 그러한가? 조선의 조정은 백성을 제대로 부양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냉소적이었다.
너무나도 신랄한 말이었기에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민망했다.
“그러니 너희는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말거라. 조선의 위정자는 늘 내일이라는 명분에 사로잡혀 오늘의 백성을 위하지 않으니 말이다.”
“…….”
“오늘도 버겁거늘 내일을 그리는 그들은 참으로 사치스럽다.”
“…….”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
너무나도 싸늘했다.
제자들은 감히 더 질문할 수 없었다.
유형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한숨도 쉬지 않았다.
그저 낮게 홀로 말할 뿐이었다.
“당장 오늘 죽을지도 모르는 백성보다 100년 뒤 태어날 백성을 걱정하는 미친 나라.”
한마디를 더 보탰다.
“조선.”
이를 세게 깨물었다.
“참으로 사치스럽고 위대한 나라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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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아쉽다.
찰나, 연유를 떠올렸다.
아직 허목의 등이 보였다.
나는 그가 집무실을 나가기 직전에 말했다.
“선생. 사지 멀쩡한 사내가 모두 물을 퍼 나르고 벌목에 나서게 되오. 하면, 여인과 어린아이 그리고 노인이 구황을 책임져야 할 것이오.”
허목이 등을 돌리며 헛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당연한 일이오. 그러나 쉽지는 않을 것이오.”
“진통이 있겠지요?”
“휴. 아마도 그럴 것이외다.”
“해서, 하는 말이오.”
약간의 의구심이 담긴 허목의 얼굴.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선생. 우리 모처럼 사치를 부립시다.”
“사치라고 하셨소?”
“구휼미 4천 석. 전권을 선생께 드리겠소.”
“……정말이오?”
허목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였는지 진심으로 당황했다.
그럴 만했다.
구휼미는 함부로 남용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절체절명의 순간에나 사용해야 한다.
허목의 구황 정책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기에 당분간은 사용할 계획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부터 사용하라고 했다.
심지어 전권을 넘겼다.
그것도 무려 사치스럽게.
나는 진하게 웃었다.
아직은 당혹감이 묻어나는 허목의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조선의 위대함을 구휼미의 사치로 마음껏 설파하시오.”
나는 봤다.
내 눈과 마주한 허목의 눈동자는 크게 일렁이는걸.
또 봤다.
아니, 들었다.
허목의 목소리를.
“모처럼 바른말 하셨소.”
이 순간 나와 허목의 진심이 통하였다.
비록 짧았을지라도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