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방역 모델(4)
며칠 새 허목은 폭삭 늙었다.
안 그래도 노안이었는데 이제 아주 제대로 늙었다.
이는 아주 바람직하였기에 흡족함이 넘실거렸다.
심리상태가 너무 티가 났는지 허목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재빨리 표정 관리를 했다.
“험험. 천마진으로부터 사람이 왔소. 방침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하오.”
“음. 앞으로는 그런 일만 하시오.”
“거두절미를 너무 과하게 하신 게 아니오?”
“될 수 있으면 관청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말이오.”
“허. 그게 무슨 말이오?”
“구관당상의 행차가 있을 때마다 민심이 크게 동요하오. 가뜩이나 혼란스러운데.”
“뭘 또 그렇게까지 말씀하시오?”
“사실이오.”
“끙. 그 정도는 아닐 건데.”
“그렇소. 아주 제대로 이르셨소. 나의 언변이 부족하여 실제 민심의 사나움을 1할도 표현하지 못하였으니 말이외다. 한데, 구관당상의 언변도 예사롭지 않더이다. 어찌 그리도 뾰족한 모가 났는지 흉내조차 낼 수 없소.”
“……하하하.”
“어설프게 넘어갈 일이 아니외다.”
허목의 말이 야박하긴 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얼마 전 있었던 일을 상기했다.
그때는 정말 난리였다.
그야말로 난리였다.
아니, 아비규환이었다.
빠르게 나의 뇌리는 과거의 기억을 꺼냈다.
-이,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어찌 가족과 생이별을 하란 말입니까?
-우리가 걸인이 아니었다면 이리하겠습니까?
-어찌 이렇게 모질 수가 있습니까?
병자와 병자의 식솔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방침은 거센 반발…… 아니, 항의를 유발했다.
울고 불며 저항했다.
난처한 표정의 병졸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비록 저들이 괴질에 걸린 병자는 아니지만, 가능성이 큰 식솔들이다.
그러하니 병졸들로서는 쉽게 다가가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저 내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대감. 어찌합니까.
-예. 저항이 너무 거셉니다.
나는 병졸들을 빤히 쳐다봤다.
미소는 당연하거니와 감정도 담지 않았다.
그냥 쳐다봤다.
어색함이 감돌았다.
퍽퍽해지는 공기에 저항하던 걸인들도 조용해졌다.
시선을 돌렸다.
그들을 바라봤다.
눈을 마주쳤다.
그러나 모두 피했다.
아니, 고개를 숙였다.
짧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식솔과 떨어질 수 없다?
-…….
비아냥거렸고 답변은 없었다.
그냥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나 역시 기다릴 생각도 없었고, 원하지도 않았다.
건조한 목소리로 병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항하는 이는 소원대로 해주게.”
-소원이라고 하셨습니까?”
-식솔과 떨어질 수 없다고 하니 구령보로 이주시키라는 말일세.
-!!!
가뜩이나 퍽퍽한 공기는 아예 숨쉬기도 어려워졌다.
공기가 부족하다는 건 아마도 이런 경우를 뜻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나 역시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그러나 조금도 티 내지 않았다.
오히려 불편할 정도로 차갑게 말했다.
-번거롭다. 그러니 너희가 선택하라. 천마진과 구령보. 어디로 가겠느냐?
-그, 그것이…….
-제대로 답하지 않는 이는 구령보로 보내겠다.
-대, 대감.
-모두 구령보로 이주시키게.
-처, 천마진으로 가겠습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앞다퉈 천마진을 희망했다.
구령보를 운운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가면 죽을 가능성이 농후하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저항한 이유는 뻔했다.
또 복합적이다.
아마도 이들은 종래 관습대로 읍성 내외에 격리 지역을 설치하길 원하였을 것이다.
어째서……?
천마진과 구령보는 읍성에서 벗어나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기본으로는 식솔과 떨어질 수 없다는 명분을 앞세웠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다. 그랬다면 단 한 명도 천마진을 선택하지 않은 건 설명할 수 없으니까.
읍성과 격리 지역의 의료 시설이 확연하게 차이가 날 것이라는 모를 수는 없다.
구황이나 구휼도 그럴 것이고.
그러니 아마도 두려웠을 것이다.
먼 곳의 격리는 내가 자신들을 버리는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이들이…… 내 속을 너무 정확하게 꿰뚫어 봤기 때문이다.
그랬다.
나는 언제라도 저들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고개를 돌렸다.
구경하던 백성들을 쳐다보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관청에서 여러 방침을 내릴 것이다. 이를 반드시 숙지하여 따르도록. 만일 어길 시에는 엄히 다스릴 것이다. 또한, 병자는 구령보에 격리할 것이며 식솔과 접촉한 이는 천마진으로 모두 이주할 것이다.
백성들의 표정은 복합적이었다.
내가 매몰차다고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역병으로부터 완벽한 격리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적어도 아직은 역병을 피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 알 것이다.
자신 중 누구라도 역병에 걸린 병자가 되면 구령보로 갈 것이며, 식솔은 천마진으로 가게 된다는 걸.
그래서일까?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저들도 알 것이다.
나의 방침을 환영할 수도 없고, 싫어할 수도 없다는 걸.
나 역시 불필요한 감정에 휩싸이거나 흘리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분위기 딱 잡고 감정선 제대로 유지했다.
그렇게 마지막 말을 던졌다.
-이는 사대부라도 예외가 없다.
명확한 기준을 세웠다.
딱 여기까지.
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좌우를 돌아본 뒤 발걸음을 움직였다.
온갖 악평에 시달리는 악인은 백성 앞에 서는 시간이 많을 필요가 없기에 서둘러 관청으로 복귀할 생각이었다.
쑥쑥 하고 퍽퍽한 공기를 느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원래 거인의 걸음은 외로운 법이다.
자연스레 상념을 끝냈다.
사실 조금 아쉬운 건 있었다.
딱 그때 사대부 중 누군가 역병에 걸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너무 작위적이었다.
일부러 조작해도 너무 작위적이라서 아무도 안 믿을 것이다.
왜……?
역병 창궐 직후 이뤄진 공격적인 방역 대책은 사대부를 역병으로부터 아주 자유롭게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안 그래도 역병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영위하는 사대부인 데다가, 강도 높은 방역까지 이뤄졌으니 어찌 병자가 되겠는가.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그래서 사치스럽게 하라고 했소.”
4천 석이 있는데 왜 사용하지 않을까?
심지어 사치스럽게 막 써도 된다고 했는데.
살짝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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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은 살짝 헛웃음이 나왔다.
민심의 흉흉함을 전하였는데 구휼미로 교란하라고 할 줄은 몰랐다.
이럴 때 구휼미를 사용하면 민심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모르는 걸까?
당황스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내일 구휼미를 꺼낼 것이오.”
“아주 훌륭하시오.”
“그런데…….”
“왜 그러시오?”
“괜찮으시오?”
“안 괜찮을 건 또 무엇이오?”
“평생 욕받이였으니 괜찮을 것 같긴 하오만, 이번은 사정이 다르지 않소이까.”
“매번 궁금하오. 그런 말을 사람 앞에서 대놓고 하는 이유가 뭐요?”
“됐소.”
최근 송시열과 나눈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말이 빙빙 도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송시열을 향한 백성의 원망.
이때 구휼미를 베풀면 어찌 될까?
놀라울 정도로 송시열은 악, 조정은 선이라는 명확한 이분법이 구축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송시열은 이를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하면, 일부러 의도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송시열이 말의 요지를 이해하지 못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물론 본인이 원하니 그대로 일을 진행하면 된다.
그래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악명(惡名)을 즐기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아끼지 마시오. 구휼미가 있다는 걸 백성들이 모르는 것도 아니지 않소이까. 다들 속으로 기다리고 있을 것이외다.”
여기서 더 송시열을 고민하면 머릿속이 너무 혼잡해질 것만 같다.
또, 그렇지 않아도 이제는 구휼미를 사용할 때가 됐다.
읍성의 인력을 대대적으로 동원하였기 때문이다.
“아. 일은 잘 진행되고 있소?”
“물론이오.”
“조만간 가봐야겠소.”
“괜히 나와서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지 말고 그냥 관청에서 문서로 보고 받으시오. 부탁이오.”
“……이렇게까지 간곡하게 말할 일이오?”
“물론이오.”
“허.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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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나가서 일의 집행을 살피고 싶었으나 허목의 완강한 반대로 미수에 그쳤다.
마음이 아주 슬펐으나 어쩌겠는가.
실무 집행자의 말을 들어야지.
덕분에 모처럼 생긴 시간에 고민을 이어갔다.
자고로 건전한 고민은 바람직하다.
무릇, 건전한 고민이 잘 이뤄져야만 사회가 아름다워지지 않겠는가?
지금 내가 딱 그랬다.
스스로 칭찬할 만큼 나는 아주 알차고 건전한 고민을 지속했다.
그렇게 도출한 결론 중 하나는 제법 생산적이었다.
“내키지 않은 걸음이었으나 결과적으로 꼭 필요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응……?!”
나는 깜짝 놀랐다.
분명 혼자였는데 눈을 빛내며 쳐다보는 변승업이 지척에 서 있었다.
진짜 심장이 멎을 뻔했다.
진심으로 이보다 더 놀랄 수는 없었다.
“자, 자네 언제부터 있었나?”
“여러 번 기척을 내었는데 대감께서 장고를 거듭하시기에 그저 곁을 지켰습니다.”
“하면, 조용히 물러나는 방법도 있었을 건데?”
“예. 응당 그리하는 게 옳지요. 하지만 우리끼리 내외하면 오히려 서운하실 수도 있다고 여겼지요.”
“아.”
“예.”
구휼미를 가져온 뒤 변승업은 더 강해졌다.
‘우리’를 휘두르는 그의 언변은 아무리 나라고 할지라도 쉽사리 물리칠 수 없었다.
아니, 그냥 수긍해야 했다.
헛기침하며 뻘쭘함을 열심히 몰아냈다.
“그나저나 내키지 않은 걸음이라면 혹시 삭주 도호부의 일을 이르시는 겁니까?”
“역시 자네는 예사롭지 않군.”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꼭 필요했다는 건, 필경 귀인을 만났기에 귀결된 것이 아닐는지요?”
“아…… 그렇지. 암. 그렇고말고.”
“영광입니다. 대감.”
“한데, 이 대화를 계속 이어가야 할 이유가 있겠나?”
“아니지요.”
변승업은 넉살 좋게 웃었다.
그러다가 괜히 좌우를 살피며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혹시 소인이 작은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말이 나왔으니 묻겠네. 만일 자네가 4천 석을 구해오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소인이 역관이며 상인이기에 조선 땅에서 가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하여, 많은 걸 보고 들으며 겪었지요. 대감. 기근으로 인한 고통에 정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삭주의 기근은 아주 심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허목 선생의 구황 정책이 꾸준하게 집행되며 충분한 효과를 내었을 겁니다. 하여, 4천 석은 꼭 없어도 되는 상황이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역병의 창궐이 변수였을까?”
“음.”
“괜찮으니 말하게.”
“냉정하게 평하자면 역병은 역병에 불과합니다. 백성들은 역병으로 죽지 않는 한 생계를 위하여 구황에 집중하였을 겁니다. 하지만 대감께서 이르신 정책으로 그럴 수가 없게 되었지요.”
변승업의 분석은 상당히 객관적이었고 체계적이었다.
사대부들이 볼 때 변승업은 역관에 불과하지만 조선 최고의 부자이기도 하다.
즉, 하나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고 정점을 찍은 인물이다.
그러니 그의 안목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또, 조선 전역을 돌아다니며 쌓인 실체적 경험은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생생한 현장감이 있었다.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새 변승업의 말은 멈췄다. 애써 티 나지 않게 서서히 움직이는 눈동자에서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는 사회생활을 느꼈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끼리 눈치 보지 말고.”
“이런. 소인이 늘 이렇게 부족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민심은 썩 좋지 않습니다.”
“이유를 알 수 있을까?”
“백 보 양보하여 식수를 외부에서 구하는 건 괜찮습니다. 역병이 창궐하면 우물을 폐쇄하는 행위는 보편적이니까요. 하지만 모든 물을 끓여서 사용하라는 방침에서 백성들은 크게 반발…… 송구합니다.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여러 관리가 올리는 보고서는 딱 필요한 말만 있네. 해서, 나는 민심의 정확한 성질을 파악하기 어려워. 자네가 더 생생하게 이어갔으면 좋을 것 같은데.”
“결국, 백성들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달리 말하면 땔감을 구하는 일도 아주 싫어하겠군.”
“실은 그렇습니다. 그러니 불만이 팽배합니다. 물론 관이 주도하고 있으니 입은 부지런히 욕해도 몸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긴 합니다.”
이만하면 전체적인 분위기는 파악할 수 있었다.
더 듣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실은 소인도 대감께서 이토록 일정을 강행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궁금한가?”
“무례라고 여기지 않으신다면 일러주실 수 있겠습니까.”
“뭘 그렇게까지 격식을 차리나?”
변승업은 뛰어난 인물이다.
타고난 신분이 중인이었기에 역관을 하고 있을 뿐, 만일 사대부의 가문에서 태어났다면 시대를 풍미한 재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재력까지 갖추고 있다.
이런 인물은 가까이 두는 게 바람직하다.
가볍게 목을 움직이면서 입을 열었다.
“참으로 우연한 일이었네.”
“우연한 일이라고 하셨습니까?”
“구휼미 4천 석 말일세. 만일 자네를 만나지 못했다면, 혹은 자네가 거부(巨富)가 아니었다면 어찌 가능한 일이었을까. 지금 조정의 역량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음. 조선 전역의 사정을 꿰뚫고 있는 자네라면 알 것이네. 매일 곳곳에서 재해가 발생한다는 걸. 묻겠네. 그때마다 우연한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어렵습니다.”
“그렇지. 어렵지. 아니, 불가능한 일이지. 그래서 이리하는 것일세.”
“…….”
“앞으로 우리 조선은 끝이 보이지 않을 재해와 싸울 것이야. 나는 한시도 쉬지 않고 고민했네. 어찌 싸울 수 있을까? 어떻게 싸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아니, 이겨내지 못하더라도 죽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무엇인지 아는가?”
“일러주십시오.”
“구휼미 4천 석의 기적은 앞으로 발생할 수 없지만, 언제라도 어떤 경우라도 동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모두 꺼내자. 반드시 그리하자. 바로 이것이었네. 그리고 내 눈에 보인 건 세 가지가 있었지. 첫째는 인력, 둘째는 식수, 셋째는 바로 땔감이었어.”
차분하게 하나씩 꺼냈다.
변승업은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로 경청했다.
“백성들이 의아함을 가지고 있고, 자네도 물었네. 어찌하여 물을 끓이는가. 재해를 막을 수는 없으며, 기근도 확실하게 해결할 수는 없겠지. 기껏 할 수 있는 건 구황의 전면적인 집행일 뿐이야. 구휼미는 조정의 일이고. 하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 바로 역병을 최대한 차단하는 것일세.”
“역병의 차단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재해와 기근은 십중팔구 역병으로 이어지는 법. 물론 반드시 막아낼 수는 없으나, 절망적인 피해로 번지지 않게 하는 건 해볼 만하지. 무릇, 역병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 불결할 때 매섭게 창궐하는 법일세. 하여, 나는 끓인 물을 먹게 한 것이며 강제로 목욕을 시키는 것일세.”
이 시절 위생 정책을 제대로 수립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위생 정책을 집행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안 씻는 것보다 씻는 게 백배는 낫다.
이것만 해도 100명의 사망자를 90명의 사망자로 줄일 수 있다고 확신했다.
“물론 백성은 고단하겠지. 피하고 싶을 것이고. 하지만 이뤄져야 하는 일일세.”
“…….”
“삭주에 오길 잘했다는 말은 재해 대책의 표본을 수립할 수 있었기 때문일세. 향후 우리 조선은 모든 군현에서 이와 같은 방침을 집행하게 될 것이네. 꼭 그리 만들 것이야.”
“하면…… 어찌하여 백성을 설득하지 않으십니까.”
“언제?”
“예?”
“대체 언제 설득하나? 당장 기근이 발생하고 역병이 창궐하여 언제 지옥이 될지 모르는 곳에서, 무슨 여유가 있어서 백성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나?”
“…….”
“무릇 사대부라면 백성을 교화해야 한다고 하지. 그러나 작금의 조선에서 교화는 사치일세. 그런 사치를 부릴 여유는 없네.”
“…….”
“나의 방책을 백성이 이해한다면 좋은 일이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여 안타까워할 필요도 없네. 또한, 백성으로부터 지탄받을지라도 상관없네. 지금 조선에 필요한 건 백성의 추앙을 받는 대신이 아니라, 온몸으로 화살을 맞을지라도 백성을 통제할 수 있는 대신일세.”
모처럼 속에 담긴 말을 꺼냈다.
그래서 아주 시원했다.
내친김에 한마디를 더 보탰다.
“그것이야말로 지독하게 가난한 이 나라 조선이 마음껏 사치를 부릴 수 있는 길이기에, 나는 웃으며 길을 열어 낼 것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