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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노래하라-41화 (41/298)

41화 외로운 길(1)

삭주 인근의 야산에는 수십 명의 사내가 있었다.

희한한 건 한 명의 예외도 없이 험상궂게 인상을 쓰며 입은 산만큼 나와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고. 이게 무슨 팔자에도 없는 나무꾼인지.”

“내 말이 그 말일세. 이 시간에 죽 해먹을 솔잎이나 구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니까!”

두 사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불평과 불만을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양손에는 땔감으로 쓰일 나뭇가지를 잔뜩 들고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어. 아니, 물을 왜 끓여?”

“물만 끓나? 내 속도 끓어.”

“세상이 끓고 있네. 세상이.”

그때 도끼를 든 사내들이 지나가며 두 사람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자네들은 나은 걸세. 나뭇가지를 옮기는 게 백배 나은 걸세. 우리는 종일 도끼질을 해야 한다네.”

“그건 어쩔 수 없네. 자네들은 평소 잘 먹어서 힘이 좋지 않은가. 그러니 힘을 써야지.”

“대체 누가 평소에 잘 먹었다는 건가? 그냥 이렇게 태어난 걸세.”

“그건 자네 팔자일세.”

“휴. 팔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리고 혹시 아나? 도끼질하다가 선녀라도 만날지.”

“선녀를 만나면 뭐 하나? 먹여 살리지도 못하는데.”

“음. 그러고 보면 선녀를 데려갔던 그 나무꾼의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웠을 걸세.”

“그것이 정말 부러운 일이라는 걸 부정하지는 않겠네. 그러나 그런 복을 누린 나무꾼은 나무꾼의 역사에 오직 한 명이었지. 그래서 나는 지금 자네들이 더 부럽네. 종일 도끼를 휘두르니 팔다리가 아파 죽겠네.”

그때였다.

“배부른 소리.”

다른 사내가 끼어들었다.

그는 한숨까지 푹 쉬면서 말했다.

“나는 자네가 자른 나무를 옮겨야 하네.”

“이, 이런…….”

“이건 진짜 미친 짓이네. 하아…….”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모두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이 시간에 땅이라도 팠으면 칡뿌리를 얼마나 구했을지 생각만 해도 열이 뻗친다네.”

“그것은 참으로 옳은 말일세.”

“그래. 백 보 양보해서 이 짓의 이유라도 타당하면 말을 안 해. 그런데 보게나. 무작정 씻으라고 하지 않나?”

“암. 해가 떨어지면 피곤해서 자야 할 사람들을 억지로 잡아서 씻으라는 건 대체 어느 나라 귀신이 떠드는 소리인가?”

불평과 불만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귀신은 아니고 조선 사람.”

산통을 깨는 목소리.

모두 흠칫해서 고개를 돌렸다.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는 삭주부의 관리였다.

모두 어색하게 웃으면서 눈치를 살폈다.

“한데, 조선 사람이라니요?”

“몰라서 묻나?”

“개차반이요? 험험. 송구합니다.”

“아닐세. 나 역시 도통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다 자네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니, 부지런히 일이나 하게.”

“암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냥 푸념이나 했습니다.”

“서두르게.”

“예.”

관리가 멀어졌다.

사내들은 격분했다.

“기가 막힌 일이지. 우리가 힘들다고 말하면 다 우리를 위해서라고 하지 않나? 진짜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닌가?”

“개차반이나 곡했으면 좋겠네. 진짜 개차반이 아닐 수 없네.”

“거기 그만 떠들고 줄 서게!”

병졸의 외침이 들렸다.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말이기도 했다.

바로 밥 소식이었다.

“밥이 왔나 보군.”

“흥!”

“생각 없으면 자네 밥은 내가 먹겠네.”

“자네는 참으로 흉악하군. 어찌 남의 밥을 탐하나?”

“안 먹는다며?”

“그저 흥! 이라고 했을 뿐이네.”

“하나만 하게. 하나만. 이 어려운 시절에 굶지 않으면 된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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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한적하던 판막천은 물지게를 든 장정들로 북적였다.

물지게에 물을 가득 담고 읍성으로 돌아가는 이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관리들은 붓과 문서를 들고 물지게를 옮기는 장정들을 한 명씩 써넣었다.

적당하게 어수선하였고, 약간의 실랑이도 있었다.

“아니, 대체 소인의 이름은 왜 적습니까?”

“왜긴. 자네가 꾀를 부릴까 봐 그러지.”

“꾀라니요?”

“물지게에 물을 담고 돌아가는 척하다가 물을 버리고 다시 줄을 설 수도 있으니까.”

“!!!”

“일몰 이후 내가 들고 있는 명단과 읍성의 명단을 비교하여 물지게가 안전하게 도착하였는지 파악할 것이네. 그러니 절대 꾀를 부리지 말게.”

“대, 대체 누가 이런 흉악할 정도로 꼼꼼합니까?”

“휴. 누구긴.”

“개차반…… 소, 송구합니다.”

“됐네. 나도 이 짓을 왜 하는지는 모르니까. 그저 시켜서 하는 것일세. 그러니 자네도 협조하게. 서로 돕고 살자고.”

참으로 보기가 정겨운 실랑이도 있었다.

“아니?! 이보게. 자네가 내 앞에 있었네.”

“무슨 말인가? 그건 그야말로 잠시였네!”

“잠시라고 할지라도 자네가 앞이었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일세.”

“아닐세. 나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어. 자네가 나보다 먼저 왔다는 걸.”

“무, 무슨 말인가? 내가 먼저 왔다면 어찌 자네가 앞에 있을 수 있나?”

“내가 도착하자 은근슬쩍 발을 옮겨서 뒤로 빠지는 걸 눈치채지 못했을 거 같나?”

“……그걸 봤나?”

“내가 눈뜬장님으로 보이나?”

“우라질 놈의 세상. 기근과 역병 때문에 숨쉬기도 힘든데 물이나 퍼 나르라고 해서 자네와 나의 사이가 멀어질 뻔한 것일세.”

“말을 똑바로 하게. 개차반 때문이지.”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어서 앞으로 가게. 안 그러면 우리 사이 진짜 멀어지니까.”

“끙.”

그때 멀찍이서 징 소리가 났다.

다투던 두 사람의 표정이 환해졌다.

가장 기다리던 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밥 먹으러 가세.”

“암. 밥 먹어야지.”

아주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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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으로 코와 입을 가린 변승업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조심스레 닦았다.

잘못했다가는 천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숨을 고르게 쉬며 천마진을 바라봤다.

이곳에 격리된 이들은 병자는 아니지만, 병자와 한 이불을 덮고 자던 식솔들이다.

오늘은 멀쩡하더라도 내일 병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늘 조심해야 했다.

만일 송시열의 명이 아니었다면 이곳에는 절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짐꾼들을 재촉하며 조금 더 걸어가니 천마진의 병졸을 만났다.

“구관당상 대감의 명으로 물자를 전하러 왔네.”

“혹시 구관당상 대감과 가깝습니다?”

대뜸 치고 들어오는 물음.

변승업은 히죽 웃으면서 가슴을 탕탕 쳤다.

“아주 가깝지.”

“오. 하면, 질문이 있습니다.”

“얼마든지.”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합니까? 정말 답답합니다.”

질문의 요지는 쉽게 파악되었다.

이들 역시 병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지키는 게 꺼림칙한 것이다.

남 일 같지 않았다.

당장 변승업 자신은 고작 물자를 전하러 오는 것도 싫었으니까.

낮게 한숨을 쉬면서 병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힘내게.”

“허. 기약이 없습니까?”

“아마도.”

“이런…….”

병졸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변승업은 크게 위로하며 말했다.

“안 그래도 자네들 주려고 넉넉하게 챙겨왔네. 그나저나 자네들만 있나?”

“높은 분들이 이곳에 있겠습니까? 저들이 온 직후 다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아.”

“이래서 잘 태어나야 하나 봅니다.”

“내가 그 말은 진심으로 공감하는 바일세. 그러나 구령보에 간 병졸들보다는 팔자가 괜찮지 않나?”

“큭. 그 말은 소인이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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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내 집무실인데…… 허목이 있다.

게다가 미친 듯이 헛웃음을 짓고 있다.

너저분하게 펼쳐놨던 문서 한 장을 들고 있는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세게 깨문 입술은 하얗게 변하여 피가 새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모습이 정말 무서웠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슬쩍 등을 돌리려고 했다.

물론 미수에 그쳤다.

“멈추시오.”

“그래야지요. 한데, 왜 그러시오?”

“변승업을 벌해야겠소.”

“변승업을 왜…… 벌하오? 일이 이토록 잘 진행되고 있는데 구태여 누군가를 벌할 이유가 있소? 이대로 그냥 물 흐르듯이 끝낸다면 참으로 아름다울 것 같소만.”

“그렇소?”

허목은 비웃으며 문서를 내밀었다.

나는 슬쩍 눈알을 굴리며 내용을 확인했다.

아주 심각한 내용이었다.

물론 내가 잘 아는 내용이었고.

“역관에 불과한 변승업에게 큰일을 맡겼는데 엉망으로 처리하지 않았겠소? 그러니 벌해야지요. 안 그렇소이까?”

“음.”

“구령보와 천마진으로 약탕 따위를 전해야 하오. 고작 역관에게 이토록 중차대한 역할을 맡겼다면 그 자체로 큰 영광임을 깨달아 성심껏 수행해야 하거늘, 지금껏 구령보의 병자들에게는 아무것도 전하지 않았소.”

“…….”

“그들은 그냥 죽으라는 게 아니면 뭐겠소? 분명 그들에게도 약탕을 전하여 차도를 기록하라고 하였는데?”

“선생.”

“이를 실수라고 볼 수는 없소. 결국 어떤 의도가 있다는 건데, 참으로 방자하오.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소. 만일 이대로 덮었다가는 관의 기강이 땅에 떨어질 것이니 말이외다.”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헛기침을 하면서 눈치껏 말을 꺼냈다.

“거. 그럴 수도 있지 않소?”

“뭐가 또 그럴 수 있소?”

“역병에 걸린 병자들이외다. 근처에 가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 않소이까. 변승업과 그의 무리는 의관이 아니니 더 그럴 것이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신분을 떠나서 변승업에게 맡긴 일은 별로 영광스럽지 않소이다. 병자들에게 물자를 전하는 건 모두가 피하는 일이니 말이오.”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그리고 지금 변승업의 편을 드는 것이오?”

“뭐……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오.”

“되었소. 구관당상의 말이 다 옳다고 할지라도 이미 분명하게 그에게 내린 분공이었소. 한데,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으니 벌하는 게 마땅하오. 더는 만류하지 마시오.”

허목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이대로라면 변승업이 크게 난처해질 게 분명했다.

물론 허목의 말대로 변승업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면 처벌받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그게 모두 내가 시킨 일이라는 것이다.

차차 허목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문서를 먼저 확인할 줄을 몰랐던 나의 실책도 포함되고.

나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진정하시오.”

“지금 진정하게 생겼…… 그 반응은 뭐요? 알고 있었소? 아니지. 혹시 구관당상이 개입하셨소?”

“차차 말하려고 했소.”

“구관당상!”

“일단 진정하고 내 말을 들으시오.”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여차하면 내 사지를 찢어버릴 것만 같은 기세다.

그러니 지금은 아주 중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스쳤다.

그간 허목이 내게 한 우호적인 말들이.

-명연설이었소.

-진심이외다.

제법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까워지려고 하면 다시 원점이었다.

나와 허목의 관계는 늘 이랬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다.

매번 허목을 설득하며 갈 수는 없다.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해야 한다.

천천히 심호흡했다.

“선생의 짐작대로요. 나는 병자를 구할 생각이 없소.”

“실성하셨소?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오? 참으로 타당한 이유라서 더는 말하고 싶지 않구려.”

“하면, 내가 어찌해야 하오? 아니, 병자를 살릴 방도가 있긴 하오?”

“역병에 걸린 병자는 살릴 방도가 있는 게 아니라, 방도를 찾아야 하는 것이오. 그 시간을 버틴다면 살 것이고, 아니면 죽는 것이오. 한데, 지금 구관당상은 그들이 생존할 가능성을 아예 박탈하였소.”

“가끔 선생과 대화하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아오?”

“뭐요?”

“그냥 서책이 말하는 것 같소.”

“이보시오!”

허목이 격분했다.

그리고 나도 격분했다.

“똑바로 들으시오!”

평소처럼 유들유들하게 말하지 않았다.

이건 확실하게 해야 할 문제였다.

아니면 계속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작금의 삭주가 역병에 대처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었소?”

“하! 천재지변과도 같은 역병이외다. 대저 조선에서 역병에 대처할 태세를 갖춘 군현이 몇 곳이나 되오?”

“아니지요. 아니외다. 선생의 말은 아예 틀렸소.”

나는 거칠게 문서 한 장을 잡아 들었다.

그리고 내뱉듯 말했다.

“갈근해기탕, 조중탕, 창출백호탕, 감길탕, 가미패독산, 대시호탕, 오적산, 오령산, 인진사황탕, 퇴황산, 과체산, 보제소독음자, 기제해독탕…….”

나는 쉬지 않고 문서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미친놈처럼 그냥 읽었다.

허목의 안색도 점차 딱딱하게 굳었다.

“선생이라면 내가 무엇을 읽었는지 알 것이오.”

“…….”

“괴질의 처방이외다. 여기 적힌 것만 해도 20가지가 넘소. 이 중 단 하나라도 삭주에서 처방할 수 있는 게 있소?”

“……그 약탕은 원래 귀한 약재로 만드는 것이오. 역병이 창궐하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를 찾는 게 원칙이오.”

“그래서 아무 풀이나 뜯어서 약탕을 만드오? 아니지요. 최소한의 약재가 있어야지요. 정녕 모르시오? 아니지. 인정하지 않으실 거요? 이곳 삭주에는 약탕을 만들어낼 약재가 없소. 전혀 없소. 아예 없소.”

역병 창궐 이후 여러 의원을 통하여 파악한 바는 그냥 최악이었다.

삭주는 역병을 대비할 수 있는 약재가 거의 없었다.

누구의 탓이 아니었다.

그냥 이렇게 된 것이었다.

“실정이 이러한데 병자를 다스릴 약탕을 만든다? 선생. 이건 오만이외다. 괜한 짓으로 애꿎은 이까지 역병에 걸릴 뿐이오.”

“대체 구관당상이 무슨 권한으로 병자가 살 기회를 박탈하오? 최소한의 약재라도 사용하여 시도는 해봐야 하오. 어찌하여 매사 안 된다고만 하오. 누군가의 목숨을 이토록 쉽게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신분과 관직에서 비롯한 오만이오.”

“나 역시!”

고함을 질렀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진심을 토로했다.

“누군가의 죽음이 진심으로 고통스럽소. 내가 그들에게 원한이 있기에 이토록 가혹한 것이 아니외다.”

화가 났다.

그냥 화가 났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 화가 났다.

“그들이 죽어가는 걸 보면 내가 기뻐할 것 같소? 아니외다. 나 역시 괴롭소. 나의 선택이 누군가의 생명을 박탈하였다는 걸 알기 때문이외다. 그런데도 이리하는 이유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그들과 접촉할 누군가를 지키기 위함이오. 나는 선택해야 하고, 결정해야 하는 사람이오. 나의 선택은 다수가 있을 것이며, 결정은 최소한의 피해로 규정될 것이외다. 이를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욕해도, 나의 선택과 결정에는 변함이 없소.”

“…….”

“약탕 하나 제대로 준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을 구하겠다? 멀쩡한 사람까지 위험에 처하게 하는 행위가 아니면 무엇이오? 이것이야말로 오만이며 아주 큰 착각이외다.”

허목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저 한탄하듯 고개를 들고 천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 역시 속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굳건하게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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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령보는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석성이었다.

높이가 9척에 이르렀기에 외부에서도 쉽사리 진입할 수 없었으나,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사람이 지나가려면 오직 성문을 지나가야만 했다.

하지만 외부로부터 쇠사슬 따위로 봉쇄된 성문을 열 방법은 없었다.

오직 내부에서만 열지 못할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구령보에 격리된 병자들은 종일 성문만 바라봤다.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렸다.

성문이 열리기만을.

“왜, 왜 성문이 열리지 않는 걸까.”

삼삼오오 모인 병자들은 퀭한 눈으로 성문을 바라봤다.

격리된 첫날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다.

역병의 고통으로 하루를 겨우 버티고 있기에 점차 날짜를 셀 수 없었다.

그저 여러 날이 지났다고 막연하게 느낄 뿐이었다.

그 오랜 시간 성문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부, 분명 여기 있으면 약탕을 전한다고 했잖아.”

“약탕 냄새도 맡지 못했어.”

“혹시 밖을 지키는 병졸들이 일부러 전하지 않는 걸까?”

“아, 아니야. 우리의 차도를 기록할 의관도 온다고 했어. 만일 약탕이 왔다면 병졸들이 무슨 수로 치울 수 있겠나.”

그랬다.

분명 구령보로 약탕이 전해지고 의관이 따로 온다고 했다.

하지만 약탕과 의원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역병의 고통이 온몸을 짓누를 동안 말이다.

참으로 괴로웠다.

갈수록 통증은 심해졌는데 비명 지를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 기력이 빠져서 축 처져 있을 뿐이었다.

눈빛은 퀭하고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몸을 덜덜 떨면서 성문만 바라봤다.

그래서인지 구령보의 공기는 스산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부, 분명 약탕을 전해준다고 했는데……. 서, 설마 우린 버려진 걸까?”

“마, 맞아. 우리는 버려진 거야.”

“아, 아닐세. 그럴 수는 없어. 버리다니 우리를 왜 버려.”

“버, 버려진 게 아니라면 왜 여태 한 번도 약탕이 안 와.”

“그, 그래. 우린 버려진 거야.”

“마, 맞아. 버렸어. 양반놈들이 우릴 버렸어.”

누군가의 입에서 시작된 말은 끝없이 이어졌다.

병자들의 눈에는 절망이 감돌기 시작했다.

“우리가 양반이었다면 이렇게 개처럼 버렸을까?”

“그걸 말이라고 하나? 양반이었으면 구령보에 가두지도 않았어.”

“큭……. 그러면 그렇지. 우리 같은 거지새끼 몇 명 죽는 게 뭐가 그렇게 대수라고.”

“킥킥킥……. 개보다 못한 신세지.”

병자들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리고 하염없이 울었다.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아니, 말릴 수 없었다.

다 함께 울었으니까.

“썩을 놈의 나라.”

“버티세. 꼭 살아서 이 썩을 나라가 망하는 건 봐야지.”

“꼭 그럴 걸세.”

“무조건 살아날 거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말을 꺼낸 누구도 살아서 나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잠시 잊었으나 온몸을 후려치는 고통은 여전하였으니까.

“으아아악!”

“진정하게. 진정해!”

“주, 죽을 거야. 죽을 거야!”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한 병자 한 명이 미친 듯이 달렸다.

사람들은 기겁하여 그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쾅!

벽에 머리를 박은 그는 결국 숨을 거두었다.

처음으로 죽은 사람이 나왔다.

심지어 역병이 아니라 자결이었다.

분위기는 스산할 정도였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 아닌가?”

“다 같이 죽자고?”

“아니.”

그는 성문을 바라봤다.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성문을 부수고 나가지.”

“……그래. 어차피 죽을 팔자, 뭐라도 해보지.”

“병졸의 창칼에 살아남으면 무조건 읍성으로 달릴 걸세. 그래서 그 잘난 양반놈들도 역병에 걸리게 할 거야.”

“큭. 나도 그럴 걸세.”

그 말을 마지막으로 병자들은 양손에 성문을 부술 만한 물건들을 하나씩 들었다.

그리고 성문의 지척으로 운집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표정은 참으로 사나웠다.

눈빛에서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증오만이 보였다.

그리고 성문을 향해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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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쾅!

-쾅!

결국 병자들의 저항이 시작됐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병졸들의 안색은 딱딱하게 굳었다.

창을 잡은 손은 땀이 흥건하게 묻어나왔다.

만일 병자가 성문을 벗어난다면 끔찍한 살육이 발생한다.

또 두려웠다.

그 살육의 와중에 역병이 옮겨질까 봐.

모든 병졸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며 간절히 바랐다.

구령보 내부의 소란이 조금이라도 빨리 멈추기만을.

그리고.

“……궁수. 앞으로.”

부관의 명령이 내려졌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손속에 인정을 두지 말라.”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러나 성문이 열리지는 않았다.

그저 밤새 끔찍한 소리만 들렸을 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소리는 희미해졌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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