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외로운 길(2)
허목은 넋이 나갈 것만 같았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송시열의 말은 너무나도 현실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그의 말대로 삭주는 역병을 극복할 어떠한 준비 태세도 갖춰지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병자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라도 해보려고 했다.
뭐라도 해보려고 했다.
효과가 크지는 않을지라도 해보고자 했다.
그러나 송시열의 말은 너무나도 따가웠다.
그에게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확신이 가득한 선언이었다.
오늘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번뇌에 휩싸이는 밤이었다.
허목은 잠을 청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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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청 앞을 서성였다.
한숨을 쉬며 하늘을 바라봤다.
오늘따라 유달리 밤이 어두웠다.
무거운 마음이 더해만 갔다.
기다리는 소식이 있다.
들어야 하는 소식이었으나 피하고만 싶었다.
미룰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이는 나의 이기에 불과했다.
“대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몸을 돌렸다.
어두운 밤보다 더 어두운 얼굴의 변승업이 보였다.
손에 힘을 꽉 주었다.
티 나지 않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구령보의 소식을 가져왔나?”
“……막 다녀오는 길입니다.”
변승업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목울대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너무 따가웠다.
목을 꽉 쥐고 고통을 숨기고 싶을 정도였다.
몸이 떨렸다.
만일 밤이 어둡지 않았다면 변승업이 알았을 것이다.
혼란으로 가득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혼란을 밀어내고 이성을 찾고자 했다.
어려우나 그리해야 해야 했다.
그리고 물었다.
“병자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호흡이 떨려왔다.
내뱉은 숨은 격하게 떨렸다.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이내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다.
살릴 수 있는 태세가 전혀 없지 않았는가.
온몸으로 합리화를 했으니 뇌리의 구석에서 허목의 말이 너무나도 또렷하게 떠올랐다.
-역병에 걸린 병자는 살릴 방도가 있는 게 아니라 방도를 찾아야 하오.
코가 시큰했다.
-구관당상은 그들은 생존할 가능성을 아예 박탈하였소.
그래. 시도라도 해봤어야 했다.
그랬어야 했다.
그게 옳았다.
그들은 시체가 아니라 버젓이 살아 있는 사람이었지 않은가.
그들을 죽인 건 역병이 아니라 나의 방침이었다.
나다.
내가 죽인 것이다.
내가…… 죽였다.
“구령보를 책임진 부관의 말에 의하면, 병자들이 마지막에 성벽을 부수고자 했다고 합니다.”
“…….”
“고통을 참지 못하고 탈출을 시도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숨을 거뒀습니다.”
실낱같았던 희망이 허상이었다는 걸 깨달은 병자들이다.
응당 그리하였을 것이다.
예상하였던 일이지만 너무나도 참담했다.
또…… 그들은 마지막 순간 조선이 자신들을 버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아니, 내가 자신들을 버렸다는 걸 말이다.
산 사람이었거늘 얼마나 비참하고 절망스러웠겠는가.
속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다소 괴이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괴이하다니?”
“자결한 병자가 상당수였습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한 것 같습니다. 송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로 올리겠습니다.”
더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심장이 너무나도 아팠다.
송곳…… 아니, 망치로 후려치는 것만 같았다.
“묻겠네. 자네는 보고 들은 게 많으니까.”
물음을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았으나 변승업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병에 걸렸다고 할지라도 죽음을 두려워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의원의 처방에 몸을 맡기며 생존을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처방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같습니다.”
“그런가……?”
“송구합니다. 대감.”
“자네가 왜 송구한가. 내가 그들을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이거늘.”
“…….”
크게 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후회라고 부르는 감정이 미친 듯이 밀려왔다.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밀어냈다.
지금의 감정은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에 불과하다.
맞다. 그것이다.
내 판단이 옳다.
나와 조선이 싸울 재해는 낭만을 허용하지 않는다.
1명을 위하여 100명이 목숨을 던지는 전설 속의 이야기는 존재할 수 없다.
병자들이 관의 방침을 이해하며 식솔을 구하고자 자진하여 나선다는 건 전설로도 부족하다.
100명을 위하여 1명을 죽일 수밖에 없는 현실의 잔혹사만 있을 뿐이다.
살고자 처절하게 울부짖은 병자들의 애달프고 구슬픈 사연만 있을 뿐이다.
어찌하여……?
모두가 살 방법은 없기에 그러하다.
그러니 후회는 쓸데없는 감상에 불과했다.
눈에 힘을 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천마진으로 이동시킨 병자의 식솔들 상태는 어떤가.”
“모두 무사합니다.”
“다행이군.”
이만하면 됐다.
괴질이라는 역병을 십수 명의 피해로 끊어냈으니까.
“모두 읍성으로 이동시키게.”
“그리하겠습니다. 대감.”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축객령이었다.
물러나려던 변승업은 머뭇거리더니 대뜸 말을 꺼냈다.
“대감.”
“말하게.”
“소인은 대감의 판단을 존중합니다. 아니, 지지합니다.”
“…….”
“대감의 냉철한 결단이 아니었다면 역병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겁니다. 지금껏 조선의 조정은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한 방책을 사용했으니까요. 그 방침은 한 명을 위해서 아홉 명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도박에 불과합니다.”
“…….”
“모르는 이는 대감을 비난할지도 모르지만, 모든 과정을 지켜본 소인은 아닙니다. 대감은 세상의 모든 이와 싸울지라도 버티셨습니다. 이를 모두 안다면 누가 대감께 감히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대단히 감동적인 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게는 위로가 됐다.
나도 모르게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이럴 것이네.”
“소인이 늘 곁을 지킬 것입니다.”
“그거 아는가?”
“무엇을 말입니까.”
“큭. 이 길이 참으로 외롭다네.”
잔잔하게 웃었다.
그저 잔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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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승업이 떠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밤하늘을 바라봤다.
오늘 밤은 왜 이다지도 어둡고 깊은 것일까.
달이라도 밝았으면 숨고자 이동이라도 하겠으나 그조차 아니었기에 움직이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다행일까?
숨지 않아도 숨어지는 꼴이니 말이다.
“……하아…….”
한숨이 새어 나왔다.
참으로 구슬픈 한숨이었다.
너무나도 애달픈 한숨이었다.
달을 바라봤다.
어느새 달은 구름에 가려져 자취를 감췄다.
더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더 진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게 됐다.
그렇게 눈가가 뜨거웠다.
그리고 눈가의 습기가 차올랐다.
“흑…….”
눈물이 흘렀다.
심장이 터질 듯 아팠다.
나의 길이 옳더라도.
나의 판단이 맞더라도.
산 사람을 죽였다.
나는 철인이 아니다.
나는 냉혈한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심장이 미칠 듯이 따가웠다.
죽을 만큼 후회가 밀려왔다.
아무리 밀어내도 끝없이 밀려오는 후회는 나 같은 범인(凡人)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했다.
결국, 고개를 떨궜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 땅을 적셔 흔적을 남겼다.
습기로 가득한 눈이 그 흔적을 확인했다.
결국 나는 무너지듯 그 자리에 쓰러졌다.
떨리는 손바닥은 바닥과 만났다.
소리 내지 않고 오열했다.
“부디 나를…….”
나를 지탱하던 손바닥이 접어졌다.
손가락은 땅의 흙이라도 부여잡았다.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
“용서치 말게.”
용서를 구했다.
절절하게.
진심으로.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가 있다면 바로 그곳이 나의 자리일 것일세.”
또 용서를 구했다.
절절하게……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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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부사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천운입니다.”
“천운이라.”
“예. 천운이 아니라면 대체 뭐라고 해야겠습니까.”
상기된 안색의 도호부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허목은 그를 빤히 쳐다봤다.
“병자는 단 한 명도 살리지 못했네.”
“누군가의 죽음이 어찌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역병이 창궐하였는데 큰 피해가 없습니다.”
“…….”
“아. 물론 선생의 노고가 있었지요. 어찌 모르겠습니까.”
허목은 쓰게 웃었다.
삭주의 통치를 책임지는 도호부사마저 이리 생각한다.
하면, 백성의 말을 들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참으로 고약한 인사로다.”
“예?”
“아닐세.”
허목은 그저 씁쓸하게 웃었다.
때마침 송시열이 다가왔다.
표정은 아주 밝았다.
“선생.”
“…….”
“이제 도성으로 돌아갈 때가 됐소.”
“이대로 말이오?”
“구황 정책이 잘 이뤄져서 기근은 문제가 없으며, 역병도 잘 방비하였소. 그러니 이제 도성으로 돌아가야지요. 한데 왜 그러시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소?”
송시열의 말대로다.
부족함은 없었다.
지금껏 조선의 재해 대책이 이토록 큰 성과를 거둔 예는 없었다.
지금껏 조선에 없었던 수준으로 거의 완벽하게 재해를 제압했다.
그런데 참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왜……?
꼬리를 무는 물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병자들의 서글픈 죽음이 원인은 아니었다.
물음은 참으로 의외의 것이었다.
정말 이대로 돌아가도 되는 걸까?
삭주의 모든 백성이 송시열을 욕하는데, 본인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자고 한다.
바로 이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허목은 알고 있다.
지금 이룬 모든 건 송시열의 방책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그런데 어떠한 공치사도 없다.
그저 그냥 있을 뿐이다.
“선생. 왜 그러시오?”
“……아니외다. 구관당상의 뜻에 따르겠소.”
“하면, 준비하시오. 서둘러 떠나야지요. 재해가 발생한 곳이 삭주만은 아닐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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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의 당혹스러움이 전해질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삭주의 재해 극복을 빛나는 성과로만 포장하고자 그리했다.
웃음으로 포장하였으나 웃는 게 아니었다.
웃음은 그저 거짓에 불과했다.
앞으로 나는 거짓과 함께 살기로 하였기에, 더는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웃었다.
괴롭지 않을 수는 없으나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론을 내렸기에 더는 죄스러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안다.
내 길이 옳다는 걸.
백 번을 생각해도 내가 옳다.
그러나 이성이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또한, 이성이 늘 옳을 수도 없다.
인간의 이성은 늘 오류가 존재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낭만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낭만의 가능성마저 완벽하게 치워버렸다.
앞으로 이 나라 조선은 따뜻한 낭만이 없을 것이다.
오직 차가운 현실만이 존재할 것이다.
내가 그리 만들 것이다.
이 나라 조선에 낭만은 사치니까.
그렇게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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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은 환하게 웃으며 등을 돌렸다.
허목은 송시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무슨 이유였을까?
무슨 감정이었을까?
오늘따라 유독 송시열의 뒷모습이 크게 보였다.
조용히 읊조렸다.
“진정으로 거인(巨人)이로다. 또한…….”
뒷말은 아꼈다.
그냥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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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한 일이었다.
참으로 희한했다.
바람이 말을 옮긴 것일까?
아니면, 그의 목소리가 딱 이 정도는 된 것일까?
무엇이 원인인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나의 귀에 잔잔하게 퍼진 말이 있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거인(巨人)이로다. 또한…….
듣고자 한 것이 아니었으나 들렸다.
알고자 한 것이 아니었으나 알았다.
자연스레 뒷말도 궁금하였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거인(巨人)이라고 했다.
허목이.
나를.
하여, 그저 이 순간을 음미할 뿐이다.
어쩌면 조금의 낭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를 품으며.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로 가기 전 약간의 사치가 허용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